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 (2)
“아니, 잠깐만. 천천히 말해 봐. 홍석장 검사 부인이 돈을 받은 걸로 내사가 떨어진다고?”
-그렇다니까!
그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었다.
-일단 나 회의 중에 몰래 빠져나온 거라 다시 들어가 봐야 해. 일단 들어.
“그래.”
-BH건설에서 돈을 넘긴 것 같아. 홍석장 검사가 안 받으려고 해서 부인을 통한 건지, 일부러 홍 검사가 부인한테 주라고 했는진 모르겠는데 받은 건 확실한 것 같아. 그리고 고검장이 본인 말로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하는데, 뉘앙스 보니까 지가 판 함정이야.
“그래서 내사가 언젠데?”
-얼마 안 남았어. 빠르면 10분, 암만 늦어도 30분 안에 영장 떨어진대. 미친개가 직접 영장 청구했나 봐.
이런 미친!
이거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고검장이 판 다 깔아 놓고 긴급회의 소집한 거거든. 영장 나오면 바로 튀어 갈 분위기니까 빨리 준비해라.
송현성은 황급히 통화를 마무리했다.
-난 지금 다시 들어가 봐야 되니까 일단 끊는다. 지체하다간 진짜 빼도 박도 못해.
“알았어, 고맙다.”
그 말을 끝으로 바로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다.
한시가 급한 만큼,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는 상황.
우선,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조아라부터 불렀다.
“실무관님! 지금 홍석장 검사 어디 있습니까?”
전화를 받을 때부터 긴급사태라는 걸 눈치챈 조아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 홍 검사님 연차 내셨습니다.”
“이런 젠장.”
사실 여부를 파악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일단, 바로 홍 검사한테 전화 연결하면서 윤설하 수사관님 호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휴대폰과 내선 전화기를 동시에 들었다.
제자리에 멈춰 서서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고검장이 벌써 압수수색영장까지 청구하고 움직였다면,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 있는 것일 터.
게다가 직접 이 판을 설계해서 감찰부까지 대동했다면 제대로 된 증거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그걸 빌미 삼아 박살이 날 수도 있는 상황.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끌리게 되면, 감찰부가 들이닥쳐 특수부를 뒤엎어 버리고 갈 터.
“홍 검사님은 지금 전화 안 받으시고, 수사관님은…….”
벌컥.
“부르셨습니까?”
조아라의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윤설하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홍석장 이 자식은 이렇게 위급할 때 전화는 안 받고…… 이런 망할.
“실무관님은 계속 홍석장 검사한테 받을 때까지 전화하시고 받으면 바로 저한테 연결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수사관님은 홍석장 검사 포함해서 특수부와 BH건설이 관련되어 있는 자료 쫙 뽑아 오세요. 그 외에 건설 회사랑 관련된 것도 전부요.”
“예.”
윤설하는 대답 직후, 곧바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홍석장 검사를 공격했다는 건 사실상 나를 공격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가 내 라인의 사람인만큼, 이번 내사는 박재필 고검장이 나를 치기 위한 전초전을 벌이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김석원 장관을 치기 위해서 나를 흔들었다가 실패했으니, 제대로 나를 몰아내기 위해 내 라인부터 건드리는 상황.
무엇보다 홍석장 검사가 박재필과 같은 부산지검 출신이지만, 나에게 붙은 만큼 그에 대한 배신감이 적지 않을 것이기에 그가 첫 번째 표적으로 정해졌던 것일 터.
그러나 암만 이유가 있었다고 한들, 상대에게 자신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 만한 빌미를 줬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났다.
우리를 노리는 사냥개들이 즐비하다는 것은 알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는데 그 경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홍석장 검사를 탓할 시간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우선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질책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잠깐 동안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상황.
박재필 고검장의 공격에 대항할 수단을 정해야 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단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BH건설에서 돈을 받은 게 확실하다면,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일 터.
결정을 내리고,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WK일보의 박수형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수형 씨, 지금 기사 하나 바로 써 줄 수 있어요?”
-어떤 기사요?
박수형은 반사적으로 물었지만, 내 목소리에서 다급함을 느꼈는지 말을 바꿨다.
