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5)
“어이, 김 순경. 오랜만이야.”
“선배님!”
김호원 순경은 지구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정형준 경감을 반겼다.
“선배님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그냥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들렀어.”
“하하하, 역시 가까우니까 좋네요.”
오랜만에 정형준 경감을 본 김호원 순경은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커피 한 잔 드시겠어요?”
“좋지.”
뜨거운 믹스 커피 한잔을 타고 테이블에 앉아 두런두런 근황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은 할 만하고?”
“어휴, 죽겠어요. 이제 3월 초라서 그런지 개학했잖아요. 고등학생 관련 신고가 엄청나게 들어와요.”
“아, 그래?”
“예. 애들이 무슨 담배를 그렇게 피우는지…… 어휴, 그것뿐만이 아니라, 1, 2월에 이사했다가 층간 소음을 참던 사람들이 이제 슬슬 폭발할 시기라서 관련 신고나 민원도 엄청 들어오고요.”
“김 순경이 고생이 많네.”
“에이, 그래도 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다 선배님 덕분입니다.”
“어휴, 내가 무슨.”
“정말입니다. 제가 누구 때문에 경찰이 되었는데요.”
“하하하, 그러면…….”
오후 8시부터 한창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오후 9시 정도가 되었을까.
“선배님, 이 시간까지 계셔도 되는 겁니까? 형수님께서…….”
“아, 괜찮아. 나 오늘 당직으로 알고 있을 거야.”
그러자, 지구대장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러면 이따가 정 반장은 나랑 나가서 슬쩍 한잔 딱…….”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김호원 순경이 후다닥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예, 역삼지구대입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받아 적더니 전화를 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집에서 폭행 사건 일어났다고 신고 들어왔습니다.”
지구대장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한잔하려고 했는데 글렀네. 술집에서 폭행이라니. 내일 출근도 해야 되는데 다들 적당히 마시지.”
“그러게요.”
정형준 경감은 맞장구를 치며 슬쩍 물었다.
“김 순경, 그런데 어디서 신고 들어온 거야?”
“요 앞에 있는 모히미트랍니다. 고깃집인데 술병 깨고 난리 났나 봐요.”
“그래?”
정형준 경감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위험한 거 아니야?”
“예. 그래서 지금 바로 가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선배님은 즐겁게 노시다가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아니야. 그런 위험한 장소에 김 순경을 혼자 보낼 순 없지.”
“네?”
“같이 가지. 온 김에 거기 들렀다가 퇴근하지, 뭐. 차도 그 근처 주차장에 있으니까.”
“에이, 피곤하실 텐데 굳이 그러실 것까지야…….”
“아니야. 김 순경 일하는 것도 한번 보고 싶어서.”
지구대장은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 양보할 시간에 얼른 출동해. 둘 다 바로 패트롤카 타고 가면 2분도 안 걸려.”
“알겠습니다.”
***
“워워, 그래서 저쪽에서 먼저 젓가락을 날렸다는 거죠?”
김호원 순경은 절차에 따라 상황 파악을 했다.
간단한 현장 조사를 마치고 그는 덩치의 사내들에게 먼저 말했다.
“일단 지구대로 가셔서 조서 쓰시죠. 임의동행하실 수 있으시죠?”
“예.”
“정장 입으신 두 분도 임의동행하실 거죠?”
덩치들과 달리, 강중식 부장은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임의동행이면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심드렁한 그의 태도에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정형준 경감이 기다렸다는 듯이 치고 들어왔다.
“들어 보니까 검찰이라고 하시던데, 아니신가요?”
“맞긴 한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러면 지금 가서 깔끔하게 처리하고 가는 게 좋으실 거라는 건 잘 알지 않으신가요?”
순간, 강중식 부장과 정형준 경감의 눈빛이 찌릿 부딪쳤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홍석장 검사가 소리쳤다.
“거기 형사님, 소속이 어떻게 되십니까?”
소속을 물어보자, 정형준 경감은 일부러 깨갱한 척하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 태도에 강중식 부장은 홍석장 검사에게 잘했다는 칭찬의 눈빛을 보냈다.
정형준 경감은 일부러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척하며 말했다.
