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11화 (111/341)

견제 (7)

강중식 부장은 엄포를 놓았지만, 태연하게 대꾸하는 내 태도에 뭔가 찝찝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가 가자마자 나는 곧장 윤설하를 불렀다.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계약서 공개할까요?”

계약서.

독사 강중식 부장의 도발에도 내가 이토록 당당하게 어깨를 펼 수 있었던 이유였다.

다른 이와의 계약서가 아니라, 한지유와의 계약서.

정확히는 한지유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이의 계약.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인 소형섭에게 선입금하기로 했던 10억 원의 출처는 바로 한지유였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범인의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그녀에게 빌린다는 계약서로 자금의 사용 내역까지 명백하게 표기를 해 놓은 덕분에 검은돈이라는 의혹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공적인 일로 입금이 되었던 탓에 계좌에 묶은 돈을 추적해 합리적으로 회수까지 할 수 있는 방법.

한지유는 이러한 거금임에도 일말의 고민 없이 흔쾌히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공식 계약서와 따로 그녀에게 만약 돈에 손실이 생긴다면, 내가 모은 돈으로 메워 주겠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어도, 서로간의 신뢰가 극치에 달했기에 가능했던 일.

물론, 암만 부장검사라고 한들, 나 혼자서 일을 벌였다가는 검은돈을 숨기기 위해 기사가 터진 이후에 계약서를 썼다는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기에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특수부를 담당하고 있는 직속 상사인 권형기 차장검사를 거쳐, 서기웅 검사장의 승인까지 받은 계약.

절차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던 터라 언론에 이 계약서가 공개되면 오히려 나와 한지유의 끈끈한 관계에 대해 시민들의 감탄사가 나왔으면 나왔지, 의혹이라는 건 생길 염려가 전혀 없었다.

“미리 준비만 해 놓고 내일 터뜨리죠.”

윤설하의 눈을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활활 타오를 때 터뜨려야 더 반응이 좋지 않겠어요?”

“그러면 뒤늦게 수습하려고 만든 거라는 의견도 나오지 않을까요?”

“그럴까 봐 미리 조치를 다 해 놨죠.”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걱정되는 감이 없지 않았다.

실제로 서기웅 검사장이나 권형기 차장, 윤설하와 한지유 그리고 나까지 단 다섯 명만이 알고 있는 데다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에 외부로는 전혀 퍼지지 않았을 터.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만한 상황.

“그러면 슬쩍 언질만 흘려 놓도록 하죠. 이건 제가 아는 기자 분 통해서 따로 진행할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윤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문제없을 것이라는 뉘앙스로 내일 오전 9시에 기자회견 한다고 말해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의심은 줄어들 테니까요.”

“예.”

그녀가 떠난 뒤, 나는 곧장 박수형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준 씨. 오랜만이네요.

“예, 수형 씨. 바쁘세요?”

-아니요.

그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서준 씨 실드를 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어떻게 할까요?

“굳이 실드까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문제가 없을 거니까요.”

-역시 서준 씨예요. 문제가 생기리라는 의심도 안 했습니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수형 씨, 익명의 검찰 관계자 제보에 의하면, 내일 기자회견에서 국민분들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다. 이런 뉘앙스로 기사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부탁이라니요.

그는 달가운 목소리를 드러냈다.

-이런 건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하하하, 그런가요?”

-네. 정말입니다.

그도 한껏 웃은 뒤에 말을 이었다.

-1시간 내로 기사 올라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내일 기자회견에서 뵙죠.”

그와의 전화를 끊으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내일 기자회견을 본 강중식 부장의 표정이 어떨지 기대되는데?

***

“모든 사실관계 조사가 끝나면 밝히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었으나, 논란이 가열되기 전에 밝히기 위해 계약서를 공개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지유의 신상 정보가 적혀 있는 부분을 포스트잇으로 가린 계약서의 원본을 기자회견에서 공개했다.

내가 작성한 만큼,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한지유 또한 내 눈치를 봐서가 아니라, 흔쾌히 동의했기에 꼬투리를 잡을 여지가 없었다.

“현재 범인의 부모님 계좌로 입금된 10억 원은 해당 계좌에서 동결이 된 상태이며, 사건이 끝난 직후 한지유 씨에게 전부 되돌아갈 예정입니다.”

지상파에서 생중계를 하고 있기에, 해당 카메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제가 거짓 자백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의심을 할 수도 있기에 영상 또한 준비해 뒀습니다. 해당 영상은 언론에 공개할 수는 없지만, 법정에서 공개를 될 예정입니다.”

25억 원을 지급해 준다는 이야기 자체가 조사실에서 진행된 만큼, 전부 녹화와 녹음이 되어 있었다.

물론, 이 영상이 언론에 공개될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소형섭을 때리고 위협한 부분이 들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녀석이 뒤늦게 강요에 의한 자백이라고 말을 바꾸는 걸 방지하기 위함.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이제는 소형섭도 진술을 바꾸지 못할 테지.

몇 번 발악을 하다가 법원에 가기 전에 결국 포기하고 말 터.

독사의 공격에 대한 완벽한 방어이자, 이번 사건에서 더 이상 변동되지 않는다는 마침표를 찍는 것과 다름없는 기자회견이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여기서 끝내기는 뭔가 아쉬운 느낌.

방어만 하면 서운하지 않겠는가?

“이번 사건이 완전히 종료된 직후에 공개했다면 더욱 완벽했을 테지만, 중간에 트루미디어에서 해당 사실을 일찍이 공개해 버린 탓에 소형섭과의 협조에 조금 어려움이 생길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 미리 말씀을 해 주셨다면, 충분히 설명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 탓에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으로 국민을 농락한 이들에 대한 처벌이 조금 더 늦어질 것 같아 아쉬움이 생깁니다.”