-아니, 일단 기사 내용부터 불러 주세요.
“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대기업 건설사의 뇌물 공여 혐의에 관해 함정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혀 주세요.”
-그 외에 추가적으로 들어갈 내용은 없고요?
“예. 5분 내로…… 아니, 지금 당장 올려 줄 수 있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휴대폰 너머로 엄청난 속도로 키보드를 타이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신으로 쓸 내용은 완성했어요. OK하시면 즉시 올릴 수 있습니다.
“네, 그러면 바로…….”
말을 하다가 문득 느껴지는 거부감에 말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생각.
만약 박재필 고검장이 이 상황까지 예상했다면?
내사와 관련된 건이기에 암만 고검장이라고 한들, 무조건적으로 감찰부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감찰부에 있는 박승수와 송현성이 내 사람이라는 걸 박재필 고검장이 모를 리 없을 터.
송현성이 내게 이 정보를 빼돌릴 걸 예상하고, 실제로는 영장을 청구했다는 게 거짓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한창 공신력이 올라가고 있는 박수형 기자는 오보로 인해 꽤나 힘이 빠질 테니까.
그게 오히려 그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다.
내 손으로 박수형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되는 셈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기사를 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젠장.
뭘 선택하든 리스크가 너무 큰걸.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너무 생각이 많은 건가?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박재필 고검장이다.
그의 생각보다 한 수만 늦더라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다른 타개법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 최선이란 없다.
결국 최악과 차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터.
그렇다면 당연히 최악을 피해야 한다.
최악은 다름 아닌, 이 모든 상황이 실제일 경우.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었는데 기사가 터지지 않는다면, 홍석장 검사는 빼도 박도 하지 못하고 비리 검사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내 힘으로 구원하기는 힘들 터.
그렇기에 기사를 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보험 하나는 들어 둘 필요가 있었다.
-서준 씨?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혹시 지금 올리는 기사, 이름 바꿔서 낼 수 있어요?”
-기자 이름 말씀하시는 거예요?
“예. 수형 씨 말고 후배라든지, 다른 기자로요.”
-네, 가능하긴 한데…… 혹시 공신력이 없는 내용이라서 그런 건가요?
“맞습니다.”
-그럴 때, 저희 측에서 사용하는 가상의 기자명이 있으니까 그걸 사용할게요.
“아, 다행입니다.”
가상의 기자명이라고 한들, 실제 사실과 다르다면 그 기사를 올린 박수형이 회사에서 욕을 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타격은 크지 않을 터.
일단 한숨 돌렸다.
“네. 그러면 지금 바로 올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몇 번의 마우스 클릭 소리가 들린 직후, 그의 목소리가 다시 전해져 왔다.
-13시 17분자로 기사 올라갔고요. 단신이라서 주요 포털 사이트에는 순차적으로 등록될 겁니다.
“예, 전부 업로드되고 나서 다시 연락해 주세요.”
-네. 문자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리되면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마무리하기 무섭게, 조아라 실무관이 내선 전화기를 들고 외쳤다.
“부장님, 지금 홍석장 검사 통화 연결됐습니다!”
“저한테 전화 돌려주시고, 실무관님은 BH건설 함정수사 관련한 문서 하나 만들어 주세요. 차장검사님께 올리지 않는 특수부 자체 비밀 문건으로요.”
“알겠습니다.”
조아라는 전화를 돌려주고는 컴퓨터로 시선을 돌려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짧게 두 번.
-보낸 이 : 송현성
-방금 영장 발부됐다. 5분 내로 사무실 도착하니까 준비하고 있어.
이렇게 문자로 전달됐을 정도면, 영장 발부 시각이 기사가 올라간 시간과 아슬아슬할 터.
만약 기사가 올라간 시간보다 영장 발부 시간이 먼저라면, 함정수사 기사고 뭐고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정확한 시간을 대조해 봐야 할 터.
실제로 문제가 생긴다면, 홍석장 검사가 홀로 책임지고 물러날 문제라지만, 특수부의 이름에 먹칠이 될 수 있는 상황으로 몰렸다는 것 자체에 화가 솟구쳤다.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심호흡한 게 무색하리만치,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욱하고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홍석장 이 개X끼야!”
