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목마 (5)
2021년 12월 14일.
하얀 눈이 내리는 날, 나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구두를 신었다.
“다녀올게.”
“잘 다녀와.”
한지유는 평소와 달리, 내게 진한 포옹을 해 주었다.
“왜 갑자기?”
“오늘 허그데이거든. 12월 14일.”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따 봐.”
“응. 추우니까 촬영 잘하고.”
“오빠도 목도리 풀지 마.”
“그래.”
한지유에게 손을 흔들고 나와서 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주차장에 내려오며 바로 박수형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서준 씨.
“오늘 신문 잘 봤습니다.”
-인터넷에도 빵빵하게 때리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실시간 검색어 1위예요.
“기세 좋네요. 올해 안에 일 마무리 짓도록 하죠.”
-바라던 바입니다. 조금 더 세게 압박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후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들어가세요.
아침부터 기분 좋게 전화를 마쳤다.
휴대폰을 통해 모바일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그의 말대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소망원’, ‘서기웅’, ‘이영미’, ‘검찰 비리’ 등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
어제 보육원의 리모델링이 끝나며 바로 WK일보를 통해 대서특필했고, 오늘 아침엔 신문 1면을 가득 채우며 보도되었다.
기사들은 다름 아닌 서기웅 검사장이 후임 검사들을 압박해 강제로 기부를 받았다는 내용과 그 돈으로 그의 아내인 이영미 원장이 비리를 저지른 내역들.
장하영 검사에게 들은 바, 졸지에 기자들의 먹잇감이 된 20여 명의 검사들은 대책 회의를 시작했으나 오합지졸끼리 모여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저 발만 동동 구르다가 잡아먹히는 것뿐이지.
개중에 리더 격인 오준민 검사는 미리 장하영 검사와 이야기를 마쳤던 탓에 기사가 터지기 직전에 사표까지 내서 도피해 버린 상황.
이 소식을 접한 나머지는 갈피를 잃고 무언가 결론을 내지도 못 했다고 들었다.
물론, 제일 압박을 받은 건 이들이 아니라, 서기웅 검사장일 터.
원치 않은 기부를 강요했다고 오해를 받은 것은 물론, 비리 혐의까지 덮어쓴 상태니,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욕이 터져 나올 지경이겠지.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모든 건 조작되었는걸.
그의 입장에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겠지.
눈이 내려 세상은 새하얗게 물들며 도로가 완전히 얼어붙어 있어서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사무실로 가는 내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크리스마스캐럴을 들으며 도착한 서울중앙지검에는 아니나 다를까, 기자들이 진을 치고 서 있었다.
워낙 언론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내 차를 알아본 기자들이 우르르 모여 앞길을 막았다.
“검사님,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최 부장님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서기웅 검사장은 청렴결백의 대명사라고 알려져서 더욱 충격입니다. 이번 비리 사실을 알고 계셨는지요?”
“최서준 검사님께도 기부에 대한 압박이 있었습니까?”
마이크를 들이대며 자동차 창문으로 몰린 기자들.
연신 경적을 울렸지만, 기자들은 움직일 기세가 아니었다.
실은 이 상황이 너무도 즐거웠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연기하며 창문을 살짝 열고 본심을 말했다.
“사실 여부는 모르겠으나,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는 게 대한민국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나는 코를 찡긋하며 옆으로 손짓을 했다.
“한마디 했으니까 이제 나와 주세요.”
홍해 바다처럼 양쪽으로 갈라진 기자들 사이로 나는 상쾌하게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섰다.
***
-저는 후임 검사들에게 결코 돈을 강요한 적도, 그들에게 특혜를 준 적도 없습니다.
기자회견장에 선 서기웅 검사장은 어제부터 터진 기사와 의혹에 관해 단호하게 일축했다.
-또한, 이러한 의혹을 일으킨 WK일보에 법적으로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며…….
“꽤나 세게 나오네요?”
TV를 지켜보던 장하영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만큼 억울해서 그런 거겠죠.”
“그렇겠지. 본인 입장에서는 확고하게 사실무근이라고 믿고 있을 테니까. 어제 집에서 와이프랑 이야기도 했을 거 아니야? 이영미 원장 자체가 횡령 사실을 모르고 있을 테니 이렇게 나오는 게 정상이지.”
무엇보다 대놓고 WK일보에서 박수형 기자가 기사를 썼으니, 이제는 이번 일의 배후가 나라는 걸 알아챘을 터.
화면으로 보이는 서기웅 검사장의 분노는 온전히 나를 향해 있을 것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뭐라고 말하는지 더 지켜나 보자고.”
장하영 검사도 빙그레 웃으며 TV로 시선을 돌렸다.
“예.”
화면 속 서기웅 검사장은 이를 악문 채로 이야기했다.
-어디서 이런 헛소문이 퍼졌는지 모르겠지만, 검찰에 들어온 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유혹이 있었고 단 한 번도 뿌리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기사로 나온 모든 사실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예. 일체 부정합니다. 저는 깨끗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때, 박수형이 손을 들며 외쳤다
-WK일보의 박수형 기자입니다.
순간, 기자회견장에 침묵이 감돌며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서기웅 검사장의 의혹을 제기한 장본인이었으니까.
