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85화 (85/341)

장악 (2)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검찰청이자 투명하다고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을 더욱더 청렴하고 결백하도록, 정치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는 서울중앙지검이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서기웅 검사장의 취임사가 끝나자 커다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기웅의 검사장 부임.

현대판 청백리라고 불리는 그가 이곳에 부임했다는 건, 서울중앙지검에서 이제부터 오로지 실적으로 승진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건 표면적인 이야기.

겉으로 보이지 않는 암투 속에서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속사정은 만고불변의 사실이다.

실적은 엉망인데 대놓고 줄을 타고 승진하는 비양심적인 녀석들만 사라진 정도의 변화랄까.

그것만 해도 작은 변화는 아니지만, 개혁이 일어났다고 보기엔 애매할 수준.

전해 들은 바로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지금까지 부패했던 검사들의 건은 눈감아 주되, 자신이 부임한 이후에 벌어진 일은 칼같이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다른 검사들이 돈을 받아먹는 일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이전보다 더 안전하고 은밀하게 받아먹게 되겠지.

취임식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이두형 검사가 슬쩍 내게 다가왔다.

“서울중앙지검 자체가 완전히 물갈이된 느낌입니다.”

“그건 맞아.”

검사장만 바뀐 게 아니라 일선에 섰던 사람들이 모두 바뀌었으니까.

기존의 행사에서 일선에 섰던 인물들 대부분이 김재욱 검사장과 강현수 부장이 나가면서 자연스레 힘이 떨어져 몸을 움츠렸고, 그 자리는 새로운 인물들이 채우게 되었다.

게다가 2020년 새해가 밝으면서 많은 검사들이 물러나고 새로 부임한 탓에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으니까.

완전히 쇄신한 것 같은 느낌.

“오늘 차례로 간부급들 면담한다니까 자네도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나는 주변을 살피고 자연스레 목소리를 낮췄다.

“새로 부임한 검사들 중에서 혹시 눈여겨볼 만한 인물은 확인해 봤어?”

“네. 전부 조사를 했는데…….”

그는 스윽 시선을 돌리다가 한쪽에 있는 올백 머리의 남자를 눈으로 가리켰다.

“저쪽에 얍삽하게 생긴 놈 보이십니까?”

“머리 뒤로 다 넘긴 놈?”

“예. 이번에 공안부 부장으로 발령 난 강중식이라는 녀석인데, 부산지검에서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건 들었어. 그런데 뭐 특별한 거라도 있어?”

“이번에 김석원 고검장님 후임으로 박재필 검사장이 올라왔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 박재필의 오른팔 같은 존재랍니다.”

“그래?”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할 건수다.

박재필.

서울고등검찰청에 새로 부임한 검사장.

기존에 서울고검에 있다가, 김석원과 차장검사 자리를 두고 경쟁하다가 밀려서 지방으로 낙오하게 된 인물.

이렇게 밀려나면 그냥저냥 지방에서 힘자랑이나 하며 검사로서의 여생을 마무리하는 게 보통이지만, 박재필 이 인간은 오히려 지방에서 힘을 키워 재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부산지검장으로 있다가 끝내 서울고검장으로 올라온 무서운 인물.

김석원에게 밀린 경력이 있긴 해도, 기어코 여기까지 올라왔다면 출세에 대한 집념 하나만큼은 나에게 견줄 만하다는 것.

그런데 그가 데려온 인물이 서울고검이 아니라 서울중앙지검에 있다는 건 눈여겨봐야 한다.

“공안부로 꽂은 것도 박재필의 힘인가?”

“네, 아마도 그럴 겁니다.”

박재필이 꽂았다고 한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며 단번에 서울중앙지검의 3대 요직 부서의 부장으로 앉았다는 건 강중식 또한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뜻한다.

“부산에서 저 녀석 별명이 독사였다고 합니다.”

“독사?”

“예. 몇 년 전에 부산에서 수영구 피구름파 녀석들 일망타진했던 것 기억나십니까?”

“어, 알지.”

“그때 조직원 중 하나가 조사받다가 면도칼로 그어서 혀끝이 양쪽으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갑자기 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조금 징그러운데?”

