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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120화 (120/341)

겨울 (7)

-어, 최 부장. 목소리가 너무 죽어 있는데. 밥은 제대로 챙겨 먹고 있는 거 맞아?

“아, 네. 장관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도와줄 수 없는 게 미안해서 한이지. 혹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내가 내 자리를 걸고서라도 도와줄 테니까.

법무부장관이 된 김석원.

강직하기로 유명한 김석원이었지만, 이번 일이 터졌음에도 그는 나에 대해 응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도와줄 수 없다는 걸 안타까워할 뿐.

-엊그저께 대통령님 뵙고 왔는데, 대통령님께서도 최대한 언론 쪽은 누르고 계신 것 같더라. 이게 파국으로 치닫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내 힘을 써서라도 버티게 해 줄 테니까 조금만 더 힘내고.

경동수도 한번 도움을 받았던 만큼, 끝까지 나를 도와주고 있는 상태.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필요한 거 없어?

“예,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 금전적으로라도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감사합니다.”

그는 뇌물 수수 여부에 대한 내용이라든지, 내가 곤란할 만한 질문은 일체하지 않았다.

믿고 힘내라는 말뿐.

워낙 민감한 건이라서 경동수는 직접 연락만 하지 못할 뿐,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김석원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이 대단한 인물들이 도와주는 만큼 나를 외면한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증스럽게 여겨졌다.

잘나갈 때는 그렇게 꼬리를 흔들고 살살 기더니, 내가 핀치에 몰리니 이제 와서 전혀 관계없는 척, 모르는 척이라니.

강중식 부장보다 오히려 더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1번 라인이라서 끌어 주고 도와줬던 게 얼마나 많았는데…….

차라리 서기웅이 더 나았다.

청렴결백의 대명사였던 서기웅 검사장은 초기에 몇 번 검사장실로 불러서 잘 해결하라는 이야기를 한 뒤, 그친 상태.

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청렴함만을 모토로 평생을 살아왔던 인물이기에 나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클 테니까.

오히려 내가 미안하면서도, 나를 질타하지 않는 게 고마울 정도.

그러나 이 많은 이들이 배신한 와중에 나의 직속 라인이었던 이두형 부부장검사와 장하영 검사, 정현우 검사는 어떻게든 날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간 트루미디어가 불확실한 정보를 퍼뜨리며 공직에 있던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렸던 일들을 몰아서 터뜨리며 트루미디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들의 발표에 대한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방법.

뿐만 아니라, 독사도 공격하고는 있지만 워낙 녀석이 폭주 모드로 나에 대해, 사건으로 물어뜯고 있어서 쉽게 녀석을 말리진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녀석이 가지고 있는 내 정보는 확실했으니까.

독사 강중식 부장이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정현우 검사가 부산지검에 있을 때, 딱 한 명만 제대로 포섭해 놓으라고 이야기를 해 두었는데, 그 한 명이 이번에 부산지검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열 명 중 한 명이었다.

그를 무너뜨릴 증거가 없기에 포섭했는데 얼떨결에 맞아 떨어진 행운의 상황.

그 덕분에 그를 통해 강중식 부장에게서 자료를 빼돌려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녀석은 내가 숨겨 둔 10억 원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시 중이었으니까.

정현우가 포섭한 검사를 이용해서 더 빠르게 독사를 쳤어야 하는데, 부산지검에서 올라온 아홉 명의 검사를 보낸 걸로 안일하게 만족해 버린 게 내 패착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이 된 덕분에 하나 얻은 건 있었다.

바닥을 친 덕분에 진정한 내 사람들과 내 곁에서 가식적으로 내게 알랑방귀를 뀌던 사람들이 구분된달까.

송재훈 PD와 박수형 기자도 최대한 자신의 위치에서 입수한 정보들을 내게 넘겨주고 도와주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 10억을 해결할 수 없다면,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었다.

이럴 때 미래 문자가 와서 딱 한 번만 도움을 준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문자는커녕, 진동도 오지 않고 있다

문자도 포기한 걸까.

내 힘으로는 타개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리가 채워지는 기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와중에 문득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설마 문자인가 싶어 깜짝 놀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인 : 윤설하

실망 아닌 실망을 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수사관님.”

-부장님, 식사는 하셨어요?

어찌 되었는지, 내가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는 걸 알고 다들 식사를 했는지부터 물어본다.

안 먹었다고 하면 또 이럴 때일수록 챙겨 먹으라는 이야기를 할까 봐 싶어 적당히 둘러 답했다.

“대충은요.”

-다행이네요. 목소리에 힘이 너무 없으셔서…….

그녀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 계속 기자회견 요청이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요. 다행히 언론사에서 송출되는 양이 적어졌는 데도 아직 국민들의 관심이 줄어들지를 않아서…….

“병가 핑계로 계속 미뤄 주세요. 지금은 그것밖에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예. 그렇게 이야기해 뒀습니다. 부장님도 알고 계셔야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린 거예요.

