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03화 (103/341)

날개 (6)

“내 날개가 되어 줄 사람이라…….”

경동수 대통령에게 들었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되뇌어졌다.

내가 홍형주를 끌어내리면, 그는 분명 빈자리에 나의 날개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한다고 했다.

그러나 며칠째 내 머릿속엔 떠오르는 인물이 전혀 없었다.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하면, 아마도 1번 라인 측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법조계와 관련이 없는 성태현 의원을 갑자기 법무부장관으로 올릴 리도 없고.

실제로 홍형주 장관을 끌어내리기 전에 누가 법무부장관으로 올라올지는 미리 알아 두는 게 좋을 텐데.

그러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오지 않아 결국 라인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도비 호텔로 향했다.

37층의 펜트하우스 안에 들어가자,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은 활기를 띠고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

간만에 얼굴을 비춘 탓에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천천히 인사를 하며 내부를 활보하고 있는데, 문득 어떤 이의 목소리가 내 귀에 꽂혀 왔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 법무부장관이랑 친해지면 진짜 제대로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이러다가 나가리가 되면 그건 또 시간 낭비에 돈 낭비까지 되니까 섣불리 나설 수가 없는 게 문제죠.”

나는 곧장 대화가 들려오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들.”

자연스레 인사를 하며 대화에 합류했다.

“아, 최 부장 왔는가?”

“예, 오랜만에 뵙네요. 건강하셨죠?”

“그럼. 자네도 안색이 훨씬 좋아졌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는 곧바로 원래 화제로 돌아갔다.

“지나가다가 잠깐 법무부장관 이야기가 들려서…… 요새 법무부장관에 관해서 한창 말이 많더라고요.”

의원 하나가 동의를 표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요즘 법무부장관이 한창 위기잖아.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살아날 확률이 반반 정도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지금 시점에 홍 장관에게 도움을 줬는데, 만약 살아나면 정말 굳건한 관계로 다시 서는 것일 테니 한번 노려볼 만하지 않을까 하거든.”

그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의원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위기에서 손을 뻗어 주는 것만큼 기억에 남는 게 없잖아.”

“그런데 문제는 혹시나 홍 장관이 여기서 잘려 나간다면, 말 그대로 우리가 나가리가 된다는 거지.”

한마디로 말해서 홍형주를 도와줄까, 말까 논의를 하고 있었다는 뜻.

위기에 몰린 홍형주와 손을 잡았다가 그가 다시 위기에서 벗어난다면, 그와 커넥션이 엄청나게 굳건해질 테고 자연스레 큰 힘이 되어 줄 테니까.

물론, 이건 결과를 모를 때나 고민할 내용.

“제가 딱 결정해 드리죠.”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포기하세요. 홍형주 장관 곧 내려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원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혹시 최 부장 무슨 소스라도 들은 건가?”

“예. 사실은…….”

나는 씁쓸한 척 숨을 들이마시며 대답했다.

“제가 법무부장관 모가지를 날리는 칼자루가 됐거든요.”

“뭐?”

“최 부장이?”

칼자루가 되었다는 말에 의원들은 하나같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어쩌다가 자네가…….”

놀라움도 잠시, 이내 의원들은 걱정하는 눈빛을 드러냈다.

“최 부장, 괜찮은 거야?”

“다른 장관도 아니고 법무부면…….”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경동수와 나의 커넥션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이 의원들은 내가 폭탄을 껴안은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도 그럴 것이 법무부장관이 장닭이라면, 부장검사는 이제 막 알에서 부화한 병아리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차하다가는 내 목숨 줄이 끊길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설명했다.

“법무부장관에 대한 말이 하도 많아서 처리는 해야겠는데 법무부장관이 경동수 라인이니, 같은 라인에 붙은 검사들에게는 맡기기 어려웠겠죠.”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보탰다.

“그렇다고 일반 검사들에게 붙였다가는 홍형주 장관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고. 그나마 잡을 수 있으면서도 여론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저한테 넘긴 것 같습니다.”

“처리할 수 있겠어?”

“어떻게든 해야죠. 저한테 넘어온 걸 보면, 경동수도 홍형주를 포기한 것 같으니까 아마 박살 낼 수 있을 겁니다.”

속내를 숨기고 앓는 소리를 냈다.

이 정도면 우리 라인에서는 경동수가 내게 기회를 준 게 아니라, 오히려 견제하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더욱더 최규현 전 국무총리의 의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밑밥은 어느 정도 깔았으니, 본래 내 목적을 드러냈다.

“아, 그런데 홍형주 장관이 내려가면 법무부장관의 빈자리에 누가 올라올 것 같습니까?”

“흐음…….”

다들 천천히 머릿속을 되짚었다.

“아무래도 2번 라인 측 사람이 아닐까?”

“경동수 내각이 어느 정도의 균형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홍형주 장관은 2번 라인 측 사람이었으니 그 빈자리를 메우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라인 측에서는 올라오실 만한 분은 없습니까?”

“올라올 만한 인물은 많지.”

조용히 듣던 의원 하나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근데 경동수가 꽂아 줄 거냐, 아니냐가 문제지.”

“대충 리스트라도 뽑자면 누가 있을까요?”

“지금 선거관리위원장인 박수호나 양형위원회 강태평도 있지.”

그의 말에 주변 의원들은 법무부장관의 후보들을 주르륵 나열했다.

“검사장 출신으로 한울림 로펌에 있는 최백기도 꽤 유력하지 않나?”

“예전에 광주지검장이었던…….”

의원들은 제각기 아는 이름들을 나열하기 시작했지만, 나와 친분이 있다고 할 만한 인물들은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다.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이 대체 누굴까.

