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1)
“목록 나왔어요?”
“예. 김 검사님께 전달받았습니다.”
윤설하는 갈색 서류 봉투로 봉인된 문서를 내게 건넸다.
공안부에 있는 1번 라인 검사에게 전달 받은 서류.
“사무실 문 잠가 주세요.”
“네.”
그녀가 문을 완전히 잠근 뒤에야 봉투를 오픈했다.
부산지검의 전성민 검사, 금정광 검사 등 총 열 명의 검사의 신상 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
“이번에 중앙지검으로 다섯 명이, 북부, 서부, 동부, 남부 지검과 고검으로 각각 한 명씩 올라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박재필 고검장과 강중식 부장이 부산지검에서 데리고 있던 인물들을 이번에 서울로 끌어올리기 위해 발령 요청을 낸 인물들.
“강중식 부장의 공안부로는 몇 명이 들어갑니까?”
“중앙지검으로 올 인물을 살피면, 공안부에 두 명, 형사부에 두 명, 과학기술범죄수사부에 한 명으로 배치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아닙니다. 김 검사님께 전달받아 온 게 전부인걸요.”
윤설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서울중앙지검에만 다섯 명에, 서울의 각 지검에 한 명씩이라.
뻔하다.
중앙지검은 자신들이 주로 활동하며 올라갈 공간이기에 많이 끌어오고, 혹시나 다른 지검에서 자신들을 건들지 않을까 싶어서 감시하기 위해 한 명씩 배치시키려는 것이겠지.
아마도 강중식 부장이 아니라, 박재필 고검장의 생각일 터.
한 번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재기해서 올라온 인물인 만큼,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지 않도록 서울 자체를 손에 꽉 쥐려고 하는 모양이다.
기존의 라인에 속하지 않고 본인만의 라인을 구축하려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패기는 인정할 만하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별 신경 쓰지 않거나 존중해 줄 법하지만, 이번엔 이야기가 다르다.
강중식 부장이 날 건드렸다는 건, 당연히 그의 윗사람인 박재필 고검장의 오더가 있었을 터.
내가 몰아내야 할 대상은 강중식 부장 하나만이 아니라, 그와 관련되어 있는 박재필 고검장의 라인 사람들 전부였으니까.
서류를 내려놓고 잠겨 있는 서랍을 열어, 정현우 검사가 보내온 보고서를 꺼내 윤설하가 가져온 리스트와 대조해 보았다.
부산지검에서 약점이 있는 녀석들의 이름과 그 약점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 적혀 있는 보고서.
대조를 끝내기도 전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부산지검에서 올라오는 열 명 중, 아홉 명에 대한 약점이 보고서에 적혀 있었다.
한마디로 오자마자 모가지를 날릴 수 있는 게 아홉 명이라는 뜻.
한 명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강중식 부장과 박재필 고검장이 고르고 고른 유능한 인재를 쫓아낸다는 건, 그의 손발을 자르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얼마 전,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에 배우를 쓴 것으로 인해 돈도 쓰고 경찰과의 커넥션도 끊어져 버린 녀석들에게 이번 공격은 치명타가 될 터.
정현우 검사가 독사와 고검장의 약점을 캐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본인이 맡은 일은 충분히 해내었기에 서울로 올라올 자격이 충분했다.
나는 더 고민할 것도 없이 휴대폰을 들어 부산지검으로 내려가 있는 정현우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수신음이 세 번 울리기도 전에 칼같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예,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정 검사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부산 쪽은 겨울이라도 서울보다 춥지는 않아서 버틸 만하네요.
“그러면 제가 말을 꺼내기가 죄송스러워지는데…….”
내가 장난스럽게 말을 하자, 정현우 검사는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채고는 너스레를 떨었다.
-아, 그런데 저는 추운 걸 좋아하거든요.
“하하하하하.”
크게 한번 웃음을 터뜨린 뒤, 더 끌지도 않고 곧장 본론을 이야기했다.