“그러면 소지품 검사라도 하시죠. 일단 쌍방 폭행이긴 하지만, 일방적인 폭행인지, 아니면 정말 위해를 가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건지 모르니까요.”
그는 천연덕스럽게 이유를 설명했다.
“요즘 이렇게 정리된 것처럼 이야기해 놓고 저희가 떠나면, 갑자기 돌변해서 보복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저희도 뒤탈이 없도록 처리해야 하거든요.”
그 말에 홍석장 검사는 심히 고민하는 척하다가 목소리를 낮춰 강중식에게 말했다.
“부장님, 더 끌면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 소지품 검사만 대충 응하고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경찰 놈들이 어떻게든 자기들 자존심이라도 세워 보려는 것 같으니까…….”
강중식 부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덩치의 사내들은 지구대로 임의동행을 하기로 했기에 소지품 검사에서 제외되었고, 곧장 홍석장 검사는 주머니에 있던 모든 걸 꺼내 놓았다.
예정대로 그는 큰 문제없이 지나갔고, 그 다음은 문제의 강중식 부장.
그는 주머니에서 지갑과 휴대폰, 손수건을 주섬주섬 꺼내 올려놓았다.
정형준 경감은 귀신같이 태클을 걸었다.
“거기 바지 주머니는 확인 안 합니까?”
“아니, 바지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안 넣고 다니니까…….”
강중식 부장은 미간을 구기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비어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이게 뭐야?”
그가 주머니에서 몇 겹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정형준 경감은 귀신같이 캐치하고 다가가 그걸 받아 내 펼쳤다.
이내 빛을 받으며 드러난 하얀색의 가루.
“이건 뭔데 내 주머니에 있지?”
아직까지 강중식 부장은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형준 경감은 새끼손가락을 들어 가루를 살짝 찍어 혀에 대 보았다.
그와 동시에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
“퉤!”
그는 혀에 묻은 하얀 가루를 모조리 뱉어 내고는 강중식 부장을 향해 당당하게 소리쳤다.
“이거 마약이잖아?”
“뭐?”
생뚱맞은 소리에 강중식 부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난데없이 마약은 무슨…….”
그러나 정형준 경감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김호원 순경을 불렀다.
“김 순경, 이거 임의동행이 아니라, 긴급체포를 해야 될 것 같은데?”
몇 가지 이야기를 하나 싶더니, 이내 정형준 경감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강중식 부장에게 미란다원칙을 고지했다.
“당신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영장 없이 긴급체포합니다. 변호인 선임 및 체포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으며, 변명할 말씀이 있으면 지금 바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당신이 무슨 마약 감별사라도 돼? 게다가 나 부장검사야. 일 끝나고 나와서 술 한잔 마시는데 내 주머니에서 마약이 나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변명 끝나셨죠?”
정형준 경감은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마약소지 혐의로 검사님을 긴급체포 하겠습니다.”
강중식 부장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정형준 경감은 빠르게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상황이야?”
“제가 마약조사반이라서 잘 압니다. 100퍼센트 필로폰이에요.”
“이거 내 거 아니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공안부의 부장검사 강중식이라고!”
“예. 그건 서에 가서 조서 꾸밀 때 말씀하시고요. 국회의원도 현행범이면 체포 가능합니다.”
강중식 부장은 벙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얼떨결에 긴급체포까지 당한 강중식 부장은 당황한 기운을 숨기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홍석장 검사를 향해 말했다.
“홍 검사, 자네가 뭐라고 이야기라도 해 봐. 내가 마약이라니 말이나 돼?”
“아이고, 부장님.”
그 순간, 홍석장 검사는 지금까지의 아부하던 표정을 순식간에 지워 내고는 그를 향해 벌레 보듯이 혐오스런 표정을 지었다.
“대한민국 검찰이…… 그것도 서울중앙지검의 공안부의 부장검사라는 분이 어떻게 마약을! 그것도 필로폰을 가지고 다니실 수 있는 겁니까?”
그는 시민들이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일부러 크게 말했다.
“정말 실망입니다. 내가 당신 같은 분을 존경하고 모셨다는 게 부끄러워지네요!”
