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 (1)
미친개.
확실하지는 않지만, 미래 문자에서 말했던 미친개가 박재필 고검장을 지칭하는 것일 터.
지금까지 암만 찾아도 누군가를 보고 확실하게 미친개라고 지칭한 인물은 없었으니까.
다만, 확인 과정은 필요했다.
“근데 왜 하필 미친개야?”
송현성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설명했다.
“고검장 하는 짓이 완전 광견병 걸린 것 같아서 붙인 별명이야. 한 번은 부산고검에서 근무하던 동기한테 들었는데, 박재필 고검장이 부산지검에 있을 때 자기 부하가 큰 사고를 치고 왔더니, 감싸 주기는커녕 열받는다고 직접 나서서 감방에 보냈다더라.”
“그게 무슨 소리야?”
“보통 부하 직원도 아니고 4년 가까이 충성했던 녀석인데, 자기 얼굴에 똥칠했다는 이유로 피도 눈물도 없이 쫓아냈다고 하던데?”
듣고 나서도 내 귀를 의심했다.
암만 사고를 쳤다고 한들, 자기 라인의 사람을. 그것도 4년 가까이 충성했던 이를 포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검사라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본인이 나서서 감방에 보낸다는 건 정말 제 분에 못 이겨 쫓아낸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순간, 그가 김석원에게 밀려 부산지검으로 갔던 사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박재필이 김석원 장관님이랑 차장검사 경쟁 구도에서 밀려났던 이유가 비리 때문이었지?”
“어. 오른팔이었던 녀석이 건설 회사에서 명품 시계를 하나 받았을 거야.”
그러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자신의 비리도 아니고, 부하 직원의 비리로 인해 경쟁 구도에서 밀렸던 전적이 있는 만큼, 민감할 테니까.
그렇다고 한들, 보통의 사고방식과는 크게 다르지만.
“비리나 치부에 관해서는 거의 병적으로 집착하는 수준인 것 같네.”
“그래서 강중식 부장 건이 감찰부로 넘어온 것 때문에 와서 그 지랄을 하고 갔던 거지.”
“아, 그럴 수 있겠다.”
송현성은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더라도 자기 부하를 보내는 건 영…….”
그의 말을 듣자, 문득 머릿속에 불안한 생각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미래 문자에서 나왔던 청부업자.
설마, 그게…….
느낌이 좋지 않다.
“현성아.”
“왜?”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재필이 정말 열이 받아서 강중식을 죽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미 죽었는데, 뭘 죽여?”
“아니, 검사로서의 생명을 끊는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삶에서 목숨을 끊는 죽음 말이야.”
송현성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부정했다.
“야, 암만 강중식 부장이 무너졌다고 해도 너를 핀치까지 몰아넣었던 인간이야. 네 앞에서 말하긴 그렇지만, 졌지만 잘 싸운 거지. 게다가 이미 완벽하게 무너졌는데 굳이 죽이겠어?”
“그렇겠지?”
내가 너무 생각이 많은 건가.
송현성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미친개라는 걸 감안해 봤는데, 그래도 아닌 것 같아.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어?”
“하긴. 굳이 죽인다고 해서 그 인간이 얻을 이득이라는 게 없으니까.”
머릿속으로는 너무 멀리 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만약에 강 부장 그 인간 죽인다고 해도 우리한테 피해 올 게 없잖아.”
피해 올 건 없다.
암만 생각해 봐도 그와의 작은 연결 고리마저 모두 털어 냈으니까.
강중식 부장은 내 뒤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고 있기에 그가 목숨을 잃으면 내게 이득이 되었으면 됐지, 손해는 아닐 테니까.
지이잉.
휴대폰에 울리는 진동을 확인한 송현성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야, 나 위에서 호출 온다. 올라가 볼게.”
“그래, 들어가라.”
고검으로 돌아가는 송현성의 뒷모습을 보고 다시금 담뱃불을 붙였다.
희뿌연 담배 연기를 마시며 천천히 생각했다.
미래 문자에서 본 나는 청부업자로 인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강중식의 죽음으로 그럴 만한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득을 봤으면 득을 봤지, 위험해질 방법이 없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불안한 심정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바로 강중식 부장이 수감되어 있는 서울동부구치소로 전화를 걸었다.
-예, 검사님.
“강중식 부장 안에 잘 있죠?”
-네. 매일같이 변호사 접견하긴 하는데, 특이한 사항은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누가 해코지하지 않도록 잘 지켜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제대로 재판받고 감방에서 푹 썩을 수 있도록 잘 넘길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독방을 쓰는 것도 모자라 24시간 내내 감시 인력이 붙어 있으니 관계자 외에는 접근도 불가능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로 신신당부를 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일단 그가 구치소에 있는 동안만큼은 특별한 문제가 없을 터.
미래 문자의 보낸 이는 33.
올해만 잘 넘기면 된다.
딱 올해만.
***
“청부업자 쓴 적은 없다는 거죠?”
“예. 부산지검에 있는 내내 고검장이 청부업자를 썼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어 봤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정현우와 홍석장 검사는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미래 문자에서 ‘부산에 갔던 사람’이라는 말 때문에 부산지검에 있었던 경력이 있는 두 검사를 모두 불러 박재필과 청부업자의 연관성에 대해 물어봤지만, 특별한 성과는 없었다.
송현성의 말 외에는 박재필 고검장이 미친개라는 근거가 전혀 없는 상황.
그렇기에 아직까지 확신은 할 수 없지만, 미친개에 대한 다른 단서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그가 미친개라는 가정을 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건 일단 넘어가고…… 홍 검사님, 박재필 고검장이 부산지검에서 부하 직원을 날린 적이 있다고 하던데, 자세히 좀 알려 주실래요?”
