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90화 (90/341)

잠식 (5)

-대권 후보로 점쳐지는 인물은 대한당 두 명, 민국당 세 명, 만세당 한 명 등 주요 3당에서 총 여섯 명이며, 각 후보의 지지율은…….

뉴스를 보며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예상했던 대로 대한당의 지지율은 형편없었다.

아직 당내 경선이 치러지지 않은 상태라고는 하나, 민국당 세 명의 후보 지지율을 합치면 이미 과반이 넘는 상태.

그에 반해 대한당의 지지율은 둘이 합쳐도 20%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물론, 실제 투표까지 가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2017년도의 샤이 트럼프와 같이 대한당 지지자라는 걸 숨기고 있는 인물들도 적지 않을 테니 까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

다만, 시작 전부터 기선을 제압당했다는 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지지율을 확인한 윤설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일단 검사님도 표면적으로는 대한당을 지지하고 있는 터라…….”

“그러니까 이번에 수사관님과 제가 캐내야 하는 게 중요하죠.”

어떻게든 민국당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건수를 찾아내야 할 테니까.

“지금 민국당 당내 경선 후보 중에서 제일 유력한 게 경동수죠?”

“도준철과 경동수가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만, 아주 근소하게 도준철이 우세합니다.”

오차 범위 내라면 결과는 뻔했다.

2번 라인에서 경동수를 찍었으니 당 자체에서 경동수를 밀어주려고 할 터.

실제로 당내 경선이 벌어지면 경동수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민국당 당내 경선까지 얼마나 남았죠?”

“3주입니다.”

3주 안에 도준철을 위협할 수 있는 건수를 찾아내야 하는데…….

“도준철 남동생이 사업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미에네스라는 파이프 공장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파이프 공장이 도준철이 국회의원 당선된 직후에 설립되었는데 맞나요?”

“예, 아마 맞을 겁니다.”

“그러면 그쪽 회계장부 한번 자세히 파 보세요. 도준철이랑 남동생이랑 운용한 자금도 확인해 보고요.”

“알겠습니다.”

윤설하는 고개를 꾸벅이고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경동수.

그가 민국당의 대표로 선출된 뒤에는 손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10년 넘게 여당을 유지해 온 대한당이 다른 때보다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태니까.

그가 대권 후보로 확정이 된다면, 분명 어디로 줄을 설지 눈치를 보며 도사리던 하이에나 떼가 귀신같이 경동수에게 꼬리를 흔들 터.

그 전에 미리 확신을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최규현 국무총리가 1번 라인의 대표로 대한당의 남문석을 꼽은 이상, 늦게 움직이면 나 또한 눈치를 보고 넘어온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은 한울 투자증권의 공석민 사장.

이 인간이 갑자기 웬 전화지?

작년의 주가조작 사건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얼마 전 설에 안부 문자 하나 날아온 게 끝이었는데.

사무실 문을 꽉 닫고 전화를 받았다.

“네, 최서준입니다.”

-아, 검사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예, 그랬죠. 공 사장님은 어떠셨습니까?”

-저야 늘 마찬가지죠.

공석민은 특유의 붙임성 좋은 성격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나저나 부장검사로 승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진즉에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부서는 그대로 특수부에 계시는 거죠?

“예, 그렇죠.”

-아아, 그러셨구나.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적당히 대꾸를 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전화를 건 목적을 꺼냈다.

-다른 게 아니라, 검사님이랑 이야기도 할 겸 한번 뵙고 싶은데, 혹시 시간 괜찮으실까 해서요.

“언제쯤요?”

-검사님 편하실 때면 언제든 괜찮습니다. 이번에 제가 좋은 술을 하나 구했거든요. 같이 한잔하시면 어떨까 하는데…….

단번에 공석민의 의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의 장인어른인 황철용 의원의 말을 전하거나, 직접 그와 함께 참석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테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도비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가 아니라 따로 만나자고 한다는 것.

게다가 굳이 좋은 술을 구했다고 말한다는 건 만남의 장소가 그의 집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은밀하게 만나고 싶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결론을 내리면, 황철용 의원은 최규현이 결정한 남문석 후보에 반하는 인물을 지지하려고 하는 것일 테지.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저야 좋죠. 오늘 밤 어떠십니까?”

-오늘 밤요?

당장 오늘 만나는 건 생각하지 못했는지 잠깐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지만, 그는 이내 흔쾌히 답했다.

-좋습니다. 제 개인 오피스텔에서 뵐까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예, 문제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주소는 문자로 찍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따 뵙죠.”

-들어가십시오.

***

공석민 사장은 아주 고급스러운 포장을 풀며 위스키병을 꺼냈다.

“이게 스코틀랜드에서 담근 50년산 위스키인데, 정말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술입니다.”

“그렇습니까?”

딱 봐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박스에서 꺼내며 자연스레 흔들린 덕분에 위로 금가루가 떠오르며 아주 찬란한 자태를 뽐냈다.

게다가 적당히 밝은 조명을 반사한 덕분에 술에서 우아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

대충 봐도 1천만 원은 호가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포장을 정리하며 일어섰다.

“온더록스로 드릴까요, 아니면 스트레이트로?”

“스트레이트로 주세요.”

“네.”

그는 온더록스 잔 두 개와 스트레이트 잔 두 개를 꺼내 왔다.

온더록스 잔에는 얼음이 담겨 있지 않은 채로.

공석민 사장은 옆에 있던 유리 물병을 가져오며 말했다.

