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59화 (158/341)

외줄 타기 (3)

지이잉.

강남 채플린에 도착할 즈음,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보낸 이 : 경동수

-조현웅 의원에게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검사님께서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만 해 뒀습니다. 대화가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군요.

처음부터 내 패를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

물론, 내가 먼저 접촉했기에 주도권을 100% 잡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을 테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배려였다.

새삼스럽게 경동수를 내 편으로 만든 게 신의 한 수였다는 게 느껴진달까.

강남 채플린에 들어가자, 이미 조현웅 의원이 도착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했듯이 옆구리에 여자 한 명을 낀 채로.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최 검사님도 오랜만입니다.”

그는 반갑게 손을 들며 나를 반겼다.

“제가 술자리가 오랜만이라 너무 목이 말라서 먼저 시작했는데, 괜찮겠죠?”

“물론입니다.”

나는 그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였다.

“일단 한 잔 받으시죠.”

“예.”

조현웅 의원은 술병을 기울이며 물었다.

“우리 최 검사님께서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셨을까요?”

“의원님과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진지한 이야기라…….”

그는 술잔을 가볍게 부딪치고는 깔끔하게 들이켰다.

나도 조현웅 의원을 따라 술잔을 비우고 내려놓자, 그가 넌지시 물었다.

“그러면 이 만남은 공적인 자리일까요, 사적인 자리일까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사적이다 못해 아주 프라이빗한 자리죠.”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린 조현웅 의원은 옆에 낀 채 주무르고 있던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자를 한 명 더 부르는 게 아니라, 있던 사람까지 내보내야겠는데?”

조현웅 의원이 코를 찡긋하자, 옆에 있던 여자는 알아서 자리를 비워 주었다.

큰 방 안에 단둘만이 남게 되자, 그는 빙긋이 웃으며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연락을 하셨더라고요.”

“예. 제가 2번 라인과 접촉할 방법이 대통령님 말고는 크게 없더라고요.”

“저희 라인 사람들도 경동수 대통령님은 어렵게 생각하는데…… 역시 사람들이 최서준, 최서준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씨익 웃으며 말을 보탰다.

“아, 참고로 라인의 다른 사람들한테도 오늘 만남 자리는 이야기하지 않고 나왔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이래서 잔챙이가 아니라, 수장급을 만나야 된다니까.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의 취기를 조금 더 올릴 생각으로 수박 겉핥기부터 시작했다.

“의원님께서는 올해 지방선거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지방선거라…….”

그는 천천히 테이블에 있던 참치 뱃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른 지방 쪽은 늘 그랬듯이 대한당과 저희 민국당이 양분할 테고, 이번엔 강원도만 만세당에서 차지할 것 같습니다.”

“수도권은 민국당이 우세하지 않습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인천시장과 경기도지사는 아마 저희가 잡을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최규현이 이번에 나경준을 데리고 가면서 서울시장에 힘을 확 싣고 있어서 서울 탈환은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는 나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혹시 뭐 좋은 소스라도 있습니까? 아니면, 최규현 의원과의 사이가 틀어졌다든가…….”

나는 대답 대신 눈썹만 들썩이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와 잔을 부딪치며 연거푸 두 잔을 더 들이켠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규현 마인드는 확고합니다. 나경준을 서울시장으로 만들어 입지를 다지고, 그걸 기반으로 자신이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거죠.”

“역시 그랬군요.”

술이 강하지 않다는 소문처럼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하긴, 나 시장이 장교 출신이라 이미지 메이킹하기엔 좋았을 테니까요.”

“예, 맞습니다. 게다가 나경준이 명문대 ROTC를 나와서 그런지 인맥도 많고, 군인 출신인 것도 모자라, 봉사활동 단체 수장이었기까지 하니 강직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국민들한테 어필하기엔 최적화된 인물이니까요. 무엇보다 군기도 바짝 들어 있어서 충직함에 배신할 염려는 전혀 하지 않아도 될 테고요.”

