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24화 (124/341)

역전 (4)

“마약 던지기요?”

홍석장 검사는 당황한 눈치를 숨기지 못했다.

마약 던지기.

간단히 말해서 무고한 사람의 품에 몰래 마약을 넣어 놓고 그 사람을 신고해서 마약 소지 혐의로 잡아가는 행위로 일종의 누명 씌우기였다.

검찰에서 행하기보다는 주로 범죄자들이 자신의 경쟁자들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범죄법.

간혹 경찰들이 실적이 간절하게 필요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지만, 실제로 검경에서 썼다는 건 접한 적이 없을 테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제가 알고 있는 그 마약 던지기 말씀하시는 거 맞습니까?”

“예. 간단히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두 분이서 술자리에서 간단하게 술을 드시던 도중에 다른 테이블과 시비가 붙는 겁니다. 그러다가…….”

내가 머릿속으로 그린 시나리오를 찬찬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홍석장 검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내 이야기가 끝난 뒤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할까요? 그 인간도 워낙 보통 인물이 아니라서…….”

“그러니까 홍 검사님의 역할이 중요한 거죠.”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술도 한잔 들어갔겠다, 바람잡이까지 있으면 어려울 게 없죠. 안 그렇겠습니까?”

***

-아, 검사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경위님은 잘 지내셨어요?”

-예. 저 얼마 전에 경감으로 승진했습니다!

“이야, 축하드립니다!”

나와 전화를 하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경찰 정형준.

서울에 올라온 직후부터 꾸준히 경찰의 힘이 필요할 때마다 전부 도맡아서 처리해 주고 있는 인물.

이전에 강현수 부장의 뒷조사를 할 때 크게 도움을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나 지났다.

“이제 반장이신 건가요?”

-예. 마약수사과로 옮기면서 반장으로 올라왔습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다.

이거 아주 제대로 독사를 물어뜯을 수 있겠는데?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드님은 잘 크고 있죠?”

-예. 이번에 막둥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는데…….

그와 간단한 안부 인사를 마치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세한 시나리오를 이야기해 주자, 그는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이야, 이거 아주 제대로 잡을 수 있겠네요. 다른 것도 아니고 마약이면 제 소관이니까요.

“예.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신고받으면 제가 바로 출동은 할 수가 없어서 사건이 넘어온 뒤에…….

“아니죠, 경감님.”

나는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경감님께서 하필 3월 5일에 역삼지구대에 잠깐 놀러 가시는 겁니다.”

-아…….

그는 바로 내 말을 알아채고 능청스레 말했다.

-그러고 보니 3월 5일 오후 8시에서 10시 사이에 역삼지구대에 잠깐 아는 후배 놈을 만나러 갈 일이 있을 것 같네요.

“그러다가 후배가 출동할 일이 생기면 도와주시기도 하는 거죠?”

-그럼요. 저희 경찰들은 선후배 간에 힘들 것 같으면 현장에 함께 가서 도와주는 일도 적지 않으니까요.

아주 좋다.

척하면 착 알아듣는 게, 마음에 든다니까.

이래서 나와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할 수밖에 없지.

“예. 말씀드린 대로 진행될 테고 혹시나 변경 사항 있으면 따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환절기니까 감기 조심하시고요.

“감사합니다. 경감님도 건강관리 잘하십시오.”

-네, 검사님!

정형준 경감과의 전화를 끊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독사를 죽일 만한 계획이 아주 착착 준비되어 가고 있다.

그래, 암만 독사라고 한들 호랑이 발톱에 걸리면 찍 소리도 못 하고 죽는 게 인지상정이지.

나한테 덤빈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어?

독사 강중식 부장이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지잉지잉.

짧게 두 번.

설마, 미래 문자인가?

독사를 무너뜨릴 만한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하는 걸지도.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보낸 이 : 1588-9X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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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장.

스팸 처리를 하든가 해야지.

휴대폰을 닫고 윤설하 수사관을 불렀다.

“예, 부장님.”

“계획대로 진행해 주시고 조만간 마약 던지기에 쓰일 필로폰이 들어올 겁니다. 미리 날짜 비워 두시고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

3월 5일 오후 8시.

역삼동의 한 술집.

“홍 검사랑 한잔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예. 서울에 올라오신 뒤로 처음이니까 1년도 더 넘은 것 같습니다.”

“그래.”

독사 강중식 부장은 술잔을 기울이며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자네가 특수부랑 어울린다는 소문이 있던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그가 특수부와 자주 만난다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들었기에 찔러 본 것이다.

그 증거로 독사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홍석장 검사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제가 부산지검에 있을 때 정현우 검사와 꽤나 친해졌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 친구 통해서 최서준 부장 약점을 캐낼 수 있을까 싶어 공사를 치고 있습니다. 제가 혼자 준비해서 부장님께 서프라이즈 선물로 드리려고 했는데…… 이거 벌써 들켜 버렸네요. 하핫.”

홍석장 검사는 어색한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강중식 부장은 그 대답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콧바람을 쉬익 뱉으며 술잔을 입에 털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최서준 그 자식이 생각보다 눈치가 엄청나게 빨라서 자칫하다간 걸릴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최대한 몸을 숨기고 진행해 보겠습니다.”

“좋아. 한번 기대해 봄세.”

“그나저나 부장님께서 최서준에게 완전히 쪽을 주셨던 게…….”

홍석장 검사가 계속해서 비위를 맞추며 최서준 부장을 핀치까지 몰아넣었다는 것에 대해 찬사를 흘리자, 강중식 부장은 기분이 들떴고, 홍 검사의 리드에 따라 빠르게 술잔을 비워 갔다.

