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식 (7)
뉴스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휴대폰의 전화벨이 울렸다.
“네, 최서준입니다.”
-부장님, 기사 보셨어요?
뉴스가 아니라,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로도 이미 올라온 모양.
“방금 확인했습니다. 저거 사실인 거죠?”
-예. 바로 출근해서 확인해 봤는데, 정확히는 위장 전입만 사실이고 특례 입학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윤설하는 소식을 보고 주말인데도 출근을 한 모양.
“그렇군요. 추가적으로 사실 여부 파악해 주세요. 저도 금방 준비해서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네. 어느 정도 윤곽은 나왔으니까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그래요. 그 전에 이 정보를 제일 먼저 포착해서 발표한 곳이 어딘지도 찾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곧장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로 머리를 식히며 천천히 생각을 되짚었다.
위장 전입은 사실이나 특례 입학에 대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
암만 자식의 일이라고 한들, 서울시장에 재임 중인 것도 모자라 대권까지 노리고 있는 경동수가 생각 없이 움직였을 리는 없다.
그렇다는 말은 결국, 특례 입학까지는 시키지 않았다는 건데.
그러면 특례 입학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자식을 미국으로 보낸 도준철까지 겨냥한 소식인 셈.
최규현 국무총리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아직까지 당내 경선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디스전을 시작했다는 건, 절대 20대 대통령 자리를 쉽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걸 뜻한다.
하긴, 여기서 대한당이 민국당에 압도적으로 패배했다가는 다음 대선을 노리는 건 둘째 치고 올해 가을에 있을 총선에서도 박살이 날 테니 최대한 격차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겠지.
나도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줄을 설 때는 누구보다 제일 먼저 가는 게 기억에 남으니까.
***
“그러면 아이들이 위장 전입했다고 나온 주소는 실제로 할머니 댁이고요?”
“예. 그런데 할머니도 사실상 주소지만 대치동으로 되어 있지, 실제로는 경남 창원에 내려가서 살고 계시더라고요.”
“그 할머님은 원래 창원에 사시는 겁니까?”
“아니요.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경동수 부부가 바깥일을 하면 대신해서 아이들을 키워 주시다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내려가신 것 같아요.”
“그러면 이사 간 뒤에 전입신고는 하지 않았던 거네요?”
“예, 맞습니다. 그리고 5년 뒤에 경동수가 서울시장이 되어 관사로 이사를 갔지만, 아이들은 학교 문제 때문에 여전히 그쪽에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윤설하는 추가적으로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둘째 아들 상담 자료입니다.”
“상담 자료요?”
“예. 1주일에서 2주일에 한 번씩 전문 상담사를 통해 치료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액수는요?”
“대학병원에서 회당 10만 원 정도 받고 진행하는 거고, 전액 직접 납부했습니다. 상담과 관련해서 문제가 될 건 없어요.”
곧바로 그녀가 건넨 자료를 살폈다.
둘째 아들이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인 지금까지 꾸준히 상담을 받고 있다는 자료.
그 순간 바로 경동수의 활로가 그려졌다.
“이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나는 안심하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린 새로운 쪽으로 진행하면 될 겁니다.”
그러나 윤설하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듯이 물었다.
“어떻게…….”
“뻔하죠. 위장 전입이 아니라, 친구 관계로 인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겁니다. 상담 이력이 이렇게 많으면, 전학을 갔다가는 교우 관계 때문에 쉽게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기존 집에서 주소를 옮기지 않았다고 하면 될 테고요.”
“그러면 첫째 아들은요?”
“경동수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시절에는 둘 다 같은 중학교에 다녔으니까 둘째 아들이 불안해하지 않게 같이 다니게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문제가 없죠.”
“아아.”
그녀는 순수하게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이 자료를 보자마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시다니…….”
“기본이죠.”
“저는 이 자료로 경동수가 꽤 난처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도준철도 그렇고요. 물론, 둘 다 후보직에서 사퇴할 만한 정도의 건은 아니지만, 꽤 오래갈 것 같았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우리는 그걸 이용해야죠.”
윤설하는 눈을 반짝였다.
“이용한다는 건…….”
“네. 대부분은 경동수에게 붙든 도준철에게 붙든 대한당으로 붙든 상관없이, 이번 건으로 물고 늘어질 게 뻔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이 건과 관련된 자료를 통해 지지하는 인물을 도우려고 들 테죠.”
그녀는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자료 포화 상태군요.”
“맞습니다.”
그녀가 찾아온 서류를 한쪽으로 몰아 정리했다.
“다들 이 건으로 싸우다 보면 이번 건 자체가 오래지 않아 너부러지게 될 겁니다. 국민들도 쉽게 피로해질 테고요.”
“그때, 우리는 아주 신선하고 파격적인 건으로 경동수의 힘이 되는 거고요?”
“빙고.”
나는 총알을 쏘는 시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우리는 새로운 자료를 찾아야죠.”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지잉지잉.
짧게 두 번.
문자다.
윤설하에게 말을 하며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보낸 이 : 32
-사진
사진엔 선거 캠프임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선거 전략과 상대 후보의 약점들이 가득 적혀 있는 화이트보드가 배치되어 있고, 한쪽에는 ‘민국당의 기둥’이라는 띠가 늘어져 있었다.
민국당의 기둥은 도준철의 당내 경선에서의 상징적인 문구.
다시 말해 도준철의 선거 캠프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모든 배경에도 불구하고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두 명의 남녀.
