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 (6)
“나 박재필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박재필 고검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은 검찰 측이 아니라, 나였다.
현재 살인 청부 혐의로 의심을 받고 있는 내가 그 혐의에 대한 배후로 박재필을 지목하고 있었기에 그의 입장에서 결백하다면 증인으로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는 만큼, 미친개의 등장은 당연한 상황.
사실, 첫 번째 증인으로 등장한 홍인나는 그저 미끼일 뿐, 중요한 건 박재필이었다.
오늘이 그와의 싸움에서 승부처가 될 터.
반드시 그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유도해 내야만 한다.
성공하면 내가 살고, 실패하면 살아남더라도 미친개에게 계속 휘둘리다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가 될 테니까.
박재필 고검장이 증인 선서를 마치자, 판사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피고 측, 증인 신문하세요.”
이번에도 구은호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박재필 고검장이 들어올 때부터 얼굴이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변해있는 상태.
몸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 구은호 변호사는 박재필 고검장이 보기에 그저 한 입 거리도 되지 않는 조무래기처럼 보일 터.
그 증거로 미친개는 구은호 변호사를 신경 쓰기는커녕,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시종일관 나만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물론, 나 또한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저 눈싸움에 가깝지만, 일종의 신경전을 벌이는 느낌이랄까.
미친개의 도발은 피할 생각도 없었고, 피하고 싶지도 않다. 아니, 응해야만 했다.
오늘 박재필 고검장의 신경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되어야 했으니까.
구은호 변호사는 그저 조연. 아니, 엑스트라로 느끼게끔 만들어야 한다.
순간, 미친개가 나를 향해 미세하게 앞쪽으로 턱짓했다.
구은호 변호사가 아니라, 나보고 직접 나와 한판 붙어 보자는 제스처.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이번 시나리오에서 주인공은 내가 아닌, 구은호 변호사였으니까.
증인 신문에 나선 구은호 변호사는 침을 꿀꺽 삼키는 걸 모두에게 보여 줘 긴장한 티를 내며 질문지를 들어 올렸다.
“거, 검사장님…… 아니, 증인에게 묻겠습니다.”
구은호 변호사는 떨리는 것을 넘어서 말까지 더듬는 수준.
그제야 박재필 고검장은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네, 물어보세요.”
“증인은 부산에 있는 판타지아라는 업소에 가신 적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분은 앞에 나왔던 첫 번째 증인이 증언한 내용이기도 하고, 그가 내게 유일한 힌트로 준 장부에 나온 내용으로도 증명되는 것이었으니까.
“부산지검에 있을 때는 자주 갔고, 서울고검에 올라온 뒤로는 가끔 부산에 들릴 때에 한 번씩 갔습니다. 예전부터 애용하던 단골 술집이니까요.”
“그렇군요.”
구은호 변호사는 태연한 척 대답하고는 질문지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의 손은 후들후들 떨고 있는 상태.
그 결과, 다음 질문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그의 손은 미끄러지며 종이 뭉치를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죄, 죄송합니다.”
구은호 변호사는 홍당무가 된 얼굴로 판사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곧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 떨어진 종이 뭉치를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아뿔싸 하는 표정으로 책상에 올리고 있던 주먹을 꽉 쥐다 못해 홀로 ‘젠장’이라고 읊조렸다.
물론, 내 몸은 증인과 그를 신문하는 변호사를 향해 반쯤 돌아가 있는 상태.
뒤이어 답답함을 드러내듯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슬쩍 곁눈질 한 시야에는 박재필 고검장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한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쓸어 넘기자, 박재필 고검장이 나를 향해.
‘네가 직접 나오지 그랬어.’라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나는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하고 이 광경을 못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떨궜다.
그사이, 떨어뜨린 문서의 수습을 마친 구은호 변호사는 헛기침을 하며 일어섰다.
“아, 그러니까…… 어, 음…….”
한 번 실수한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입을 열었다.
“판타지아에 가긴 갔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박재필 고검장은 이제 구은호 변호사를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대답하면서도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암담한 내 반응이 궁금해 죽겠다는 눈치.
나는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참담하게 이마를 부여잡고 머리를 쥐어뜯길 반복했다.
그사이, 구은호 변호사가 다시금 질문했다.
“저희 변호인은…… 아니, 저희 의뢰인은 이번 살인 사건의 용의자 도현승 씨에게 살인 청부를 한 배후로 검사장님…… 아니, 고검장님을…… 하아.”
그는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한 번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증인을 지명했는데, 증인은 도현승에게 살인 청부를 한 적이 없다는 거죠?”
“그렇다니까요. 저는 애초에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 그러면 이번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용의자 도현승과 만난 적이 없으시다는 겁니까?”
“예, 없습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스!
차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까지는 참을 수가 없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표정을 감췄다.
됐다.
끝났어.
판 엎어졌다!
그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살인 청부 혐의를 부인하기 위한 한마디였지만, 도현승과 만난 적이 없다는 박재필 고검장의 대답은 그의 완벽 주의와 방심이 동시에 나타나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처음 구속될 때부터 초지일관 살인 청부의 배후로 박재필 고검장을 지목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구은호 변호사를 도현승에게 보내 계속해서 미친개가 살인 청부를 했다는 사실을 밝히도록 회유를 해왔던 상태.
