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1)
최규현 국무총리는 자신의 야욕이 들켰다는 게 은근히 민망했는지, 다시 포장을 했다.
“방휼지쟁이라는 말이 있잖아?”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양보하지 않고 버티다가 어부한테 잡히면 손해는 고스란히 그들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니까.”
“맞습니다.”
“민국당에 받아들인다고 전해. 남은 선거기간은 깔끔하게 가자고.”
“알겠습니다.”
씨익 웃음을 지었다.
“민국당에서도 환영할 겁니다.”
“그래야지.”
최규현 국무총리는 흡족한 웃음을 띠었다.
“그러면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날 다시 불렀다.
“최 검사.”
“예?”
“그런 멋진 생각을 품고 있다면, 함께 오래오래 가 보도록 하지.”
“총리님 곁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
-민국당의 경동수 후보, 제20대 대통령 당선 확실!
TV 화면에서는 경동수가 두 팔을 벌린 채 선거 캠프의 사람들과 포옹을 나누며 환호하는 모습이 비쳤다.
“고생하셨습니다, 부장님!”
옆에 있던 이두형 부부장검사가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윤설하와 이두형 부부장의 수사관인 박철웅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드디어 끝났네요.”
나 또한 기쁨을 한껏 드러내며 손을 높이 뻗어 힘차게 하이 파이브를 했다.
됐다.
깔끔하게 끝났다.
중간에서 휴전협정을 이끈 덕분에 최종 선거까지 커다란 이변이라는 게 등장하지 않았다.
실제 개표 결과로 대한당의 남문석 후보가 만세당을 제치며 2위에 올라서긴 했으나, 경동수와의 차이를 좁히지는 못했다.
개표가 거의 완료된 현재 득표율은 민국당 경동수 후보가 36%, 대한당 남문석 후보가 31%, 만세당 김노민 후보가 28%로 생각보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정말 식겁했다.
여차했다간 판도가 뒤집힐 뻔했던 것이니까.
그러나 작은 차이의 승리라고 해도 승리는 승리.
정말 제대로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경동수 후보…… 아니, 지금 시간부로는 대통령이다.
탄핵 이후로 대통령석이 공석이었기에 당선인의 시간을 거치지도 않고 곧장 대통령직에 오르는 것이니까.
이로써 나는 경동수 대통령의 핵심 인물로 올라선 것과 동시에 최규현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 덕분에, 말 그대로 좌청룡, 우백호라는 든든한 백을 갖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것과 같달까.
이제 더 이상 부족한 게 없었다.
여기서 승진하기 위해서는 인맥이 필요한 게 아니라, 경력만 쌓으면 되는 일이니까.
라인이나 줄은 아주 완벽하게 탔다.
부러울 게 없다는 말이 온몸으로 체감이 될 정도.
이 정도 인맥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건드린다고 한들, 두렵지 않을 테지.
“부장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이 부부장이 정말 수고가 많았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수사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하 씨와 박 계장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윤설하는 밝게 엄지를 치켜들었고, 박철웅 수사관은 ‘크으!’ 하는 감탄을 내뱉으며 연신 박수를 쳤다.
“이제 최연소 부장검사를 넘어, 최연소 검사장까지 올라가실 겁니다.”
“하하하하, 아직 차장검사도 못 달았습니다. 그리고 부장검사 단 지 이제 겨우 5개월째예요.”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면 안 됩니다.”
“김칫국이라니요?”
박철웅 수사관은 능글맞게 눈썹을 들썩였다.
“예지몽이죠.”
얼굴에 피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최연소 검사장이라.
현재까지 대한민국에 최연소로 검사장급에 오른 인물의 나이는 만 46세.
올해 내 나이가 서른두 살이라는 걸 생각하면, 40대 초반까지도 기록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차올랐다.
상상만 해도 흐뭇할 지경.
“하하하, 칭찬은 이쯤 해 두고 우리도 축하 파티나 하죠.”
마음 같아서는 밖에서 왁자지껄하게 한잔하고 싶지만, 얼굴이 알려진 터라 밖에 나가서 즐겁게 마시는 모습이 SNS에 올라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지금쯤, 1번 라인은 초상집 분위기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니까.
“샴페인이나 터뜨릴까요?”
“좋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뻥!
큼지막한 소리를 내며 개봉한 샴페인을 윤설하가 허공에 흔들어 댔다.
“하하하, 언제 꺼내신 거예요?”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놨죠.”
“센스 참 좋으시다니까.”
박철웅 수사관이 건넨 유리잔을 윤설하가 따라 주는 샴페인으로 가득 채웠다.
“오늘은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밖에 나가지 못하는 건 이해해 주세요.”
“그럼요.”
윤설하는 능글맞게 다시금 샴페인을 흔들었다.
“전 지금 클럽에 있는 것보다 더 신나는데요?”
이 여자는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자, 자, 건배 한번 하시죠.”
이두형 부부장검사는 수사관들을 데리고 내 주변으로 다가와 잔을 높이 뻗었다.
그러고는 아주 낯 뜨거운 멘트를 던졌다.
“새로운 시대, 최서준 부장님의 승승장구를 위하여!”
부끄럽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기에 바로 나도 건배사를 후창 했다.
“위하여!”
***
2020년 5월.
최규현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경동수가 청와대에 입성하며 새롭게 경동수 내각이 출범했다.
최규현은 대놓고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청와대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대해 아쉬운 게 많이 드러나는 뉘앙스가 풍겨 왔달까.
경동수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53세라는 나이를 어필하며 ‘젊은 대한민국’이라는 모토로 정치를 하겠다고 발표하며 많은 이들의 환심을 얻었다.
