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3)
“내일부터 휴가시죠?”
“예. 금요일부터 다음 주 월, 화 쉬고 수요일에 출근할 겁니다.”
“이야, 검사님이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 비우시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런가요?”
“네. 게다가 간만의 휴가라 그런지 얼굴에도 화색이 아주 가득하세요.”
윤설하는 부러움의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해외로 가신다고 했죠?”
“네. 동남아 쪽에 가요.”
“근데 지금 시기면 진짜 더울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바닷가이기도 하고, 멀리 안 나가고 호텔에 있을 거라서 괜찮아요.”
“아, 그러면 걱정할 것도 없죠.”
나는 서류 가방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야 하는 건들은 이두형 부부장한테 인수인계해 놨으니까 처리해 주시면 될 거예요.”
“저 서류상 소속은 이두형 부부장님한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으신 건 아니죠?”
“아, 그러네. 다 알고 계시겠구나.”
“그럼요.”
“공식적인 일 외에 딱히 해야 할 일은 없으니까 여유롭게 지내시고, 혹여나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바로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먼저 가 볼게요.”
윤설하에게 인사를 하고 검찰청을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자, 때마침 앞을 지나가던 독사, 강중식 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특수부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잠깐 박 검사님한테 일이 있어 가지고.”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옆에 있던 박 검사를 가리켰다.
박 검사라…….
특수부에 몇 없는 2번 라인으로, 우리 부서에서 제일 내게 충성심이 없는 인간인데.
둘이 만나는 건 꽤나 미심쩍은 일이었다.
강중식 부장은 태연하게 물었다.
“우연히 들었는데, 여행 가시나 봐요.”
“네. 연차 내고 다녀오려고요.”
“이야, 부럽습니다.”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슬쩍 물었다.
“제가 자리 비우는 동안 무슨 일 터지는 건 아니겠죠?”
“에이, 그러겠습니까?”
독사는 능글맞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일이 생겨도 제가 처리해 드릴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시죠.”
“말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네, 그러면 재밌게 다녀오십시오.”
“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를 뒤로하고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억지로 짓고 있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독사 이 인간.
눈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지않은 시점에 한번 부딪칠 게 분명했다.
미리 준비를 해야겠어.
***
“어, 최 서방.”
한지유의 부모님은 아주 반갑게 날 맞이해 주셨다.
호칭도 친근하게 최 서방이 되었고, 몇 번 만나지 않았음에도 어머님, 아버님이 아니라 장모님과 장인어른으로 부르라고 먼저 말해 주셨을 정도.
한지유가 연예인인지라 가수나 배우 사위를 맞이할 줄 알았는데 사 자 직업을 가진 사위. 그것도 전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검사 사위라는 사실이 처부모의 마음을 열기에 아주 큰 역할을 한 것 같았다.
이전에 인사를 드리고 식사도 몇 번 했지만, 이번 3박 4일의 여행처럼 오래도록 함께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긴장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행선지는 코타키나발루.
말레이시아에 있는 바닷가의 도시로, 말 그대로 휴양지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여행지다.
나는 외국에 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지만, 한지유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터라 동남아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 쉽게 움직일 수가 없기에 호캉스를 보낼 예정이었다.
물론, 주변에 있는 바닷가에도 놀러 갈 테지만.
***
코타키나발루의 근사한 호텔에서 저녁을 먹으며 와인을 한 잔 걸치신 장모님은 친근하게 날 바라보며 물어보셨다.
“최 서방, 식은 언제쯤 올리려고?”
“어허, 이 사람이.”
장인어른이 눈치를 주었지만, 이 집안의 실권은 장모님께 있었다.
“뭐, 어때요.”
와인의 취기 덕분인지, 장모님은 한껏 볼이 달아오른 채로 말씀하셨다.
“난 최 서방이 얼른 우리 가족이 됐으면 좋겠어.”
한지유는 손사래를 쳤다.
“아, 엄마. 오빠 부담스러워해.”
