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58화 (157/341)

외줄 타기 (2)

“잠깐 식사하고 계시겠습니까? 잠깐 통화할 곳이 생겨서.”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둘을 뒤로하고 가게 밖으로 나와 경동수의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신호음이 울린 뒤, 들리는 그의 목소리.

-오랜만입니다, 최 검사님.

“잘 지내셨습니까, 대통령님.”

-저야 늘 똑같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대통령님도 좋은 일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저녁은 드셨습니까?

“식사 도중에 잠깐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잠깐 통화 괜찮으십니까?”

-예,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대통령님께서 계신 라인이랑 접촉을 하고 싶은데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그는 걱정스런 어투로 물었다.

-지금 계신 라인에 문제가 생긴 건가요?

“아마 제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습니다.”

경동수는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보통 건수가 아닌가 보군요.

“예. 이번에 사건 조사하면서 사이비 종교를 하나 치려고 하는데, 배후에 1번 라인의 대표가 있더군요.”

-최규현 의원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아마 보통 건이 아니라, 청와대에서도 꽤나 논란이 될 법한 문제라서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될 것 같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는 사이비 종교라면 소탕해야죠. 필요하신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물어보신 것에 답하자면, 당연히 연결은 가능합니다. 제 소개가 아니더라도, 검사님이라면 어떤 라인에서도 두 팔 벌리고 환영할 테니까요.

“그러면 언제쯤에 접촉할 수 있을지…….”

-연초라 아마 사람들이 다들 바쁠 겁니다. 혹시 급하신 건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며칠 내로 TV로 보도가 될 예정이라서요.”

-음…….

잠시 고민하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만나실 수 있도록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조만간 제 비서실장 혹은 라인 측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규현은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자칫하다간 제 선에서 커버가 힘들 수도 있어요.

“명심하겠습니다.”

-네. 그러면 들어가시고, 일 정리되면 조만간 한번 보시죠.

“좋습니다. 즐거운 저녁 되십시오.”

경동수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마무리했다.

우선, 그가 연결해 준다고 했으니, 2번 라인과의 접촉은 수월할 터.

자세한 건 2번 라인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랑교에 대해 더 자세하고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게 필수적일 터.

나는 식당으로 돌아가 윤설하와 송재훈 PD에게 그랑교에 대한 세부적인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

자유 마당, 탈곡 마당 그리고 에레츠 헤므다라는 낙토(樂土)로의 이주를 빙자한 인신매매와 기부라는 명목의 착복(着服).

단순히 이 세 가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만 해도 충격은 보통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이들 뒤에 최규현이 있고, 단순히 그 혼자만이 배후가 아닐 거라는 사실.

그 세력들은 각종 언론사를 꽉 잡고 있고 어마어마한 돈까지 쥐고 있을 테니까.

송재훈 PD는 이번 건을 보도하기로 결정하면서 상부로부터 아주 지독한 압박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방송국 사장이 PD X-File 출신이 아니었다면, 아마 보도 자체가 불가능했을 정도라고 하니, 더 설명할 것도 없는 상황.

방송 예정일은 미루고 당기기를 반복해 1월 중하순으로 결정되었기에 그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쳐야 했다.

이 모든 일은 성태현을 서울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함.

윤설하와 송재훈 PD에게 그랑교에 관한 사실을 들은 다음 날, 바로 성태현을 만났고, 그에게 그랑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성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 그랑교를 이용해 나경준 서울시장을 엮어 몰아내고, 서울시장 자리를 차지한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이 정도 사이비 종교와 엮인다면, 시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나경준을 뽑을 리는 없을 테니까요.”

“다행입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나경준 서울시장의 지지율이 조금씩이나마 계속 상승하고 있어서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렇습니까?”

“예. 그래도 이 정도면 공천에서 압승할 수 있겠네요.”

안심한 성태현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공천이 아닙니다.”

“네?”

그는 당황한 듯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공천이 아니라면…….”

“그랑교를 터뜨리는 건 본 선거 시즌입니다.”

순간, 성태현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서울시장으로 다른 인물을 선택하신 겁니까?”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나는 바로 부정했다.

“성태현 씨와 함께 갈 겁니다. 대신…….”

팔을 뻗어 그의 옷깃에 붙어 있던 국회의원 배지에 대고 손을 퉁겼다.

“이 배지의 소속이 달라지는 거죠.”

성태현은 당황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민국당으로 가는군요.”

“맞습니다. 최규현이 있는 한, 대한당을 달고 이 사건을 터뜨릴 순 없어요.”

그는 걱정스런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민국당에서 공천을 해 줄까요?”

“의원님께서 확정을 지어 주시면 제가 2번 라인으로 가서 이야기를 할 겁니다. 무조건 공천을 받아 와야죠.”

“당적변경이라…….”

예상했듯이 그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다른 당도 아니고 민국당으로 간다는 건, 가족의 품을 버리고 원수에게 가는 것과 같을 테니까.

