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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113화 (113/341)

보증수표 (2)

성태현 의원은 말해 놓고도 미안한지,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이거 너무 곤란한 부탁을 드린 게 아닐까 싶네요.”

얼굴을 들지 못하는 그는 볼이 붉어지다 못해 귀까지 빨개지고 있었다.

“부담되시면 바로 거절하셔도 돼요. 이건 순전히 제 욕심이라서…….”

그러나 나는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차오른 완벽한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나는 한지유와 사귀면 사귈수록 결혼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점점 더 차오르고 있는 상태.

아마도 내년이면 그녀와 함께 웨딩마치를 들을 수 있겠지.

그런 상황에서 성태현이 한지수와 사귄다?

이건 정말 예상치도 못한 복덩이가 굴러들어 오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성태현은 22대 대통령으로 이 나라의 정상에 오를 인물.

그런 성태현과 가까워지는 관계를 넘어서 동서지간이 되는 것이다.

그저 친한 지인을 넘어서 가족 관계로 엮이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

말 그대로 나라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실세까지 오를 수 있게 될 터.

물론, 두 사람이 중간에 헤어진다면 이 꿈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겠지만, 실현되기라도 한다면 로또 당첨보다 더 대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둘은 헤어지지 않고 잘 사귈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니, 잘 따져 보면 이유도 충분했다.

한지수는 한지유의 동생으로 성태현이 원하는 이상형 그 자체인 데다가, 내가 만나 본 바에 의하면 성격도 호탕하고 모날 데가 없다.

게다가 한지수의 이상형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서 능력이 출중한 인물. 의지하기도 좋고, 오히려 한지수의 입장에서도 성태현이 딱 원하던 인물.

잠깐만.

“의원님이 82년생이셨나요?”

“예, 맞습니다. 개띠요.”

나이도 한지수가 이상형으로 꼽았던 띠동갑!

한지유가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둘이 이야기해 본 결과로는, 장난으로 한 말이 아니라, 정말 돌싱을 만나서 여유로운 연애를 해 보고 싶다고 했다.

노렸던 건 아니지만, 성태현도 임자가 있었다가 홀로된 인물.

이건 내 사욕이 아니더라도, 소개를 시켜줘야 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상형으로 꼽는데 만남을 주선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겠는가.

둘이 잘되도록 손 꼭 모아 바라는 것 정도는 해도 무죄지.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성태현은 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알아보니까 한지유 씨가 93년생이시더라고요. 그런데 여동생이시니까 최소한 띠동갑이라는 거니까…….”

“네. 정확히 띠동갑이에요. 처제가 94년생 개띠거든요.”

“예, 저도 압니다. 도둑놈이죠.”

그는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근데 오늘 이 말을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요.”

나는 흔쾌히 웃으며 답했다.

“한번 자리 마련해 볼게요.”

“정말요?”

성태현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느 때보다도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나는 바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지유가 괜찮다고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아, 그럼요. 지유 씨와 지수 씨 의견이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최대한 저도 힘 써 보겠습니다. 의원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는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정말 염치없는 부탁이었는데 흔쾌히 들어주셔서…….”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저는 의원님과 가족이 되고 싶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태현 의원은 해맑게 대답했다.

“잘되어서 제가 형님으로 모시게 되면 좋겠네요.”

“어휴, 됐습니다. 저보다 일곱 살이나 많으신 의원님한테 형님 소리 들으면 밥 먹다가 체하겠어요.”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핫,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제 마음대로 무조건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요. 절대 부담 갖지 마세요.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테니까요.”

“지금 표정 보니까 불발되면 엄청 실망하실 것 같은데요?”

성태현은 속마음을 들켰는지, 엄지와 검지를 모아 들어 올렸다.

“요만큼만 하겠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는 웃음이 가시지 않은 채 잔을 들어 올렸다.

“한 잔 할까요?”

“좋죠.”

***

대통령과 동서지간이라.

더할 나위 없이 꿈만 같은 이야기다.

마음 같아서는 나와 함께 합동결혼식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너무 무리하진 않기로 했다.

암만 내게 좋은 일이라고 한들, 남의 배우자까지 강요하는 건 못 쓸 일이니까.

물론, 둘 다 서로에게 어울릴 것 같으니 어필 정도는 해 볼 테지만 선은 지킬 생각이다.

한지유의 집에서 함께 단둘이 식사를 하다가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해서 소개 받고 싶다고 하시는 분이 있더라고.”

“아, 그래?”

그녀는 생각보다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탐탁지 않은 것도 아니고 좋지도 않은 애매한 표정이랄까.

이럴 땐 한지유가 배우인 게 참 곤란하다. 표정을 숨길 수 있으니 마음을 읽을 수 없달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오빠랑 같은 라인에 계시는 분이면 나이가 너무 많지 않을까?”

역시나 이 걱정을 할 줄 알았다.

“라인에 계신 분치고는 적어. 처제랑 딱 띠동갑이야.”

“아, 그래?”

한지유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면 다행이지.”

“너무 차이가 많이 날까 봐 걱정한 거야?”

“응. 근데 지수랑 띠동갑도 많긴 하다. 나보다 11살 많으신 분께 처형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니까…….”

“너도 누군지는 알 거야. 이번에 도봉구에서 재선된 성태현 국회의원. 몇 번 이야기 한 적 있는데, 기억나?”

“누군가 했더니 성태현 의원님이셨구나. 당연히 알지.”

생각보다 한지유의 반응이 괜찮았다.

“그분이라면 오빠가 정말 괜찮은 분이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응, 맞아. 나랑 오래 알았는데, 정말 성격도 좋고 호쾌하시거든. 그러니까 소개시켜 주려고 하는 거지. 암만 소개시켜 달라고 했어도 별로였으면 내가 처제 소개 못 시켜 줬을 거야.”

