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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157화 (156/341)

외줄 타기 (1)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윤설하는 활기차게 인사를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이에요, 설하 씨.”

“네. 1년 만에 뵙네요.”

그녀는 능청스레 말을 이었다.

“작년에 보고 올해 봤으니까 1년 맞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커피 테이블을 향해 턱짓했다.

“따뜻한 차나 한잔해요. 와이프가 해외 촬영 갔다가 코코아 사 왔는데 달달하니 설하 씨가 좋아할 거예요.”

“이야, 역시 사모님밖에 없다니까.”

윤설하는 코트를 벗고 바로 팔팔 끓고 있는 커피포트에 다가가 코코아를 탔다.

“부장님은 코코아 안 드세요?”

“저는 단 걸 안 좋아해서.”

오는 길에 사 온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그나저나 못 본 사이에 얼굴이 진짜 핼쑥해졌는데, 고생 많이 했나 봐요?”

“어휴, 말도 마세요. 근 한 달간 새로운 제보자들 나와서 계속 만나러 다닌다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다 보니까 절로 살이 빠지더라고요.”

“공장으로 출근하는 거 오랜만이죠?”

“그렇죠. 한 석 달 됐나?”

1년까지는 아니고 근 세 달 만에 보는 윤설하였다.

나는 요 몇 달 동안 서기웅 사건을 마무리하느라 바빴고, 윤설하는 그랑교의 집회에 잠입한 이후로 송재훈 PD와 함께 PD X-File의 보도에 쓸 자료들을 함께 정리하느라 중앙지검에 출근도 하지 못했으니까.

“한 5킬로는 정도 빠진 것 같아요.”

그녀는 어깨를 쫙 펴며 말을 덧붙였다.

“뭐, 자신감은 그대로인 것 같지만요.”

“됐고, 고기 먹어서 살 좀 찌워요. 바람 불면 날아가겠네.”

“그래서 부장님한테 소고기 사 달라고 하려고요.”

윤설하는 배시시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오늘 저녁에 송 PD님이랑 미팅 장소 소고기집으로 잡으면 되겠죠?”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알아서 하세요.”

“비싼 집으로 잡아야지.”

“고생했다고 아주 뽕을 뽑으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럼요. 저 그랑교에서 있었던 일 들으시면 소고기가 아깝지 않을 겁니다.”

“이따가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돈 아까우면 설하 씨가 내라고 할 거예요.”

“밤새도록 술 마셔도 아깝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눈썹을 들썩이며 코코아를 손에 쥐고 호록 마셨다.

“아, 참. 홍석장 검사님이랑 정현우 검사님이 타 부서로 넘어가셨다면서요?”

“예. 공정거래조사부랑 공안부 부부장으로 갔습니다. 누구한테 들었어요?”

“새해 첫날에 장하영 검사랑 만나서 소주 한잔했거든요.”

“제 욕하셨겠네.”

“엄청 했죠.”

윤설하는 너스레를 떨었다.

“일이 빡 세긴 한데, 잘생겨서 참기로 했어요.”

“잘하셨습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앉았다.

“송재훈 PD 만나기 전에 알아 둬야 할 사항 있으면 미리 전달해 주세요.”

“예.”

그녀는 코코아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거만 다 마시고 서류 드릴게요.”

“그래요.”

***

송재훈 PD 역시 얼굴이 갸름해져 있었다.

윤설하와 함께 세 달간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모양.

그는 내 술잔을 채워 주며 반갑게 물었다.

“잘 지내셨죠?”

“그럼요. 재훈 씨도 살 좀 빠지신 것 같은데요?”

“예. 조금 빠졌습니다.”

“그랑교가 보통이 아닌가 봐요.”

“어휴, 이 녀석들이…….”

송재훈 PD는 혀를 끌끌 찼다.

“PD X-File에서 제보 받는다고 하니까, 제보자들 전화보다 그랑교에서 전화가 더 많이 와서 어찌나 곤혹을 치렀는지…… 방송 중지시키라고 협박까지 왔다니까요. 저번 달에는 저희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 가지고 가족들을 친정으로 보내고 저 혼자 회사에서 숙식까지 했습니다.”

