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4)
서기웅 검사장이라는 말에 자동으로 김석원 장관의 말에 귀가 기울여졌다.
“서기웅이 나랑 같은 동네 후배였던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둘 다 같은 창원 출신이라고 김석원 장관에게 몇 번 서기웅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한테 고민 상담 같은 걸 많이 한단 말이야.”
“예.”
“그런데 얼마 전에 이 친구가 나한테 와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더라고.”
김석원 장관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끼는 후배 하나가 사건을 진행할 때 돈을 쓴 걸 알았다더라고.”
“사건을 진행할 때요?”
“어. 물론 확증까지는 아닌데, 밑에서 보고를 들었다고 하더라. 대충 뉘앙스를 들어 보니까 주요 3개 부서 중 하나인 것 같던데.”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3개 부서라면, 내가 있는 특수부와 공안부 그리고 前첨수부에서 이름을 바꾼 과학기술범죄수사부인 現 과수부를 뜻한다.
그러나 최근 서기웅 검사장이 내게 데면데면했던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특수부일 확률이 높을 터.
서기웅 검사장 또한, 김석원 장관이 나와 친하다는 걸 알기에 자세하게 누군지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사건을 진행할 때 돈을 쓴 게 문제였다는 겁니까?”
“그게 1차적으로 마음에 걸렸는데, 다 나름의 방식이 있으니 적당히 눈감아 주기로 했다나 봐. 그런데 중요한 건 따로 있었더라고.”
그는 전병주 고검장이 나갔던 문을 한번 흘긋 살피고 입을 열었다.
“그 친구 마누라가 소망원이라는 보육원 운영하는 거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그런데 거기에 돈을 부은 친구가 하나 있다는 거야.”
역시 내 이야기였다.
최대한 태연한 척 연기하며 그의 말을 들었다.
“처음엔 순수한 의도로 기부를 한 줄 알았다고 하네. 서기웅도 혹시나 자신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걸까 싶어서 뒷조사를 좀 해 봤는데, 그 친구가 소망원에만 기부한 게 아니라 다른 봉사 단체에도 많이 기부를 하고 다녔다더라고. 그래서 자신이 의심하는 건 너무 과민하다고 생각했다나 봐. 아니, 오히려 좋게 봤었겠지.”
거기까진 내가 세워 둔 계획대로 흘러간 것이다.
혹시나 서기웅 검사장이 의심하지 않도록 다른 업체에까지 기부하고 봉사 활동을 간 게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는 소리니까.
“그런데 이번에 다른 계기가 하나 있어서 자세히 알아보니까 그 전까지는 기부 내역은 일체 없고, 그 기부금 또한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걸 깨달은 거지. 서기웅이 이 친구는 그제야 본인한테 접근하려고 이런 식의 방법을 썼다는 걸 알아챈 거고.”
김석원 장관은 다시 상체를 펴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자네도 조심하라고. 요즘 서기웅 검사장이 많이 날카로운 것 같아서 말이야.”
김석원 장관의 귀에 들어갔다는 건, 서기웅 검사장이 홀로 생각하는 걸 넘어 이제 슬슬 행동에 옮기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대로 있다간 내가 당하고 만다.
박재필 고검장 때도 방심하다가 선제공격을 당하고 정신을 못 차릴 지경까지 갔었던 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장관님.”
나는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리깔며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거 아무래도 제 이야기 같습니다.”
김석원 장관은 당황한 듯이 눈썹이 휘어졌다.
“……그래?”
그사이 생각의 정리를 마치고 결연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서기웅 검사장을 쳐도 되겠습니까?”
“허어…….”
그는 짙은 한숨을 뱉으며 테이블을 천천히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둘 다 아끼는 동생이긴 하다만…….”
고민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한참이나 고뇌하던 그는 잔을 들어 단번에 들이켜고는 내게 물었다.
“자네가 진정 원하는 목표가 뭐지?”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출세입니다.”
“출세라…….”
“출세에는 서기웅보다 네가 더 잘 어울리네.”
김석원 장관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네가 올라가라.”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말은 내가 서기웅을 치는 걸 허락하는 것은 물론, 올라갈 수 있도록 더 확실하게 밀어준다는 뜻이었으니까.
“사람이 힘들 때 도와준 사람이야 말로 지켜야 하는 법이야. 그 친구는 고지식한 면이 있거든.”
내 손을 들어준 건, 그가 은퇴한 직후에도 계속 찾아갔던 탓이라는 거겠지. 고지식한 서기웅 검사장은 김영란법 때문에 애초에 문안 인사 정도가 전부였을 테고.
“감사합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전화를 끝낸 전병주 고검장이 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들 나누고 계십니까?”
“병주야.”
“예, 장관님.”
김석원 장관은 진지한 어투로 전병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네가 도와줘야 될 일이 생겼어.”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우리 최 부장, 자네가 많이 도와줘.”
“그럼요. 당연히 제가 해야죠.”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이번에 최 부장이 높은 놈을 하나 칠 거야.”
“예.”
“자네가 도와줘야 해. 그놈이 워낙 깔끔하고 구린내가 없어서 쉽게 건들 수가 없거든.”
전병주 고검장은 날 바라보며 말했다.
“필요하면 뭐든 말만 해. 장관님 앞에서 최 부장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맹세하지.”
“감사합니다.”
“그래서 쳐야 될 사람이 누군데?”
“서기웅 검사장입니다.”
전병주 고검장은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재미있겠네.”
그 순간.
지잉지잉.
짧게 두 번.
