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3)
나경준 서울시장은 보궐선거를 통해 경동수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생겨난 공석을 채운 것이기에 그의 임기는 2022년 6월 말까지.
따라서 실질적으로 서울시장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시기는 만으로 2년이라는 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차기 지방선거에서 그 자리를 두고 수성전을 펼치는 입장과 공성전을 펼치는 입장은 명백하게 다르다.
2022년 6월 중순에 펼쳐지는 지방 선거까지 남은 시간은 약 10개월.
나경준이 서울시민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엔 충분한 시간인 만큼 그는 유리한 고지에 선 채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이번 싸움이 벌어지는 곳은 평소와 달리 선거판.
검사라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만큼 나의 가장 큰 강점인 이미지를 사용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완연하게 보이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 움직여야 하는 만큼, 적지 않은 패널티를 지고 있다는 것.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나경준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내 생각으로는 성태현이 내년의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좋고, 아니면 차기 지방선거를 노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경준이 우리 라인에 들어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를 데려온 사람이 최규현이라는 사실.
문자에서 말하기로는 최규현 의원은 차기 대선에서 대한당의 최종 후보로 확정이 될 게 분명하다.
암만 나경준이 욕심이 많다고 한들, 본인을 라인으로 데려온 최규현과 경쟁 구도에 설 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터.
그렇다면 나경준의 목표는 2030년에 있을 22대 대선을 노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22대 대선은 성태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야만 하는 선거.
한데, 만약 나경준이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남은 임기인 2년을 포함하면 무려 6년이나 서울시장을 역임하는 게 된다. 게다가 그때도 라인에 소속되어 있을 테니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세 번째 서울시장이 될 가능성도 농후할 터.
결국 2030년까지 나경준이 서울시장을 역임하다가 대선에 나서는 전형적인 대통령으로서의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태현이 나가리가 되는 것이지.
그렇기에 성태현이 내년에 펼쳐질 지방선거에서 나경준에게 밀리는 순간, 대통령이라는 큰 그림에 균열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미래 문자에서 성태현이 22대 대통령에 오른다고 말한 건 2019년의 이야기.
그러나 22대 대선이 2030년에 펼쳐질 걸 생각하면 그 긴 시간 사이에 생겨날 변수들은 미래를 비틀기에 충분하다.
그 변수들을 억누르기 위해 나는 성태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온힘을 다해서 움직여야 하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여차하다가는 나까지 낙동강 오리알이 될지도 모르니까.
이 모든 상황을 기반으로 생각하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성태현이 다음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되어 8년간 두 번의 서울시장직을 역임하고, 2030년에 출마한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
그렇게만 되면 나 또한 검찰로서 출세의 끝이라고 불리는 검찰총장에 오르는 게 확정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최악의 상황으로는 성태현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우리가 밀고 있던 최규현도 대선에서 패배하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22대 대선이고 뭐고, 그때까지 버틸 힘이 부족하게 될 테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성태현을 반드시 서울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라인의 최규현이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차기 대통령의 임기 동안 성태현이 중간에서 든든하게 버텨 줄 테니까.
무조건 성태현을 서울시장으로 당선시켜야만 한다.
“성태현 의원님.”
“예, 검사님.”
“지금 도봉구에서 의원님 민심은 어떻습니까?”
그는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지율로만 따지면 압도적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차기 총선에 나선다면 100% 당선될 자신도 있습니다.”
“서울시장을 목표로 나서시면, 국회의원직을 포기하셔야 합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차기 총선도 굉장히 위험해지고요.”
서울시장직에 진지하게 임하기 위해서는 특정 지역구를 벗어야 할 테니 국회의원직을 포기해야 한다.
만약 선거에서 실패하고 다시 지역구로 돌아간다면, 분명 도봉구민들은 성태현이 자신들을 버렸다가 아쉬워지니 되돌아온다는 생각을 할 터이기에 다음 총선에서의 향방도 불투명해지게 되겠지.
무엇보다도 현 서울시장과 경쟁을 해야 하는 만큼, 차기 총선의 공천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만큼 서울시장직 도전은 리스크가 큰 일.
물론 성태현도 알고 있겠지만, 직접 그에게 확답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내 걱정이 무색할 만큼, 성태현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오히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차피 한 번밖에 살지 않는 인생, 화끈하게 도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태도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이 정도 포부는 있어야 내가 찍은 대통령 후보지.
“그것도 검사님같이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면 머뭇거릴 필요가 없죠. 정치인으로서 저는 충분히 젊습니다. 또한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테고요.”
성태현은 자신의 두 손가락의 끝을 마주대고 말을 이었다.
“이럴 때 나서지 않고 손에 쥐고 있는 것만 지키기 위해 버틴다면…….”
그는 라인의 한쪽에 서서 여자들의 몸을 더듬고 있는 늙은 의원들을 흘긋 보고는 말을 이었다.
“저기 있는 뒷방 늙은이처럼 작은 것에 만족하고 그것에 고착되어 버릴 테니까요.”