자연스레 강중식 부장은 빠르게 취기에 잠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옆 테이블에서 웃음이 빵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젓가락이 날아와 강중식 부장의 머리를 때리고 떨어졌다.

“아이 씨, 이게 뭐야!”

강중식 부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확 돌렸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덩치 큰 사내 하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저희끼리 놀다가 젓가락이 튀었나 봅니다.”

강중식 부장은 화를 내려다가 오늘은 기분이 좋은 만큼 굳이 성내지 않으려고 했다.

“조심합시다.”

그러나 홍석장 검사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애초부터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행동했다.

“아이, 거 덩치 큰 놈!”

“예?”

덩치의 사내는 미간을 찌푸리며 엉거주춤 멈춰 섰다.

“우리 부장님께 적당히 사과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머리에 묻은 걸 닦아 주면서 공손하게 사과해야 될 거 아니야? 지금 머리에 고추장 소스 묻은 거 안 보여?”

“아, 죄송합니다.”

덩치 큰 남자는 자신의 실수인 만큼 티슈를 꺼내 들어 강중식 부장의 머리와 어깨에 묻은 소스를 손수 닦아 주었다.

“아니, 괜찮은데…….”

강중식 부장은 괜찮다고는 했지만, 홍석장 검사가 오히려 나서 준 게 흐뭇했다.

자신에게 그만큼 충성하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덩치의 사내가 깨끗하게 닦아 주고 나서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려는 찰나.

강중식 부장의 원하는 바와 달리, 홍석장 검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살만 뒤룩뒤룩 쪄 가지고 둔하니까 그 젓가락 튕기는 것도 못 잡지. 생긴 것도 아주 돼지 X끼 같아서…….”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덩치의 사내는 이를 꽉 물며 차가운 눈으로 노려봤다.

강중식 부장도 뭔가 상황이 잘못 돌아간다는 걸 깨닫고 홍석장 검사를 만류했다.

“홍 검사, 그건 심했네. 자네가 사과해.”

그러나 홍석장 검사는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폭주 기관차처럼 격한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거지같은 옷 입고 사는 거야. 너 딱 봐도 뻔해. 동네 건달 X끼 아니야?”

“이런 씨X럴 것이 다 있나. 너 지금 뭐라 했냐?”

덩치의 사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의 남자들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최서준이 고용한 인물들.

오늘 처음 얼굴을 보는 데다가 한 번도 합도 맞춰 보지 못한 사이였지만, 홍석장과 덩치들은 완벽한 호흡을 보여 주었다.

“이런 X발, 정장 입은 멸치 샌님 주제에 어디서 감히!”

덩치의 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순식간에 다가와 홍석장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나 홍석장 검사는 눈을 끔뻑이지도 않고 노려보며 말했다.

“이러다 치겠네?”

“어, 뒤지게 맞아야지.”

“이 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검사야, 검사!”

홍석장 검사는 멱살을 쥔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들 다 콩밥 먹고 싶어? 감방 한번 보내 줘?”

“어, 보내 줘라. 보내 봐, 이 자식아!”

순간, 덩치 일행 중 하나가 다가와 주먹을 꽉 말아 쥐고 높이 쳐들었다.

“이 자식이 술 처먹다가 정신을 놨나…….”

“쳐. 쳐. 여기 CCTV 다 있어, 이 양아치놈들아. 뒷감당할 자신 있으면 때려.”

홍석장 검사는 오히려 도발하듯 자신의 볼을 앞으로 내밀었다.

중간에 끼어 있던 강중식 부장은 처음 보는 홍석장 검사의 모습에 당황한 것도 모자라,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당황스러움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게다가 너무 빨리 마셨는지, 순식간에 올라오는 술기운 때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

“아니, 홍 검사. 지금 자네가…….”

그러나 폭주 기관차 홍석장 검사의 귀에는 강중식 부장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만 못 들은 체하며 말했다.

“폭행죄로 콩밥 한번 먹어 볼 테지? 요즘 교도소 밥이 군대 밥보다 낫다더라. 가서 정신 차리고 오면 딱 좋겠네.”

덩치의 사내는 조금도 밀릴 생각이 없었다.

“어, 폭행죄로 내가 감방 갈지, 살인죄로 감방 갈지 한번 맞춰 봐, 이 자식아!”

그는 마치 메소드 연기를 하듯, 눈이 반쯤 돌아가 있었다.

연기를 하다가 실제로 몰입해 버린 상황.

그렇기에 강중식 부장의 입장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때, 덩치의 사내가 소주병을 테이블에 내려치며 깨 버렸다.

“오늘 네 내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

그가 흥분한 척 다가오자, 강중식 부장은 당황하여 손을 뻗어 말렸다.

“잠깐만, 잠깐만. 일단 진정하고…….”

“진정하기는 개뿔! 너도 똑같은 검사냐? 네 내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 없지?”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덩치 사내의 무리와 강중식 부장, 홍석장 검사가 한데 섞여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최서준의 시나리오대로 이러한 난장판이 펼쳐졌을 때, 문신으로 뒤덮인 팔이 불쑥 튀어나와 강중식 부장의 주머니에 무언가를 쑥 집어넣었다.

물론, 과격한 주먹질이 펼쳐지고 있는 터라, 식당에 있던 그 누구도 그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완벽한 사각지대를 노렸기에 CCTV도 그 모습을 찍지 못했다.

손님들을 말리려던 걸 포기한 가게 종업원은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어 112에 전화를 걸었다.

-네, 112입니다.

“예. 여기 역삼동 모하미트인데요. 갑자기 손님들 간에 싸움이 나서…….”

가게 종업원의 신고가 끝나자, 바로 112의 답변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제일 가까운 역삼지구대에서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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