겉으로는 아쉽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지탄하는 것이었다.

트루미디어 때문에 일이 꼬였다는 뜻으로.

이 말 한마디로 인해 나의 검은돈 의혹으로 뿔이 났던 국민들의 화살은 소형섭과 김병태 경감 둘 만이 아니라, 트루미디어로까지 쏘아져 나갈 터.

독사에게 붙어 나를 건드렸던 죗값은 톡톡히 치러야 하지 않겠어?

나는 속내를 숨기고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감사합니다.”

***

“허어…….”

“그게 한지유 씨 돈이었다니.”

“아니, 선배님들. 이런 건 영화에서나 보던 것 아니었습니까?”

한데 모여서 기자회견을 보던 특수부의 검사들과 수사관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함께 있는 이들 중에서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인물은 윤설하밖에 없었으니까.

검사들은 물론이고 수사관들 또한 저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두형 부부장의 수사관인 박철웅 수사관은 윤설하를 향해 물었다.

“윤 박사는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아, 네. 저는 당연히…….”

그녀는 살포시 짓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입을 다물지 못하던 장하영 검사는 헛웃음을 흘리며 이두형 부부장검사에게 물었다.

“부부장님, 이게 가능하긴 한 거예요? 일반인과 금전적인 협력이라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론상 가능하긴 해. 민간인 또는 민영업체와 협력하는 거니까. 다만, 이렇게 큰돈이 오갈 때 흔쾌히 움직이는 사람이나 업체가 없으니 안 하는 거지. 한다고 해서 이득도 없고.”

“아, 그런가요?”

“응. 그런데 사실상 까놓고 말하자면, 이런 일이 있으면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거의 다 뒤로 은밀하게 처리하지. 검은돈 받고 해결하거나 그런 식으로…….”

장하영 검사는 그 순간, 눈이 똥그랗게 커졌다.

“그러면, 부부장님. 이건 설마 부장님께서…….”

“그래, 큰 그림 그리신 거지.”

이두형 부부장은 말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터뜨릴 걸 알고 일부러 공식적으로 처리하신 거야.”

“지금 이 상황까지 전부 예측하신 거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그 말을 끝으로 실내엔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누구도 최서준이 이러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조용히 듣던 1번 라인의 검사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트루미디어면 독사 쪽에서 움직인 거겠죠?”

“100퍼센트지.”

“이 자식들 진짜 더럽게 노네요. 얼마 전에 박민우 검사한테 빨대 꽂아서 정보를 빼 가더니만…….”

“그래서 부장님이 박민우 징계 먹이고 쫓아낸 거잖아. 많이 참으시다가 결국 이번 건으로 날려 보낸 거지.”

그때, 이두형 부부장검사의 머릿속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이거 일부러 다른 검사들이 배신했다간 박민우 꼴이 난다고 경고하기 위해 이런 그림을 만든 건가?’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최서준 부장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아니,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자네들도 헛생각하지 마.”

“어휴, 부부장님 저희는 어떻게든 부장님 눈에 들어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맞아요. 부부장님께서 이야기 좀 잘 해 주십시오.”

자연스레 장하영 검사와 이두형 부부장검사의 눈이 마주쳤다.

장하영 검사는 입을 가리며 피어나는 미소를 숨겼고, 이두형 부부장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 해. 내가 말 안 해도 부장님이 다 알아서 챙겨 주실 거야.”

“아, 저희는 언제쯤 부장님 눈에 들려나 모르겠습니다.”

그때, 뉴스에서 보내 주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다음 토픽으로 넘어갔고, 이두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기자회견도 끝났으니 다들 일하러 가자고. 빨리 처리해서 우리 부장님 기 세워 드려야지.”

검사들과 수사관들은 최서준에 대한 감탄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강중식 부장과 2번 라인에 소속된 부장검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내내 침묵만 지키다가 결국 아나운서의 얼굴이 TV에 나오자, 과학기술범죄수사부의 채종민 부장이 리모컨으로 TV를 끄며 한숨을 내뱉었다.

“강 부장.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검은돈이라고 확신하던 그 묘수까지 이렇게 막혀 버렸네.”

그는 헛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아니, 설계에 완벽하게 당한 것이라고 봐야지.”

강중식 부장은 열이 받는 건 둘째치고 수치심이 몰려왔다.

녀석의 계획대로 놀아난 줄도 모르고 사무실까지 찾아가서 조롱하려고 했으니까.

어제 자신을 볼 때 얼마나 우스웠을까에 대해 생각하자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게다가 채종민 부장검사를 필두로 다른 라인 검사들까지 자신에게 눈총을 주고 있는 상황.

그는 최서준에 대한 분노가 더 쌓일 수 없을 정도로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정말 만나면 멱살이라도 쥐고 흔들고 싶을 정도.

강중식 부장은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 녀석 스타일상, 검은돈을 안 받았을 리가 없습니다. 꼭 캐내 오도록 하죠.”

그러나 채종민 부장검사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녀석이 검은돈 받았다고 해도, 쉽게 못 건드려. 그거 건드는 순간, 사생결단이야. 자네 감당할 수 있겠어?”

그러나 강중식 부장은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

“예. 제가 죽든, 최서준이 죽든 결판을 내야겠습니다.”

자신을 내려다보던 최서준의 조소를 떠올린 강중식 부장은 팔걸이가 부러질 정도로 세게 쥐었다.

‘내가 꼭 무너뜨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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