그의 대답을 들으니 흡족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성태현은 수줍게 볼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지수에게 당당한 남자가 되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그녀를 왕의 아내로 만들어 주고 싶거든요.”
왕의 아내.
그의 포부에 벌써부터 아찔해지려고 한다.
“서울시장에 당선되어서 프러포즈를 하고 싶습니다.”
성태현의 눈빛에선 집념과 사랑이 동시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라면,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제가 꼭 형님으로 모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나는 그를 향해 한껏 입꼬리를 비틀었다.
“한번 제대로 가 보자고, 동서.”
***
“예, 최서준입니다.”
-어, 최 부장, 바쁜가?
“아닙니다, 장관님. 말씀하십시오.”
통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김석원 장관.
-오늘 시간 나면 잠깐 볼 수 있을까 하는데, 저녁에 시간 어떤가?
“괜찮습니다. 혹시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특별한 건 아니고 내가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어서.
“아, 그렇습니까?”
-어. 누군지는 보면 자네도 알 거야. 이따가 저녁에 연가에서 보자고.
“알겠습니다.”
김석원은 누구인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해 주지 않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은 모양.
일단 이렇게 나온다는 건, 분명 내가 만나고 반가워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일 터.
김석원 성격 상, 내가 곤란하길 바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리는 없으니 별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한지유에게 오늘 저녁 일정이 생겨 늦게 들어간다고 문자를 보낸 직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들어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이두형 부부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부장님.”
“어, 뭐 부탁할 게 있어서.”
“말씀만 하십시오.”
“자네 나경준이라고 알지?”
“서울시장 말씀하시는 거면 알고 있습니다.”
“그놈 구린내가 나는지 한번 캐 봐.”
“어느 정도 큰 건이면 되겠습니까?”
“될 수 있는 한 많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써먹을 거야.”
이두형 부부장도 내 뜻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가족과 관련된 건수까지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
강남에 있는 고급 술집, 연가(戀歌).
제일 안쪽에 있는 VIP룸에서 김석원의 장난기 짙은 목소리가 낮게 퍼졌다.
“약속을 잡고 보니까, 한창 타오를 신혼의 뜨거운 시간을 내가 뺏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
“어휴, 아닙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밤은 길고 밤새 같이 있을 테니까요.”
“으하하하하핫!”
김석원 장관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역시 젊음이 좋다니까.”
“그나저나 소개해 줄 사람이라는 분은…….”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딱 왔네.”
뒤로 고개를 돌리자, 165cm가량의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성 하나가 반갑게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어, 왔나?”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통 인물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이 남자가 올 줄이야.
그는 푸근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최 부장은 미리 와 있었네?”
“저도 방금 왔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검사장님.”
전병주 고검장.
서울고등검찰청의 검사장으로 박재필의 후임으로 새로 부임한 고검장이었다.
청주지검의 검사장으로 있다가 올라온 인물로, 김석원의 사람 중에서 수도권 외 지역에 있는 인물 중 최고로 꼽히는 인물.
그가 차기 고검장으로 올라올 거라는 소문은 들었는데, 정식 부임 전부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일단 앉지.”
“예, 장관님.”
전병주 고검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잔부터 들어 올렸다.
김석원은 흡족하게 바로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청주지검이라 일부러 청주로 준비했어.”
“역시 장관님이십니다.”
전병주 고검장의 감탄에 김석원 장관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냈으면 해서 자리를 마련했는데…… 불편한 건 아니지?”
“전혀 아닙니다.”
“불편은 무슨, 오히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김석원 장관은 스윽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박재필 그 자식 몰아낸 게 우리 최 부장이잖아. 그건 알고 있지?”
“그럼요, 장관님. 그 자리가 공석이 된 덕분에 제가 청주에서 서울고검으로 올라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잘 좀 챙겨 주라고. 나는 이제 뒷방 늙은이라 1년만 더 있다가 장관 임기 끝나면 정말 은퇴할 사람이잖아. 젊고 잘나가는 두 친구끼리 서로 밀어주고 당겨 주고 해야 하지 않겠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래. 그렇게 둘이 끝까지 올라가라고.”
김석원은 우리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 거국적인 의미로 같이 건배나 한 번 할까?”
“예!”
우리는 잔을 높게 들어 부딪쳤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향해 덕담을 나누던 도중, 전병주 고검장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집사람이라서 잠깐만 받고 와도 되겠습니까?”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김석원 장관은 스윽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나이대면 와이프 전화에 꼼짝을 못 한다니까. 신혼일 때가 좋은 거야.”
“하하하,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전병주 고검장이 자리를 비우자, 김석원 장관은 안주 하나를 집어먹고 나서 지긋이 나를 바라보았다.
“서준아.”
둘만 남게 되어서 그런지, 그는 친근하게 이름을 불렀다.
“예, 장관님.”
“요즘 일은 어때?”
“무난합니다.”
“서기웅 검사장이랑은?”
“검사장님은…….”
내가 말끝을 흐리자, 김석원 장관은 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서기웅 검사장한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무래도 자네는 알아 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김석원 장관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해 나갔다.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