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 (3)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검찰로 송치 완료…… 과연 피해자들의 원한을 풀어 줄까?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의 특별수사부로 송치되었다. 최서준 부장검사가 이끌고 있는 특별수사부는 몇 년 전, 심판자 사건을 해결하며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처리 능력을 검증하면서 이번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여섯 명의 부녀자들을 강간 및 살해한 혐의로 잡힌 범인으로 죄질이 매우 나쁘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략)……. 피해자들의 원한을 푸는 방법은 피의자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벌하는 것뿐. 피의자에 대한 중형 선고가 시급하다. 하루빨리 검찰에서 범인에게 실형을 선고해 피해자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안기기를 바라는 바이다.
-트루미디어 최윤경 기자
“이거 아무래도 피해자들의 아우성이 크다 보니,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윤설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언론에서 하나둘씩 때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여론으로 번지는 건 순식간이라…….”
그녀는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자료들을 펼치며 말했다.
“범인도 자신이 했다고 자백을 하고 있기도 하고, 일단 경찰에서는 증거도 확실하다고 하니까 공판부랑 함께 진행할까요?”
“흐음…….”
뭔가 찜찜했다.
분명 증거는 확실하고, 정황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사건과 증거가 너무나도 딱딱 맞아떨어지는 상태.
그래서 더욱 꺼림칙했다.
이렇게 증거가 완벽한데 여섯 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동안 범인의 윤곽도 잡지 못하다가 갑자기 범인을 검거했다는 게 수상하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건, 방금 포털 사이트에 뜬 트루미디어의 기사.
“수사관님.”
“예?”
“저번에 독사가 서부지검 세 개 부서 박살 낼 때 제일 먼저 기사 낸 곳이 어디였죠?”
그는 잠깐 머릿속을 되짚은 뒤 대답했다.
“트루미디어였습니다.”
윤설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장님께서 걱정하시는 바는 알겠으나,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죠.”
내가 박수형 기자와 손을 잡았다고 한들, WK일보에서 내는 모든 기사가 나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왜 자꾸 이번 건은 마음에 걸리는지 모르겠네요.”
트루미디어에서 이런 식으로 기사를 때리면 사건을 맡은 입장에서는 당연히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오래 끌면 끌수록 ‘경찰이 판을 다 깔아 놨는데 검찰은 다 차려 놓은 밥상을 제대로 떠먹지도 못한다.’며 무능하다는 소리가 나올 게 뻔한 상황.
그것도 모자라, 이 사건을 맡을 때는 공안부보다 빠르게 해결한다고 이야기까지 했던 참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가는 서기웅 검사장이 실망을 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빠르고 신속하게까지는 좋으나, 그게 급하게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독사 강중식 부장이 회의에서부터 계속해서 자신이 사건을 맡으면 빨리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던 게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주변에 있는 모든 상황이 이번 사건을 빨리빨리 해결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있으니까.
서두르다가는 왠지 모르게 독사에게 말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함정을 깔았는지, 아니면 내가 혼자서 과민 반응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야 할 때가 있는 법.
법무부장관에 김석원이 올라가면서 온갖 날개를 달았다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나서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한 번 고꾸라지는 순간, 지금 쌓아 놓은 게 단번에 무너지는 법이니까.
사실, 회의실에서 그렇게 빨리 처리할 수 있다고 신신당부를 해 놨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망신을 당하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사관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기에 윤설하는 내 의견을 따랐다.
어디까지나 최종 결정권자는 나였으니까.
“그러면 공판부랑 동시에 진행하지 말고 저희 쪽에서 추가적으로 조사를 진행해 볼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이번엔 도저히 찜찜해서 안 되겠습니다.”
“예. 그러면 추가 인력 보강해서 증거 신빙성과 정황 자료들 추가로 파악하고, 진범이 맞는지 확정 짓고 나서 공판부에 넘기기로 했다고 전달하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라도 찜찜하지 않도록 꼼꼼히 진행하겠습니다.”
