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다 (1)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검사장실에 들어서며 예의를 차려 인사했다.
“어, 왔나?”
예상외로 서기웅 검사장의 표정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나와 대립 구도에 서기 전처럼 온화한 모습.
요 며칠 내내 나와 마주칠 때마다 살벌하게 노려보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러니까 왠지 더 꺼림칙한데.
“앉지.”
“예.”
그는 상석에 앉으며 날 바라보았다.
“최 부장.”
“네, 검사장님.”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나?”
“죄송합니다.”
“난 자네에게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최 부장은 아니었나보구먼.”
“잘해 주셨죠.”
나는 허리를 펴며 똑바로 앉았다.
“제가 박재필 고검장을 잡아넣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때까지는 내가 우매한 바보로 자네한테 놀아나고 있었다는 걸 몰랐으니까 말이지.”
그는 헛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 전까지도 날 충분히 이용했지 않았나?”
“그랬죠.”
고개를 살짝 까딱거리며 콧바람을 내뱉었다.
“근데 그걸 알아채시고 저를 견제하려고 했잖습니까?”
“그건 당연한 일이지. 비리 검사를 승진시킬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게 저와 검사장님이 등을 돌리게 된 계기인 것 같습니다.”
나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끝까지 올라가야만 합니다. 제 편이 아니라면, 무너뜨리고 짓밟아서라도 올라가야 하는 게 제 숙명이니까요.”
“그런가.”
서기웅 검사장은 허심탄회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검사장 임기를 다 채우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하더니만, 그 이유가 있었어.”
순간, 그의 눈빛이 살짝 아래로 흔들렸다.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김석원이 늘 하던 말이 있다.
싸움도 해 본 놈이 할 줄 아는 거라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그의 휴대폰엔 녹음이 되고 있다.
몰랐다고 한들, 저렇게 티를 내면 눈치를 못 챌 리가 있나?
나는 모르는 척 대화를 이었다.
“여기서 물러나시면 더 건들지 않겠습니다.”
“물러나라…….”
“예. 깔끔하게 옷 벗으십시오. 그러면 사모님 건은 적당히 집행유예로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는 팔걸이를 꼭 부여잡으며 나를 향해 숨겼던 발톱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내 명예는?”
그는 진심으로 묻고 있었다.
“30년간 청렴결백만을 모토로 살아왔는데, 자네 때문에 한순간에 무너진 내 명예는 누가 책임져 주는 거지?”
“그거는 검사장님 책임이죠.”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절 차장검사 인사에서 제외시키려고 하셨던 건 인정하셨잖습니까. 그건 청렴결백한 행동이 아니죠.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명예를 제가 되돌려 주시길 바라는 겁니까?”
그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둘만 이야기하는 건데 까놓고 솔직하게 말합시다. 검사장님이 제 앞길을 가로막거나, 제가 검사장님을 끌어내리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 싸움에서 제가 이긴 겁니다. 패자는 물러나는 거고요.”
서기웅 검사장은 눈썹을 역팔자로 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원하는 대로 세상이 흘러가는 건 아니야.”
“맞습니다. 세상은 참 호락호락하지 않죠.”
나는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그의 휴대폰을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녹음 파일은 삭제하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업체 측에 맡겨서 영구 삭제할 거라, 파일 복원은 불가능하니 기대하지 마시고요.”
서기웅 검사장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듯이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이내 눈을 부릅뜨며 내게 엄포를 놓았다.
“그거 가져가면 절도죄인 것 알지 않나?”
“검사장님.”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를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눈앞에서 강제로 빼앗아 가면 절도죄가 아니라, 강도죄죠.”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신고하려면 신고하시고, 고소하려면 고소하십시오. 제가 무너지는지, 검사장님 가정이 무너지는지는 지켜보시면 아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를 향해 눈을 찡긋하여 윙크를 날리고는 검사장실을 빠져나왔다.
***
다음 날, 조아라 실무관을 통해 검사장실에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물론, 녹음 관련한 파일은 깔끔하게 삭제가 되어 복원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런데 검사장실에 다녀온 조아라는 하나의 쪽지를 내게 내밀었다.
“검사장님께서 전해 주라고 하십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바로 쪽지를 펼쳤다.
-가족은 지켜 주게.
짤막하게 쓰인 문구.
더 기다리지 않아도 상황은 뻔했다.
검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거겠지.
사실, 이번 일로 끝장을 보는 게 아니라, 2차적으로 그랑교를 이용해 마무리까지 하려고 했으나, 굳이 그런 수고를 할 필요도 없게 된 상황.
그의 입지를 흔들 생각으로 준비했는데, 워낙 청렴결백한 터라 이러한 일에 휘말린 적이 없기에 이번 일이 너무 크게 느껴진 모양.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 덕분에 그랑교를 가지고 온전히 나경준 서울시장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 상황.
까놓고 말해서, 서기웅 검사장에 대한 죄책감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악마로 살아남기를 결정한 이상, 더욱더 악랄해지면 악랄해져야지, 마음이 약해지는 건 어불성설이니까.
그저 서기웅 검사장에게 조금이라도 융통성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전부.
그는 너무 강직하다 못해 꼿꼿해서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꺾여 버린 것이니까.
조금만 유들유들한 갈대처럼 살았다면 검사장 임기를 끝까지 채웠을 수 있었을 텐데.
서기웅 검사장은 컵에 들어 있는 투명한 물에 먹물 한 방울이 떨어져서 전체적으로 아주 조금이나마 흐려지는 걸 지켜보지 못하고 컵을 엎어 버린 것이다.
