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29화 (129/341)

백년해로 (1)

며칠간 특수부 직원들을 통해 미친개에 대해 수소문해 봤지만, 그렇다 할 만한 사람이 나오진 않았다.

부산지검에서 올라온 홍석장 검사도 마찬가지.

이따금씩 과거에 미친개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검사나 수사관이 수면 위로 드러나긴 했지만, 전부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이미 시간이 지나 퇴색되어 버린 인물들.

당장 찾아낼 수는 없기에 천천히 탐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고검장이 진심이든, 가짜건 간에 겉으로나마 평화협정을 했다면, 당분간은 나와 충돌을 하지 않을 생각일 테니까.

게다가 불과 며칠 전에 그 골치 아팠던 독사를 마무리 지었던 터라, 누군가가 덤벼들 생각은 하지 못할 터.

또한, 워낙 마음고생이 심했던지라, 내게도 잠깐 동안 힐링할 휴식 시간은 필요했다.

그 힐링으로는 한지유와 결판을 내는 것이 제일 적절할 것 같았다.

그녀가 원하는 결혼식 날자는 칠석인 음력 7월 7일. 양력으로는 8월 14일로 이제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결혼식이라는 게 두 사람의 마음만 맞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양가가 함께 치르는 일인 만큼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그녀에게 우리 집에 들어와 같이 살자며 말하고 싶었지만, 생애 딱 한 번 있는 프러포즈인데 그렇게 평범하게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는 공부만, 그 이후에는 사법고시로 인해 늘 일에만 치여 살던 나였기에 이런 쪽에는 영 젬병이었다.

며칠 내내 인터넷을 통해 생각해 보았으나, 결국 답을 찾지 못해 이에 대해 제일 잘 알 것 같은 사람을 찾아 서울 구치소로 향했다.

“그래서 네가 어떻게 프러포즈할지 물어보려고 왔다고?”

접견장에 앉아 있던 신용호는 듣자마자 웃음을 빵 터뜨렸다.

“야, 이 자식아. 갑자기 검사가 접견 왔다길래 무슨 문제 생긴 줄 알고 식겁했더니, 프러포즈는 무슨…….”

그는 연신 헛웃음을 쳤다.

나는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야, 그래도 너는 한 번 갔다 온 놈이기도 하고, 내 주변에서 너만큼 연애에 대해 잘 아는 놈이 없어.”

“내 전 부인이 외국인 영어 강사랑 바람나서 이혼했다는 이야기는 누구보다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냐?”

“그래서 내가 너 주옥그룹 법무팀 다닐 때 소개해 준 여자만 한 트럭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는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남자만 득실득실한 구치소에 있는 놈한테 프러포즈 어떻게 할지 물어보는 건, 군대 간 친구한테 여자 친구 자랑하면서 약 올리는 거 아니냐?”

신용호는 뱀눈을 뜨며 말했다.

“이거 놀리러 온 것 같은데?”

“아, 무슨 소리야. 빨리 아이디어나 말해 봐 봐.”

“하하하, 너 많이 급하긴 급한가 보다?”

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천하의 최서준이 나한테 여자 문제로 상담할 줄은 몰랐다.”

“아, 그러면 나 접견 종료하고 간다? 너 수용실로 돌아가면 다시 그 남자 많은 곳에서 퀴퀴하게 있어야 된다고.”

“알았다, 알았어.”

그는 큭큭 새어 나오던 웃음기를 감추며 내 팔을 잡아 앉혔다.

“그래서 내가 뭘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는데?”

“딴 거 말고, 네가 어떻게 청혼했는지 들려줘 봐.”

“솔직히 나는 별거 없는데.”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같이 유럽 여행 갔다가 프랑스 파리에 갔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고. 그래서 에펠탑 앞에서 결혼하자고 했지.”

“그게 별거 없는 거냐?”

“여행 간 김에 한 거야.”

“근데 반지를 들고 가?”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지. 청혼을 결심한 남자는 늘 반지 들고 다니는 게 필수적인 거라고.”

“살다 살다 그런 헛소리는 처음 듣는다.”

