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목마 (2)
역시나 미래 문자.
조아라 실무관이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걸 확인한 뒤, 바로 동영상을 재생했다.
-이게 일이 그렇게 되어 버릴 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네요.
처음 들려온 건 낯선 목소리.
아는 사람이 나이가 들어 목소리가 변한 게 아니라, 전혀 처음 듣는 톤이었다.
-예. 이건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뒤이어 들려온 건 나의 목소리.
그때, 동영상의 화면이 밝아지며 두 명의 남자가 담배를 물고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명은 예상대로 나였지만, 내 옆에 있는 인물은 생전 본 적 없는 남자.
-하아, 진짜 이 일을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표정과 목소리에선 낙담한 기운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지고 있는 상태.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럴 때일수록 더 바짝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될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마냥 꽃길만 펼쳐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감당이 되지 않네요.
-서준 씨는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이렇게 당해 놓고 가만히 있을 순 없죠. 녀석을 짓밟아 줄 겁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끌고 왔는데 이딴 식으로 초를 칠 줄이야.
나는 이를 악물고 주먹까지 꽉 쥐었다.
-그 자식, 조져 버릴 겁니다.
남자는 안쓰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위로했다.
-힘내십시오. 제가 최대한 돕겠습니다.
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도 저지만…….
순간, 화면에 노이즈가 끼며 소리가 일그러졌다.
그리고 잠시 후, 화면이 건너뛰며 또 다른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래, 괜히 신의 손이라고 불렸던 게 아니라니까.
동영상의 배경이 된 곳은 한 술집.
고기가 자글자글 익어 가는 소리와 함께 한 테이블로 화면이 고정되었다.
-대단한 놈이지. 한두 명만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죄다 보내 버렸다고 하잖아.
-그 인간이 감방으로 보낸 인물만 해도 한 트럭이라지?
-그럴 수밖에 없을 거야. 저렇게 실력이 있는데 위에서 가만뒀겠어? 죄다 견제라고 지시 내려오지 않았겠어?
-하긴, 그건 그래. 국정원에서 2020년부터 활동했으니 거의 10년이니까…… 어후, 1년에 100명만 해도 1,000명이네.
-그것뿐이겠어? 암흑계에서 활동한 것만 해도 한두 해가 아닐 거 아니야?
-하긴…… 진짜 무서운 세상이라니까.
-뒤쪽 세계에서는 진짜 무서운 일들이 엄청나게 벌어진다고. 우리 같은 평범한 샐러리맨도 언제 어떻게 이용당할지 모르는 세상이야.
술잔을 기울이던 남자 중 하나가 젓가락 끝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저기 또 나오네. 요즘 완전 화제라니까.
순간, 남자가 가리킨 시선의 끝으로 화면이 줌인되었다.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TV.
TV 속에서는 조금 전에 나와 함께 있었던 이의 얼굴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동영상이 종료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래 문자는 도착했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
이게 대체 뭐지?
평소와 다른 방식의 동영상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미래 문자 중간에 노이즈가 낀 적은 물론, 화면이 이렇게 전환된 적도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전개에 두통이 오려 했지만, 우선은 머릿속에서 정보가 잊히기 전에 분석을 하는 게 우선이다.
화면에 노이즈가 낀 걸 기준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장면으로 나눈다면, 우선은 두 번째 장면.
장소로 보나, 대화로 보나 동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마 평범한 시민들일 터.
물론,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에 이들의 얼굴은 머릿속에 똑똑히 담아 두었다.
우선 중요한 건 그들의 대화 내용.
마지막에 TV로 화면이 줌인된 걸 보면, 두 번째 장면은 첫 번째 장면에서 나와 대화를 했던 이에 대한 정보를 주려는 것일 터.
남자는 2020년부터 국정원에서 활동을 했으며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
현재 2021년을 기준으로 1년 차 혹은 2년 차겠지.
중요한 건 다시 첫 번째 장면이다.
보낸 이가 42로 22대 대선이 치러지는 해.
다른 건 몰라도 대통령 당선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내가 밀고 있던 성태현이 당선되는 건 확실할 터.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에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그린 시나리오에 굉장히 큰 방해를 받았고, 엄청난 분노를 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그 일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고 봐도 될 정도.
그저 확실한 건 미래에서는 신의 손이라는 인물과 굉장히 가까운 상태일 거라는 사실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저런 대화를 하는 걸 보면 저 남자는 최소한 송재훈 PD 혹은 박수형 기자만큼이나 나와 친한 사이일 테지.
일반적인 동업 관계가 아니라, 믿고 갈 수 있는 관계.
이번 동영상으로 알아낼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신의 손이라는 인물이 대체 누구인지, 내 옆에서 무슨 일을 맡는 건지 알아내야만 더 진전이 있을 터.
우선 그를 찾아내야 한다.
나는 고개를 들어 조아라를 불렀다.
“실무관님.”
“예, 부장님.”
“홍석장 검사 호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근처에 있었는지 홍석장 검사는 금방 부장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부장님.”
“홍 검사.”
나는 조아라 실무관이 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국정원에 있는 신의 손이라는 인물에 대해 한번 알아봐 봐.”
“별명이 신의 손인 겁니까?”
“어. 정확히 무슨 분야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사람을 처리하는 쪽과 관련이 있을 거야.”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강조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 걸리지 않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진행해야 해. 이두형 부부장이나 홍 검사의 수사관도 모르게. 이건 홍 검사랑 나만 아는 사실이어야 하니까.”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다녀왔어.”
한지유는 기다렸다는 듯이 앞치마를 두르고 현관으로 나왔다.
“얼른 와. 밥해 놨어.”
“음, 맛있는 냄새 난다.”