“여기가 주거 공간이 아니라서 물컵이 없네요. 물이 필요하시면…….”

“네. 온더록스 잔도 충분하죠.”

그는 미소를 지으며 50년산 위스키를 개봉했다.

개봉 즉시 퍼져 나오는 진한 향내.

싸구려 주류에서 풍겨 오는 화학적인 냄새와 전혀 다른 고급스러움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스트레이트 잔을 채워 내게 건넸다.

간단히 한 잔을 마시고서 그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대선 때문에 말이 많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탄핵도 걸려 있는 데다가, 곧 총선까지 겹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나마 헌재에서 총선을 미룬다고 결정해서 다행입니다. 아니었다면, 정말 이 혼돈은 감당하기 힘들었을 테니까요. 정국이 워낙 혼란스러우니…….”

총선은 늘 4월에 해 왔지만, 이번엔 시국이 시국인 만큼 시기를 6개월 미뤄 가을에 진행하도록 변경했다.

변경하지 않으면 20년마다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시기가 생기기도 하고, 특히 이번엔 대통령이 탄핵되었던 터라 한번에 국회까지 통째로 물갈이가 되면 나라의 중심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결정.

그 덕분에 현재 재임하고 있는 국회의원들만 운 좋게 임기가 6개월 늘었다.

이렇듯 올해는 총선까지 걸려 있는 탓에 이번 대선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을 터.

신임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그 6개월 동안 각 당의 위치와 기세가 달라질 테니까.

“그래도 황 의원님은 총선 걱정은 없으시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만…… 중요한 건 대선이죠.”

공석민 사장은 코를 찡긋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위해 넌지시 화두를 던졌다.

“우리 라인에서 고른 남문석이 당선이 되어야 좋을 텐데 말입니다.”

“아아.”

그는 조용히 잔을 들고 있던 손을 돌리더니 천천히 내게 시선을 돌렸다.

“검사님은 대한당의 남문석을 지지하시는 거죠?”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 입장에서 고른 인물이니까요.”

“그렇군요.”

공석민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런데 이번에 서울중앙지검에서는…….”

갑자기 화제를 돌리는 모습에 의아했지만,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본론으로 들어갈 기미는 보이지 않는 모습.

이대로는 술잔만 주고받다가 끝날 것 같아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황 의원님께서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거랍니까?”

그는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잔을 내려놓았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그저 술이나 한잔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야기나 하자고 이곳에 불렀을 리는 없으니까.

이건 대놓고 숨기는 것이다.

숨긴다는 행위 자체가 황철용 의원이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걸 알지 못한다는 게 한심할 뿐.

보아하니 이전 사건처럼 많은 준비를 한 게 아니라, 황철용 의원에게 한번 내 의중을 확인해 보라는 오더만 듣고 바로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

주가조작 사건을 진행하며 워낙 많은 돈을 받아 챙긴 탓에 나를 돈만 생각하는, 밝히는 검사로 생각한 건가?

그런 거라면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긴데.

“제가 옆에서 대충 보니까 저희 장인어른께서는 라인도 라인이지만, 민국당 원내대표라는 자리에 계신 만큼 시야를 넓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민국당에도 발을 걸친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저으며 말했던 내용을 엎어 버렸다.

“그런데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확실한 건 장인어른께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계시다는 겁니다. 주변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실 거라 말씀하셨고요.”

그는 손을 비비며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검사님께서는 혹시 최규현 국무총리님을 100% 따르시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도 있으신지…….”

그의 물음에 헛웃음이 났다.

1:1로 만나는 자리라기에 황 의원의 뜻이나 제안을 전달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러기는커녕 계속 대답을 회피하며 뱅뱅 돌고 있다.

확실해졌다.

이건 승부수를 던진 게 아니라, 간을 보기 위해 툭 찔러보는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술상을 뒤엎고 나왔겠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나 또한 최규현 국무총리를 전적으로 밀고 가는 게 아니라, 양쪽에 발을 걸치려는 상태였으니까.

이번 사안을 황철용 의원이 도와준다면 확실히 나도 안정적으로 민국당의 경동수 후보와 손을 잡을 수 있을 터.

다만, 이렇게 간을 보는 태도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을 생각은 없지.

어디 감히 내 앞에서 시험질이야, 시험질은.

그와 나는 격이 다르다는 걸 보여 주기로 했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공 사장님.”

“예, 검사님.”

“황철용 의원이 딴생각하는 건 알겠는데, 적당히 나를 떠보려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속내를 간파당한 공석민 사장의 얼굴엔 순식간에 당황스러운 기운이 차올랐다.

“아, 그게 아니라…….”

그의 뒷말은 들을 생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스트레이트 잔을 옆으로 밀고 얼음이 담기지 않은 온더록스 잔에 위스키를 가득 부었다.

의도를 알지 못하는 공석민 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나는 그가 물어볼 새도 없이 단번에 그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위스키의 향.

그것을 삼키자, 이내 목이 타들어 갈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 검사님?”

그제야 공석민은 당황해서 나를 불렀지만, 나는 끝내 위스키를 목 너머로 완전히 삼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잔을 테이블에 탕!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술은 마실 만큼 마신 것 같으니까.”

목소리에 살기를 담은 채 말했다.

“이제 간 보시지 말고 황 의원님 나오라고 하세요.”

당황한 나머지 침을 꿀꺽 삼키는 그를 향해 살벌하게 말했다.

“이렇게 떠보는 건 너무 불쾌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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