“실제 뱀처럼 완전히 두 갈래로 갈라진 건 아니고, 가까이서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을 정도라서 흉물스럽진 않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타깃을 한 번 잡으면 독을 퍼뜨리듯 서서히 잠식해서 해치운다고 해서 독사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보통 놈은 아니라는 거네.”

“예. 이번에 새로 발령 난 녀석 중에서 제일 요주의 인물입니다.”

“그래. 또 다른 녀석은?”

“아, 형사부에 망나니 녀석이 하나 들어왔는데…….”

***

“차장님, 면담은 어쩌시고 여기로 오셨습니까?”

“어. 지금 막 면담 끝내고 오는 길이야.”

“아, 그렇군요.”

소파 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차 한 잔 드시죠. 커피로 드릴까요?”

“차는 됐고,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태우지. 머리가 지끈거려서 안 되겠어.”

“알겠습니다.”

외투를 챙겨 권형기 차장과 함께 밖으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권형기 차장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검사장,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야.”

“청렴한 것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니, 청렴한 건 둘째 치고, 사람이 너무나도 강직해. 유도리라고는 전혀 없더라고. 말 그대로 FM 그 자체야.”

“그 정도입니까?”

“어. 소문난 거 그 이상이더라고.”

“그러면 라인 쪽 이야기는…….”

그는 담배를 든 손을 허공에 휘휘 저었다.

“최 프로는 혹시라도 그런 이야기 꺼내지 마. 나도 엄두도 못 냈어.”

“그렇군요.”

“함부로 떠보거나 건들면 안 되는 인물이야. 아무래도 서기웅 검사장을 제외하고 판을 짜야 될 것 같아.”

검사장이라는 중직에 있는 사람이 완전히 중립에 서 있으니, 활동 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서울중앙지검에 있는 차장검사 네 명 중 두 명은 1번 라인, 나머지 두 명은 2번 라인이라서 말 그대로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해서 이어질 터.

오히려 사내 정치가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차장님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한동안 강제로 일만 하게 생겼어.”

그때, 내 휴대폰의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은 조아라 실무관.

아무래도 내 면담 차례가 다가와 준비하라고 연락이 온 모양이다.

“차장님, 저 위에서 호출이 와서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래. 잘 이야기하고.”

“알겠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특별수사부 부장검사 최서준입니다.”

“어, 자네는 알지.”

서기웅 검사장은 여유로운 미소로 나와 가볍게 손을 잡고는 곧바로 소파에 착석했다.

전임이었던 김재욱 검사장과는 비교가 안 되는 포스.

정치나 라인은 집어던지고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이곳까지 올라온 인물이기에 풍길 수 있는 압도적인 분위기.

마치 전성기 시절의 김석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이 아니겠지.

“최 부장은 TV에서 많이 봤어. 아마 중앙지검에 재직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네가 제일 유명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쩌다 보니 운 좋게 관심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운이라니, 한두 번은 운이지만, 그게 계속 겹치면 실력이 되는 거야.”

“감사합니다.”

칭찬이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검사장님과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그는 헛웃음을 치며 손을 내저었다.

“다 똑같이 사람 일하는 건데 영광이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

서기웅 검사장의 표정, 말투, 손짓 그 하나하나에서 여유로움이 풍겨 나왔다.

나와 만나는 사람들은 나보다 직급이 높거나 나이가 많더라도 일단 한 수 접고 들어오거나 경계 태세를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워낙 부패한 인물들의 목을 치며 올라온 것도 모자라, 언론과 여론의 지지까지 등에 업고 있는 판이라 혹시나 꼬투리가 잡혔다간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서기웅 검사장은 경계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더욱더 드러내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켕기는 게 전혀 없다는 뜻이다.

현대판 청백리라는 별명답게, 먼지 한 톨 묻히지 않고 검사장까지 순수한 실력으로 올라온 덕분에 뿜어낼 수 있는 당당함.

이런 스타일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은 강현수 부장처럼 콧대를 꺾거나 모가지를 날리는 게 아니다.

내 편으로 구워삶는 것.

물론 강직함의 대명사라는 인물답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도 기계가 아닌 한 명의 사람.

