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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153화 (152/341)

트로이 목마 (4)

장하영 검사가 준비해 온 인물들에 대해 추가적인 검토까지 직접 마쳤다.

집안 백도 없고, 결혼한 가정도 별 볼 일 없는 인물이 대부분.

이렇게까지 되니, 더 기다릴 것도 없었기에 바로 실행에 착수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중에서 그렇게 돈에 여유가 없는 검사들은 많지 않았다.

애초에 청렴결백한 검사들이라면, 돈을 내고 줄을 잡는다는 생각에 동의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가끔씩 졸부들이 끼어 있는 사건과 연루되어 해결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기거나 지자체에서 압력을 넣어 주는 방식으로 돈을 챙긴 이들이 대부분.

물론 그렇다고 한들, 내가 받은 거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했다.

언론에서 그토록 울부짖던 생계형 비리랄까.

돈을 받아먹었다고 한들, 제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 바빠 종잣돈이 없는 검사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에게는 장하영 검사가 내게 지원받은 돈을 이용해 무상으로 빌려주었다.

물론, 차용증은 쓰지 않은 상태.

괜히 차용증을 갖고 있으면, 약점을 잡힐 수도 있으니까.

사실, 서기웅 검사장을 쓰러뜨리기 위한 일종의 투자금이었기에 회수할 생각도 없었고.

모든 총알이 준비된 뒤, 장하영 검사는 내게 물었다.

“신호만 주시면 바로 말씀하셨던 계획은 실행할 수 있긴 합니다만, 문제는 소망원 측에서 기부금을 받지 않을 경우입니다. 이러면 모든 게 무산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데, 혹시 방법이 있을까요?”

“당연히 계획은 세워 뒀죠.”

나는 날짜가 적혀 있는 포스트잇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날에 가서 기부하시면 됩니다.”

“이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영미 원장이 쉬는 날입니다.”

안 그래도 서기웅 검사장이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기부하는 돈을 막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검사 20명이 우르르 몰려간다면, 당연히 기부 자체를 거부할 터.

그러나 그녀가 없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정형준 경감이 구워삶아 놓은 운영팀장을 통해 그녀의 휴일을 미리 파악해 두었기에 이영미 원장이 없는 날에 운영팀장이 기부금을 전부 받아 버리면 이야기는 끝나니까.

다시 되돌려 주려고 해도, 세액공제 혜택을 위해 전부 서류 제출을 마쳤다고 하면, 기부금을 고스란히 이영미 원장 떠안아야 하는 상태.

검사라서 이런 서류 처리는 누구보다 빨리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부장님은 역시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시는군요.”

장하영 검사는 포스트잇을 주머니 속에 넣으며 방긋 웃었다.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16억 3천만 원요?”

월차를 내고 하루 쉬었다 출근한 이영미 원장은 제 귀를 의심했다.

“하루 만에 그 큰돈을 기부 받았다고요?”

“예. 총 20분께서 오셨고, 전부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님들이셨습니다.”

검사라는 말에 이영미 원장은 순간, 멈춰 섰다.

“아니, 잠깐만요. 팀장님, 그걸 전부 수락하신 거예요?”

“지금 보육원 사정이 어렵다고 웬만하면 기부 받으라고 지시하셨던 기억이 있어서 하나씩 받다 보니까…….”

“그렇다고 해도, 저한테 보고라도 하셨어야죠.”

“워낙 인원수가 많아 정신이 없게 진행되었던 터라…… 그리고 휴일에 연락드리기가 송구스러워서요.”

“하아…….”

이영미 원장은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 돈들 다 돌려줘야 합니다.”

“그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운영팀장은 당황스러운 연기를 하며 말했다.

“그분들이 기부하신 금액에 대해 세금 처리할 게 있으시다고 전부 서류에 도장을 전부 받아 가셨어요.”

“이럴 수가.”

차마 믿기 힘들었지만, 운영팀장이 가져온 서류를 본 이영미 원장은 탄식을 내뱉었다.

하루 만에 모든 게 다 처리되어 있었다.

되돌릴 수가 없는 상태.

“일단 알겠어요.”

“예. 필요하신 게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운영팀장이 나가고 다시금 서류를 훑어보았지만, 공증을 받기 위한 절차까지 밟은 상황.

남편의 이야기로 인해 안 그래도 익명의 기부까지 차단했던 탓에 보육원 상황이 힘들어진 만큼 기부란 기부는 거절하지 말라고 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일이 커질 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터.

운영팀장은 본인의 지시에 따른 것이기에 그녀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

아무래도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처리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을 꺼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 지금 일이 생겼는데…….”

***

상황을 전해 들은 서기웅 검사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건 대놓고 자신을 엿 먹이려고 하는 상황.

‘최서준이 움직인 건가?’

잠깐 고민했지만,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암만 최서준이라고 한들, 이 짧은 기간 내에 본인과 전혀 관련도 없는 20명의 검사를 섭외할 수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무려 10억 원이 넘는 거액이다.

이건 소문이 난 거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의 와이프가 운영하는 소망원에 기부를 하면 특혜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헛소문이 났기에 벌어진 일일 터.

안 그래도 익명이 아니라, 전원 실명으로 기부를 한 만큼, 가만히 있다간 오해를 살 게 분명한 상황.

‘아니, 일부러 와이프의 휴일에 기부한 거라면 그 특혜를 노리고 기부한 것이겠지.’

그 돈을 쓰지 않고 가만히 두는 게 최선이겠지만, 소망원의 사정상 그건 불가능한 상황.

서기웅 검사장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밖에 누구 있나?”

“예, 검사장님.”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성에게 지시했다.

