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다 (2)
“그래도 부장검사로서 최소한의 임기는 채워야 할 것 같은데…….”
한동민 예비 검사장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지금 부장검사 된 지 몇 년 됐지?”
“제가 2019년 말에 부임했으니 올해로 만 2년 됐고, 이제 3년 차입니다.”
“3년 차라…….”
그는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2022년 새해에 바로 차장검사로 올리기엔 너무 빠르지 않을까 싶은데.”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능청스레 답했다.
“적어도 만으로 3년 정도는 채워야 언론에서도 말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다시 말하면 3년을 채우면 올려 달라는 뜻.
역시 눈치가 빠른 한동민은 바로 내 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임기 안에 무조건 올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우리 오래 가야 하지 않겠는가?”
“맞습니다. 저도 검사장님을 오래오래 뵙고 싶습니다.”
“검사장이라…….”
한동민은 검사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흐뭇한지,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그래 놓고 이내 민망했는지,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아주 훌륭한 아군을 얻은 것 같아 아주 든든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긴 술자리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동민은 배신할 만한 그릇이 아니라는 걸.
그는 최대한 나의 편의를 도울 것이고 나 또한 그를 위해 충분히 도와줄 것이다.
적어도 향후 2년간은 따뜻하기 그지없겠지.
***
“부르셨습니까?”
“어, 왔나?”
정현우와 홍석장 검사는 나란히 흡연 구역으로 다가왔다.
“홍 검사는 담배 태우고…… 정 검사는 끊는다고 했나?”
“아닙니다. 저번 주부터 다시 피우고 있습니다.”
“왜?”
“요즘 집안에 일이 복잡해서…….”
정현우 검사는 말을 흐리며 담배를 물었다.
나는 입에 담배를 문 채,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힘든 일 있으면 말해. 우리가 아니면 누가 챙기겠어?”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까 도움 필요하면 말하라고.”
“알겠습니다.”
담배 연기를 짙게 내뱉으며 새하얗게 구름이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상당히 추워졌어.”
“맞습니다. 안 그래도 감기가 한창 유행이라는데 조심하십시오.”
“그래야지. 홍 검사야 말로 아들 감기 예방 잘 시켜. 이제 세 살 된다고 했나?”
“예, 맞습니다.”
“한창 귀여울 나이네.”
나는 퍽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물론 내가 키워 본 적은 없지만.”
내가 결혼이 늦은 것이지, 일반적인 검사들은 사시 패스를 함과 동시에 선 자리를 통해 결혼하기에 내 또래의 검사들이라면, 어린 아들, 딸이 있는 게 보통이었다.
“부장님은 아이 생각 없으십니까?”
“사실, 결혼 전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요즘 따라 아기 있는 집이 많이 부럽더라고. 근데 내 와이프가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까 쉽지가 않더라고.”
“아, 사모님께서 작품 활동 하시니까 아이 키우기가 힘드신 것 같습니다.”
“응. 당분간은 못 낳을 것 같아. 한 2, 3년은 더 지나고 생각해 보려고.”
그때, 정현우 검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말씀드리기 조금 그렇긴 한데…….”
그는 조심스럽게 담배를 손으로 잡고 말했다.
“제 집사람이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이야, 축하해, 정 검사!”
“선배님 축하드려요!”
우리는 담배를 물고 있던 것도 잊고 크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둘째 갖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소원 이뤘네.”
“밤낮으로 노력했더니 되더라고요. 하하하핫!”
그는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아들인 것 같습니다.”
“어머님께서 많이 좋아하시겠어.”
“예. 안 그래도 제가 5대 독자라서 아들, 아들 노래를 부르셨는데 드디어 고추 보여 드릴 수 있게 되었다니까요.”
“다시금 축하해. 조만간 한잔하면서 축하 파티 하자고.”
“알겠습니다.”
나는 꽁초를 재떨이에 짓이기고는 새로 담배를 물었다.
홍석장 검사가 담뱃불을 붙여 주었고, 깊게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근데 정 검사 축하받을 일이 하나 더 있는데.”
“오, 뭡니까?”