“예.”
***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 검찰 조사 난항 겪나?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지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검찰에서는 그렇다 할 만한 수사 진행 내용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의 유가족들은 하루빨리 범인이 법의 심판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으나, 이 사건을 넘겨받은 특별수사부에서는 아직까지 갈피를 잡지 못한 모양. ……(중략)……. 스타 검사라 불리는 최서준이 부장검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사건을 직접 도맡아 수사하고 있는 만큼, 어떤 결과를 가지고 나올지 기대가 된다는 의견도 있으나, 지금까지 거침없이 사건을 진행하고 해결했던 모습과 달리 조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모습이라 많은 시민들은 혹시나 일이 잘못되지 않을까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증거를 분실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검찰 조사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시민이 많아진 상황. 특수부와 최서준 부장검사는 하루빨리 사건에 대한 내용을 발표해 유가족들의 걱정을 덜어 주길 바란다.
-팩트펀치 박해윤 기자
“이거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데?”
신문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채종민 부장검사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오히려 더 천천히 진행하고 있잖아.”
은밀한 호텔방에 모여 있는 2번 라인 소속의 부장검사들은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언론에서 최서준과 특수부를 비꼬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고 있지만, 그게 불만인 것 같은 모습들.
“최서준 스타일상, 열이 받아서라도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게 정상인데…….”
“아무래도 최서준 이 자식, 눈치챈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도 위험해지는 거 아니야?”
조용히 듣고 있던 공안부의 강중식 부장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는 딱 잘라 말하며 설명했다.
“최서준이 알아챈다고 한들, 저희가 연루되었다는 걸 증명할 수가 없죠. 기껏해야 심증이 전부입니다.”
“그렇긴 한다지만, 이거 잘못하면 오히려 최서준이 스포트라이트만 받도록 도와주는 꼴이 되는 거잖아.”
채종민 부장의 말에 다시금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강중식 부장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십시오. 최서준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왜, 무슨 장치라도 있어?”
“암만 자신에게 덫을 놓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들, 제가 처음부터 경찰과 손을 잡고 움직인 건지, 배우를 썼다는 걸 중간에 알아채서 이용한 건지는 모를 거 아닙니까?”
그는 이미 계산을 끝낸 덕분에 편하게 말했다.
“후자일 경우에는 경찰들이 영문도 모르고 줄줄이 잘려 나가는 건데, 최서준이 그런 험한 꼴까지 보려고 하겠습니까?”
강중식 부장은 당당하리만치 이야기했지만, 채종민 부장검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서준은 충분히 그럴 만한 인물인데…….”
“자신을 모함하려고 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이들을 공격한다고요?”
“일단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하니까 말이지.”
“설마, 그러겠습니까?”
이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강중식 부장은 최서준이 경찰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처음부터 경찰과 손을 잡고 시나리오를 그리며 배우를 쓰라고 한 것이었으니까.
“한번 지켜보죠. 건드는지 안 건드는지.”
강중식 부장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
“따라서 피의자는 자신이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이라고 자백까지 한 상태입니다. 신빙성은 꽤나 높은 걸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두형 부부장은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이어 나가다가 찜찜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모든 게 정황증거와 맞아떨어지는데, 딱 하나 걸리는 게 있습니다.”
“뭔데?”
“세 번째 사건이었던 부평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피의자는 자신이 살해를 저질렀다고 하는데, 해당 사건이 벌어진 시간에 그의 소유 차량이 부산의 교통용 CCTV에서 찍힌 걸 발견했습니다.”
“본인이 운전한 거야?”
“화질이 좋지 않아서 운전석에 탄 인물은 보이지 않지만, 국세청 확인 결과, 당시 부산에서 그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한 내역이 있습니다.”
“이 사항은 경찰에서 넘어온 게 아니지?”