신용호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이 문제는 나보다 네 수사관님이나 아라 씨한테 상담하는 게 낫지 않겠냐? 여성분들이라 오히려 더 잘 알 텐데.”

그는 눈썹을 번뜩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아라 씨가 연애에 대해서는 완전 박사거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잊었냐? 아라 씨 원래 내 실무관이었잖아.”

“아, 맞네.”

“한번은 야근한다길래 내가 출장 갔다가 미안해서 초밥을 사 들고 갔는데 사무실에서…….”

“아이, 됐어. 이야기하지 마.”

신용호는 실실 웃으며 내 팔을 툭툭 쳤다.

“둘한테 물어보라니까. 진짜 잘 도와주실걸?”

“됐어. 부끄럽잖아. 어떻게 물어봐.”

“거 물어볼 수도 있는 거지. 왜 무슨 이유라도 있어?”

“아니,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분명히…….”

***

“와하하하하하핫!”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윤설하와 조아라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놀릴 것 같아서 이 두 명한테 물어보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아니, 안 웃는다면서요…….”

“아, 죄송해요.”

조아라는 미안한 듯이 두 손을 모았고, 윤설하는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변명했다.

“이런 질문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맞아, 맞아.”

“늘 그렇게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확고하던 분이 연애로 쩔쩔매시는 걸 보니까 저도 모르게 그만…… 하핫.”

괜히 민망함에 볼이 붉어졌다.

“실컷 웃었으니까 제대로 도와주세요.”

“그럼요.”

윤설하는 활짝 웃더니 이내 진지하게 물었다.

“어떤 프러포즈를 하고 싶으신데요?”

지금까지 깍듯하게 내 말을 이행하던 윤설하였지만, 오늘만큼은 상하가 역전된 것처럼 전문가의 포스를 풍겼다.

언제 가져왔는지, 사각 뿔테 안경까지 쓰고 있었으니까.

“일단 부장님이 원하시는 이미지를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저는 무조건 기억에 남는 걸로 하고 싶어요. 생애 한 번밖에 하지 않는 프러포즈인 만큼 평생 두고두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그때, 조아라가 웃음기를 가득 머금고 끼어들었다.

“혹시 한 번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실무관님!”

“하하하, 농담이에요. 계속 말씀하세요.”

“그게 다입니다. 제 친구한테 들어 보니까 파리 에펠탑에서 반지를 끼워 줬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 정도로 화려하게 하고 싶어요. 돈은 전혀 고려치 않아도 됩니다.”

“와아, 로맨틱가이. 돈은 생각지도 않으시네.”

“그럼요.”

슬쩍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상대가 한지유인걸요.”

조아라와 이런 식으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대화를 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윤설하는 홀로 안경을 올려 쓰며 전문가의 포스를 풍겼다.

“제 생각에 한지유 씨에게는 화려한 프러포즈보다 오히려 검소한 게 낫지 않을까요?”

“검소한 거요?”

“네. 제가 알기로는 한지유 씨의 배우 경력이 10년은 넘는데, 그동안 로맨틱 영화, 드라마는 엄청나게 많이 찍어 봤을 거 아니에요?”

“아!”

나는 이마를 탁 치며 깨달음을 얻었다.

한지유는 로맨틱 코미디부터 시작해서 격정 멜로, 재벌 집에 며느리로 들어가는 막장 드라마까지 별의별 작품을 다 소화했다.

그 많은 작품을 찍으면서 온갖 화려하고 로맨틱한 프러포즈와 고백은 다 받아 봤을 테지.

내가 대충 한지유의 작품을 감상하며 본 것만 해도 기본적으로 트렁크에 풍선을 넣어서 서프라이즈를 하는 걸 시작으로, 유람선을 통째로 빌려서 불꽃놀이를 하거나, 발리의 에메랄드빛으로 부서지는 바다 앞에서 고백하는 것도 보았다. 심지어는 재벌이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리며 프러포즈하는 것까지 있었을 정도. 청혼 가짓수만 해도 손가락으로 세기 모자란 수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청혼은 이미 그녀에게 무뎌진 지 오래일 터.