홍석장 검사는 놀란 듯이 정현우 검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현우 검사도 모르는 듯이 눈을 끔뻑거리는 상태.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둘째 기념으로 부부장검사 달아야지?”
“허업!”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던 그는 헛바람을 들이켜고는 사례가 들렸는지, 몇 번 기침을 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저, 정말입니까?”
“그럼.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나?”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농담일세.”
나는 퍽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물론 특수부 부부장은 아니고 다른 부서야.”
“그 말씀은…….”
순간, 정현우 검사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다른 부서로 간다는 건 주요 3대 부서인 특수부에서 물러난다는 것이고, 이는 내게 버림받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니까.
그가 걱정할까 봐 싶어 바로 말을 덧붙였다.
“꼬리 자르기나 쳐내려는 게 아니야. 지방으로 보내는 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러나 여전히 정현우 검사의 눈엔 걱정이 담겨 있었다.
“자네가 곡해할까 봐 덧붙이는 거지만, 말 그대로 다른 부서로 가는 거야. 자네들은 영원히 내 사람이고 내가 챙길 거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특수부에서 힘을 넓히려고 하는 거지.”
그제야 정현우 검사는 이해했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언제까지고 특수부 부장으로만 남을 순 없잖아?”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보탰다.
“차장검사로 올라가면 다른 부서도 실권을 장악해야 할 텐데, 자네들이 도와줬으면 해.”
“저 진짜로 애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정현우 검사는 민망함에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언제 내 사람 버리는 거 봤나?”
“아이까지 생기다 보니, 생계가 걱정이 되어서…… 잠깐이나마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마 자네는 공안부로 갈 거야.”
“공안부로 말입니까?”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안부라면 주요 3대 부서 중 하나.
독사 강중식 부장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2번 라인의 검사가 부장직을 잡고 있기에 그를 견제하기엔 아주 최적화된 위치다.
특수부에서 나가는 것에 당황하긴 했으나, 공안부의 부부장검사라면 마다할 필요가 없을 테지.
아니,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니까.
혹시나 버림받는다는 걱정이 남아 있었다면, 일말도 없이 완벽하게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한 자리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다.
“정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부장님!”
정현우 검사는 감동한 듯이 오른손을 이마에 붙이며 경례까지 했다.
“오그라들게 무슨 충성이야.”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홍석장 검사는 부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는 피식 웃으며 홍석장 검사를 불렀다.
“홍 검사도 축하받아야지.”
“예?”
그는 기대감에 찬 눈으로 날 바라봤다.
“공정거래조사부로 갈 거야. 물론 부부장검사고.”
“축하해, 홍 프로!”
“감사합니다, 부장님!”
홍석장 검사는 90도로 허리를 꺾었다.
주요 3대 부서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힘을 쓸 수 있는 자리.
무엇보다 부부장검사로 승진함과 동시에 서울중앙지검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게 더없이 큰 행복일 테니까.
“둘 다 잘하라고. 실망시키지 말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날씨도 추운데 이쯤하고 들어가지. 더 있다가는 감기 걸리겠어.”
나는 싱글벙글 웃는 두 검사와 함께 다시 건물 내부로 향했다.
그때, 정현우 검사의 휴대폰이 울렸고.
“먼저 들어가십시오. 통화하고 올라가겠습니다.”
“그래.”
홍석장 검사와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지 눈을 초롱초롱 뜨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장님. 저는 정말 부장님 덕분에 인생이 바뀐 것 같습니다.”
“나도 자네 덕분에 도움 받았는데, 뭐.”
나는 가볍게 웃고는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저번에 지시한 건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아, 어느 정도 베일은 풀렸습니다. 국정원에 근무하는 공무원 네댓 명으로 신의 손 목록을 압축했는데, 아직 확정은 짓지 못했습니다.”
“그래. 확실하게 끝내고 나서 보고해.”
“알겠습니다, 부장님.”
***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어, 장 검사.”
“저번에 말씀하셨던 두 친구입니다.”
“들어오라고 해.”
장하영 검사의 뒤로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박기원입니다.”
“남민제입니다.”
“어, 앉지.”
그들을 데리고 소파로 향했다.
