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4)
“아, 카메라는 조금……”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제보자는 최서준이 말했던 대로 카메라 촬영을 거부했다.
그러나 방송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었기에 송재훈 PD는 한번 더 설득했다.
“하지만 이게 방송으로 쓰이려면 화면이 필요하거든요. 원하시면 전신 모자이크 처리해서 송출하면 아무도 모를 겁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카메라 공포증 비슷한 게 있어서…… 촬영하면 제보 인터뷰는 없었던 걸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더 이상 촬영을 요구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제보자는 알고 있었다.
송재훈 PD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녹음은 괜찮은 거죠?”
“예. 대신 녹음본도 외부로 공개될 때는 목소리에 변조를 씌우는 게 아니라, 음성 대역을 사용해 주세요.”
이 정도로 철저하게 신상을 비공개하려는 제보자는 처음이었다.
송재훈 PD 또한, 이런 경우가 있다고 선배들에게 들어 본 게 전부였으니까.
그도 왠지 모르게 단순한 제보가 아니라, 최서준을 음해하려는 음모가 숨어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송재훈 PD는 사방이 완전히 막혀 있는 카페에서 제보자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물론, 옆에 있는 작가 하나는 최서준 검사가 건넨 에메랄드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상태.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최서준 검사에 대한 제보라고 하셨죠?”
“예, 맞습니다.”
제보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경을 들썩였다.
아무래도 안경을 처음 써 보는지, 뭔가 불편하다는 분위기가 풍겨져 오고 있었다.
송재훈 PD는 바로 직감이 왔다.
‘얼굴을 위장하기 위해서 쓴 건가?’
실제로 위장을 하고 인터뷰를 한 제보자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주 보고 있는 제보자가 안경을 벗는다고 한들, 자신이 알고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최서준이 보여 준 독사나 그 측근들의 사진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낯선 인물이었으니까.
“최서준 부장검사가 주옥그룹에서 100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겁니다.”
“현금이 아니라, 금품이라는 거죠?”
“돈만 받은 건지, 물건까지 합쳐진 건지는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그 가치의 합이 100억 원에 가깝다는 건 틀림없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송재훈 PD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제보자와는 다른 분위기.
일반적인 제보자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에서 최대한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상황을 끼워 맞추려고 하나, 이 남자는 전화할 때와 똑같이 단 하나의 사실만을 고수하고 있다.
최서준이 100억 원대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
그것만을 전달하려고 하는 태도.
다시 말해, 능동적으로 자신들에게 먼저 제보해 오는 일반적인 제보자와는 달랐다.
몇 년 동안 PD X-File을 진행한 그는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진짜 제보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남자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구나.’
최서준이 말한 대로 독사 강중식 부장이 뒤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 생각이 들자, 송재훈 PD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이 사실을 몰랐다면, 독사 강중식 부장이 자신을 이용해서 헛수고를 시키려고 했던 셈이니까.
한참 동안 조사해 놓고도 결국 방송으로 내지는 못하게 될 터.
그걸 알게 되니 독사에 대한 감정이 좋아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걸 알 리 없는 제보자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최서준 검사가 감찰부에서 특수부로 넘어가는 시점에 100억 원을 받았는데…….”
이후로는 계속해서 반복이었다.
어떤 식으로 뇌물이 전달되었는지에 관해 듣기 위해서 만났지만, 그것에 대해 설명은 하지 못하고 전화로 했던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나자, 결국 송재훈 PD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100억 원대 뇌물을 수수했는지, 과정이나 절차는 모르신다는 거죠?”
“아, 그게…….”
또다시 늘어지는 제보자.
아무래도 모르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제보자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
“이렇게 민감한 주제에 관한 거는 저희도 확실한 제보가 아니면 쉽게 나설 수가 없어요. 카더라 통신들로 인해 조사를 하다 보면, 오히려 저희가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 그런가요?”
“예. 그러면 우선 저희 측에서 몇 가지 조사는 해 보더라도, 방송으로 내보낼 만한 제보가 추가적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정보가 부족해서 결국 중간에 끝나거든요.”
그 말을 하자, 제보자는 아쉬운 척을 하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상당히 민감한 주제로 먼저 제보까지 해 놓고 이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이 순간, 송재훈 PD는 자신의 직감에 확신이 생겼다.
‘최서준에게 흘리기 위해서 내게 접근한 거구나.’
그럼에도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연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예. 그러면 우선 저희 쪽에서도 제보 사실에 관해 조사해 보고…….”
***
“보여 주셨던 사진이랑 일치하는 인물은 아니더라고요.”
“네, 그러네요. 저도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몸집이 굉장히 크고 스포츠로 잘라 놓고 그 뒤에 관리를 하지 않은 머리.
우락부락하게 생긴 것까지는 아니지만, 목 끝에서 미미하게 보이는 문신은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었다.
게다가 에메랄드 목걸이를 통해서 촬영된 영상은 송재훈 PD가 느꼈다던 직감을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끼게 만들었다.
독사 강중식.
그가 보낸 인물이 확실했다.
“일단 제보가 들어왔으니 위에 보고는 해야겠습니다만, CP님도 진행하라고 하시진 않을 것 같습니다. 워낙 내용이 부실해서 말이죠.”
“그렇다면 다행이죠.”
“그렇게 알고 계시고, 혹시나 특이 사항 있으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송재훈 PD가 떠나간 뒤, 홀로 오피스텔에 앉아 천천히 생각했다.
