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5)
-단독! 서울중앙지검 모 검사 100억 원대 비리 연루…… 과연 누구인가?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급인 모 검사가 100억 원대 뇌물 혐의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트루미디어에서 단독 입수했다. 해당 검사는 대한민국의 재계 서열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벌 J그룹에게 100억 원이 넘는 뇌물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정황이다. 현재 이 사안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검에서는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해당 검사는 언론에 얼굴을 비추는 것도 모자라 검찰을 대표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며 검찰계에서 온갖 기록을 갈아 치웠던 것으로 알려졌던 터라, 신중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략)……. 며칠 전, 부산지검의 뇌물 파동으로 아홉 명의 검사들이 모두 옷을 벗은 것도 모자라, 믿었던 인물마저 뒤통수를 친 상황. 과연 대한민국 검찰에 부패하지 않은 인물은 없는지 의심스럽다. 탄핵당한 권재철 前대통령의 검찰 개혁 카드가 오히려 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절대 검찰에서 조용히 묻고 넘어가지 않고 확실하게 사실을 밝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트루미디어 김민군 기자
“이건 대놓고 저를 저격하는 거잖습니까?”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급 중에 언론을 통해 얼굴이 알려진 인물에는 나 외에도 몇 명이 더 있긴 하다.
다만, 일반적인 시민들은 이 기사를 보자마자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그 증거로 베스트 댓글 세 개는 모두 나를 의심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Caledfwlch : ㅊㅅㅈ?
-정도현 : 한지유 남친?
-펜드래곤 : 설마 최서준인가? 그렇게 깨끗하다고 해 놓고는…… 와, 진짜 대박이네.
전체적인 댓글에는 나인 게 확실하지 않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의견과 안 봐도 비디오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다른 이름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긴 했지만, 대뜸 없이 내게 쌍욕을 퍼붓는 이도 한둘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더 화가 나는 건 아무 죄도 없는 한지유에 대한 욕까지 도배되고 있는 상황.
괜히 나 때문에 엮여서 지유까지 골치 아파지겠는걸.
“최 프로,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권형기 차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주옥그룹이면 자네랑 연관 있는 곳 아니야?”
그는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있었다.
사실이 아닌 것도 잘 엮어서 언론전만 잘하면 곤두박질치는 게 이 바닥이었으니까.
“지금 조사 들어간 부서가 있는 겁니까?”
“아직까진 없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있었으면 진즉에 내가 자네한테 알려 줬지.”
“공안부는요?”
“거긴 미동도 없었어. 움직이면 이거 감찰부 통해서 가야되는데…… 박재필 고검장이 수장이라서 만약에 공안부 보고 협조하라고 하면 골치 아파져.”
당연히 내 꼬리를 못 밟았기에 터뜨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이건 말 그대로 논개 칠 작정으로 언론에 뿌려 버린 것 같다.
아마도 강중식 부장이 박재필 고검장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준비를 끝내기도 전에 터뜨린 것일 터.
“차장님께서는 서기웅 검사장님 분위기랑 고검 동향 좀 파악해 주세요.”
“알겠네.”
권형기 차장이 자리를 비운 뒤, 곧장 주옥그룹 회장의 직속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물론, 내 휴대폰이 아닌, 조아라의 휴대폰을 이용해서.
혹시나 강중식이 나의 휴대폰 내역을 추적해서 뒷덜미를 잡힐지도 모르니까.
한참 동안 울리는 수신음.
젠장.
이쪽도 정신이 없는 건가?
아무래도 전화 연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끊으려는 찰나.
-여보세요?
이철용 회장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직속 전화인 만큼, 모르는 번호라서 아직 나인 걸 모르는 모양.
“회장님, 최서준입니다.”
-아, 검사님이셨군요.
그는 안도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르는 번호라서 당황했습니다.
“아닙니다. 트루미디어에서 쓴 기사 보셨습니까?”
-예. 저도 방금 보고받는 길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강중식 부장이 어떻게든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터뜨린 것 같습니다.”
-강중식이라면, 공안부 부장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도 어느 정도 검찰 내부 구조에 대해 파악은 하고 있는 모양.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다.