“그렇습니다. 전부 저희 쪽에서 확인한 사실이고, 내부자들 외에는 모르는 사실입니다. 피의자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요.”
“그래?”
한쪽에 앉아 있던 윤설하를 불렀다.
“설하 씨, 혹시 피의자 통장 내역 살펴본 것 중에 특이 사항 있었어요?”
“통장 내역에 특이 사항은 없었습니다.”
“대출 사항은 확인했어요?”
“사채 빚이 꽤 있었는데, 검거되기 1주일 전에 전부 갚았습니다.”
“돈의 출처는요?”
“피의자 본인의 말로는 불법 스포츠 토토로 돈을 따서 마련했다고 하는데, 해당 사이트는 폐쇄되어서 확인이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대출 내역 가져와 봐요.”
윤설하가 넘긴 피의자의 대출 내역을 확인하는 순간, 바로 직감이 왔다.
“이 자식 진범 아닌 것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몰렸다.
“확실해. 이거 배우 쓴 거네.”
“배우요?”
장하영 검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혹시 그 영화에서만 보던…….”
“그래. 돈 받고 대신 감방 들어가는 거 말이야. 피의자 이 새끼, 이거 본인이랑 자기 부모님 앞에 있던 사채 빚을 검거되기 1주일 전에 다 갚았어.”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3억 가까이 되는 빚을 어떻게 토토 한 방으로 다 갚아? 100퍼센트지.”
이제야 머릿속에 퍼즐이 맞춰졌다.
독사, 이 새끼. 내가 이걸 놓치고 갈 줄 알고 그렇게 사건 진행 속도를 올리려고 했던 거였구먼.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제대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공판부로 넘겼으면,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는 캐치하지 못했을 터.
이걸 노리고 회의실에서 그 지랄을 하고서 트루미디어를 이용해 그런 기사까지 쓴 것일 테지.
만약 내가 녀석들의 계략에 넘어갔다면, 경찰이 다시 수사를 해 보니 지금 용의자는 진범이 아니라고 발표하면서 내게 망신살을 주는 것과 동시에 최서준이라는 인물의 이미지를 ‘실적을 쌓기 위해 애꿎은 인물을 연쇄살인마로 몬 파렴치한’으로 몰아 버리려고 했을 게 분명하다.
머릿속에 훤히 그림이 그려진다.
암만, 나를 저격하려고 했다지만, 이렇게 국민의 관심이 쏠린 사건에 배우를 이용해서 농락을 하려고 하다니.
이건 최서준이라는 인간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한 명의 국민으로서 용납이 되지 않는 사건이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 상황에서는 나를 잡으려고 독사가 배우를 쓴 건지, 아니면 경찰이 배우를 썼다는 걸 독사가 알아채고 이용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순수하게 가능성만 따지자면, 후자. 경찰이 언론에서 하도 물어뜯긴 탓에 배우를 쓰고 이번 건을 독사가 우연찮게 알아채며 이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더 높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독사와 관련이 있든, 없든 간에 나를 함정에 빠뜨릴 만한 구실을 줬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심기에 거슬렸으니까.
전부 조져 버릴 것이다. 한 놈도 빠짐없이.
나는 그대로 자료를 덮고 회의실에 있는 검사들을 향해 말했다.
“이거 경찰에서 수사했던 놈들이랑 검거했던 놈들…… 아니,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경찰들 전부 영장 때릴 준비해. 이 미친놈들, 콩밥 먹어야 정신을 차릴 테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 직접 피의자 만나서 결판 짓고 온다. 오더 내리면 바로 이행할 수 있도록 아주 완벽하게 준비 끝내 둬. 장하영 검사는 그 사채업자들 만나서 돈 추적해서 자금 출처 확인해 보고. 아마 안 나올 건데, 그래도 알아봐 봐.”
“알겠습니다.”
검사들을 뒤로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독사 이 새끼가 감히 함정을 파?
날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