이게 서기웅 검사장 같은 인물이 가지고 있는 한계지.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와 같은 영화 속 이야기는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현실은 더 악랄하고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고,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이는 법이니까.
이로 인해 서기웅 검사장은 청백리의 탈을 쓴 범죄자로 남게 되겠지.
나는 오늘도 생존했고 출세에 한걸음 더 가까워졌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말하는 승리자는 최서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크리스마스이브의 퇴근 시간.
엘리베이터에서 빨간색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장하영 검사와 마주쳤다.
“이제 퇴근하나?”
“예. 부장님도 이제 들어가세요?”
“응. 와이프 기다리니까 일찍 가 봐야지.”
“역시 사랑꾼이시라니까.”
장하영 검사는 수줍게 웃으며 거울을 바라봤다.
“장 검사도 데이트 가나?”
“네. 아마 오늘 프러포즈 받을 것 같아요.”
“축하해.”
“축하는 정말로 프러포즈를 받게 되면 해 주세요.”
“하하하, 그렇게 하지.”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숄더백을 메며 말했다.
“그나저나 올해 산타가 누군가 했더니, 서기웅 검사장이었네요.”
“서기웅 검사장이 왜?”
“크리스마스 선물로 퇴임을 줬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네.”
그 말을 하고는 서로 마주보고 웃음이 터졌다.
서기웅 검사장은 12월 24일, 오늘부로 검사장 자리에서 물러났으니까.
“아, 맞다.”
장하영 검사는 손뼉을 치며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저 부장님 선물드릴 거 있는데.”
그러더니 가방에서 누런색 서류 봉투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게 뭔데?”
“저번에 말씀하셨던 제 후임요. 특수부에서 믿을 만한 인물로 뽑아 오라고 하셨잖아요.”
“아, 그랬지.”
“괜찮을 것 같은 녀석들로 두 명 뽑았어요. 둘 다 제법 눈치도 빠르고 명석해서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한번 프로필 보시고 결정하시면 될 것 같아요.”
“장 검사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일거리를 주네.”
“아, 들켰네요.”
그녀는 넉살을 떨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서류 봉투를 열어 보지도 않고 바로 옆구리에 끼며 말했다.
“사실, 두 명이면 고민할 것도 없지.”
“둘 다 뽑으시려고요?”
“아니, 둘이 경쟁 붙여야지.”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기는 놈을 고르면 더 나은 선택이 되는 거 아니겠어?”
장하영 검사는 결국 혀를 내둘렀다.
“부장님을 따라 가려면 한참 멀었네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 주에 두 명 같이 데리고 부장실로 와. 커피나 한잔하게.”
“알겠습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며 문이 열렸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부장님,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장 검사도 메리 크리스마스.”
***
“괜찮은 친구야.”
김석원은 코를 찡긋하며 술잔을 채워 주었다.
“저번에 만난 전병주 고검장이랑 비슷해. 대신 키가 훨씬 크지만.”
그는 술병을 내려놓고 물었다.
“전 고검장이랑은 잘 지내지?”
“예. 이번에 서기웅 검사장 칠 때도 편의 봐주셨습니다. 덕분에 문제없이 잘 처리됐고요.”
“다행이네.”
김석원 장관은 만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도 잘 지내 봐. 만나 보면 이만큼 좋은 친구가 또 없거든.”
“알겠습니다. 장관님 추천이라면 당연히 잘 지내야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김석원 장관은 반갑게 손을 들었다.
“왔나?”
“예, 장관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그를 보고 나는 놀라서 멈칫했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 또한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최 부장?”
“선배님 아니십니까?”
“잠깐만.”
그는 놀란 듯이 김석원 장관을 보며 물었다.
“오늘 소개해 준다는 친구가 최서준 부장이었습니까?”
김석원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둘이 아는 사이였어?”
알다마다.
대검찰청 중수부장으로 있는 한동민.
그의 소속을 다시 말하자면, 1번 라인.
라인에서 오다가다 만나는 수준이 아니라, 자주 와인 잔을 기울이며 검찰에 대한 이야기를 꽤나 많이 나눴던 기억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대검찰청에서도 황금 노른자라고 불리는 중앙수사부의 부장이기에 출세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만, 지방청의 검사장이 아니라, 한 번에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으로 올라올 줄이야.
“아는 게 아니라, 친합니다.”
그는 반가움에 내 어깨를 치며 옆에 앉았다.
“오, 어떻게 아는 사이야?”
“뭐, 이런저런 모임에서 만나다 보니 마음이 잘 맞더라고요.”
“한동민 선배님이 워낙 잘 챙겨 주셔서 말이죠.”
“이거, 아는 사이라니까 걱정할 것도 없겠구먼!”
김석원 장관은 호탕하게 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편하게 술 한잔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어.”
“맞습니다. 장관님도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드시죠.”
한동민은 넉살을 떨며 그의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래그래. 좋지.”
김석원 장관은 그의 술잔을 채워 주고는 곧장 자신의 술잔을 들어 올렸다.
“시원하게 건배나 한 번 하자고.”
“예.”
그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건배사를 외쳤다.
“검찰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경쾌하게 술잔을 부딪치며 원샷으로 쭉 들이켰다.
한동민 등장 이후로 자꾸만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는 걸 숨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한동민은 높이 올라가서 한탕 하려는 게 아니라, 가늘고 길게 라인을 잘 타고 가길 바라는 인물.
1번 라인인 만큼, 나의 권위는 이미 알고 있을 테니 우호적인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고검장인 전병주 또한 나의 편에 선 상황.
다시 말해 서울에 있는 검찰의 실권을 쥔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오늘부로 검찰에서 나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봐도 된다는 것이지.
이제는 검찰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왕의 자리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