“그와 제가 경쟁 구도라는 건 아시고 계시죠?”
-네,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저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본인이 나가리가 되는 판이라서 어떻게든 물어뜯으려고 판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쪽에서 증거는 찾지 못한 건가요?
“예. 아마도 그럴 확률이 큽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부분을 하나 말했다.
“주옥그룹 측에서는 새어 나갈 만한 여지가 없다면 말이죠.”
-아…….
그 말을 하자, 무언가 떠올랐는지 이철용 회장은 낮은 탄식을 뱉었다.
-얼마 전에 경호팀의 인력이 물갈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예. 몇 명이 잘려 나가서 지금 저희 통제하에 있지 않습니다.
“그 녀석들부터 입단속시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일단 검사님도 몸조심하십시오.
“당분간은 이 번호로 문자 주시면 제가 다시 걸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곧장 사무실로 돌아갔다.
윤설하는 상황을 파악하고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고, 조아라는 내게 몇 가지 사항을 지시받고는 바로 실행에 나섰다.
이두형 부부장검사는 필요한 게 있으면 알려 달라고 말하고는 곧장 언론 플레이에 돌입했다.
나는 사무실에서 다시 차근차근 생각했다.
잘못하다가는 골로 갈 수 있다.
독사에게 조금이라도 여지를 줘서는 안 되는 상황.
아주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녀석은 아직 내 비리에 대한 증거를 파악하지 못했다.
증거를 들고 있었다면, 트루미디어에서 이런 내용의 기사가 아니라, 서부지검을 박살 낼 때처럼 실제로 증거를 들이밀며 나를 몰아세웠을 테니까.
그쪽에 행운이 터지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다.
그러면 내게도 출혈이 없을 터.
하나, 왠지 모르게 이번만큼은 행운의 여신이 날 바라보지 않는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발 이 느낌이 기우이기를.
***
“최서준이 발등에 불 떨어진 것 같더만.”
박재필 고검장은 아주 흐뭇한 눈빛으로 말했다.
“자네가 아주 제대로 스타트를 끊었어. 오랜만에 자네가 제 역할을 했어.”
“감사합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인사하고 있었지만, 강중식 부장은 속으로 엄청나게 똥줄을 태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재필 고검장에게 까이지 않기 위해서 일단 판은 벌여 뒀지만, 그 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지금 당장은 명백한 증거가 필요한 절차가 아니기에 언론전으로 어떻게든 몰아붙일 수는 있지만, 그 이후에 제대로 된 증거가 없는 걸 알게 되면 최서준이 분명 결백을 증명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목줄이 끊기는 걸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니까.
“이번 일에 대해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꽤나 기대하는 바가 커. 언론의 관심도 쏠려 있고.”
그렇기에 강중식 부장은 이런 칭찬과 기대가 부담스럽다 못해 버거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를 티낼 수도 없는 노릇.
“최서준이 일어날 수 없도록 최대한 공격을 때려 붓겠습니다.”
“그렇게 해야지.”
박재필 고검장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지금까지 이런 게 있으면 즉각 기자회견으로 대처했던 천하의 최서준도 이번에는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는 걸 보니, 제대로 걸리긴 걸렸나 봐.”
그는 눈빛을 반짝이며 강중식에게 물었다.
“우리 강 부장이 독니로 아주 화끈하게 물어 버린 건가? 하하하핫!”
강중식 부장은 대답은 하지 않고 마지못해 박재필 고검장을 따라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대체 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거지?’
입장 발표를 하지 않는 건 본인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을 끌면 분명 그에게 좋지 않다는 걸 최서준 본인도 알고 있을 테지만, 점점 더 악화되도록 내버려 두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설마, 언론의 관심이 더 끌리도록 두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없다고 보지는 않았다.
일부러 사건이 잘 무르익을 때를 기다렸다가 터뜨리는 건 검사들에게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최서준은 내가 정말 자신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섣불리 대항했다가는 자신이 그걸 물고 늘어지면서 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걸지도.