문자가 왔을 때 특유의 진동이 울렸다.
***
“그래. 당분간 난 중간에서 지켜볼 테니까 필요한 게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알겠습니다, 검사장님.”
“들어가.”
김석원 장관에 이어 전병주 고검장까지 배웅을 하고 나서야 나도 택시에 올라탔다.
“후우.”
술을 잔뜩 마신 탓에 몸은 지쳐 있었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하나 생긴 덕분인지 마음 하나는 든든했다.
무엇보다 김석원 장관이 소개시켜 준 인물이니 배신의 여지는 없을 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도착하기 전까지 눈을 감은 채 쉬고 싶지만, 확인해야 할 게 하나 있었다.
진동.
조금 전에 확인한 바, 문자인 건 확실했다.
제발 미래 문자이길.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보낸 이 : 34
-동영상
예스!
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역시 미래 문자였어!
얼마 만에 오는지 모르겠다.
저번 문자를 받은 지 벌써 반년도 더 넘었던 터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터.
2시간 전에 문자가 왔지만, 중간에 휴대폰을 꺼내 볼 수가 없어서 계속 참고 있었던 터라 지체할 것도 없이 바로 동영상을 재생했다.
-으하하하하하하!
동영상이 재생되자마자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명의 웃음소리가 아니다.
최소 두 명 이상.
그때, 동영상의 화면이 밝아졌다.
원형의 테이블. 식당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세 명의 남자가 앉아 호탕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며칠 만에 마음 편하게 술 한잔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다름 아닌, 성태현 의원.
-그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원…….
순간, 동영상의 앵글이 돌아가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성태현의 좌측에 있는 건 역시나 나였다.
그러나 그의 우측에 있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
-조현웅 의원님의 공이 컸습니다.
조현웅 의원.
2번 라인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의원으로 이번 민국당 내부 개혁을 통해 실권을 쥐고 새로운 당대표로 올라온 사나이.
정계에서 굉장히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건 알지만, 라인 자체가 아예 다르기에 우리와 손을 잡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어휴,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전부 최서준 검사님이 다 해 주셨죠.
성태현도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그걸 그런 식으로 엮을 줄이야…… 최 검사님 덕분에 제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것 같습니다.
서울시장?
일단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분위기를 보아하니, 서울시장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인 것 같다.
그렇다면 서울시장이 되기 위해 조현웅 의원과 손을 잡았다는 뜻인가?
-정말 그랑교가 아니었으면 막판 뒤집기가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마터면 저희 세 명 모두 나가리가 될 뻔 했다니까요.
성태현 의원은 말해 놓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근데 저는 그랑교가 그런 놈들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검사님이 알려 주시기 전까지는 그랑교라는 곳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랑교?
나도 처음 들어 보는 단어인데.
혹시 종교 중 하나인 건가?
동영상 속의 나는 너스레를 떨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았던 겁니다.
-에이, 검사님이 아니면 그랑교를 찾아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성태현은 말해 놓고 손뼉을 치며 말을 바꿨다.
-아, 검사님이 아니라, 이제 형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조현웅 의원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말씀은 혹시…….
-예, 맞습니다. 프러포즈 성공했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식 올리기로 했어요.
그 말을 끝으로 동영상은 끝이 났다.
평소보다 훨씬 짧은 동영상이었지만, 정보는 훨씬 더 많이 담고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조현웅 의원.
저 정도로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건, 성태현 의원이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나서 우리에게 붙은 게 아니라, 선거를 시작하기 전부터 우리와 함께 손을 잡고 있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터.
어떻게 엮이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조현웅 의원이 우리와 손을 잡았다면, 이번 선거에서 만큼은 2번 라인과 함께 간다고 봐도 되겠지.
성태현이 서울시장에 당선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가장 큰 고비는 민국당과의 경쟁이 아니라, 내부 경선이었으니까.
아마도 나경준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잡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두 번째.
그랑교.
곧장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자,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쏟아져 나왔다.
정식 종교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테니, 아무래도 사이비 종교 중 하나일 터.
다시 말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사이비 종교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다만, 그랑교가 아니었다면,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지 못했을 거란 말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다시 말해, 이 그랑교를 이용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번 선거의 핵심은 그랑교에 달려 있다는 것이겠지.
마지막은 프러포즈.
성태현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프러포즈를 할 거라고 말했던 게 아마 실현된 모양.
다시 말해 나는 차기 대통령과 가족 관계가 되는 것이라고 봐도 될 터.
이건 생각만 해도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성태현을 처음 만났을 때 받은 미래 문자가 이런 결과까지 이끌 줄이야.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출세를 바라고 있다니까.
문자에 대한 정리를 마치고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찝찝함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이 문자가 왜 지금 온 거지?
분명 문자는 전병주 고검장 및 김석원 장관과 서기웅 검사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도착했다.
지금까지 미래 문자는 늘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그에 대해 생각할 때 관련된 내용을 내게 알려 주었다.
그러나 이번 미래 문자에서 본 동영상은 서기웅 검사장이 아니라, 성태현의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이 된 내용.
대체 왜 이 타이밍에 문자가 온 걸까.
한참을 생각했지만, 머릿속에 차오르는 결론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미래 문자에 나온 내용으로 서기웅 검사장을 몰아내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미래 문자가 온 시간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서기웅 검사장을 몰아내기 위해선 동영상을 보며 내가 놓친 무언가를 다시 찾아내야 한다는 뜻.
나는 눈을 감고 다시금 동영상을 머릿속으로 되짚기 시작했다.
서기웅 검사장과 동영상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