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고리 (4)
지하로 내려오자, 제일 구석진 곳에 주차되어 있는 윤설하의 차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발견하고 나오려는 그녀를 말리며 곧장 차의 조수석에 탑승했다.
“늦은 시간에 고생이 많아요.”
“아닙니다. 저녁 시간인데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워낙 중요한 내용이라…….”
시간이 시간인 만큼, 윤설하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 요약본 보시면,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내게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 몇 장을 건넸다.
“말씀하세요.”
“예. 거기 나와 있는 대로 그랑교의 교주는 신형주 목사입니다. 기존엔 기독교에서 시작을 했지만, 정식 규범과는 달리 삐뚤어진 성서 해석으로 인해 모든 종교 단체에서 이단으로 규정당해 신형주는 목사 자격이 박탈되었고 지금은 사이비 종교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윤설하는 요약본의 하단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밑에 보시면 이제 그랑교의 문제점들에 대해 적혀 있는데…….”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어이가 없다 못해 열이 뻗쳐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사이비 종교의 수준을 넘어서 교주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범죄 집단과도 같았으니까.
그랑교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악행 중 가장 큰 문젯거리는 두 가지로 ‘자유마당’이라고 불리는 성범죄 현장과 ‘에레츠 헤므다’라고 불리는 자유의 땅으로의 이주에 관한 것이었다.
에레츠 헤므다.
히브리어로 성경에서 말하는 약속의 땅이라고 불리는 곳.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낙토(樂土)가 된다.
그랑교에서는 사이비 종교답게 불교의 무소유와 열반(涅槃)까지 예시로 끌어와 신도들에게 행복의 땅인 낙토로 가기 위해서는 모든 재산을 그랑교에 기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설파하고 있었다.
성경에서는 이 낙토의 실제 위치를 가나안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랑교에서는 신도들에게 돈을 받은 뒤, 이들을 가나안으로 보내 준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중국으로 보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
그것도 정식 절차를 밟는 해외 입국이 아닌, 밀입국.
중국으로 보내진 남자들은 장기 밀매로 이용당하거나 원양어선으로 보내져 강제 노역을 하기도 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팔다리를 잘라 앵벌이를 하도록 만든다.
여자들 또한 장기 밀매는 물론이고 성매매를 시키거나 중국 갑부들 집안에 강제로 들어가 대리모가 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더 심한 건 자유마당이라고 불리는 악행.
그랑교의 교주인 신형주 목사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만든 추악한 만행의 장으로 짧게 정리하면 그의 몸에서 나온 성수를 뿌려 영혼을 자유롭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상습 강간 및 성폭행을 일삼는 행위.
다만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성수를 뿌리는 일로 인해 여신도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녀를 중국으로 보내 아이를 출산시켜 인육으로 판매한다고 하니, 차마 인간이 하는 짓거리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
이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에 놀랐고, 지금까지 신고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외에도 윤설하가 설명해 주는 악행들을 듣고 나니, 차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다 실제로 있는 일입니까?”
“예. 그쪽 신도 중에서 중국까지 끌려갔다가 겨우 탈출해서 돌아온 남자분에게 직접 들은 거니, 확실할 겁니다.”
“허어…….”
입을 쩍 벌리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저도 처음에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조사하다 보니 진실이더라고요. 음지 속에서 성장하며 신도들을 전부 외부와 차단시킨 덕분에 이렇게 커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류에 나와 있는 내용만으로도 최소 3년 이상은 이런 일을 해 왔다는 건데 언론에 한 번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아니, 그 탈출하신 분은 대체 왜 제보를 하시지 않다가 갑자기 수사관님한테 이야기를 한 거랍니까?”
윤설하는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그분께서 용기를 내서 WBS 뉴스에 제보를 했답니다. 그런데 제보를 한 지 사흘 만에 갑자기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찾아왔다더군요. 그런데 그들이 그랑교의 경호 일을 하던 인물들이라는 걸 파악하고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도망친 뒤에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제가 운 좋게 행적을 추적하다가 발견한 거고요.”
“WBS에도 그랑교와 관련된 인물이 있다는 거네요.”
“예. 그중에서도 아주 높은 사람이겠죠.”
사회에 알리는 길까지 원천 차단시켜 놓았다는 것.
다시 말해 이 제보자처럼 그랑교의 문제를 알리려고 했던 이들은 전부 끌려가 참담한 꼴을 당했겠지.
그렇다면 그랑교가 이렇게나 음지에 숨어들어 외부에서 전혀 모른 채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이런 더러운 녀석들이 점점 더 몸집을 키우고 있다니.
처음 그랑교의 조사를 시작한 건, 서기웅 검사장과 나경준 서울시장을 무너뜨리기 위함이었지만, 이러한 실체까지 알게 된 이상 그랑교를 와해시키고 신형주 목사가 법의 처벌을 받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이 정도의 사회악은 근절시켜야 해요.”
“맞습니다. 이건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내용들이라…….”
윤설하는 짙은 한숨을 내뱉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오늘 와서 급하게 설명드리고자 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내일 그랑교의 집회가 있다더라고요.”
“집회요?”
“예. 제보자 말로는 10월 1일부터 개천절까지 사흘간 그랑교의 신도들을 추가로 모집하고 이들 중 일부에게만 은밀하게 그랑교의 성지로 갈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고 합니다. 외부와 차단되어 갇혀 있는 그 합숙소죠.”