차라리 후자였으면 좋겠다만, 왠지 모르게 자신의 느낌상 최서준은 전자일 것 같았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으니까.
강중식 부장은 최서준과 몇 번이나 싸우고 패배했기에. 그냥 패배한 것도 아니고 농락당하며 패배했기에 자신도 모르기에 최서준이라는 공포에 물들어 있었기에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최서준을 상대했던 많은 이들이 강중식 부장과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때는 실제로 최서준이 모두 상대방에 대한 파훼법을 꿰고 있었지만, 이번엔 정확히 감을 잡지 못했다는 것뿐.
그만큼 최서준에게도 이번 일에서 약점은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사실을 강중식 부장은 모르고 있는 게 문제였지만.
그의 심정을 알 리 없는 박재필 고검장은 인심 썼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언론에 공안부에서 맡는다고 발표해 뒀으니까 최서준이 잘 조져 봐.”
“……예?”
“자네 밀어줄 테니까 제대로 해결해 보라고.”
박재필 고검장은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문득 컴퓨터를 돌아보았다.
“어, 지금 기사 떴네.”
그는 강중식 부장을 향해 모니터를 돌려 직접 보여 주었다.
-서울중앙지검 비리 검사에 대한 조사, 공안부와 감찰부가 협력해서 진행…….
-서울중앙지검에 터진 100억 원대 뇌물 사건에 대해 서울고검 감찰부에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해당 수사는 보통 사건이 아닌 만큼, 감찰부뿐만이 아니라, 중앙지검의 공안부도 함께 협력해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중략)……. 특수부가 왜 빠졌는지에 대해 많은 추론이 나오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최서준이 이 비리 검사라는 의견이 팽배해지고 있다. 과연 어떤 결과로 수사를 마무리하게 될지, 이 사건의 귀추에 많은 시선들이 몰려 있다.
-팩트펀치 호민종 기자
최서준에 대한 이름 석 자까지 명백히 나와 있었다.
이제는 정말 빼도 박도 할 수 없을 지경.
‘젠장.’
적당히 언론전만 하며 마무리되는 꿈을 꿨지만, 말 그대로 한낱 꿈에 불과했다.
이름까지 거론 된 이상, 반드시 최서준을 쓰러뜨려야 했다.
“잘해 봐. 자네한테 거는 기대가 커.”
박재필 고검장의 말에 강중식 부장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
그리고 며칠 뒤, 강중식은 늦은 시간까지 최서준에 대한 뒤를 캐기 위해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최서준은 강중식 부장이 어떤 무기를 들고 이 사실을 터뜨렸는지 감을 잡지 못해 쉽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고, 강중식 부장은 자신이 무기를 들고 있지 않기에 그 무기를 찾아내기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있는 상황.
냉전과도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그때.
따르르릉.
크게 벨소리가 울렸다.
사무실 전화였기에 그는 받을 생각 없이, 밖에 소리쳤다.
“전화 온다.”
그러나 밖에선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망할 놈들, 다 같이 담배나 태우러 갔나.”
그는 중얼거리며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네,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강중식 부장입니다.”
-아, 공안부가 맞나요?
“예, 맞습니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제보할 게 하나 있어서요.
“제보요?”
순간, 강중식 부장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번 비리와 관련한 제보인가요?”
-그렇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면 되나요?
“네, 말씀하세요.”
-아, 제가 사실은 몇 년 전에 주옥그룹 경호실에서 일했거든요.
‘경호실!’
강중식 부장의 입꼬리가 크게 비틀어졌다.
주옥그룹의 경호실이라면, 비서실과 함께 주옥그룹 중역들의 더러운 일들을 도맡아서 처리하는 곳.
-그때, 제가 최서준 씨 차에 돈을 실어 준 적이 있습니다.
‘예스!’
강중식 부장은 주먹을 꽈악 쥐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이렇게 판을 크게 벌여 놔서 정말 골로 가는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소생할 여지가 생기다니.
‘그래, 사람이 꼭 죽으란 법은 없다니까!’
그는 차오르는 희열을 꾹 누르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정확한 시기가 언제죠?”
-3년 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