심지어 이틀 전에도 구은호 변호사를 보내 마음을 돌리게 하려는 의도를 내비쳤을 정도.
이 정도 했으면, 내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살인 청부의 배후가 박재필 고검장인 걸 밝히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터.
얼마 전, 이미 한 번 그에게 블러핑을 했다가 걸린 이력까지 있는 만큼, 미친개는 내가 위기에 몰려 있다고 생각했을 터.
물론, 실제로도 그랬고.
그렇기에 내 시야가 넓지 않은 만큼 다른 작전을 펼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때 했던 블러핑의 실수가 이번에 도움이 된 것이지.
말 그대로 전화위복.
그 증거로 나는 미친개로부터 ‘도현승과 만난 적이 없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결국은 내가 원하는 그림이 그려진 거지.
도현승을 회유하려는 페이크에 가려져 있던 내 실제 목표는 박재필 고검장의 살인 청부 혐의를 밝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가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방금 그는 죄를 지었다.
한 수.
딱 한 수 앞을 내다본 게 나를 승리로 이끌어 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바로 좋아하는 티를 내서는 안 됐다.
그가 알아채는 순간, 이건 엎어질 수 있는 판이었으니까.
이건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구은호 변호사는 계속해서 열연을 펼쳤다.
“그, 그러면 판타지아에서 성매매나 유사성행위를 하신 적도 없는 겁니까앗?”
이번엔 말을 더듬는 것도 모자라 삑 사리까지 내 버렸다.
박재필 고검장은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피식 콧바람을 내뿜었다.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故강중식 부장검사에 대한 원한이나 원망 등의 감정을…….”
그 뒤로도 구은호 변호사는 전혀 의미가 없지만, 살인 청부에 관련된 내용들을 꼬치꼬치 캐묻는 듯한 질문을 해 댔고, 박재필 고검장은 미친개답게 아주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갔다.
뭐, 이건 애초에 그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도록 빠져나갈 여지를 만들어 준 질문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아주 의미가 없는 것처럼 공판이 마무리되었다.
“다음 주 최종 공판 이후, 판결하도록 하겠습니다.”
판사의 말을 듣고 난 뒤, 나는 패배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법정을 나왔다.
나는 한참을 걸어 나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곳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변호사님.”
내가 멀쩡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야 구은호 변호사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얼어붙은 표정을 풀고 조심스레 물었다.
“좀 괜찮았습니까?”
“아주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보탰다.
“변호사가 아니라, 연기자로 나가셨어도 될 것 같은데요?”
그제야 구은호 변호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이제 긴장이 풀렸는지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검사님이야 말로 연기가 장난 아니셨습니다. 열받은 표정 연기가 아주…… 크으.”
그는 엄지까지 치켜들며 말했다.
“검사님은 이제 축배 들 준비하시죠.”
“축배는 다 끝나고 들어도 늦지 않습니다.”
구은호 변호사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판은 기울어졌다고 봐도 되는 거겠죠?”
“그럼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보탰다.
“아직 박재필 본인은 모르겠지만요.”
며칠 뒤, 오늘 본인의 방심이 엄청난 참사를 불러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의 허망한 표정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터질 지경.
행복한 상상에 내 입술은 비틀어지다 못해 뒤틀렸다.
이미 이 게임은 내게 기울었다.
박재필이 모르는 사이에.
그것도 아주 가파르게.
***
“…라는 점을 고려하면 살인 용의자에게 청부를 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없고 살인 용의자와의 연관성 또한 확신할 수 없다. 주문(主文) 피고 최서준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됐어!
주먹을 불끈 쥐며 법정을 빠져나왔다.
판결이 나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무죄판결이 나는 건 당연하기에 걱정도 하지 않았던 터.
드디어 칼을 꺼내 들 시간이 다가왔다는 사실에 기쁨이 터져 나왔다.
구치소에 들렀다가 짐을 챙겨 나오자, 한지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 많았어.”
“지유, 너야 말로 기다리느라 힘들었잖아. 미안해.”
그녀와 가볍게 포옹을 하고는 곧장 차에 올라탔다.
한지유는 뒷좌석에서 검은 봉지를 하나 내밀었다.
“설마, 두부야?”
내 물음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치소에 있었어도 먹긴 먹어야지.”
봉지 안에는 큼지막한 두부 한 모가 들어 있었다.
“얼른 먹어.”
나는 크게 웃으며 맨 손으로 두부를 들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고마워.”
한지유는 말하지 않고 지긋이 날 바라보다가 내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이제 바로 움직여야 되지?”
“응.”
휴대폰 가져다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역시 척하면 착이라니까.
다시금 두부를 한입 더 베어 물고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기 전, 한지유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반격 시작인 거지?”
“당연하지. 복수해 줘야 하잖아?”
두부를 한 입 더 베어 물어 삼키자, 상대방과 통화가 연결되었다.
-네, 부장님! 출소하셨습니까?
윤설하의 활기찬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전해져 왔다.
“출소라니요, 구치소에서 나온 건 출소로 쳐 주지도 않습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말 근념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볍게 답하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제 제대로 움직여 보시죠.”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보탰다.
“박재필 고검장, 위증죄로 잡아 쳐 넣을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