“정 검사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올라오시죠.”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는 희열에 찬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했다.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걸 보니, 통화를 하면서 머리까지 숙인 모양.
“검사님께서 부산에서 꾸준히 제가 원하시는 걸 들어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보답을 해야죠.”
-강중식 부장과 박재필 고검장의 뒤를 캐지 못한 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팠는데 안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죠.”
가볍게 그를 위로하고는 바로 본격적인 화제로 들어갔다.
“부산지검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검사들 리스트가 저희 손에 넘어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총 열 명인데, 그중 아홉 명이 정현우 검사님께서 정보를 파악해 놓은 녀석들이고요.”
-어허허헛, 이거 생각보다 운이 좋았네요.
“운이라니요. 부산지검에 있던 박재필과 독사 라인에 있던 녀석들을 30명 넘게 파악해 두셨는데 이건 실력이죠.”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영광입니다.
“리스트 곧바로 보내 드릴 테니까 적혀 있는 아홉 명에 대해 자세한 사항들 보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 나머지 한 명에 대해서도 남은 기간 동안 더 파악할 수 있으면 파악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부장님.
“아닙니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2021년 1월 4일 자로 발령이 나실 것이고, 올라오시면 설날 전까지 부산지검에서 올라온 녀석들을 쫓아내는 게 저희 계획입니다.”
-예. 무조건 가능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증거는 다 구해 뒀으니 절차만 밟으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든든하네요.”
전화를 마무리하려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리고 정 검사님, 들어가고 싶으신 부서는 있으신가요?”
사실, 알면서도 물어보았다.
역시나 대답은 내 예상대로.
-저는 갈 수만 있다면, 부장님께서 계신 특수부로 가고 싶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다른 부서로 가서 부장님의 눈과 귀가 되어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서울에서 뵙죠, 특수부 정현우 검사님.”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요.”
-예. 부장님도 따뜻하게 입고 다니십시오!
그의 충성스런 외침을 끝으로 전화를 마무리했다.
독사 강중식 부장.
한번 붙었으면 끝을 봐야지.
새해엔 나서지 못하도록 내가 먼저 선방을 날려 주마.
***
2021년 새해가 밝았다.
경동수 대통령이 2년 차에 접어들었고, 나와 한지유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성태현과 한지수도 마찬가지.
얼마 전에 송년회에서 만난 그는 벌써부터 결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였으니까.
내가 옆에서 응원해 줄 필요조차도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나보다 빨리 결혼을 하지도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
새해가 되며 역시나 각 관리 및 자리에 새로운 발령이 떨어졌다.
경동수 대통령이 부임한 뒤의 첫 새해이자, 총선이 끝난 직후의 첫 발령이었지만, 생각보다 검찰에는 지각변동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1번 라인과 2번 라인의 검사 수는 4 : 6 정도로 조금 밀리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힘이 받쳐 준 덕분에 균형을 맞추고 있는 상태.
부산지검에서는 내가 입수한 정보 그대로 열 명의 검사가 서울로 올라왔다.
독사만 제대로 물리치면 경동수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차장검사로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정현우 검사의 서울 입성 직후,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전성민 검사는 수영구 룸살롱에서 건설 업체로부터 불법 접대를 받은 것에 대한 CCTV 영상 기록 원본과 업소 장부의 사본을 입수해 두었고, 금정광 검사는 발바리파한테 받은 3천만 원의…….”
정현우 검사의 브리핑으로 시작된 회의에는 정확히 장하영 검사와 이두형 부부장검사 그리고 나까지 네 명만이 참석했다.
사건이 사건인 만큼, 내게 줄을 선 사람들을 챙기기엔 아주 제격인 사건이었으니까.
아마도 이번 사건을 먹고 몸집이 확실히 커질 수 있을 터.