“다시 잠입할 수 있겠어요?”

“저희는 못 하죠. 설하 씨도 힘들 거예요.”

윤설하는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2차 잠입하려고 최대한 제 정체는 숨겼는데, 취재하다 보니까 저까지 들통났더라고요.”

“그건 어쩔 수 없죠. 2차 잠입은 경찰 쪽 사람으로 보내 보겠습니다.”

고기를 구워 주고 있던 직원을 향해 말했다.

“이제 저희가 굽겠습니다. 나가 보셔도 돼요.”

“맛있게 드세요.”

다 익은 소고기들을 윤설하와 송재훈 PD의 앞 접시에 올려 주며 물었다.

“그래서 제일 핵심이 뭡니까? 전부 진실인 건가요?”

“그렇습니다. 전부라기보다는 그게 오히려 일부라고 봐야 할 지경이었어요.”

송재훈 PD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인신매매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출국하는 장면까지는 저희 카메라로 담았고, 자유 마당이라는 이름하에 성폭행이 벌어진 것 또한 사실로 파악했어요. 제보자들 증언도 확보했고요.”

“인간 말종 같은 녀석들이네요.”

“그런데 여기서 조금 충격적인 부분이 있더라고요.”

소고기를 하나 집어 먹은 윤설하가 말을 보탰다.

“최규성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최규성요?”

기억 속을 헤집자, 딱 한 명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알긴 아는데…… 아마 제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나 윤설하는 젓가락까지 내려놓고 말했다.

“아마 부장님이 아시는 그 사람일 겁니다.”

“그럴 리가요.”

“최규현 의원 동생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 인간이 거기 끼어 있습니까?”

“예.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최규성이 집회에 참석하고 있더라고요. 일반 신도가 아니라, 장로로서요.”

잠깐만.

이건 예상치 못했던 건데.

“그렇다면 그랑교의 배후가…….”

“맞습니다. 최규현이었던 거죠.”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윤설하가 건넨 서류에서 그랑교의 배후 세력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말하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최규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다름 아닌, 1번 라인의 수장.

최규현을 흔들면 1번 라인 전체가 흔들리는 셈이 될 터.

쉽게 건들 수가 없는 상대였다.

“이건 생각보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데요.”

“예. 그래서 저희도 취재하는 데 오래 걸렸던 겁니다.”

“이러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단순하게 그랑교와 나경준 서울시장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테이블에서 손을 내리고 천천히 생각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최규현이 1번 라인을 잡고 있지만, 그를 흔든다고 해서 라인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가 버티지 못할 거라는 게 알려지는 순간, 분명 새로운 인물이 치고 올라와 실권을 잡을 터.

그러나 라인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은 틀림없다.

여기서 문제는 최규현을 공격하는 동안 내가 지금의 입지를 확고히 잡고 있을 수 있느냐의 문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규현을 친다면, 1번 라인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을 테니까.

잠깐만.

이런 이유 때문에 미래 문자에서 내가 2번 라인 사람과 함께 웃고 있었던 건가?

젠장.

이렇게 흘러가면 은밀하게 2번 라인과 손을 잡는 게 아니라, 대놓고 라인을 옮겨야 하는 셈이 되는데.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 오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나경준을 서울시장에서 밀어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랑교를 실제로 건드린다는 건, 정계로 발을 뻗는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게 되는 셈이니까.

지금까지 내가 정치 검사와 라인을 탄 검사의 기로에 서 있었다면, 이번 일은 확실하게 정치 검사라는 노선을 확정짓는 일이 될 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눈을 감았다.

그래. 일단, 2번 라인으로 옮긴다는 가정 하에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자.

우선 제일 중요한 건 검찰 내에서의 내 입지의 변화.

서울고검장은 라인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니 문제가 없을 터.

차장검사들이나 다른 부장검사들도 충분히 내 손으로 커버할 수 있다.

걱정되는 건 며칠 전에 만난 한동민 검사장.

그는 오늘부로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에 부임을 했고, 아주 대표적인 1번 라인의 인물이다.