10월 1일이면 내일이다.
왠지 듣지 않아도 윤설하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예상에 조금도 빗나가지 않는 말을 뱉었다.
“제가 집회에 가겠습니다. 그랑교에 잠입할게요.”
“그건 안 됩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위험성이 너무 커요. 자칫하다간 설하 씨까지 다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이 일을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윤설하를 위험천만한 그랑교에 내던질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엄지와 검지로 눈꺼풀을 천천히 쓸어 당기며 고민에 빠졌다.
그랑교를 무너뜨리기 위해선 그들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를 직접 들여다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터.
그리고 집회가 펼쳐지는 내일부터는 그곳에 잠입하기에 최적화된 시기.
이번 집회를 놓치면 다음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다.
최악의 경우엔 그랑교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태현이 서울시장에 낙선하는 결과까지도 도출될 수 있는 상황.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해야 나중에 모두가 웃을 수 있을까.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머릿속에 아주 멋진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그래!
이걸 그런 방식으로 해 나가면 되겠구나.
순식간에 서기웅 검사장을 공격하기 위한 건수부터 그랑교를 활용해 나경준 서울시장과 차후 서기웅 검사장의 마무리까지 아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판이 그려졌다.
그렇게만 하면 윤설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걸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할 수 있다.
“설하 씨가 며칠 동안 그랑교에 섞여 있더라도 가장 중요한 건 내부에 대해 알아내는 게 아니라, 본인의 안전입니다. 그건 약속해 주세요.”
“그렇게 하죠. 저 또한 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뜨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윤설하는 나를 향해 가볍게 윙크했다.
“좋습니다.”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내 계획을 설명해 나갔다.
“설하 씨도 지금 제가 서기웅 검사장을 치기 위한 건으로 부실 공사와 횡령을 준비하고 있는 건 알고 계시죠?”
“예. 정형준 경감님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장하영 검사도 손을 보태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맞습니다. 그러나 이건 말 그대로 그의 입지를 줄이고 판을 흔드는 것에 불과하지, 녀석을 쓰러뜨릴 수는 없습니다.”
공격의 목표 대상 자체가 서기웅 검사장 본인이 아니라, 그녀의 아내를 저격한 것이기 때문.
“그런데 서기웅 검사장은 깨끗하기로만 따지면 정말 청백리에 버금가는 인물. 다른 건 몰라도 비리로 인해 엮였다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목숨을 걸 거라는 뜻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반격하지는 않겠지만, 물러나리라는 확신도 없죠.”
내가 서기웅의 아내를 횡령으로 공격했을 때 예상하는 서기웅의 반응은 두 가지.
더 명예가 실추되기 전에 옷을 벗고 물러난다거나, 실제로 와이프가 저지른 일이 아니기에 그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버틴다는 경우의 수.
평소 강직한 서기웅 검사장의 성격과 부부 내외에 신뢰가 가득한 걸 고려하면 후자의 가능성이 클 터.
“그들이 어떻게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힘쓰는 동안 저희는 그랑교의 실체를 밝혀서 서기웅과 연결시켜 녀석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좋은 계획이긴 합니다만…….”
윤설하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하지만 서기웅 검사장과 이 그랑교를 연결시킬 만한 고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게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내용.
그러나 그건 이미 이 시나리오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연결 고리는 저와 설하 씨가 되는 거죠.”
“예?”
윤설하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마디로 하면 윤설하 수사관이라는 인물을 그랑교에 잠입시킨 건 저희의 의지가 아니라, 위.”
검지로 천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서기웅 검사장이 보낸 거라고 하는 겁니다.”
그녀는 미간까지 찌푸리며 내 말에 귀 기울였다.
“이번 건은 단순히 그랑교라는 종교 하나를 무너뜨리는 것만으로 끝날 게 아니라는 건 말씀드렸죠?”
“예. 차후에 서기웅 검사장과 나경준 서울시장을 칠 때를 대비하신다고…….”
“맞습니다. 그랑교를 파악해 내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과도 전부 엮어야 합니다. 그걸 제가 공론화시킬 거고요.”
그녀는 그제야 깨달은 듯 헛바람을 들이켰다.
“설마, 부장님께서도 직접 나서실 생각입니까?”
“예. 그래야 녀석들을 완벽하게 그랑교와 연관 지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윤설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그건 양날의 검이잖습니까? 여차하다간 부장님도 위험해지실 수 있습니다.”
나는 여유롭게 손가락을 저었다.
“양날의 검의 향할 곳은 제가 아닙니다. 검날의 한쪽에는 서기웅 검사장이, 반대쪽에는 나경준 서울시장이 남게 되겠죠.”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검을 뽑아 든 건 저일지라도, 휘두르는 건 그 둘이 될 겁니다.”
“아아.”
윤설하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나는 서류를 글러브박스에 올려 두고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오늘 집에 일찍 돌아가긴 그른 것 같네요. 외출 복장으로 옷 갈아입고 나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휴대폰을 안 가지고 내려와서 그런데 송재훈 PD한테 전화 좀 걸어 주실래요?”
“예.”
그녀는 곧장 송재훈 PD에게 전화를 걸어 내게 내밀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송 PD님은 왜…….”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드는 건 죽음을 각오하는 겁니다. 전 조금이라도 위험부담을 지고 싶지 않거든요.”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적어도 안전하게 안으로 들어가려면 트로이 목마 정도는 타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