분명 돌파구는 있을 것이다.

1번 라인과 2번 라인이 팽팽한 대립을 하고 있는 이때, 서기웅 검사장을 내 편으로 만든다면 판도는 단번에 뒤집힐 테니까.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윤설하에게 미리 이야기 해 두었으니 그녀는 그 열쇠를 찾아내기 위해 이미 움직이고 있을 터.

확실한 카드를 찾기 전까지는 권형기 차장의 말대로 방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특수부에서는 혹시 필요한 거나 위쪽에 요청할 만한 게 있나? 신임 검사장으로 해 줬으면 하는 일이라든지.”

“저는 지금 이 체제에 만족하고 있어서 특별히 요구할 만한 건 없습니다.”

“그래?”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중앙지검은 업무 환경이 좋나 봐.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 만족스럽다고 하네.”

“아, 그렇습니까?”

2번 라인 측도 우리와 비슷한 작전을 구사하는 모양.

“그나저나 최 부장은…….”

그와 길지 않게 면담을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고, 부서 검사들 잘 챙기고.”

“알겠습니다.”

“일 봐.”

“예. 쉬십시오.”

서기웅 검사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복도에 도착하자,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덕분에 안에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독사.

공안부의 강중식 부장.

“오, 최서준 부장님 아니십니까? 공안부 부장으로 온 강중식입니다.”

그는 진한 부산 사투리를 풍기며 먼저 친근하게 인사를 걸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며 인사를 하는 사이, 문이 닫혔다.

“TV에서 억수로 많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슬쩍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검사장님 면담 가시는 거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최 부장님도 면담하고 오시는 겁니까?”

“예. 그렇긴 한데, 검사장실로 가려면 아까 내리셨어야 하는데.”

“아, 그렇습니까?”

강중식 부장은 자신의 이마를 치며 넉살을 떨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처음이라 영 적응이 안 되네요.”

나는 그를 대신해서 바로 밑의 층을 눌러 주었다.

“여기서 한 층만 올라가시면 되니까 계단 이용하시는 게 빠를 겁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가 너스레를 떨며 인사하는 순간, 그가 날카롭게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는 모습이 거울을 통해 포착되었다.

‘독사’라는 단어가 순식간에 뇌리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부산에서 올라오셨다고 들었는데.”

“아, 소문이 벌써 거기까지 퍼졌습니까?”

강중식 부장은 눈꼬리를 휘었다.

“아니면 특수부셔서 벌써 알고 계신 건가.”

그 말에 대답하기 전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세요.”

그는 꾸벅 인사를 하며 계단으로 향했다.

새삼스레 주변에 괴물들이 더 많아졌다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당장에 만난 두 명만 해도 무려 서기웅 검사장에 독사 강중식.

그 외에도 시퍼런 사슬을 휘젓는 녀석들이 가득하다.

이럴 때일수록 내 자리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을 터.

목적지를 바꿔 이두형의 사무실로 향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예.”

차도 준비시키지 않고 곧장 그를 따로 불러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이 부부장.”

“예, 부장님.”

그에게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자네가 특수부에서 믿을 만한 놈 하나 발굴해 봐.”

순간, 이두형의 눈이 번뜩였다.

“그 말씀은…….”

“그래. 내가 자네를 선택한 것처럼, 자네도 믿을 수 있고 실력 죽여주는 놈으로 하나 골라서 키워 보라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만의 세력을 키워서 중앙지검을 우리들의 왕국으로 만들어야 할 것 아니야?”

“맞습니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도 필요 없고 딱 하나. 제대로 된 놈으로 하나만 잘 키워 봐. 계속 끌고 올라갈 수 있도록.”

진지하게 말을 덧붙였다.

“무엇보다 간이 커야 돼. 담력 있고, 누구 앞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 녀석으로.”

그는 천천히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잘 골라 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 부부장.”

“예?”

“이제 실망시키지 않을 레벨은 지났어.”

그의 어깨를 잡았다.

“만족할 수 있는 녀석으로 부탁하지.”

이두형 부부장검사의 속에서 열정이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만족하다 못해 기뻐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기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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