조아라는 움찔했는지, 사무실에 울리던 그녀의 타이핑 소리가 잠깐 멈추었다.
그러나 한번 터져 나온 내 욕설은 멈출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이 X자식이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전화를 받은 홍석장은 어찌 된 상황인지 영문을 알 리 없을 테지만, 그는 다급히 꼬리를 내렸다.
“지금 당장 중앙지검으로 튀어 와!”
-부, 부장님. 저 지금 대전에 내려와 있어서…….
“홍 검사, 너 BH건설에서 얼마나 받아 처먹었어?”
-…….
순식간에 휴대폰 너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홍석장 검사는 나보다 나이가 많기에 지금까지 늘 존댓말만 해 왔지만, 이번만큼은 반말이 튀어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빨리 말 안 해?”
큰소리로 다그치자, 휴대폰 너머로 홍석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일억입니다.
“그 돈 썼어, 안 썼어?”
-죄송합니다!
분노가 끝까지 차오른 나머지, 이를 빠드득 갈며 말했다.
“지금 압수수색영장 발부됐으니까 너 지금 비행기를 타든, KTX를 타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1시간 내로 당장 중앙지검으로 튀어와.”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휴대폰으로 윤설하 수사관한테 전화 걸어서 통화 상태 유지하고.”
-예!
전화 너머로 후다닥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쉴 시간도 없이 다시금 박수형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서준 씨.
“단신 후속 보도 해 주세요. 특수부에서 일부러 함정 수사를 하기 위해 H검사가 B모 건설로부터 1억 원 수수했다는 내용으로 크게 내주십시오.”
-예. 이것도 가상 기자명으로 진행할까요?
“아니요. 이건 수형 씨 이름으로 올려 주세요. 그리고 이 뇌물 건들을 한 번에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하나씩 터뜨리지 않고 모아 두고 있었던 뉘앙스로요.”
-알겠습니다. 부수적인 내용은 제가 알아서 끼워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끊고, 바로 조아라에게 물었다.
“문서 작성됐습니까?”
“예. 양식은 만들었고 내용만 넣으면 됩니다.”
“윤 수사관!”
문 밖을 향해 크게 외치자, 윤설하가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네, 부장님.”
“BH건설 관련 자료 찾았어요?”
“1년 전에 한시티건설로 인해 수사해서 종결된 자료 하나 있습니다.”
“그걸로 엮고 실무관님 도와서 문서 작성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특수부의 입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감찰부에서 벌써 도착한 모양.
나는 밖으로 발을 옮기며 윤설하에게 말했다.
“제 도장 어디 있는지 알죠?”
“예. 처리해 놓겠습니다.”
“네. 최대한 시간 끌게요.”
곧장 말을 끝내고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입구에 서 있는 송현성을 비롯한 검사와 수사관 들을 발견했다.
송현성은 이미 절차에 따라 입구에서 특수부 검사들에게 영장 내용을 고지하고 있었다.
“……해서 현재 시간부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부 홍석장 검사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 수색을 실시하겠습니다.”
뒤쪽을 둘러보니, 다행히 허형진 차장검사나 검사장까지는 오지 않은 터라, 조금 더 시간은 끌 수 있을 터.
다만, 박승수가 없는 걸 보면 가택 수색영장까지 발부되어 그는 그쪽으로 향한 모양.
아주 제대로 홍석장 검사를 족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감찰부 사람들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며 감찰부 직원들을 멈춰 세웠다.
“잠깐 영장 확인 좀 합시다.”
송현성 부부장검사는 순순히 감찰부 검사들과 수사관들을 멈춰 세웠고 그는 내게 압수수색영장을 확인시켜 주었다.
제일 먼저 체크한 건 영장의 집행 시간.
-압수 수색 집행 일시 : 2021.5.11. 13시 19분
박수형 기자를 통해 기사가 올라간 시간은 13시 17분.
다행히 2분 빨랐다.
“……후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일단 최악의 상황은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