-말씀 끝난 것 같은데,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그를 바라보는 서기웅 검사장의 눈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가 빠드득 갈리는 게, 분노가 화면 너머로 전해질 정도.
그러나 박수형은 기죽지 않고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부했던 검사 20명을 전부 검사장실에 부른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내가 전해 준 사실이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기 힘들 정도.
사실을 알고 있는 장하영 검사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서기웅 검사장은 주먹을 꽉 쥐며 대답했다.
-검사장실로 부른 건 기부한 이후입니다. 제가 모르는 상태에서 기부를 했기에 이들에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 불렀습니다.
-모르는 상태에서 기부를 했기에 특혜를 줄 수 없다고 하셨는데, 다시 말하면 알고 있는 상태에서 기부하면 특혜를 준다는 건가요?
-알고 있었으면 기부 자체를 막았을 거라는 소리입니다. 말꼬리 잡지 마십시오.
그러나 박수형 기자는 눈썹을 들썩이며 대답했다.
-아, 그러면 일단 기부한 검사 20명을 검사장실에서 만나 이야기한 적은 있다는 거군요. 그렇게 기사를 쓰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겠네요?
“와…….”
장하영 검사는 보다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박 기자님도 진짜 대단하시네요.”
“저런 면에 있어서는 이 분야 최고죠. 죽자고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친구거든요.”
서기웅 검사장은 박수형 기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대답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금품을 강요한 적도, 특혜나 불이익을 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카메라를 보며 강조했다.
-또한, 논란이 되고 있는 제 집사람이 운영하는 보육원의 부실 공사 및 건설 비리, 횡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저는 검사장이라는 자리를 내려놓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자충수를 던지네.”
“그러게요.”
장하영 검사는 팔짱을 풀고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후속 보도 준비할까요?”
“아니, 이번엔 내가 나서지. 깔끔하게 마무리하려면 그게 낫지 않겠어?”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건, 특수부가 맡는다고 알려.”
“알겠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부 부장검사 최서준입니다.”
서기웅 검사장의 기자회견으로부터 딱 1주일 되는 날, 이번엔 내가 기자회견장에 섰다.
자료는 진즉에 준비되어 있었지만, 언론에서 보기에 조사하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뭉그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이 자리에 선 것.
“서기웅 검사장이 소망원에 기부한 20명의 검사들에게 특혜를 주었다거나, 기부하지 않은 검사들에게 불이익을 준 사실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사실로 밑밥을 깔아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만, 서기웅 검사장의 아내, 이영미 원장이 운영하는 소망원에서는 이면 계약을 통한 횡령 사실이 확인되었고, 늘빛건설에서 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소망원의 운영팀장 또한 원장의 지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부실 공사를 맡기고 그에 발생한 부당 이익을 이영미 원장이 챙긴 것이라는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
“이영미 원장은 지시한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나, 늘빛건설 또한 이영미 원장과 접촉하여 부실 공사 지시를 받았다고 하기에 이영미 원장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짧지만 강력한 이야기였다.
다시 말해 서기웅 검사장은 몰라도, 그의 아내는 범죄를 저지른 게 맞다고 인정하는 내용이었으니까.
“질문 받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들이 손을 뻗었고, 나는 그중 하나를 가리켰다.
“정치 1번지 최성태 기자입니다. 그렇다면 20명의 검사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는 건가요?”
“해당 부분은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이뤄질 것입니다. 그들이 특혜를 노리고 기부를 한 건지, 아닌지에 따라 처벌 여부가 정해질 예정입니다.”
사실, 이들에 대한 처벌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정현우 검사에게 맡겨 알아서 옷을 벗거나 지방으로 쫓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아마 며칠 내로 정현우 검사가 20명의 검사를 잡은 실적을 특수부로 가져올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겨울이 되는 것이지.
뒤이어 기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받은 뒤, 나는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이상입니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오자, 장하영 검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코트를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부장님.”
“장 검사야 말로 수고했어.”
“아닙니다. 전부 부장님께서 차려 주신 판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인 걸요.”
그녀는 밝게 웃음을 지었다.
“서기웅 검사장은 오늘 출근했나?”
“예. 9시 딱 맞춰서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검사장실에서 기자회견 보고 있겠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제 서기웅 검사장이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뿐이다.
집사람의 결백을 믿고 끝까지 버텨서 명예가 회복되길 기다리느냐.
그게 아니면 더 명예가 실추되기 전에 본인이 했던 말처럼 검사장의 자리에서 물러나느냐.
어떤 것을 선택하든, 이 게임의 승자는 내가 되리라는 것엔 변함이 없었다.
그때, 내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을 보자, 자동으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왜 그러십니까?”
“서기웅 검사장인데?”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서기웅 검사장.
방금 기자회견을 마쳤는데 전화가 오다니.
무슨 목적으로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수신 버튼을 눌렀다.
“네, 최서준입니다.”
-최 부장.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전해져 왔다.
“예, 검사장님.”
-잠깐 이야기 좀 하지. 검사장실로 오게.
“알겠습니다.”
전화를 마치자, 장하영 검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잠깐 보자네.”
“혹시…….”
“아니야. 암만 화났더라도 서기웅 검사장이라면,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거야.”
내가 들고 있던 서류를 그녀에게 맡겼다.
“내 자리에 올려놔 줘.”
“알겠습니다.”
나는 장하영 검사를 뒤로하고 검사장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