“최 서방, 부담스럽나?”
예.
물론, 이건 속마음.
“아닙니다. 저도 최대한 빨리 하고 싶은데, 요즘 워낙 일이 바빠서 정신이 없어 가지고 여유가 없네요.”
한지유의 여동생 한지수가 장난기 넘치는 눈빛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형부, 아직 프러포즈도 안 하셨죠?”
그녀는 형부라는 호칭이 입에 익지 않은지, 왠지 모르게 어색함이 들어 있었다.
물론,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기에 호칭 정리가 완벽하게 되지 않기도 했고.
한지수가 던진 프러포즈라는 말에 나는 머쓱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 그런 게 뭐가 중요해.”
한지유는 손을 휘휘 저으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서준 오빠 부담스러우니까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만 한지수는 이야기를 끝낼 생각이 없는지 배시시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는 꼭 칠석날에 결혼하고 싶대요. 완전 옛날 사람이라니까.”
한지유는 괜히 민망함에 눈을 부라렸다.
“야, 너…….”
“그건 맞잖아. 언니가 늘 칠석, 칠석 노래를 불러 놓고.”
“내 데뷔 작품이 견우와 직녀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감명받아서 그래.”
칠석이라.
미래 문자에서 보았던 내 결혼기념일도 칠석이라고 했다.
미래 문자의 2041년 8월 14일이 결혼 20주년이라고 했으니, 거꾸로 계산을 해 본 결과 2021년 8월 14일이 음력 7월 7일로 칠석날이었으니까.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나도 어떻게 해서든 그날에 맞춰서 결혼을 하려고 생각 중이었다.
한지유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한참 동안 오순도순하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먼저 들어가 쉬어야겠다.”
“내일 조식 때 보자고.”
호텔 조식에 눈을 뜨신 장인어른은 시원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돌리셨다.
두 분이 먼저 들어가시고 나서, 한지수가 한지유와 나의 사이에서 팔짱을 끼며 외쳤다.
“우리 젊은 사람들끼리 2차 갈까요?”
“코타키나발루까지 왔으니까 칵테일이나 한잔할까?”
“좋죠. 여기 루프 탑 칵테일 바 경치가 그렇게 좋대요.”
우리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향했다.
한지유와 한지수는 연년생답게 거의 친구처럼 사이가 좋았다.
한지유 말로는 어릴 적에는 매일같이 싸웠다는데, 배우로 데뷔하고 나서 자주 볼 수 없어지며 서로 애틋해졌다나 뭐라나.
옥상에서 칵테일을 두어 잔 마시며 밤바다의 경치를 보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복잡한 정치나 검찰, 사건 사고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내려 둔 게 몇 년 만인지…….
한국보다 더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바닷가라서 그런지 선선하게 불어오는 짠 내 짙은 바람은 기분을 좋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처제는 아직 남자 친구 없죠?”
“네. 완전 솔로.”
“솔로면 그냥 솔로지, 완전 솔로는 뭐예요?”
한지유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주변에 썸 타는 남자도 없다는 거야.”
“아.”
한지수를 보며 눈을 감았다.
“유감.”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젊어서 여유 있거든요. 20대 중반.”
한지유가 바로 태클을 걸었다.
“스물일곱이면 후반이지.”
“아니거든.”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오빠가 좋은 사람 좀 소개시켜 주세요.”
“처제라면 다들 소개받고 싶어서 줄 설걸요.”
이건 진심이었다.
한지유를 똑 닮은 그녀는 카메라 마사지만 조금 덜 받았을 뿐이지, 한지유에 버금갈 정도로 무척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처제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한지수는 이미 생각해 두었다는 듯,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저는 듬직한 사람 좋아하거든요.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의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요?”
꽤나 특이한 취향이다.
“네. 나이가 형부보다 많으면 좋겠는데.”
“완전 아저씨 타입 좋아하는구나.”
“아니요. 아저씨 말고, 꽃중년.”