실제와 작품의 촬영상 받은 프러포즈가 다르긴 할 테지만, 그렇더라도 대부분 겪어 본 상황이기에 웬만하면 크게 감동받기가 힘들다는 사실.

“오히려 결혼 사실을 밝힌 배우들끼리 프러포즈했다는 걸 들어 보면 소박한 게 많은 것 같더라고요.”

윤설하의 말에 순식간에 설득되었다.

“그러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는 게 낫다는 거죠?”

“네. 평범하되, 무난하지 않게. 소박하되, 소소하지 않게.”

“그게 더 어려운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말했다.

“그러면 아이스크림 먹다가 거기서 반지를…….”

“어우, 최악.”

“No!”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두 여자가 질색을 하며 거부했다.

“진짜 그거 상상한 것만으로도 죄악이에요. 부장님만 아니었으면 회초리 들었다.”

“그 정도예요?”

“네.”

윤설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진짜로.”

“……알겠어요.”

조아라 실무관은 손에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쳤다.

“제가 얼마 전에 TV에서 봤는데, 이런 고백이 있더라고요.”

“어떤 건데요?”

“그러니까 펜션을 빌려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그거 좋은데요?”

오늘만큼은 깐깐하던 윤설하도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제가 말한 조건은 다 충족하네요. 암만 한지유 씨라도 넘어오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좋네요. TV에 나온 거니까 그대로 하면 지유도 눈치챌 테니, 적당히 변형해서 청혼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마쳤다고 생각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윤설하는 고개를 저으며 내 어깨를 잡아 앉혔다.

“어떻게 응용할지까지 여기서 결정하고 가세요.”

“예?”

“부장님 생각대로 하시면 이게 어떤 식으로 변형될지 상상이 안 되니까요.”

“아, 이건 자존심이 상하는데…….”

근데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거부할 수 없었다.

사실, 나도 내가 불안했으니까.

“그러니까 일단 저는 펜션 대신 별장으로 갈 겁니다. 그래서…….”

***

“한 달도 안 지났는데 다시 오니까 또 좋네.”

한지유는 손을 높이 뻗으며 시원한 제주도의 바람을 만끽했다.

저번 달, 독사에 의해 위기에 몰렸을 때 왔던 제주도에 다시 왔다.

그때는 도피하듯이 별장에 숨어 있기만 했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스포츠카를 타고 시원하게 제주도를 돌며 드라이브를 만끽하고 있는 상태.

“이틀 전에 영화 마지막 촬영 끝나서 진짜 힐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역시 오빠밖에 없다니까.”

내 계획을 모르는 한지유는 마냥 신나는 표정으로 행복해했다.

“하하, 다행이네.”

평소처럼 웃으려고 하지만, 왠지 모르게 경직되는 느낌.

한지유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오빠,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안 좋아?”

“아니? 완전 괜찮은데.”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뭔가 막 긴장한 것처럼 보여서.”

귀신이다, 귀신.

준비는 완벽히 끝마쳤던 터라 제주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준비를 하다 보니, 독사를 잡을 때보다 오히려 더 떨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대한민국의 그 많은 남편들이 이러한 떨림과 부담감을 이기고 프러포즈해서 결혼했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스레 존경심이 들 정도다.

“아, 근데 진짜 바람 시원하다.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있나?”

“네가 영화 촬영 끝나서 홀가분해서 그런 건가 보다.”

“그것도 맞는 것 같아.”

한지유는 시원하게 소리까지 질렀다.

“너무 좋다!”

한참 동안의 드라이브를 마치고, 별장에 도착한 뒤에는 내가 저녁 요리를 시작했다.

“오, 진짜 오빠가 해 주는 거야?”

“당연하지. 오늘은 내가 책임진다니까.”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하고는 그녀를 소파로 보냈다.

“얼른 가서 씻고 와.”

“네!”

그녀는 해맑게 대답하고는 욕실로 향했고, 나는 인터넷으로 요리법을 찾아보며 몇 번이나 연습했던 퓨전 요리를 몇 개 준비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나는 그녀를 불렀다.

“지유야, 아직이야? 밥 다 차렸는데.”

젖은 머리를 말리던 그녀는 드라이기를 끄고는 잡티 없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응, 지금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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