“여기 적힌 명단에 있는 검사들 전부 검사장실로 불러.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

“그래서 모두 사심 없이 기부를 했다고?”

“예.”

서기웅 검사장은 기가 찼지만,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본인들이 특혜를 바라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데다가, 보육원에서 이미 돈을 기부 받았고, 되돌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게 문제가 되지 않도록 중심을 지키는 것밖에 없었다.

“자네들 잘 들어.”

서기웅 검사장은 20명의 검사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진지하게 말했다.

“어쩌다가 자네들이 나의 집사람이 일하는 보육원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자네들이 기부했다고 한들, 나는 조금도 특혜를 줄 생각도 없고 눈여겨보지도 않을 거야. 이건 확실해.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아.”

그는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혹시나 그런 걸 바라고 기부한 거라면 전부 회수해 가게. 그런 걸로 불이익 주지도 않을 테고, 난 모른 척할 테니까.”

“…….”

“오 검사.”

“예, 검사장님.”

이 중에서 그나마 제일 리더 격인 오준민 검사를 향해 엄포를 놓았다.

“혹시나 나를 엿 먹이려고 한 거라면…….”

“아닙니다, 검사님.”

오준민 검사는 격하게 손을 내저었다.

“저희가 다 같이 모여서 좋은 일 한번 해 볼까 하다가, 우연찮게 검사장님의 사모님께서 보육원을 운영하신다는 걸 알고, 좋은 게 좋은 거니 그쪽으로 결정을 한 겁니다. 절대 다른 뜻은 없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길 바라겠네.”

서기웅 검사장은 한숨을 내뱉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기부금으로 인해 어떠한 특혜도 불이익도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가 봐.”

20명의 검사들이 검사장실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 제일 얍삽하게 생긴 주한송 검사가 오준민 검사에게 슬쩍 다가가 물었다.

“선배님, 저는 돈을 빌리기까지 해서 기부했는데, 진짜 모른 척하지는 않겠죠?”

“그럴 리가 있겠어?”

오준민 검사는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이라면, 미안해서라도 챙겨 줄 수밖에 없지. 솔직히 말해서 익명으로 기부를 못 하게 만든 속뜻은, 기부하면 자신이 알아챌 테니 어필하라고 이야기하는 거잖아.”

“아, 그런 건가요?”

“그렇지, 인마. 이번에 우리가 기부한 것만 16억이 넘었더만. 그걸 받고 입 싹 닫는 게 가능하겠어?”

“하긴, 그건 맞네요.”

“걱정하지 마.”

오준민 검사는 다른 검사들을 안심시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들 들어가서 일 봐. 나는 잠깐 통화 좀 하고 들어갈 테니까.”

“예,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욕봤어. 쉬어.”

그는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비상구로 나가 휴대폰을 꺼내 들어 주변에 다른 이가 없는 걸 확인하고 은밀하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아, 네. 장하영 검사님. 지금 검사장실 들어갔다가 나오는 참입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특혜는 주지 않겠다고 하는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그걸 숨기려고 엄포를 놓는 것 같았고요.”

-관련해서 제 이야기나 특수부에 관련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겠죠?

“그럼요. 지금 다른 검사들은 보육원을 알아낸 것 자체가 저인 줄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오준민 검사는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그때 약속하셨던 로펌 자리는…….”

-당연합니다. 나머지 19명 검사들 입에서 제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단속만 잘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정형준 경감은 내 손을 잡으며 반갑게 허리를 숙였다.

“애기들은 잘 크고 있죠?”

“그럼요. 검사님 덕분에 애들 옷도 브랜드 있는 것만 골라서 잘 입고 다닙니다.”

“다행이네요.”

나는 자리에 앉으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소망원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까지는 돈을 쓰지 않고 끝까지 버티려고 했으나, 워낙 상황이 급해서 결국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정형준 경감은 씨익 웃으며 말을 보탰다.

“게다가 돈 쓰는 데는 관성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 번 쓰기 시작하니, 끝이 없다더군요. 오히려 여유가 생겨서 지금까지 계속 수리만 했던 가구들도 새로 사서 들여놨다고 합니다.”

“리모델링은 어떻게 됐습니까?”

“누수가 있던 건물이 하나 있는데, 3층짜리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기로 했습니다.”

“시공사는요?”

“당연히 늘빛건설이 선정되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금액을 싸게 부르니, 이영미 원장은 늘빛건설 쪽을 고를 수밖에 없었죠.”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이 정도야 기본이죠.”

그는 가방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소망원 운영팀장과 늘빛건설을 통해 전달 받은 서류 사본입니다.”

바로 서류를 꺼내 확인하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이영미 원장은 존재 자체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직인이 찍힌 이면 계약서까지 내 손에 들어온 상태.

“운영팀장이 잘 처리했군요.”

“예. 운영팀장이 워낙 오랫동안 소망원에서 일했던 터라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번 일이 잘만 끝나면 약속한 거에 보너스까지 챙겨서 드려야겠습니다.”

나는 눈을 찡긋하며 말을 보탰다.

“물론, 경감님께도 마찬가지로요.”

“으하하하하하핫! 아닙니다.”

정형준 경감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저는 검사님과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모쪼록 경감님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최선을 다해 숨겨 보겠습니다.”

“착공은 언제입니까?”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완공도 가능한 당겨서 올해 안에 마무리하려고 생각 중이고요.”

“알겠습니다.”

서기웅 검사장 내외가 드디어 트로이 목마를 성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뿐.

건물의 리모델링이 끝나는 그 순간.

트로이 목마에 타고 있던 내 계략들이 안일한 그를 박살 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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