그 순간, 강중식 부장은 순식간에 술이 확 깨며 주변에 있던 모든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당했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최서준이 설계한 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홍석장, 네가 감히 어떻게!”
그는 마치 브루투스에게 배신당한 카이사르처럼 격한 배신감을 느꼈다.
파르르 떨며 주먹을 쥐었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함정에 빠진 뒤에 함정이란 걸 알아챈들, 빠져나올 길은 없었으니까.
정형준 경감은 수갑을 조이며 말했다.
“임의동행의 허락 여부에 상관없이 긴급체포 하면 경찰서로 가야 되는 건 아시죠?”
이 상황에서 그는 강중식 부장을 놀리듯 깐족거리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사람들이 다 찍고 있어요. 웃어야죠. 인상 쓰면 인터넷에 주름 다 나올 텐데. 브이라도 하시든지, 아니면 김치라도 외치시든지.”
물론, 카메라에 담기지 않고 강중식 부장에게만 들리도록 말한 것이지만, 효과는 아주 대단했다.
“저 마약 주인이 내가 아니라고!”
강중식 부장은 격하게 저항했다.
“이건 대놓고 마약 던지기 한 거잖아?”
“예예, 자세한 건 서에 가서 말씀하시죠. 마약을 어디서 입수하셨는지, 얼마나 투약하셨는지, 무슨 목적으로 소지하고 있었는지도 들어 보죠. 아,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서는 지구대입니다. 우리 영감님께서는 그놈의 검찰이라 목이 뻣뻣해서 지구대는 가 본 적이 없으실까 봐 알려 드립니다.”
순식간에 뒤통수가 아릴 듯이 몇 대나 맞아 버린 것 같은 기분에 어안이 벙벙해진 강중식 부장은 더 이상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정형준 경감에게 끌려 주차장에 있는 순찰차로 향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순찰차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키가 큰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어, 부장님 무슨 일로 여기에 계신 거예요?”
“이런 개X끼가…….”
그를 보자마자 강중식 부장은 이를 빠드득 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앞에서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남성은, 이 모든 판을 설계한 최서준이었으니까.
“지나가다가 우연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와 봤는데, 검찰이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더니…… 그게 강 부장님이셨습니까?”
여전히 선배님이라는 호칭은 쓰지 않고 강중식 부장을 부르는 최서준이었다.
스타 검사인 그의 등장에 시민들의 이목이 더욱 쏠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휴대폰으로 사진과 동영상까지 촬영하고 있을 정도.
최서준의 머릿속에는 조만간 자신과 독사 강중식 부장의 투 샷이 기사 사진으로 뜨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너 이 자식,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강중식 부장의 엄포에도 최서준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예.”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시민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춰 강중식 부장에게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무기를 들고 위협하면 무서운데,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협박하는 것만큼 앙증맞은 일이 또 없다죠?”
“이전에는 친구 팔아서 살아남더니…….”
“에헤이, 그건 부장님이 잘못 짚으신 거 아닐까요?”
그는 시치미를 뚝 떼며 받아치고는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말씀 드렸잖습니까. 다들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알고도 못 건드는 거라고. 건들면 X 된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데 강 부장 당신만 모르고 나한테 덤벼드는 거라고. 제가 경고를 했는데도 덤비셨으니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셔야죠.”
최서준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부장님. 이번에 옷 벗으시고 개업하실 텐데, 그 김에 저도 다른 직업이나 구할까 싶어서요.”
그는 아주 깔보듯이 강중식 부장을 내리 보며 말했다.
“땅꾼으로 전향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뱀 사냥엔 완전 도사라서…… 특히 독사 잡는 데에는 아주 도가 텄어요.”
강중식 부장이 눈을 부라리며 최서준에게 다시 엄포를 두려는 순간.
“마약 사범, 그만 떠들고 들어가.”
정형준 경감이 강중식 부장을 순찰차로 밀어 넣었다.
이를 지켜보는 최서준의 입꼬리가 한껏 비틀어졌다.
그의 눈앞에서 독사가 아주 완벽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남은 건, 이제 철저하게 그를 짓밟아 재기하지 못하도록 만신창이로 만드는 일뿐.
최서준은 그 일에 대해서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어디 한번 살아서 지옥을 경험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