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목마 (3)
***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어, 서 검사장 왔나?”
김석원 장관은 서기웅 검사장을 보고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자주 보네.”
“귀찮게 자꾸 들락거려서 죄송합니다.”
“예끼, 무슨 그런 소리를 하나. 나쁜 의미로 한 말이 아니야.”
“혹시나 선배님이 바쁘신데 제가 방해하는 걸까 봐…….”
“아니야. 얼른 앉게나.”
김석원 장관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상석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 하나가 커피가 담긴 찻잔을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 둔 뒤, 장관실의 문을 굳게 닫고 나갔다.
“요즘 일은 어때?”
“늘 똑같습니다.”
“똑같은 거면 좋은 거지. 우리야 시간 가는 것만 기다리는 사람들 아닌가?”
“맞습니다.”
한참 동안 안부 인사를 주고받다가 서기웅 검사장은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요즘 조금 걱정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
“이대로 가는 게 맞나 싶은 의문이 듭니다.”
그는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서울중앙지검은 기수 문화가 아주 개판이 되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것 같습니다.”
“왜, 무슨 일 있나?”
“최서준 부장, 그 녀석 때문에 말입니다.”
김석원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지만, 일단 모르는 체하며 귀를 기울였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평검사나 부부장검사들뿐만 아니라, 타 부서의 부장검사들과 몇몇 차장검사들도 최 부장의 사무실로 찾아간다고 합니다.”
“줄을 선다는 뜻인가?”
“비슷합니다. 솔직히 최서준이 부장검사로 올라오며 특수부에 있던 높은 기수 검사들은 전부 다 전출 갔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게 관례니까.”
기수 문화가 아주 굳건하게 자리를 잡은 검찰의 관례.
자기보다 낮은 기수의 인물이 본인보다 위로 승진을 하면, 옷을 벗거나 타 근무지로 전출을 가는 게 일반적인 일.
명목상으로는 후배가 편하게 업무 지시를 하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자존심의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지금 기세로 가면, 조만간 서울중앙지검 검사들 다 옷 벗게 생겼습니다. 차장검사로 승진하기도 전에 더 높은 기수의 부장, 차장 녀석들이 다 머리를 굽히고 있으니, 이거 원…….”
김석원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와 비슷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게 최서준이었으니까.
물론, 그 속도나 무게감은 자신과 견줄 수 없을 만큼 대단했지만.
“이게 제대로 된 검찰입니까? 고작 부장검사 녀석한테 차장검사가 가서 알랑방귀를 끼고 있고…… 하아.”
그러나 김석원 장관은 서기웅의 진심을 꿰뚫어 보았다.
겉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속내는 달라 보였으니까.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자네가 최 부장은 떡검인 것 같다며?”
떡검.
한마디로 말하면, 떡고물 혹은 떡값을 받아 챙긴 검사로 공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이들을 뜻하는 말.
“예. 사실, 그 점이 더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기웅 검사장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검사로서는 청렴이 첫 번째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서준 같은 떡검이 버젓이 버티는 것을 넘어 높이 올라오려고 하니, 차마 제 선에서 용납이 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의 목소리엔 진심을 넘어서 분노까지 담겨 있었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려집니다. 그런 녀석이 위에 올라가면, 분명 서울중앙지검은 개판이 될 게 분명하죠.”
“그렇다고 몰아 내기라도 하려는 셈인가?”
“그건 아닙니다.”
서기웅 검사장은 딱 잘라 말했다.
어디까지나 그는 국가에서 허용한 힘 외에는 쳐다보지도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녀석이 차장검사로 올라오지 못하게 막는 것뿐입니다. 승진 인사에 불이익을 주고, 제가 물러날 때 후임 검사장에게 이야기를 하려고요.”
“그건 오로지 실력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자네 신념에 어긋나는 것이잖나?”
“사실 그렇긴 합니다.”
서기웅 검사장도 평소 자신의의 강직한 태도와는 조금 다른 태도라는 걸 인정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자신의 와이프를 구워삶아 자신을 컨트롤 했던 걸 생각하면 화가 나지 않는 게 이상할 테니까.