최규현의 목적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그가 선택한 남문석은 대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1번 라인은 순식간에 힘이 움츠러들었다.
2번 라인과 팽팽하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슬슬 눈치를 보는 입장이 되었달까.
물론, 이 와중에도 나는 굳건하게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높은 위엄을 얻게 되었다.
특수부는 1번 라인이 완전히 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동수 대통령이 특수부를 제대로 밀어주는 게 보였으니까.
그런 나와 달리 1번 라인 소속의 다른 검사들은 움츠릴 수밖에 없었고, 그 덕분에 오히려 이쪽에서는 더 몸집이 커진 느낌.
그 덕분에 서울중앙지검의 1번 라인에서 차장검사들까지 뛰어넘어 중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20대 대선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도 2주에 한 번씩은 꼭 한지유와 함께 소망원에 들러 봉사 활동을 이어 갔다.
봉사 활동은 꾸준함이 생명이니까.
그 덕분에 이영미 원장과는 사사로운 대화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졌고, 검사장과 가끔씩 만날 때에도 그의 눈빛이 누그러들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
조만간 한지유에게 내 돈을 건네 기부를 하게 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그것까지 실천이 된다면 암만 서기웅 검사장이라도 마음을 열지 않을 수가 없겠지.
더 바랄 것 없이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세태가 계속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진 이가 하나 있었다.
독사 강중식.
공안부의 부장이자, 고검장의 오른팔로 부산에서 함께 올라온 인물.
그가 독니를 빼 들었다.
물론, 나를 향해 빼 든 게 아니고, 서부지검에 있는 형사부의 검사를 향해서.
지금은 새롭게 정권이 바뀐 탓에 대부분의 지검에서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는 변혁의 시기였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고검은 올해 초에 검사장이 바뀌었기에 수장까지 바뀌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인 구조에서 아주 큰 변화가 일고 있었으니까.
타 지검에서는 검사장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인사가 일어나던 도중, 서부지검의 신임 검사장 라인을 타고 올라오던 평검사 하나가 강중식의 레이더에 포착이 되어 그대로 썰려 나갔다.
그 검사는 부부장검사에 오르기 직전에 지방으로 쫓겨나게 된 상황.
그는 어떻게든 버텨 내려 했지만 자신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는지, 결국은 이겨 내지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나를 찾아왔다.
물론, 무턱대고 찾아온 게 아니라, 서부지검에 근무하고 있는 성진현 검사라는 중간 다리를 통해서 접근했다.
“살려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해 서른세 살로,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인물.
이름은 정현우.
워낙 내가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그렇지, 서른세 살에 부부장검사로 올라간다면 검사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표였다.
평검사로만 있다가 승진의 승 자도 구경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사람들이 태반인 곳이니까.
그러나 그는 여기서 물러나면 끝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나이도 체면도 세우지 않았다.
그 증거로 소파에 앉아 있던 그는 바닥으로 내려와 무릎까지 꿇었다.
“부장님께서 한 번만 도와주시면 정말 이 한목숨 다 바쳐서 충성하겠습니다.”
그는 공손히 두 손을 무릎에 올렸다.
“집에 자식이 둘이나 있습니다. 와이프 집안도 이번에 만세당 쪽으로 붙었다가 폭삭 망해서 뒤로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이번에 내려가면 지방에서 뺑뺑이 돌다가 개업해야 합니다.”
정현우 검사의 목소리에선 간절함이 묻어났다.
대학 후배이자 나이도 어린 녀석에게 부장님 소리를 하는 것도 모자라 무릎까지 꿇고 이렇게 감정에 호소한다는 건, 정말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뜻.
웬만해서는 동정심에 흔들리지 않는다지만, 그에겐 손길을 뻗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동정심이 든다고 해서 냉철한 판단력을 흐릴 수는 없는 법.
암만 내 뒤에 든든한 날개들이 붙어 있다고 한들, 지금은 변혁의 시기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들에게 여지를 주었다가는, 어렵게 얻은 경동수와 최규현의 신임을 단번에 날려 버릴지도 모르니까.
다만, 성진현의 평가를 들어 보면, 이대로 지방으로 쫓겨나기엔 능력이 아쉬운 것은 물론, 충직한 것 하나만큼은 독보적이라고 했다.
이번에 독사에게 걸려 잘려 나가는 것도 그 때문이고.
그런 만큼, 그를 내 편으로 만들 경우엔 분명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터.
생각을 마치고 냉철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정 검사님.”
“예, 부장님.”
“일어나세요.”
그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소파에 앉혔다.
정현우 검사는 간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하나만 여쭤보죠.”
“뭐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도와드리면 평생 제 그림자가 되어 주실 수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그는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성진현 검사에게 들었다면 아시겠지만, 전 한번 충성하면 절대 배반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정현우 검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1년만 내려가 계십시오.”
거짓이 아니었다.
1년 뒤에 완전히 자리가 안정되었을 때 그를 다시 데리고 올라올 생각이다.
단, 내가 원하는 조건이 만족되었을 시의 이야기.
“1년 뒤에 그곳에서 무너지지 않고 존재감을 발하고 계신다면, 제가 다시 모셔 오겠습니다.”
“존재감요?”
“예. 거기서 제가 부탁드릴 게 있거든요.”
“그러면 가족들은…….”
“1년입니다. 자신 있으시면 가족들은 두고 가시고, 그 존재감을 발하지 못하실 것 같으면 함께 내려가시고요.”
그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결정했다.
“혼자 가겠습니다.”
행선지도 묻지 않고, 그는 곧장 대답했다.
정현우 검사의 목소리에선 오히려 비장함이 묻어 나왔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믿고 부탁드리죠.”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팔걸이에 손을 얹었다.
“우선, 검사님은 부산지검으로 가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