둘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수부에서 함께 일을 하며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긴 하나, 이처럼 사적인 일로 부장실에 들어온 건 처음일 테니 얼어붙어 있을 수밖에.
“편하게들 앉아.”
그사이, 조아라 실무관이 커피를 타서 가져왔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음미하며 두 검사를 바라보았다.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어.”
가볍게 미소를 짓자, 두 검사는 여전히 굳은 채로 똑바로 앉아 있었다.
“커피들 마셔.”
“예!”
말 그대로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장하영 검사도 처음 만날 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사이에 내 권위가 높아져서인지, 아니면 둘이 조금 부족한 녀석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들어왔고 장하영 검사에게 뽑혔으니 실력만큼은 일류라고 봐도 무방할 터.
긴장이 풀리면 더 나아질 것이다.
“여기 온 이유는 알지?”
나는 찬찬히 둘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 검사가 둘을 굉장히 괜찮게 봤어. 그래서 나는 같이 오래 갔으면 하는 생각으로 부른 거고.”
남민제 검사가 먼저 또랑또랑한 눈으로 날 보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에 질세라 박기원 검사 또한 입을 열었다.
“영광입니다, 부장님.”
“겉치레는 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둘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장하영 검사가 부부장검사로 올라갈 거라는 건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둘은 처음 들어 본 눈치.
장하영 검사는 커피 잔을 든 채로 말했다.
“아직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이나 예비 남편도 몰라요.”
역시 장 검사다.
입이 무거운 건 믿을 만하다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고 1년 더 근무를 하고 올라갈 거야.”
새삼스럽게 두 검사가 장하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하긴, 이제 막 근무지를 한두 번 옮긴 1학년, 2학년밖에 되지 않는 검사들이니 부부장검사 자리가 확정되었다면 부러움과 존경심이 동시에 들 수밖에 없을 테지.
“그런데 장하영 검사의 뒷자리를 이을 사람이 필요하잖아?”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둘 중에서 한 명이 되었으면 좋겠거든.”
순간, 남민제 검사와 박기원 검사 사이의 공기가 싸늘해진 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기, 동료 사이였지만, 이제는 경쟁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물론, 둘이 경쟁 상대긴 하지만, 서로를 깎아내리거나 위협하는 경쟁은 허용하지 않아. 말 그대로 선의의 경쟁을 원하는 거야.”
차갑게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을 덧붙였다.
“혹시나 서로 죽이는 경쟁을 하다가 내 눈에 걸리기라도 하면 둘 다 아웃이야.”
“알겠습니다.”
“그래. 내가 원하는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 둘 다 나와 함께 갈 수 있다는 건 생각해 두고.”
“예.”
“가 봐.”
두 검사는 한 모금도 채 마시지 못한 커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 떠나간 뒤, 장하영 검사는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실제로 둘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걸 지켜보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리가.”
나는 소파에 몸을 묻으며 다시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장 검사라면,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자기 일에만 몰두하겠어?”
“아.”
그녀는 깨달았다는 듯이 입을 작게 벌렸다.
“그렇다면…….”
“어떤 놈이 더욱 악랄하게 살아남는지 지켜보는 거지.”
20대 후반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소속의 검사들이다.
권력욕이 끝에 달해 있으며, 머리가 아주 재빠르게 돌아가는 시기.
내 줄을 잡는 게, 그들의 검찰 인생에 있어서 다시 오지 않을 엄청난 기회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말 그대로 선의의 경쟁을 한다?
상대방에게 잡아먹히기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밖에 더 되지 않는다.
나는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을 바라는 게 아니다.
더러운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내게 충성할 수 있는 이를 찾는 거니까.
분명 더러운 술수가 오갈 것이다.
그럼에도 버티고 살아남는 녀석이 진정 내 라인에 들어올 만한 인재가 되는 것이지.
“장 검사가 한동안 잘 지켜봐. 선을 넘더라도 최대한 방관하도록 하고. 특수부 전체를 흔들 만한 건이 아니면 굳이 내게 보고할 필요도 없어.”
“알겠습니다.”
이로써 2022년을 맞이할 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그랑교를 이용해 성태현을 서울시장에 당선시키는 일뿐.
새해에도 탄탄대로가 펼쳐질 게 눈에 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