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 (3)
2분.
단 2분 차이로 숨통을 틀 수 있었다.
기사가 올라간 시간이 영장 발부 시간보다 빠르다는 건,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영장 발부 이후에 기사가 올라갔다면, 변명하기 위해 언플을 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 기사가 먼저 올라갔다면 오히려 기사에 나온 것처럼 함정수사를 하다가 감찰부에서 오해를 샀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압수수색영장 자체를 박재필 고검장이 직접 청구하고 나서 긴급회의를 열었던지라, 우리 측에서는 영장 청구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핑계를 통해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할 터.
완벽한 방어는 아니더라도, 빠져나갈 여지는 충분히 만든 셈이다.
압수 수색이라는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고 간 뒷자리.
감찰부에서 홍석장 검사의 사무실을 쓸고 간 후에야 그가 뒤늦게 도착했다.
숨을 헉헉 대며 달려온 그는 특수부 사무실의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크게 사과부터 했다.
“죄송합니다!”
마치 바닥에 머리를 처박을 것처럼 조아렸지만, 이 상황은 사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도 홍석장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터.
워낙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에 특수부 소속 검사들과 수사관들은 전부 각자 사무실에 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는 상태.
이 넓은 공간에 홍석장 검사와 나, 단둘만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 다시금 열이 뻗쳐올랐다.
“후우.”
천천히. 그리고 깊게 한번 호흡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고 싶지만 참았다.
때리지 않아도 그의 잘못은 본인이 제일 잘 알 테니까.
나는 다른 검사들에게도 들리도록 외쳤다.
“다 나와.”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다들 문을 닫고도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는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문을 열고 나왔다.
“잘 들어.”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꼬리 자르기로 달아나거나 함정에 빠져 죽는 걸 외면하는 파렴치한 짓 따위는 하지 않아. 내 사람은 끝까지 책임지고 지킬 거야. 이건 내 검사직을 걸고 약속해.”
특수부에 소속된 모든 검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남의 똥 치우는 건 하지 않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남의 똥 치우는 일이야. 넘어진 사람에게 손을 뻗어 주긴 하지만, 쓰러진 사람을 강제로 일으켜 세워 주지는 않는다고.”
순식간에 실내가 숙연해졌다.
내가 하는 말은 일종의 경고였다.
홍석장 검사가 내사 대상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복잡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전후 사정이 어떻든 간에 그가 실제로 문제 될 만한 일을 행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내 사람들 만큼은 내가 목숨 걸고 지켜 주겠다는 든든한 선언과 함께, 본인의 부정부패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그건 직접 책임을 지라는 선언.
한번은 말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치다가 이번 기회를 통해서 특수부 검사들의 머릿속에 각인되게 만들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한다.
“처신들 똑바로 해. 다들 평검사만 하다가 옷 벗을 거 아니잖아?”
나는 내가 사용하는 부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무실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굴러온 돌한테 뺏길 거야?”
순간 몇몇 검사들의 눈이 번뜩이는 게 포착되었다.
자연스레 업무와 성취에 대한 자극까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특수부의 검사들이다.
다들 알아들었을 테지.
나는 홍석장 검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홍석장.”
“예, 부장님!”
그가 황급히 고개를 들며 똑바로 섰다.
“지금까지 특수부에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나선 거야. 다음이라는 기회는 없어.”
“알겠습니다.”
“다들 일 보고 홍석장 넌 따라 들어와.”
검사들을 뒤로하고 부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상석에 앉자마자 홍석장은 다시금 머리를 숙였다.
“부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앉아.”
“제가 죽을죄를…….”
그가 무릎을 꿇으려는 자세를 취하기에 아주 냉소적으로 말했다.
“앉으라고.”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홍석장은 움찔하며 엉거주춤 멈췄다가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나는 지체할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받았던 뇌물 장부 있어, 없어?”
내 물음에 그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그러한 장부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이 나왔다는 사실에 놀란 것일 터.