“고맙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에 그녀가 미안한 어투로 말했다.

-진짜 저랑 부부장님이랑 검사님들이 두 발로 뛰고 있는데 아직까지 독사 녀석을 파훼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게 죄송할 일이 아니죠.”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곁에서 평생 지켜 드리겠다고 약속드렸는데…….

그녀는 울컥한 감정을 지우지 못했는지, 말을 멈추고 입술을 씹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저 아직 안 무너졌어요.”

-부장님 뭐라도 챙겨 드셔야 돼요. 진짜 목소리에 힘이 너무 없으셔서 제가 다 가슴이 아파요. 지금까지 부장님의 이런 목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서 더…….

그녀는 뒷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의 정적이 흘렀다.

그토록 냉철하던 윤설하도 내 목소리에 가슴이 아린지 눈물을 참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약 5분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휴대폰 너머로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 볼게요.

“네, 고마워요.”

윤설하의 마지막 말은 흘려들었다.

이건 일개 수사관의 힘으로 어떻게 극복이 가능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독사의 마음을 홀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윤설하가 암만 유능하다고 한들, 이것까지 기대하는 건 욕심이었다.

어떻게든 내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

이틀 뒤,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렵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최서준입니다.”

-최 검사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낮게 울리는 목소리.

며칠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목소리가 더욱 웅장하게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예.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고 법무부장관 김석원을 통해 소식만 전해 왔던 경동수 대통령이 직접 내게 전화를 했다.

발신 휴대폰 번호가 낯선 걸 보니, 대포폰도 아니고 아예 다른 휴대폰인 모양.

-이럴 때일수록 잘 챙겨 드셔야 합니다. 건강부터 지켜야 다음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는 간단한 안부 인사를 묻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름이 아니라, 저도 공안부 강중식 부장이 어떤 정보를 들고 있는지 확인했거든요.

경동수 대통령의 손에까지 들어간 모양.

참담했다.

내 치부가 공개된 꼴이니까.

-오래 끌다가 더 악화될 바엔 차라리 지금 옷을 벗고 1, 2년만 휴식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는 혹시나 내가 오해할까 봐 싶어 바로 말을 이었다.

-여기서 물러나자마자 단절하려는 생각은 절대 아닙니다. 저 아직 임기가 4년 넘게 남아 있습니다. 국민들한테 잊히셨을 즈음에 다시 기용해 드릴 수 있습니다. 시간은 충분해요.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경동수 대통령의 스타일로 봐서도 한번 잘라 내놓고 모른 척할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옷을 벗고 나중에 그에게 기용되는 건 까놓고 말해서 기폐되는 것과 다름없는 일.

그렇게 되면 그럭저럭한 검사로서는 정년까지 살아갈 수 있겠으나, 내가 원하는 삶은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

권력의 끝. 왕의 자리에 오르는 일.

그건 이룰 수 없게 될 테니까.

지금 상처를 입더라도 어떻게든 버티면 그 꿈을 이룰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지금까지 꿔 오던 꿈이 전부 일장춘몽이 되는 것과 다름없는 법.

여태껏 쌓아 온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그의 말이 옳다며 그걸 선택하는 게 오히려 지금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했을 뿐.

그가 베푸는 호의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경동수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게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나 하다니.

그러나 마냥 그걸 거절할 수는 없는 게 지금 상황이었다.

나는 입술을 잘근 물고 힘겹게 답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빠르게 결정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이상 논란이 지펴지면 저도 다음을 기약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예. 그러면 몸조리 잘하시고 다음에 서울에서 뵈시죠.

“들어가십시오.”

그의 전화를 끊자, 한숨만이 새어 나왔다.

조용히 내 모습을 지켜보던 한지유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내 눈치를 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정 힘들면…….”

그녀는 혹시나 내 자존심을 건드릴까 봐 싶어 몇 번이나 고민하면서 단어를 조심스레 다듬은 뒤에 말했다.

“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빠 편이고, 앞으로도 오빠 편일 거야. 금전적인 부분이나 그 외에 다른 부분도 내가 다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 너무 힘들 것 같으면 다 그만두고 나한테 의지해도 돼.”

그 말을 듣자, 순간 울컥 무언가 솟구쳐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한지유다.

아니.

한지유가 아니면 안 된다.

이 여자는 잡아야 한다.

이토록 나를 생각해 주는 여자는 지금까지 만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결혼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렇게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프러포즈를 하는 것만큼 멋없고 초라한 일은 또 없을 터.

이 상황을 타개하고 극복해 낸 뒤에 아주 화려하게 프러포즈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새길 뿐.

지금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나를 품에 안는 한지유를 보며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전부.

한파가 그치지 않을 것 같던 그 추운 겨울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은 내 생에 가장 비참한 날로 기억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밤.

아주 커다란 반전이 일어났다.

간절히 원했던 반전이.

예상치도 못했던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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