나는 소파에 서류 가방을 던져두고 바로 식탁으로 향했다.
메뉴를 보자, 감탄을 숨길 수가 없었다.
“오늘 완전 진수성찬이네?”
“응. 안 그래도 밤새워서 피곤할 텐데 든든히 먹어야지.”
그녀는 푸짐한 상의 화룡점정으로 장어구이까지 가져와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한숨도 못 잤지?”
“아니야. 낮에 눈 좀 붙였어.”
“다행이다.”
거하게 차려진 상 덕분에 포식을 끝낼 수 있었다.
빵빵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나 오랜만에 와인을 꺼내 가져왔다.
내 손에 들린 와인 병을 보자, 한지유는 걱정스레 날 바라보며 물었다.
“안 자도 괜찮겠어?”
“응. 그렇게 피곤하진 않아.”
한지유는 산뜻하게 웃으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가볍게 잔을 부딪친 뒤, 그녀가 먼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제는 무슨 일 때문에 나간 거야?”
“아, 저번에 말했던 그랑교 건 때문에 준비할 게 있었거든. 급한 건 마무리되어서 이제 서기웅 검사장 건만 준비하면 될 것 같아.”
“그렇구나.”
한지유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에게는 허심탄회하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전부 털어놓는 편이었다.
이 바닥의 끝까지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은 만큼, 그녀에게도 늘 좋은 모습만 보여 줄 수는 없었으니까.
나에 대해 가장 잘 알면서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이처럼 마음먹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선 배우자의 조력이 필요할뿐더러, 워낙 현명한 인물이라 때때로 나에게 조언을 해 주며 내 좁은 견해를 넓혀 주기도 했으니까.
한지유는 와인 잔을 만지작거리며 지긋이 날 바라봤다.
“오빠, 내가 하는 말은 오해하지 말고 들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오빠가 하는 일을 막을 생각도,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아. 당연히 오빠가 출세하는 게 내가 바라는 모습이고 오빠가 원하는 걸 이뤄야 나도 행복할 거야.”
“편하게 말해.”
“그런데 예전에 오빠가 말하기로는 서기웅 검사장은 이 세상에 더 없을 청렴한 검사라며. 물론 오빠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면 어쩔 수야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조금 더 지켜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한지유가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기웅 검사장이니까.
소망원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그의 와이프와 친해진 탓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의 청렴함에 대해 한지유도 알고 있는 탓이 클 테지.
나 또한 그녀가 말하는 걸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실제로 내가 서기웅을 먼저 건들지 않는다면, 그도 나를 좋게 보지만 않을 뿐, 나를 몰아내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사실, 서기웅 검사장을 몰아내는 건 지금까지 이 자리에 올라오며 많은 이들을 쳐내 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실제 범죄자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까지 무너뜨린 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죽이지 않으면 나를 죽였을 테니까.
그러나 서기웅 검사장을 치는 건 나의 생존이 아니라, 순전히 나의 출세를 위함이라고 봐야 한다.
가만히 두면 차장검사으로의 승진이 밀리긴 한다지만, 그의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든 꾸역꾸역 올라갈 수는 있을 터.
다만, 내가 꿈꿔 왔던 왕의 자리로 올라가는 건 멀어질 수밖에 없겠지.
결국 나의 선택은 기다림이 아닌, 서기웅 검사장을 몰아내고 높이 올라가는 일이었고 나는 지금도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의가 아닌, 출세를 위한 결정.
어렸을 적부터 검사가 되고 싶었던 것도 출세하기 위함이었고, 서울에 올라온 것 또한 출세를 위해서였다.
내가 사랑하는 한지유와 만날 수 있었던 것과, 강중식 부장으로부터 그녀를 지킨 것을 계기로 한지유와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내가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며,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부장검사라는 힘도 내가 출세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내 선택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
그뿐만이 아니다.
만약 내가 출세를 택하지 않았다가, 만약 누군가에게 밀리기라도 하면 그저 최서준이라는 인간 하나가 패배하는 게 아니다.
나의 가족들, 내가 사랑하는 한지유 그리고 나를 따르는 특수부의 모든 검사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전부 무너지는 법이니까.
박재필 고검장을 상대하며 뼈저리게 느꼈다.
힘을 가져야만 한다. 누군가가 건드릴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나를 믿고 있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나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괴물이 되어야만 한다.
내 생각을 차근차근 들려주자, 한지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오빠가 선택한 걸 존중하고 응원할 거야.”
“고마워.”
“하지만 너무 힘들면 내게 의지해도 돼.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그녀는 화사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내 남편이 대한민국 검찰의 얼굴이라서 행복해.”
“그래.”
그녀는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며 내게 입을 맞췄다.
“나 먼저 씻고 올게.”
한지유는 내 볼을 어루만지고 먼저 샤워실에 들어갔다.
홀로 남은 나는 와인 잔을 빙그르르 돌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멀리 펼쳐진 서울 야경을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한지유와 이야기를 하며 내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대한민국 검찰의 얼굴이자 검사의 대표다.
다시 말해 나를 밟는 이는 스타 검사가 되어 승진하는 건 따 놓은 당상이라는 것.
마치 내가 임성진을 밟고 단번에 검찰계에 이름을 알린 것과 똑같은 이치겠지.
나를 노리는 이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그들 혹은 그들보다 더 강한 이를 잡아먹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보여 줘야 한다.
내가 지켜야 할 건 나의 소신과 나의 사람이 전부.
그깟 정의 따위, 대한민국에선 죽은 지 오래니까.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위해 물러났다는 건 패배자들의 넋두리일 뿐이다.
패배자가 되는 것보다는 살아남은 악마가 되는 게 나은 법.
나는 더욱더 올라가야 한다.
이곳은 밟지 않으면 밟히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