홍석장 검사는 어떤 이야기인지 바로 알아차리고 설명했다.
“박재필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흠이 될 것 같은 일을 벌였다면, 본인의 라인이건 말건 상관없이 전부 옷을 벗겼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약점이나 치부에 관해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부산지검에도 소문이 났던 터고요.”
다른 건 몰라도 일단 그가 비리나 치부에 관해서는 꽤나 예민하게 군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박재필이 미친개가 맞는지 여부를 떠나서 주변에 많은 사람이 알 만큼 구린내를 없애는 일에 집착한다면, 그를 끌어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뒤를 캐는 걸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일 터.
그의 약점을 찾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여느 검사를 쳐 낼 때와 달리 그를 몰아내기까지는 꽤나 애를 먹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고검장에 관해서는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정 검사님은 추가로 보고할 사항 있으십니까?”
정현우 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수첩을 펼치며 말했다.
“아, 5월에 허형진 검사가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올라온다고 합니다.”
“확실한 정보입니까?”
“예. 부산지검에 있는 동기 녀석에게 들었습니다. 허형진 본인이 직접 말했다고 하더군요.”
내가 홍석장 검사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는 말하지 않아도 내 뜻을 알아채고 바로 허형진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허형진이라는 놈은 부산지검에서 박재필의 왼팔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왼팔이라면…….”
“예. 부산지검에서 박재필의 오른팔은 강중식, 왼팔은 허형진이었다고 보면 되는데, 아무래도 강중식이 물러나면서 서울에서의 힘을 재정비하기 위해 그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지금 허형진은 부산지검에서 차장검사로 있는 거죠?”
“그렇습니다.”
“한번 자세한 프로필 뽑아서 가져와 보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팔걸이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서 일들 보시고 특별한 사항 있으면 보고해 주세요.”
“예.”
정현우 검사는 곧장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홍석장 검사는 나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내게 다가왔다.
“부장님.”
“네, 홍 검사님.”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한 가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의 얼굴엔 말을 할까, 말까 고심한 티가 역력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제야 홍석장 검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박재필 고검장이 부장님한테 집착하는 이유가 김석원 장관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갑자기 나온 김석원이라는 이름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구겨졌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박재필 고검장이 김석원 장관님께 밀려서 부산지검에 오며 스스로 열등감 같은 걸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산지검에 있을 때 선배님들로부터 그에 관해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그 탓에 김석원 장관과 굉장히 가까우셨던 부장님을 공격하려는 게 아닐까 합니다.”
꽤나 그럴 듯한 추론이었다.
듣자마자 머릿속에 지금까지 걸어왔던 행보에 대한 퍼즐이 끼워 맞춰지기 시작했다.
박재필 고검장의 성격상, 김석원에게 한 번 밀려났던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을 게 분명할 터.
독사가 날 공격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인 시기 또한 김석원이 법무부장관으로 법조계 복귀를 확정한 직후였으니까.
그에게 강중식이 있다면, 김석원에게 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먼저 가까운 측근인 나부터 쳐 내고 최종적으로 김석원까지 노린다는 속내였다고 생각해도 착각이 아니겠지.
내가 독사 때문에 위기에 몰렸을 때, 김석원 장관이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걸 생각하면 박재필 고검장은 더욱더 나를 몰아내려고 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박재필 고검장이 김석원에게 손을 뻗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도와줬던 사실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나를 끌어 줄 것을 알기에, 그는 굳건하게 장관직을 지켜야 했으니까.
그건 그렇고 다른 사람도 아닌, 홍석장 검사가 이런 의견을 내게 말할 정도라면, 그의 충성심은 더 의심할 것도 없다.
암만 부산지검 출신이라고 한들, 나 또한 완전히 마음을 열어도 될 터.
이제는 그도 나의 라인으로 확실히 데려올 시간이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네요.”
“예.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홍석장 검사는 나름대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느꼈는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허형진 차장 관련한 자료 나오면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쉬십시오.”
그는 고개를 꾸벅이고 사무실 문을 향해 섰다.
문고리를 잡던 홍석장 검사를 불러 돌려세웠다.
“아, 홍 검사님.”
“예?”
“서부지검에 작별 인사 해 두세요.”
눈이 휘둥그레진 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 달에 특수부로 넘어오실 겁니다. 미리 준비하고 계세요.”
그는 눈을 번뜩이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제 사람은 제가 챙겨야죠.”
“부장님께 평생토록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사무실에 낮게 울렸다.
***
5월.
홍석장 검사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는 게 증명되었다.
부산지검 출신이자 박재필 고검장의 왼팔인 허형진 차장검사는 서울고검에 올라오기 무섭게 눈에 띄게 박승수를 표적으로 삼고 감찰부를 쪼아 대기 시작했으니까.
그에 반해 아직까지 박재필 고검장이 나를 저격하는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하나, 안심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박재필 고검장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치고 들어올 게 뻔하기에 방심해서는 안 될 테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송현성.
갑자기 울려 대는 전화벨에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최서준입니다.”
-야, 서준아. 큰일 났다.
휴대폰 너머에서 송현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무슨 일인데?”
-특수부에 내사 떨어질 것 같아.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부장검사에 오른 뒤로 특수부에 내사가 벌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방금 미친개가 갑자기 긴급회의 열어서 들어갔는데, 얼마 전에 서부지검에서 너희 부서로 옮겨 온 검사 있잖아?
“홍석장 검사?”
-어, 맞아. 그 사람 부인이 돈을 받은 것 같더라고.
송현성은 목소리를 낮추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미친개 말로는 우연히 비리 건수 하나 물어 온 거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자식이 함정을 판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