다시 말해 내가 2번 라인으로 가면, 또다시 검사장과 대립구도에 서게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미 검사장을 두 명이나 날린 마당에 또 검사장과 대립하게 되면 암만 나라고 한들, 사회적인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을 터.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지.

한동민과 내 사이에는 김석원이 있잖아.

내가 2번 라인으로 옮긴다고 한들 김석원과의 관계는 굳건하고, 한동민의 성격상 가늘고 길게 가는 걸 추구한다.

다시 말해 나에게 견제를 하거나 태클을 걸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 2번 라인의 차장검사들까지 내 편으로 만든다면, 한동민이 나를 적대시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아니, 내 힘만 유지할 수 있다면, 지금과 똑같은 우호 관계가 이어질 수밖에 없지.

그는 자신의 안위만 지켜진다면, 어찌 되었건 간에 평화를 추구할 테니까.

그렇다면 다른 건 몰라도 검찰 내에서 만큼은 내 입지가 흔들리지 않는다.

폭풍이 불어도 충분히 버틸 수 있도록 내 사람들을 모아 두었고, 힘도 쌓아 둔 상태니까.

진짜 문제는 성태현이다.

지금까지 2선 의원을 한 게 모두 대한당을 통해서다.

그의 지역 기반 입지는 확고하나, 민국당으로 당을 옮기는 일과 서울시장으로 출마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성태현의 인생엔 엄청난 변혁이 이는 것일 터.

그런 상황에서 서울시장 당선을 위해 소속당을 버리고 이적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어디까지나 미래 문자로 그가 확실히 대통령이 되는 건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검사님, 괜찮으십니까?”

송재훈 PD가 걱정스러운 듯이 내 얼굴을 살폈다.

“아, 네. 별거 아닙니다. 갑자기 두통이 와서.”

“그러면 술은 멈추셔도 괜찮은데.”

“아닙니다.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예.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성폭행이 이뤄지는 자유 마당에서 가해자는 신형주 목사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설마…….”

“맞습니다. 최규현 의원의 동생인 최규성을 비롯하여 세 명의 장로까지 전부 자유 마당에 들어가더군요.”

“미친놈들.”

“저희도 제보 받고 나서 경악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터뜨려야 할지…….”

짙은 한숨을 내쉬며 대화를 돌렸다.

“일단 그 문제는 차후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랑교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행위가 자유 마당과 인신매매 두 가지로 압축되는 거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두 가지만 해도 경악을 금키 어려운데 더 있다니.

“탈곡 마당이라는 것도 있더군요.”

“탈곡 마당요?”

“예. 탈곡이란 게 벼, 보리 따위의 낟알에서 겉겨를 벗겨 내는 일을 뜻하잖습니까?”

“맞습니다.”

“그걸 삐뚤어지게 해석해서 신도의 뺨을 때려 그 사람에게 씐 잡귀나 나쁜 기운을 물러가게 하는 행위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신형주 목사가 직접 신도들의 뺨을 때리는 걸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잡귀요?”

들으면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교회에서는 잡귀를 인정하지 않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이비 종교죠. 그랑교는 정식 기독교에서 퇴출된 지도 오래됐지 않습니까?”

“허어…….”

“그래 놓고는 그 악랄한 폭행이 벌어지는 탈곡 마당을 견디는 신도는 알곡이지만,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는 이들은 쭉정이라고 칭한다고 하더군요.”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종교였다.

이러한 미친 행위까지 들었는데 차마 그랑교를 가만히 둘 수는 없는 법.

아니, 이로 인해 돈을 벌어들이는 최규현 의원에 대해 거부감과 혐오감마저 들고 있는 심정이다.

이렇게 된 이상, 최규현과 제대로 한번 부딪치게 될 것 같은데.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최규현을 함부로 공격할 수는 없는 법.

아무래도 사전에 2번 라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 2번 라인의 대표급이 되는 인물과 만나서 나와의 만남이 1번 라인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순간, 머릿속에 이 나라 수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경동수.

2번 라인 출신의 대통령인 그라면, 현 2번 라인의 실세들을 직접 연결시켜 줄 수 있을 터.

우선 경동수와 접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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