“그러면 난 환영이지. 오빠가 인정한 사람이라면 믿을 만할 테니까.”

그녀는 젓가락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나도 반대 많이 했는데, 여행 다녀온 뒤로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도 들어 보고 지수랑 대화도 많이 해 보니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건 걔의 취향이라서 내가 바꾸기가 힘들 것 같더라고.”

한지유는 피식 웃으며 말을 보탰다.

“그렇더라도 스무 살 넘게 차이 나서 우리 아빠랑 비슷한 나이대인 건 싫지만.”

“에이, 그 정도면 내가 소개시켜 주기 힘들지. 나도 아버지뻘한테 형님 소리 듣기는 겁난다, 야.”

“하하핫.”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사진 있어? 보고 싶은데.”

“잠깐만.”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오는 인물이라, 바로 검색해서 그나마 제일 잘 나온 사진을 보여 주었다.

사진을 확인한 한지유는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수랑 띠동갑이면 서른아홉 살 아니야?”

“맞아. 82년생 개띠.”

“근데 그 나이로 안 보이는데? 오빠보다 두세 살 위 정도로밖에 안 보여.”

“그거 나 디스하는 건 아니지?”

“디스?”

그녀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해했는지 웃음을 빵 터뜨렸다.

“아니야. 오빠는 딱 오빠 나이대로 보여.”

“다행이네.”

“대신 많이 잘생겼지. 내가 평소에 오빠 보면서 얼마나…….”

자연스레 꽁냥 대다가 다시 원래의 화제로 돌아왔다.

“어쨌든 지수한테 한번 이야기해 볼게. 사실, 물어볼 것도 없이 완전 좋다고 환영할 거야.”

“그래. 성 의원님도 좋으신 분이니까 처제한테 잘 어울릴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그녀는 말해 놓고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쿡쿡 웃었다.

“갑자기 왜 웃어?”

“아니, 우리 엄마, 아빠가 들으면 엄청 좋아하실 것 같아서. 첫째 사위는 검사, 둘째 사위는 국회의원.”

“하하하, 그건 그렇겠네.”

물론,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검사를 넘어서 검찰총장 사위, 국회의원을 넘어서 대통령 사위를 보시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

“강중식 부장이?”

“예. 자금 쪽 관련해서 부장님 뒷조사를 엄청나게 하고 다니는 모양입니다.”

공안부에 심어 놓은 1번 라인의 검사 하나가 찜찜한 얼굴로 말을 전해 왔다.

“아무래도 요즘 이를 엄청나게 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당히 하고 물러날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대놓고 내 뒤를 캐고 다닐 줄은 몰랐다.

“일단 알겠어. 김 프로는 조금 더 지켜보고 특이 사항 있으면 바로 전달해 줘.”

“알겠습니다.”

그가 보고를 끝마치고 자리를 비운 직후,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곧장 정치1번지의 임유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바로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네, 검사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유나 씨. 바쁘세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다른 게 아니라, 부탁 하나만 하려고요.”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혹시 정치1번지 부산지사에 친하고 능력 좋은 기자 없을까요?”

-부산 쪽이면…… 한 명 있긴 합니다.

워낙 강중식 부장과 회의실에서의 일화가 퍼져서 그런지, 임유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바로 파악한 모양.

-강중식 부장 때문인가요?

“네. 요즘 제 뒤를 캐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그녀는 찜찜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그럴 것 같아서 그 부산지사에 있는 동기한테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부산지검에 대한 영향력이 세서 아직까지 꽉 잡고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그 정도인가요?”

-예. 정확히는 강중식 부장보다는 그 위에 있는 박재필 검사장이 워낙 대단했던 터라…… 일단 추가적으로 한번 알아보라고 이야기 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탁드릴게요.”

-네. 이제 겨울이니까 감기 조심하시고요.

“기자님도 건강관리 잘하세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영 좋지 않은 예감이 몰아쳐 왔다.

몇 달째 뒤를 파고 있지만, 이렇게 나오지 않는 건 처음.

이거 아무래도 싸움이 골치 아파질 것 같은걸.

***

“지수는 반응 괜찮은 것 같아.”

“그래?”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반색해 버렸다.

“성 의원님도 정말로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

실제로 그랬다.

당사자 둘 모두 만나기 전부터 기대가 컸던 터라, 혹여나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성태현 의원은 사진보다 실물이 더 낫고, 성격 또한 너무 좋다고 전해 왔다.

한지유가 말하는 걸 들어 보니 한지수 또한, 대만족을 한 것 같았다.

나이 차이가 커서 어른스럽고 국회의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직업까지 갖고 있었으니까.

“지수 말 들어 보니까 이미 한 세 번 만난 것 같던데?”

“벌써?”

소개해 준 지 1주일도 안 됐는데 세 번이라니.

아무래도 서로 제대로 눈이 맞은 것 같은데?

아직 사귀기도 전에 결혼 생각이라면 김칫국을 사발째로 마시는 것이지만, 그만큼 기대가 컸다.

대통령과 가족이 된다는 건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귀족이 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혹시 둘이 눈 맞아서 우리보다 빨리 결혼하는 거 아니야?”

“와, 그러면 그것도 진짜 신기하겠다.”

“그거야말로 엄청 화제될 것 같은데? 요즘 성태현 의원님도 시민들이 엄청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아, 이번에 젊은 세대들 관련해서 좋은 법안들 많이 내고 있거든. 국회의원치고 젊으니까 소통도 많이 하시고.”

“잘됐으면 좋겠다.”

모든 게 완벽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20년 12월.

내 생애 최고로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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