분명 쌍욕을 들어 먹을 각오를 하고 왔을 테니까.
그러나 더 이상 그에게 질타를 할 생각은 없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방금 문책했던 정도면 그도 충분히 반성할 터.
더 말해 봤자 내 입만 아플 테지.
홍석장 검사는 허리를 세우고 답했다.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기억만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 온 뒤로 몇 군데서나 받아먹었어?”
“BH건설까지 세 개입니다.”
“반년도 안 돼서 세 개라니. 많이도 처먹었네.”
“……죄송합니다.”
“지금 뇌물 관련한 비리에 관해 함정수사하고 있는 걸로 기사 내놨으니까, 받아먹은 세 곳에 관련해서 받아먹은 장부 만들고 다 뱉어.”
“알겠습니다.”
홍석장 검사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지만, 걱정되는 게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그 업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BH건설은 고검장이 함정수사 벌인 거라서 일단 보류해 두고 나머지 두 곳에는 적당히 집행유예 때려 줄 테니까 바지 사장 내세워서 준 걸로 이야기해. 안 그러면 돈 준 녀석들까지 전부 뇌물공여죄로 잡혀 들어가는데 지들이 어쩔 거야? 말 들어야지.”
“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어?”
그는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역시 부장님께서는…….”
“됐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설하 수사관이랑 조아라 실무관한테 이야기 듣고 제대로 처리해.”
“알겠습니다.”
뒤따라 일어난 그는 문 쪽으로 발을 돌리며 내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며 말했다.
“홍 검사.”
“예, 부장님.”
“우리 오래 가야지. 쉽게 죽으면 안 되잖아?”
“다음부터 정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또 비슷한 일이 생기는 순간엔 ‘다음’이 아니라 ‘처음’이 될 거야.”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때는 내 머릿속에서 홍석장이라는 석 자는 사라질 테니까.”
그가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사무실에 낮게 울렸다.
***
“기획 수사였던 거야?”
“아니, 기획도 아니야. 박승수 부장님은 물론이고 우리 애들 아무도 모르고 있었더라고.”
송현성 부부장검사는 헛웃음을 흘렸다.
“말 그대로 지 혼자 첩보 물어 온 거야. 소스 자체가 박재필 고검장 본인이더라고.”
예상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박재필 고검장이 깔아 놓은 판이었다.
“BH건설에도 바지 사장 내세우기로 한 거야?”
“아니, 그쪽은 이상하게도 실질적으로 뇌물을 주고 나서 받아먹은 이득이 없더라고.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거긴 우선 보류해 놨어.”
“잘했다. 내 생각엔 미친개가 BH건설이랑 연결점이 있는 것 같아.”
“그래?”
“얼핏 들었는데 박재필 고검장이 서울에서 잡은 돈줄이 BH건설이라는 소문도 있거든.”
그렇다면 이번 상황에 대해 설명이 된다.
박재필 고검장이 돈을 주도록 시켰고, 첩보를 입수한 척 움직인 것.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비리의 온상이라고 불리는 건설 쪽 기업인만큼, 검찰에서 마음먹고 흔들면 털 먼지가 수두룩하니, BH건설은 박재필 고검장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송현성은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말했다.
“그래도 다행히 압수한 자료에 특별한 건 없어서 네가 말한 대로 함정수사랑 엮으면 무혐의로 결론 날 것 같다.”
“네 덕분에 한숨 돌렸어.”
“애들 관리 잘해, 인마. 이번에는 어떻게든 내가 도와줘서 살았지만, 다음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 진짜 고맙다.”
그는 담배 연기를 뿜다가 혀를 찼다.
“그나저나 미친개랑 조만간 제대로 한판 붙겠네.”
“그래야지.”
박재필 고검장의 목표는 홍석장 검사를 쓰러뜨린 게 아니다.
그저 나를 치기 위한 초석을 깔아 둔 것뿐.