뿐만 아니라, 그에게 당적변경은 국회의원 자리를 내려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단순히 대한당에 남아 서울시장 공천에서 패배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다시 국회의원으로 공천을 받아 출마할 수 있겠지만, 민국당으로 옮겨서 서울시장 당선에 실패하는 건 다시 국회의원으로 돌아가는 일조차 불가능하게 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말 그대로 정계에서 마지막 행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공하면, 대통령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만, 실패하는 순간 그대로 나락을 향해 추락하게 되는 기로에 놓인 상황.

그렇기에 성태현에게도 단순히 내 생각을 강요할 수만은 없었다.

그도 충분히 위험성을 알고 있어야, 이번 일이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 일인지 파악하고 움직일 테니까.

그렇기에 현 상황에 대한 내 판단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한마디로 외줄 타기입니다. 성공으로 얻는 게 많을 테지만, 실패하시면 지금 쥐고 있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겁니다.”

내 심정까지도 덧붙였다.

“마음 같아서는 함께하자고 권유하고 싶지만, 의원님의 운명을 제가 종용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는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길게 숨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외줄 타기라는 게 원래 그런 법 아니겠습니까?”

성태현 의원은 결정을 마친 듯 어깨를 활짝 폈다.

“원래 광대는 위험천만하게. 그리고 아주 위태롭게 외줄을 타지만, 외줄의 끝까지 건너가기만 하면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는 법이죠.”

“그렇다면…….”

“검사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사내로 태어났으니, 한번 각하 소리는 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작 손에 쥔 걸 잃기를 겁낸다면 대통령감이 아니죠.”

그의 대답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역시나 포부가 보통 사람과는 급이 다르다.

아니, 담력이 세다고 해야 하나?

국회의원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배포.

아무래도 이 사람이야 말로, 내가 본 최고의 대통령감이 아닐까 싶다.

나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정치사상은 괜찮겠습니까? 진보와 보수가 완전히 반대인데.”

그의 얼굴에선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성태현 의원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떤 상황이든 적응하는 게 진정한 정치인 아니겠습니까?”

이번만큼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제가 대통령감 하나는 제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럼요. 경동수부터 시작해서 저, 성태현까지 확실하게 고르시지 않았습니까?”

그는 넉살을 떨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러나 이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나저나 최규현 의원은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감당해야죠. 어차피 의원님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면, 언젠가 한 번은 부딪쳐야 할 사람입니다.”

그와 부딪치는 건 충분히 감내하기로 마음먹었다.

성태현은 평범한 정치인이 아니라, 무려 대통령이 될 인물.

최규현이 암만 강력하다고 한들, 그와 부딪치는 게 겁난다고 차기 대통령이 확실한 사람을 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성태현에게 말한 것처럼, 언젠간 부딪쳐야 했고 그때가 온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계획을 짜면서도 계속 마음 한편에 드는 걱정이 있었다.

이것 또한 미래 문자 때문.

과거에 ‘보낸 이 : 37’로부터 ‘대한민국 21대 대선. 대한당 최종 후보 최규현.’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성태현이 노리는 건 22대 대선이기에 경쟁자가 아니었지만, 다시 말하자면 21대 대선까지 최규현이 건재하다는 사실.

그렇지 않고서야 대한당의 최종 대선 후보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그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면, 분명 이번 선거에서 내가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을 터.

그나마 다행인 건, 미래 문자는 내 선택에 의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

과거에 월향이 아니라, 배진수 기자가 고인이 된 것처럼.

성태현이 내 시나리오대로 따라오기로 한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최규현이 21대 대한당 후보가 되는 미래가 실현되지 않도록, 성태현이 22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미래가 도래할 수 있도록.

내가 원하는 미래를 지켜야 한다.

***

그랑교 보도를 2주 앞둔 날.

윤설하와 함께 그랑교의 연결 고리에 대해 한참을 연구하던 도중,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최서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구지원입니다.

구지원.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경동수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인물.

-급하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분명 2번 라인과의 접촉과 관련된 내용일 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윤설하에게 말했다.

“잠깐만 쉬고 있어요.”

“그러면 화장실 다녀올게요.”

그녀는 내가 굳이 나가지 않고 편하게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주었다.

윤설하가 나간 뒤, 나는 다시금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예, 말씀하세요.”

-대통령님께서 저번에 이야기하셨던 것에 대해 준비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구지원 비서실장도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지 못하는 모양.

-다만, 상대측에서 빠듯한 시간을 쪼개서 낸 터라, 당장 오늘 저녁에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 이에 괜찮을지 여쭤보시는데 뭐라고 답할까요?

“갈 수 있습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선약이 있더라도 취소하고 가야 하는 건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오늘 오후 7시에 강남 채플린으로 가시면 안내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채플린?

취향을 보니 조금 나이가 있는 인물 같은데…….

“혹시 만나는 상대방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조현웅 의원님이십니다.

그 이름을 들은 순간, 나는 쾌재를 불렀다.

조현웅 의원.

미래 문자의 동영상에서 성태현 및 나와 함께 아주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던 인물.

경동수에게 2번 라인과의 만남을 부탁할 때, 분명 조현웅 의원의 이름은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2번 라인의 수많은 인물 중에서 미래 문자에 등장했던 조현웅 의원을 직접 선택해서 연결시켜 줄 줄이야.

암만, 그가 2번 라인의 대표 격인 인물이라고 한들, 이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신호였다.

골치 아픈 걱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