그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이 떡검에게 먹힌다면, 뒤는 뻔합니다. 돈에 휘둘리는 걸 지켜보고 싶지 않습니다.”
서기웅 검사장은 눈을 부릅떴다.
“실권을 가진 자가 돈에 못 이기면 그 조직은 무너지는 겁니다.”
“그건 아니야.”
김석원은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최서준 그 녀석은 돈을 휘두르면 휘둘렀지, 휘둘릴 만한 녀석이 아니거든.”
진심이었다.
최서준이 서울로 올라온 뒤로 지금까지 지켜보는 내내 느낀 바, 그는 돈을 탐하는 게 아니라, 출세를 바라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재물을 탐했다면, 이곳까지 올라올 수도 없었을 터.
지금 당장 사표를 던지고 로펌에 들어가더라도 이름값과 실력으로 1년에 100억 이상씩 벌어들일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최서준은 자신만의 소신이라는 게 확고한 녀석이었고, 단 한 번도 그게 어긋나거나 무너진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최서준이 정치 검사라고 한들, 김석원은 그를 좋게 볼 수밖에 없었던 터.
이 더러운 정치판에서 그가 구현하는 정의는 결코 틀리다고 볼 수 없었으니까.
오히려 김석원은 서기웅 검사장을 꾸짖었다.
“내가 보기엔 자네가 지난 1년 동안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휘둘린 게 억울하고 열받아서 어떻게든 복수하려는 생각뿐인 것 같은데?”
김석원은 서기웅 검사장의 속사정을 훤히 꿰고 있었다.
딱 봐도 뻔했으니까.
보육원장인 그의 와이프가 한지유와 최서준을 쉼 없이 칭찬한 탓에 의심의 불씨를 지우게 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은 한지유 광팬이었기에 앨범이 나올 때나, 콘서트, 영화 시사회, 드라마 제작 발표회 등의 온갖 행사 때마다 자신에게 조르니 그는 최서준에게 몇 번이고 부탁을 해 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에게 끌려 다니던 게 시작이었을 터.
한참이 지난 뒤, 서기웅 검사장은 최서준이 자신을 이용한다는 걸 어렴풋이 파악하긴 했겠지만, 믿고 싶지 않아 부정했을 뿐.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돈까지 쓴다는 걸 알게 되니, 참고 있던 게 폭발하고 말았을 테지.
“…….”
속내를 파악 당한 서기웅 검사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50년이 넘도록 지켜온 신념이 무너지는 것이기에 차마 인정할 수 없었다.
“물론, 선배님께서 최 부장을 아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중간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랐습니다만…….”
김석원은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자네의 신념을 지켜.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트렌드에 못 맞춰. 늦더라도 중심을 잡고 그저 지금까지 행해 온 일을 옳다고 밀고 나가면 돼. 다만, 그 신념이 바뀌면 모든 게 틀어지는 거야.”
서기웅이 최서준에게 태클을 건다는 행위 자체가 서기웅답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이라도 서기웅이 냉정하게 정신을 차린다면, 김석원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최서준에게 부탁해 서기웅과의 사이에서 중재를 유도할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서기웅 검사장은 치기를 이기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내뱉었다.
“선배님도 그 자식한테 혹시 받아 챙기신 겁니까?”
“서기웅.”
김석원의 잠잠하던 눈에 분노로 파동이 튀었다.
“선 넘는 거야.”
“아닌 건 아니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서기웅 검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이 선배로 부르는 마지막 날이 될 것 같네요.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이고 장관실을 빠져나갔다.
서기웅 검사장이 나간 뒷모습을 바라보며 김석원 장관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흰 도화지에 먹물이 묻었다고 그걸 찢어 버리려고 한다니…….’
다시 새하얀 물감으로 도화지를 칠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
‘늙으면 아집이 생긴다고 하더니만, 딱 그 꼴이네.’
미친개 박재필 고검장이나 독사 강중식 부장처럼 싸워 본 놈이 싸울 줄 아는 법이다.