홍석장이 흔들리더라도 버텨 낼 것이기에 박재필 고검장은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 되었지만, 나를 향한 선전포고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박재필 고검장한테 따로 지시 사항은 없었어?”
“어, 첩보 나오고 영장 청구한 거 이후로는 따로 말이 없더라.”
지이잉.
그때,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처음 보는 번호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송현성이 슬쩍 물었다.
“누군데?”
“모르는 번호야.”
슬쩍 고개를 내밀어 내 휴대폰 화면을 본 송현성은 눈을 부라리고는 곧장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어 두 화면을 비교했다.
“왜, 아는 사람이야?”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거 미친개 번호인데?”
“뭐?”
“일단 받아 봐. 끊어지겠다.”
내 귀를 의심하며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네, 최서준입니다.”
-어, 최 부장. 나 박재필이야. 전화하는 건 처음이지?
이 인간이 대체 왜 전화를 했지?
“아, 네.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지금 어디야?
“잠깐 담배 피우러 나와 있습니다.”
-잘됐네. 바쁜 일 없으면 잠깐 고검 들어왔다가 가.
“예?”
그는 흥미로운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이야기할 게 있을 것 같은데?
***
“특수부에서 그렇게 함정수사를 하는 줄 몰랐지.”
그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는 BH건설에서 주길래 넙죽 받아먹은 줄 알았지.”
“아, 그건 아닙니다.”
“난 그것도 모르고 괜히 첩보 받아서 나섰네. 미안허이. 내가 우리끼리는 건들지 말자는 동맹을 나도 모르게 깨 버렸네.”
이제 와서 실수인 척 위장하는 그의 말에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가 함정을 판 거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고,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박재필 고검장이 충분히 파악했을 터.
그런데 겉으로는 이렇게 나를 생각하는 척하다니.
더 이상 참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그대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나 다를까, 내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본 박재필 고검장은 미간을 구겼다.
“왜 웃지?”
“검사장님, 이제 그만 둘 다 가면은 벗어던지도록 하죠.”
그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그놈의 허울뿐인 동맹 소리는 집어치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최 부장.”
박재필 고검장은 순식간에 정색하며 목소리를 깔았다.
“자네, 나 감당할 수 있겠어?”
“감당해야죠.”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검사장님이야 말로 저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치매가 오셔서 그렇게 총애하던 강중식 부장의 목숨 줄을 제가 끊었다는 걸 잊으신 겁니까?”
“강 부장…….”
그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강 부장은 자네가 죽였지.”
순간, 박재필의 표정에서 섬뜩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지이잉.
길게 울리는 전화.
발신인은 윤설하.
내가 고검장을 만나고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해 뒀기에 보통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하지 않을 터.
그런데 문자도 아니고 전화를 걸었다는 건 무언가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받아.”
박재필 고검장은 인심 쓰듯 말했다.
“여기서 받아도 돼. 급한 전화 아니야?”
뭔가 찜찜했지만, 그렇다고 대화가 끝나지 않았는데 나가서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일단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최서준입니다.”
-부, 부장님. 지금 통화 괜찮으십니까?
휴대폰 너머로 전해져 오는 윤설하의 당황한 목소리.
그녀가 이 정도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란 게 느껴졌다.
그러나 박재필 고검장에게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윤설하에겐 최대한 차분한 척 말했다.
“용건만 빠르게 말해요.”
-그게…… 방금 막 강중석 부장이 살해되었답니다.
“뭐라고요?”
깜짝 놀라 침착하려던 것도 잊고 소리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박재필 고검장이 입을 열었다.
“최 부장.”
순간, 돌아본 그는 히죽 웃고 있었다.
내가 놀랄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눈치.
바로 직감이 왔다.
이거, 이 자식이 꾸린 판이다.
홍석장 검사에 대한 공격이 끝이 아니었다는 건가?
나는 곧장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내렸다.
박재필 검사장은 크게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 날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것도 감당할 수 있겠어?”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