정현우 검사는 한껏 긴장한 표정이긴 했으나, 부산에서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워낙 열심히 뛰었던 덕분에 구해 온 자료가 많아 브리핑을 진행하며 부족한 점은 없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게 하나 있었다.
“이게 서울에서 발생한 건이었다면 저희 측에서 전부 처리할 수 있겠지만, 부산지검에서 일어난 건들이라서 협조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관할구역 자체에 차이가 있어서…….”
정현우 검사의 말대로 서울중앙지검의 관할은 서울특별시에 국한되어 있다.
은밀한 수단을 쓰면 모르겠으나, 공식적으로는 부산 쪽까지 영향력을 끼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 은밀한 수단이라는 것도 이번만큼은 애매한 것이, 부산 고검에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그쪽은 박재필 검사장이 꽉 쥐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
공식적인 절차를 밟으면 그들이 돕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뭉그적대며 증거를 은닉할 시간을 주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을 터.
“암만 저희가 특수부라고 한들, 이게 감찰부의 영역이기도 하고…….”
정현우 검사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정 검사님, 제가 그 정도도 미리 생각을 못 해 놨겠습니까?”
그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나는 그걸 만족시켜 주기 위해 당당하게 말했다.
“서울고검을 이용하면 되죠.”
“고검요?”
“예. 서울로 일단 발령이 난 만큼, 부산고검만이 아니라, 서울고검까지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니까요.”
그러나 정현우 검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고검 자체는 박재필이 수장으로 있는 곳이라 더 심하지 않을까요?”
박재필이 검사장으로 있는 만큼, 서울고검은 아예 고려치도 않았던 모양.
“고검을 잡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죠.”
씨익 입꼬리를 비틀자, 조용히 지켜보던 이두형 부부장검사가 소름끼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부장님, 설마…….”
“그래, 김석원 前고검장님이 계시지.”
서울고검의 전임 검사장이자, 현 법무부장관으로 있는 인물.
그의 손길이 박재필보다 더 컸으면 컸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직위 자체가 높은 건 둘째치고, 전임 검사장으로 있으면서 휘어잡아 놓은 것까지 생각하면 박재필 검사장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또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김석원이 내게 협조한다는 건 명백한 사실, 두말하면 잔소리다.
“현재 감찰부 부장검사가 누군지 아시잖습니까?”
게다가 서울고검의 감찰부는 박승수 부장검사와 송현성 부부장검사 둘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송현성은 내 대학 동기라서 말할 것도 없고, 박승수는 내가 감찰부에 있을 때 라인을 탔던 대상 중 하나이자, 김석원의 가장 충성스러운 오른팔이다.
“법무부장관 통해서 감찰부로 지시하면, 관할구역 의미 자체가 사라집니다.”
한마디로 말해 정현우 검사가 증거를 캐낸 아홉 명의 옷을 벗기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
“바로 구속 들어가는 거죠.”
이두형 부부장검사는 몇 번이고 이런 모습을 봐 왔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정현우 검사는 자신이 준비해 온 자료였지만, 한 수 배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장하영 검사도 입을 벌리며 감탄을 내뱉다가 물었다.
“부장님께서는 다 준비를 해 두셨군요.”
“그럼요. 애들 싸움도 아니고 함부로 나서다간 제가 다칩니다.”
암만 내가 잘나간다고 한들, 검찰이라는 기관 자체가 엘리트 집단이다.
다들 명문대를 나와서 수재 소리를 듣던 인물들이기에 여기서 암만 머저리 소리를 들어도 사회에 나가면 대단한 인물로 추앙받는 게 보통.
이런 살벌한 곳인 만큼, 혹시나 빈틈을 보였다가는 날 노리는 피라냐들에게 물어뜯기고 만다.
외줄을 타고 강을 건너기 전에 연습도 없이 건너는 건 죽겠다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나는 한껏 입꼬리를 비틀며 입을 열었다.
“뱀 사냥을 시작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