“이미 서울시장직을 잡고 있는 데다가 최규현 의원까지 힘을 주고 밀어준다면, 차기 서울시장 자리는 무난하게 그가 당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서울보다 차라리 인천과 경기도를 노리는 게 더 합리적인 거죠.”

민국당에서 벌써부터 서울시장은 포기하고 있는 상태.

이렇다면, 이야기는 더욱 쉬워진다.

너무나도 달콤하지만, 가질 수 없어 포기한 자리를 민국당에게 안겨 준다면, 조현웅과 2번 라인에게 나의 제안은 달콤하기 짝이 없을 테니까.

그는 지방선거에 관해서 내가 조사를 하게 되면 어차피 어느 정도 알게 될 거라 생각했는지, 핵심적인 요소를 제외한 전체적인 그림은 숨김없이 말해 주었다.

아니, 이렇게 말해 줘야, 내 숨겨진 속내를 들을 수 있다고 판단했겠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를 향해 마음을 열어 뒀다는 뜻이기에 내게도 부담이 적었다.

이 인간, 역시나 보통내기가 아니라니까.

“서울시장에 대적하려면, 수도권의 나머지인 인천시장이랑 경기도지사를 가져와야 4년간 싸움이 될 테니, 저희 쪽에서 그 둘을 당선시키는 형식으로 가야겠죠.”

조현웅 의원은 허심탄회하게 말을 이었다.

“최규현 때문에 두 개 라인이 완전히 어긋나 버렸어요. 물론, 덕분에 제가 실권을 잡기야 했지만…… 영 골치 아프네요.”

조현웅 의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1번 라인과 2번 라인에는 대한당과 민국당의 의원들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두 당을 중심으로 만세당을 압살하며 주요 자리들을 독과점하는 체제였다면, 최규현이 대선에 출마할 야욕을 나타내면서 이 구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본인이 속해 있는 1번 라인의 주요직들을 대한당 소속 의원과 친대한당 인물들로 가득 채웠고, 이 탓에 민국당 의원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 상황.

어쩔 수 없이 민국당 의원들은 2번 라인으로 몰려들었고, 이 과정에서 라인의 내부 개혁을 통해 조현웅 의원이 실권을 쥐게 되었다.

대한당은 1번 라인, 민국당은 2번 라인으로 양분 체제가 굳어진 탓에 다시 예전처럼 섞이기는 쉽지 않을 터.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이 체계가 계속될 게 분명했다.

“민국당은 이런 생각이라는 걸 말씀드렸습니다.”

조현웅 의원은 능글맞게 나를 바라봤다.

“검사님의 생각도 말씀해 주시죠.”

이젠 더 이상 지체할 것도 없었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경기도지사와 인천시장을 배출한다고 해도 수도권의 절반밖에 먹지 못한 것 아닙니까?”

“그건 맞죠. 가장 중요한 건 서울시장이니까요.”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저는 민국당에서 서울시장까지 차지한다면 4년간은 대한당을 압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의원님은 어떻습니까?”

순간, 그의 동공이 떨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대답했다.

“나경준이 당선된 뒤에 최규현의 뒤통수를 치게 만들려고 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서울시장으로 점찍어 둔 인물이 있으신 겁니까?”

나는 두 손을 깍진 낀 채 테이블에 올리고는 진지하게 그를 바라봤다.

“성태현 의원 어떻습니까?”

“성태현요?”

“예. 지금 대통령인 경동수가 세대 격차를 줄이는 소통을 외치며 당선되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는 만큼, 성태현의 젊은 나이와 경제 지식을 무기 삼으면 꽤나 괜찮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씀은 성태현 씨가 2번 라인으로 넘어온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서울시장으로 괜찮은 친구인 것 같긴 하지만…….”

조현웅 의원은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갸울였다.

“아까 말했다시피 대한당을 달고 있으면 암만 저라고 한들, 2번 라인에서 대놓고 밀어주긴 힘들어요.”

나는 간단하게 해답을 내밀었다.

“민국당을 달면 어떻겠습니까?”