일단 송재훈에게 전화를 걸었던 휴대폰부터가 문제였다.
인터뷰 하루가 지난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 본 결과, 해지된 번호라고 안내음이 들려온 게 전부였으니까.
대포폰까지는 아니었지만, 의심할 여지가 충분했다.
에메랄드 목걸이 영상에 찍힌 인터뷰에서는 전혀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지 않은 상태.
그러나 검사나 수사관처럼 검찰 측 인물이 아닌 사람을 이용했다면, 내가 알 수 없는 게 당연한 상태.
아직까지 독사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내 귀에 흘리려고 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러한 상황 자체가 만들어지기 어려웠으니까.
제보자와 독사와의 연관성만 찾아낸다면 안심하고 대처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독사가 내 치부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조사를 마쳤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
1월 28일 목요일.
퇴근을 하기 직전, 노크 소리와 함께 윤설하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부장님 잠깐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아주 밝은 표정.
왜인지 알 것 같아서 슬쩍 물었다.
“그 제보자 정체 나왔나요?”
그녀는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이젠 표정만 봐도 아시네요?”
“그럼요. 우리가 몇 년을 같이 일했는데.”
“이러다가 나중에 제가 점심으로 뭐 먹었는지도 알아맞히실 기세인걸요.”
“한번 오늘 점심 뭐 드셨는지 맞춰 볼까요? 김치찌개 맞죠?”
그녀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오늘 부장님 점심은 저랑 같이 드셨거든요.”
윤설하는 실소를 지으며 내게 신상명세서를 하나 건넸다.
조동필이라는 남성.
“부장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이 녀석이 송 PD님께 전화했던 제보자인데 사진 보니까 확실한 것 같더라고요.”
“네, 그러네요.”
신상명세서를 주욱 훑어보는 사이, 윤설하가 말을 이었다.
“특이 사항이 있다면, 이 녀석은 독사가 마산지검에 있을 때 검거했던 불꽃주꾸미파의 일원이었습니다.”
“아, 그래요?”
“예. 한 10년 전쯤, 마산에 있을 때 불꽃주꾸미파를 소탕했었는데 그때 잡혀 들어갔다가 얼마 전에 나왔더라고요. 지금은 하릴없이 심부름센터나 하는 것 같습니다.”
“심부름센터면 독사가 시킨 걸 그대로 하는 거니까, 뭐 아주 하는 일에 적합하네요.”
윤설하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그러네요.”
독사 이 발칙한 녀석.
지가 검거했던 깡패 자식과 결탁해 그를 이용할 줄이야.
쯧쯧.
검사 망신은 그놈이 다 시키네.
“어떻게 진행하면 될까요?”
윤설하의 물음에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네. 독사가 제 움직임을 보고 먹잇감을 찾으려고 던진 수입니다. 굳이 놀아나 줄 필요는 없죠.”
한껏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었다.
“자충수에 빠져서 허덕이는 꼴이나 구경하면 됩니다.”
***
1월 31일.
박재필 고검장이 말했던 데드라인이었다.
최서준에게서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 내기 위해 PD X-File에 정보를 흘려 보기도 하고, 사설 정보원까지 고용해 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최서준한테 정보가 넘어가지 않은 건가?’
그것까지도 알 수 없는 노릇.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최서준이 받은 금품 중 자신이 실마리를 찾은 게 현금 10억 원.
검은돈을 받으면 최소 열 군데 이상으로 쪼개서 관리하는 게 기본적인 사실. 그러면 자신이 흔적을 잡아낸 10억은 그중 하나일 테니 최서준이 받아먹은 건 최소 100억 원대라는 사실.
그러나 실마리를 찾았을 뿐,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진 못했다.
그 이상을 찾기 위해선 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한데 그것까지 찾을 여력이 되지 못했으니까.
하다못해 정확한 날짜만 알 수 있었더라도 범위를 좁혀 조사를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최서준이 누군가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걸 막기 위해 이중 삼중 사중으로 은닉을 해 두어서 도저히 고검장이 정한 시간 내에는 해결할 수가 없었다.
하나 오늘이 지나면, 강중식 부장은 최서준을 무너뜨리든, 무너뜨리지 못하든 간에 박재필 고검장의 눈 밖에 나게 될 터.
그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발버둥이라도 쳐야 했다.
‘젠장!’
독사 강중식 부장은 입술을 씹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부딪치는 수밖에.’
일단 저질러야 했다.
언론에 터져 주면 며칠이라는 시간이 연장되기도 하고, 설 연휴에 겹치면 어떤 효과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결국 그는 휴대폰을 들어 트루미디어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김 기자, 저번에 말했던 건 터뜨리도록 하지.”
휴대폰 너머의 김민군 기자는 화색이 돈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 뭔가 찾아내신 겁니까?
“아니, 일단 터뜨려. 그 뒤에 생각하자고.”
독사 강중식 부장은 아련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보탰다.
“관련자들의 제보가 필요하다는 뉘앙스를 풍겨서 기사 올려 줘.”
-그런데 원래 이런 쪽 제보는 쉽게 들어오지 않잖아요. 제 살을 깎아 먹는 거라서…….
“그러니까 한번 올려 보자는 거지.”
강중식 부장의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박재필 고검장에게 내일 당장 박살이 날 것이었으니까.
“혹시 알아? 그거 보고 내부자들 중에서 누구 하나가 튀어나올지.”
독사 강중식 부장은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제발 누군가 제보해 주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며칠 뒤, 그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