늘 온실 속에서 청렴만을 지향해 온 그가 최서준 같은 괴물을 만난다면, 잡아먹힐 수밖에 없을 터.
최서준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승패는 안 봐도 눈에 선한 상황.
김석원 장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동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대통령님. 새로운 검사장 후보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사무실에 일찍이 출근하자마자 바로 기다렸던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최서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정형준입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지시하셨던 건에 관해서 보고 드리고자 전화드렸습니다.
“잘 처리되었나요?”
-예. 시공사는 늘빛건설로 결정해서 이야기 마친 상태이고, 수고비 외에 저희 쪽에서 편의 봐주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운영팀장에게는 선급금 지급해 두었고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그때 말씀드렸던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정리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면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이 정리되는 대로 연락드리도록 하죠.”
-예. 들어가십시오.
“그래요.”
전화를 끊고 천천히 테이블에 손을 얹었다.
정형준 경감 스타일로 보면 시공사와 보육원의 운영팀장은 완전히 구워삶았을 터.
남은 건 장하영 검사가 먹잇감으로 쓰일 녀석들을 물어오는 일뿐.
아마 그게 시간이 꽤나 걸리지 않을까 싶다.
한둘이 아니고 무려 20명이나 끌어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뒤에 그녀가 완전히 가려져야 할 테니까.
그때, 사무실의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어, 들어와.”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어, 이 부부장 왔어?”
이두형 부부장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부장실로 들어왔다.
“지시하셨던 대로 나경준 서울시장 관련해서 뒤를 좀 캐봤는데, 봉사 단체의 수장으로 있을 때 형사들과 손을 잡고 떡고물을 받아 챙긴 게 있긴 합니다.”
“어느 정도?”
“먼지가 묻긴 했는데, 티가 나는 수준까지는 아닙니다.”
그는 본인이 파악해 온 자료를 내 책상에 조심스레 올렸다.
“그러면 해당 자료 파악하고, 추가적으로 다른 문제 있는지 알아봐. 선거 때 쓸 거라 약한 걸로는 안 돼.”
“알겠습니다.”
그가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기 무섭게, 다시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뭘 두고 갔나?
“들어와.”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하지만 들려온 건 이두형 부부장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자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장하영 검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 장 검사는 무슨 일이야?”
“보고드릴 사항이 있어서 왔습니다.”
“뭔데?”
“저번에 지시하셨던 검사 20명 모두 모았습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걸 시킨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두형이 건넨 서류까지 내려놓고, 장하영 검사를 바라봤다.
“벌써 모았다고?”
“예. 형사부에 10명, 공정거래조사부에 4명, 조세범죄조사부와 공판부에 각각 3명씩 총 20명입니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서류를 내게 건넸다.
“해당 검사들 명단입니다.”
장하영 검사가 건넨 서류를 확인하자, 정말 들어 본 적도 없는 검사들의 프로필로 가득 찬 상태.
내가 알지 못한다는 건, 말 그대로 무능력하고 욕심만 있는 녀석들이라는 뜻.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고 훌륭한 결과에 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장하영 검사를 바라봤다.
“장 검사, 생각보다 능력이 좋은데?”
“감사합니다.”
“다시 봤어.”
직접 일을 시키니, 윤설하가 추천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달까.
일을 같이하면 할수록 더 마음에 든다.
“장 검사가 부부장검사 소리 들으려고 아주 각성을 했나 보네.”
“이 정도야 기본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능청스럽게 눈썹을 들썩였다.
“다른 것도 시켜만 주십시오. 부장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낼 수 있습니다.”
장하영 검사의 눈빛을 보니 왠지 모르게 굉장히 믿음직스러웠다.
능력이 좋다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나 뛰어날 줄이야.
그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두 번째 트로이 목마도 완성되었다.
강건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트로이 목마를 만들었으니, 이제 상대방의 본진으로 보내야지.”
서기웅 검사장.
미안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떡검이 청렴한 검사보다 위에 있다는 걸 곧 알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