“까다롭네.”
“히히히.”
한지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족보 꼬이잖아. 젊은 사람 만나.”
“아, 싫어. 나는 30대 후반 막 이런 사람 만나고 싶어.”
30대 후반이면 거의 열 살 차이인데.
“띠동갑도 괜찮은 거예요?”
“그게 딱 제가 원하는 나이대예요.”
한지유는 질색을 했다.
“그 나이면 돌싱이야. 너는 이제 스물일곱 살 처녀고.”
“이상형이라고, 이상형.”
한지수의 이상형은 이미 확고하게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돌싱도 좋은 것 같아요. 한번 다녀온 데다가 나이가 많아서 여유도 있고. 저는 막 얽매이고 속박하고 이런 연애는 별로거든요.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려면 그 정도 나이가 되어야 되는 것 같아.”
“어후.”
한지유는 고개를 휘휘 저었지만, 한지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게다가 형부처럼 능력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고요.”
“하하하, 한번 찾아볼게요.”
그런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한지유는 걱정스레 내게 말했다.
“진짜 저러다가 나중에 우리 아빠보다 나이 많은 사람 데려올까 걱정이라니까.”
“아, 언니, 그 정도는 아니야. 내 마지노선은 열여섯 살 차이라고.”
“너 아빠랑 스물여덟 살밖에 차이 안 나.”
“오, 그러면 내 미래 남편이랑 우리 아빠랑 띠동갑이네.”
“어휴.”
그녀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 띠동갑까지는 어떻게 이해하겠는데 그 이상은 안 된다.”
“생각은 해 볼게.”
“네가 좋아하는 나이에 결혼을 안 했으면 꽃중년이 아니라, 독신이거나 하자가 있는 거야.”
“그래서 돌싱도 괜찮다고 했잖아.”
한지유는 손까지 휘휘 저으며 답답하다는 티를 냈다.
“아, 진짜 미쳤어. 이건 취향 존중이 안 돼.”
대화하는 걸 보니 천생 자매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지유가 예상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서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건, 콩깍지가 씌어도 제대로 씌었다는 거겠지.
이번 이야기에 대해서는 한지유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한지수 또한 이상형이라니 별수 있겠는가.
“형부, 소개 기대할게요.”
그녀는 내게 총알을 쏘는 시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한지유는 헛웃음을 흘리며 칵테일을 들었다.
“지유 너는 절대 반대야?”
“절대 반대까지는 아닌데, 열 살 차이를 넘어가는 건 조금 그렇잖아. 연예인들끼리 연애하는 거 보면 어느 정도 나이 차이는 인정하는데, 40대가 넘어가면 괜히 지수 가지고 장난치는 건데 혼자 사랑인 줄 알까 봐 걱정돼서 그래.”
“정말로 내가 한번 찾아볼까?”
“오빠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지.”
그녀는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눈을 번뜩이며 날 돌아보았다.
“그래도 40대는 안 돼.”
“하하하, 알았어.”
한지유는 내 옆으로 스윽 의자를 밀고 다가와 살포시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아, 진짜 좋다.”
“나도.”
정적이 흘렀다.
어색함이 아닌, 기분 좋은 정적.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편안한 그런 정적.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꿈지럭거리며 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여기 사람들 많은데?”
“오빠 변태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녀는 앙칼진 목소리를 내며 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니, 오해할 수도 있지…….
“휴대폰은 왜?”
“이렇게 기분 좋은 건 원래 티를 내고 자랑해야 돼.”
“뭐 하려고?”
한지유는 해맑게, 내가 그녀의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을 내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했다.
“오빠는 해외여행도 5년 만에 온 거라며. 이런 건 티도 내고, 여자 친구가 한지유라는 사실도 자랑하고.”
그녀는 말하고도 민망한지 헤실헤실 웃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프로필 사진 한 장이 검사로서의 내 삶에…… 아니, 최서준이라는 인간의 삶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치리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