뒷모습이지만, 머리가 하얗게 센 데다가 특유의 살짝 비틀어진 어깨를 보면 확실하게 도준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 젊은 여직원과 도준철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고 있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피식 웃음이 났다.
한동안 도움을 주지 않더니, 요 며칠 새에 아주 중요한 정보를 두 가지나 알려 준다.
요망한 문자 같으니라고.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직접 하되, 어려운 부분만 도와주겠다는 건가?
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내가 휴대폰을 확인하느라 말을 멈추자, 윤설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새로운 자료라면 어떤 쪽으로 찾으면 될까요?”
나는 입꼬리를 한껏 비틀며 웃었다.
“예를 들면, 도준철과 선거 캠프 경리와의 은밀한 관계랄까요?”
윤설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자료는 제가 직접 찾아볼게요. 설하 씨는 대한당 남문석을 파 주세요.”
“알겠습니다.”
윤설하가 자리로 돌아간 뒤, 나는 곧바로 외투를 챙기며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기자님. 오늘 잠깐 뵙죠.”
***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그럼요.”
오랜만에 만난 임유나 기자는 나와의 만남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인사했다.
“검사님은 표정이 확 밝아지셨네요.”
“어제 술 한잔 먹어서 창백해진 겁니다.”
“아하하핫, 해장은 하셨어요?”
“네. 라면으로 했습니다.”
사사로운 농담으로 가볍게 입을 풀었다.
“요즘 기삿거리가 많지 않아요?”
“엄청 많죠. 그런데 그만큼 기사도 너무 많아서 탈이에요.”
그녀는 질색이라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하나 올라오면 전부 다 모방 기사가 올라오니 묻히기 십상이라니까요. 요새 같은 때는 특별한 게 아니면 주목받기도 어렵고…… 오히려 예전보다 빡세다니까요.”
“이럴 때 특종 하나 잡으면 아주 좋을 텐데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어디 없나 모르겠는데.”
임유나 기자는 말을 하며 스윽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깍지 낀 손을 테이블에 올리며 상체를 기울였다.
“괜찮은 건수가 하나 있긴 하죠. 임 기자님께 선물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아주 굴뚝같은데…… 받으시렵니까?”
“물론이죠.”
그녀도 자연스레 내게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고는 무슨 건인지 듣기도 전에 내게 듣기 좋은 말을 흘렸다.
“선물엔 보답을 해야 될 텐데…….”
사람의 마음을 살 줄 안다니까.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저번에 도움받은 건도 있으니까요.”
돈을 밝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깟 푼돈으로 이어진 관계보다는 일적으로 엮이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더 좋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임유나 기자는 일적으로 엮여 오래도록 같이 가야 할 테고.
물론, 아주 은밀하게 함께 갈 것이다.
이번 건에서 박수형 기자가 아닌 임유나 기자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최근의 몇 건을 터뜨리면서 박수형 기자가 나와 손을 잡은 것에 대해 우리 라인 측 사람들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는 사실.
그렇기에 박수형 기자를 통해 경동수를 도울 만한 건수를 터뜨린다면, 분명 최규현 국무총리는 나에 대해 의심을 할 게 뻔하다.
그렇기에 나와의 커넥션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임유나를 택한 것.
앞으로도 겉으로 드러난 확실한 건들은 박수형 기자와 함께, 그림자에 가려진 채 활동하는 건수는 임유나 기자와 함께 진행할 생각이다.
임유나 기자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제가 검사님 눈에 제대로 든 모양이네요.”
“저야 당연히 일 잘하시는 분들과 오래오래 가고 싶으니까요.”
그녀와 눈빛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이번 건이야말로 그녀와 나의 신뢰 관계를 완성시키는 건수가 될 터.
언론 쪽에서 박수형 기자와 송재훈 PD에 더불어 임유나라는 든든한 지원군까지 얻게 되는 것이다.
“어떤 건수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대선 후보에 관한 건수입니다.”
그 말에 임유나 기자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는 흐름을 끊으며 말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취재 이후, 기사는 바로 공개하지 마시고 먼저 저한테 보내 주세요. 그리고 사인이 떨어지면 공개하는 걸로.”
임유나 기자는 고민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즉답했다.
“물론이죠. 그거야 기본 아니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민국당 도준철의 외도입니다.”
한창 국민들의 시선이 몰린 대선에, 민국당의 유력 후보 중 하나인 도준철을 잘라 낼 수 있는 카드다.
이 시기에 낼 수 있는 특종 중에서도 특종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니나 다를까, 임유나 기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이런 특급 정보라니……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는 의미로 말했다.
“문제는 그 외도 현장을 포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죠.”
“당연히 포착할 수 있죠.”
임유나 기자는 늘 준비되어 있다는 듯이 당차게 본인의 가방을 테이블에 올렸다.
“제가 괜히 기자겠어요?”
그 말과 함께 그녀는 가방에서 동그란 무언가를 줄줄이 꺼내기 시작했다.
“그게 뭡니까?”
그녀는 씨익 웃으며 동그란 그것들을 하나씩 열어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내 완성된 물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대포 카메라.
렌즈와 렌즈를 잇자, 길이만 근 두 뼘에 가까운 카메라의 형상이 완성되었다.
한 손으로 들기도 버거울 정도의 크기.
임유나 기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카메라를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이 카메라로는 200m 밖에서도 충분히 찍을 수 있죠.”
벌써부터 든든하다.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기대해 보겠습니다.”
“물론이죠.”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님께서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수 있을 만한 사진을 찍어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