경동수가 알고 있을 만한 내 인맥 중에 법무부장관으로 올라갈 만한 급이 없는 것 같은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들어도 여전히 차기 법무부장관에 대한 추측은 오리무중이었기에 결국 의원들을 뒤로하고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차기 법무부장관에 대해서는 시간을 더 두고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잠깐 창밖을 보며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최 검사님!”

뒤에서 성태현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아, 의원님 간만에 뵙네요.”

그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쪽에서 엄청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던데.”

그는 조금 전에 내가 있던 곳을 향해 슬쩍 턱짓을 하며 말했다.

“뭐 물어볼 게 있어서요. 혹시 의원님은 차기 법무부장관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글쎄요. 제가 법조계는 인맥이 거의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그럴 수 있죠.”

성태현은 자신의 무릎에 걸친 손을 비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얼마 전에 여행 다녀오신 것 같던데.”

“아, 어떻게 아셨습니까?”

“프로필 사진으로 봤습니다. 처가댁 식구들이랑 다녀오신 것 같던데요.”

“맞습니다. 이번에 동남아 쪽으로 다녀왔습니다. 지유가 늘 가고 싶어 하던 곳이라서요.”

괜히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건 자랑해야 된다고 직접 제 휴대폰으로 프로필 사진에 등록해 줘서…… 하핫.”

“정말 보기 좋더라고요.”

“감사합니다.”

그는 스읍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무언가 말하려는 것 같은데.

한 3초 정도 정적이 일었을까.

성태현은 어깨에 힘을 풀며 입을 열었다.

“국수는 언제쯤 먹여 주시려고 하십니까?”

그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왠지 모르게 무언가 말하려다가 갑자기 내용을 바꿨다는 직감이 드는데.

다시 물어볼까 생각하다가 중요한 내용이라면 나중에 말하겠지 싶어서 묻지 않고 대화를 이어 갔다.

“모르겠습니다. 만나시는 분들마다 다 그 이야기네요.”

“얼른 결혼하셔야죠. 제가 축의금 두둑이 챙기겠습니다.”

“오, 그건 기대되는데요?”

크게 웃으며 그에게도 물었다.

“성 의원님은 아직 방랑자의 신분이 더 좋으신 겁니까?”

“이제 슬슬 정착하고 싶은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그는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좋은 여성분만 있다면 말이죠.”

***

“어휴, 이게 다 뭐야?”

자료를 확인하자마자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지금 보고 있는 서류는 법무부 홍형주 장관의 사건 파일들.

인사청문회와 관련된 내용부터 시작해서 온갖 비리들이 만연하게 적혀 있었다.

내가 법무부장관 서류를 보고 있는 건지, 범죄자의 경력서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

“이 정도면 임성진이랑 비슷한 수준인데요.”

윤설하의 입에서 임성진이라는 단어가 몇 년 만에 나온 것 같다.

“이건 저희가 칼을 빼 드는 게 아니라, 툭 치기만 해도 쓰러지겠는데요?”

“그러게요. 게다가 이미 청문회에서 다 논란이 되었던 것들이라서 화제성도 클 테고요.”

“지금까지 덮었다는 게 대단할 따름이네요.”

윤설하는 혀를 내둘렀다.

“이거 다 까발리면 같이 끌려 들어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한데, 그건 최대한 막으려고요.”

왜냐고 묻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에게 설명했다.

“VIP께서 웬만하면 일이 커지지 않는 선에서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윤설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같은 라인이라서 챙기는 거군요.”

“예. 어차피 홍형주 장관에 대한 논란이 크기도 했고, 검사가 법무부장관을 치는 거라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적당한 선에서 화제성만 챙기면 되는 거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사건 리스트 한번 뽑아 볼까요?”

“아니요. 그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묻을 건과 밝힐 건 구별해서 보내 드릴 테니까, 그에 관련된 서류만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윤설하는 고개를 꾸벅였다.

“아, 그리고.”

나는 서류를 옆으로 밀며 그녀를 가까이 불렀다.

“장하영 검사는 어떻습니까?”

장하영 검사.

이두형 부부장검사가 데려오긴 했으나,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에 관한 뒷조사를 윤설하에게 맡겨 두었다.

물론, 이두형 부부장검사가 모르는 선에서.

윤설하는 안주머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간단히 정리해 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면 될 거고…….”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특별한 사항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성 검사라서 특수부에 오기 전까지 차별을 꽤나 많이 받았던 것 같더라고요. 대학이나 연수원을 포함해서요.”

“그렇습니까?”

“예. 그래서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는 생각으로 출세에 관해서 완전히 독기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 관계는요?”

“남동생이 하나 있긴 한데,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동생입니다. 얼마 전에 현역으로 입대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고요.”

“그렇군요.”

장하영 검사도 내 사람이 될 인물.

그 사람에게 충성심을 갖게 하기 좋은 건수로는 가족들에게 잘해 주는 일만큼 더 좋은 게 없지.

라인 측에 장성급 군인들도 꽤나 있으니 넌지시 이야기라도 해 봐야 할 것 같다.

“동생 관련한 프로필도 구해 주시겠어요?”

윤설하는 눈을 찡긋거리며 방금 전에 건넨 서류를 가리켰다.

“거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척하면 착이라니까.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가 건넨 서류를 확인했다.

윤설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더 지시하실 내용 있으신가요?”

“아, 하나만 더요.”

슬쩍 눈을 돌려 문이 닫혀 있는 걸 확인하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독사…… 공안부 강중식 부장말입니다.”

“제 앞에서는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독사, 그 자식은 뭐 보이는 틈 같은 거 없습니까?”

“아직 조사 중이긴 한데, 크게 보이는 건 없습니다. 혹시 사람을 더 붙여 볼까요?”

“아니요. 아직까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게 좋아요. 당분간은 설하 씨 혼자서 한번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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