그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 말씀은 성태현 의원이 당적 변경이라도 하겠다는 뜻입니까?”

“성태현 의원만 가는 게 아닙니다.”

나는 입꼬리를 씨익 비틀었다.

“저도 함께 2번 라인으로 갈 겁니다. 조현웅 의원님의 아주 든든한 칼자루가 되어 드리죠.”

잠깐이나마 그의 얼굴에 반가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입장에서 나의 합류는 아주 천금과도 같이 귀할 테니까.

내가 서울 검찰의 실세로 자리 잡는 것도 모자라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까지 1번 라인의 인물이 차지하고 있는 상태.

2번 라인에 소속된 검사들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게 태반이고 개중에 일부는 라인을 바꾸려고 하는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런 상황에서 내가 2번 라인에 합류한다면, 검찰 구도가 확 바뀌는 것이다.

1번 라인을 압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대등한 위치까지는 설 수 있을 터.

정치를 할 때,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가 바로 돈과 힘이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건, 권력이나 깡패 따위가 아니라, 자신의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무기를 뜻하는 바, 가장 대표적인 힘은 바로 검찰이었다.

검찰과 함께 손을 잡고 있다면, 상대방을 잡아넣는 위협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법망을 피해 유야무야 빠져나오는 것도 가능했으니까.

그의 입장에서 나의 합류는 반갑다 못해, 간절하게 바라고 있을 터.

그랬으니까 이 자리까지 나왔을 테지.

아니나 다를까, 조현웅 의원은 오래 고민을 하지 않았다.

“검사님까지 합류해 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하지만…….”

그는 걱정스런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물었다.

“문제는 성태현 씨입니다. 그분은 모든 정치 기반이 대한당에 있을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의원님을 뵙고 확정을 받으려고 하는 거죠.”

나는 코를 찡긋거리며 그의 술잔을 채워 주었다.

“민국당 공천만 확실하게 밀어 주신다면, 성태현 의원은 대한당을 버릴 겁니다. 이건 제가 책임지죠.”

조현웅 의원은 술잔을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나는 그가 깊이 생각지 못하도록 말을 보탰다.

“경동수가 대통령으로 굳건하게 버티면서 경기도지사와 인천시장도 모자라 서울시장까지 가져간다는 건, 차기 대선까지 민국당에서 충분히 노릴 수 있는 겁니다.”

대선이라는 말에 그의 침이 꼴깍 넘어갔다.

당 대표 정도나 되는 인물이라면 대권을 꿈꾸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이럴 때일수록 더 몰아붙여야 한다.

“인천시장과 경기도지사는 확정된 게 아니지만, 저와 손을 잡으신다면 성태현은 확실히 서울시장으로 올릴 만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습니까?”

“그럼요.”

나는 믿음직스럽게 가슴을 내밀었다.

“제가 경동수 대통령과 어떻게 친해졌겠습니까?”

조현웅 의원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도 그럴 것이, 저번 대선에서 경동수가 당선되도록 내가 도왔다는 사실에 대해 2번 라인 인물들은 예상만 하고 있을 뿐, 확신을 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경동수와 내가 서로 입에 담고 있지 않았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쥐고 있는 패를 까서 보여 주면, 상대방이 현혹되어 넘어오기에 아주 제격이지.

“제가 바로 숨어 있던 킹메이커입니다.”

그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조현웅 의원은 이미 넘어왔다.

이게 바로 그에게 인심을 쓴 것처럼 보이면서 내 치부를 가리는 대화의 기술.

조현웅 의원이 받아 주지 않으면 나도 상당히 곤란해졌을 테지만, 이렇게 진행되면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된 것처럼 보이는 법.

본론에 들어오기 전에 술잔을 연거푸 기울였던 게 아주 탁월한 효과를 발했다.

고민을 마친 그는 결연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대권을 향한 야욕을 두 눈에 드러내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 제가 서울시장 공천은 무조건 받으실 수 있도록 약속드리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공중에서 내 잔이 그의 술잔과 부딪치며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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