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낼 때는 (4)
순식간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꼴에 검사장이라고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려는지, 나가면서도 곱게 물러나지 않았다.
-최 프로, 듣고 있어?
“아, 네. 이거 확실한 겁니까?”
-당연하지. 검사장 실무관한테 전화했다가 직접 들었어.
“일단 알겠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여차하다간 골로 간다.
“예, 쉬십시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왁자지껄한 분위기였지만, 다른 이들도 금세 내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닫고 단번에 공기가 가라앉았다.
여흥이 깨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들을 생각할 여유까지는 없었기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검사, 잠깐만 나와 봐.”
“예, 선배님.”
이두형 검사와 함께 식당 밖으로 나와 담뱃불부터 붙였다.
혼탁한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 나서야 가슴이 진정되었다.
“후우.”
희뿌연 담배 연기가 찬 공기에 섞여 사라졌다.
이두형 검사는 무슨 일인지도 물어보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한 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 검사.”
“네, 말씀하십시오.”
“김재욱 이 자식이 사표 내기 직전에 한태민을 부장검사로 발령을 내 버렸어.”
“저, 정말입니까?”
그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서렸다.
“그러면…….”
나는 담뱃재를 떨며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일단 이 검사는 여기 남아서 사람들이랑 회식해. 결제는 이걸로 하고.”
“아닙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니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선에서 해결해 보고, 안되면 그때 도와줘.”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어. 나 때문에 괜히 분위기 깨지는 건 원치 않으니까.”
“예. 그러면 일단 안에는…….”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갔다고 그래. 잘 처리되면 이따가 전화해서 합류하든지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담배꽁초를 발로 짓이겨 끄고는 곧장 택시에 올라탔다.
“신촌으로 가 주세요.”
“네, 바로 모시겠습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곧장 한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조금은 긴장한 목소리.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
“지금 뵙죠. 제가 신촌으로 가겠습니다.”
***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됐더군요.”
한태민도 꽤나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김재욱 검사장에게 특수부 부장 자리를 약속받긴 했지만, 이렇게 도망치면서 발령을 내 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
그는 슬쩍 속내를 내뱉었다.
“그래도 제가 따르던 검사장님이 물려주신 마지막 유산인데 이걸 함부로 무시해서야 되겠습니까?”
“한 부장님.”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소탐대실이라는 사자성어 들어 보셨습니까?”
한태민 부장검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지금 강현수 부장에 이어 김재욱 검사장도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한 부장님이 기어이 들어오신다라…….”
일부러 자신감을 내비치기 위해 살짝 코웃음을 쳤다.
“버티실 수 있겠습니까?”
“…….”
그의 동공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지.
실제로 그의 라인에 함께 서 있던 2번 라인의 사람들이 깡그리 밀려 나갔고, 그나마 버티고 있던 김재욱 검사장마저 오늘자로 물러났으니까.
일반 시민들은 몰라도 김재욱 검사장의 목을 친 이두형 검사가 내 사람이라는 건 이쪽 바닥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내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그가 제일 잘 알 것이다.
“부장님.”
그의 목젖이 꿀렁였다.
소리 없이 침을 삼킨 것이다.
그만큼 한태민도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후환을 감당하실 자신이 있으시면 제 경쟁 구도에 서시고, 아니면 물러나십시오.”
이전과 다르다.
그때는 김재욱 검사장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지만, 지금 특수부에 올라온다면 오롯이 그 혼자서 날 상대해야 하니까.
“호랑이가 이빨 드러낼 때는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그저 다리를 꼬며 그의 대답을 기다릴 뿐.
이 정도만 해도 말뜻은 충분히 알아들었을 테니까.
그는 찻잔을 내려다보며 침묵에 잠겼다.
깊이 고민하는 것일 테지.
특수부로 오고 싶은 욕망을 갖고 나와 싸우느냐, 아니면 안전하게 지금의 자리를 지킬 것이냐.
위험한 출세와 안정 중에서 골라야 할 테지.
물론, 어떤 게 옳은 답변인지는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그는 문득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 마포는 신촌과 홍대로 이어져 있어서 근처에 버스킹 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그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자, 스피커와 기타를 메고 걸어가는 청년 둘이 눈에 들어왔다.
“저는 버스킹 보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보면 열정이 느껴져서 의욕이 생기고 뭔가 끓어오르거든요.”
한태민은 마음을 내려놓은 듯 찬찬히 이야기했다.
“서부지검이 마포에 있어서 쉽게 버스킹을 볼 수 있어서 참 편하고 좋죠.”
그 말에 자연스레 내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게다가 저는 집도 신촌 근처라서, 출퇴근하기에도 서부지검이 가까워서 좋습니다. 굳이 강남까지 갈 필요는 없겠죠.”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저는 최 검사님과 라이벌 관계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입가에 피어나는 웃음기를 숨기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그는 찻잔과 함께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한태민도 넉살을 떨었다.
“저도 사실 위에서 까라고 해서 까는 거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특수부 부장 자리로 가라고 하니까 가겠다 한 거지, 최 검사님 자리를 탐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산 어쩌고 하던 인물이 180도 태도를 바꾼 모습.
당연히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이야기겠지만, 굳이 이 분위기에서 태클을 걸 필요는 없었다.
“윗놈들이 잘못이죠.”
“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발령 거부 의사 올리고 서부지검에 남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뻗었다.
“잘 정리되어서 좋네요.”
그 또한, 의자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았다.
“저는 이번 일로 인해 최 검사님과 돈독해지고 싶은데요.”
“제가 또, 한번 잡은 손은 잊지 않죠.”
그를 향해 코를 찡긋해 주었다.
한태민이 한동안 기억에는 남겠지.
물론, 오래가지 않을 테지만.
***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어, 바쁜가?”
그를 보자마자 윤설하 수사관과 조아라 실무관은 물론이고 나까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장님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권형기 차장.
제3차장검사로, 특수부를 관리하는 직속 상사이자 1번 라인에 속한 인물.
한태민의 부장검사 발령 소식을 알려 주었던 이로, 나와 제일 가까운 차장검사다.
“전해 줄 소식이 있어서 왔어.”
그는 스윽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바쁜데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아닙니다. 말씀하십시오.”
“방금 전에 차장 회의가 있어서 들어갔다 왔거든.”
차장 회의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현재 검사장이 공석이 된지라, 부장검사를 임명하는 건 검사장의 권한대행인 제1차장검사.
차장 회의라면, 아마도 부장검사 임명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눈을 번뜩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권형기 차장검사는 내게 다가와 손을 뻗었다.
“최 프로, 축하해. 이제 최 부장이라고 불러야겠네.”
나이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곧바로 권형기 차장검사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내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와아앗!”
윤설하와 조아라가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려 있는 탓에 밖에서도 들렸는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특수부 소속의 다른 평검사들도 다가와 박수 세례를 날렸다.
“부부장님, 축하드립니다! 아, 이제 부장님이시죠!”
“축하드려요!”
“이야아아!”
권형기 차장검사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소식은 직접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 왔네.”
“차장님께 들어서 영광입니다.”
“하하하, 말은 잘해.”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앞으로 기대함세.”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늙은이는 빠져 줄 테니까 특수부끼리 으쌰으쌰 하라고.”
권형기 차장검사는 뒤돌아보며 특수부 검사들을 향해 외쳤다.
“오늘 부장님이 소고기 쏘신단다!”
“예에!”
검사들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환호했다.
아이, 권 차장님도 참.
물론, 이런 날은 당연히 나도 뺄 생각이 없지.
나는 자신 있게 지갑에서 신용카드 한 장을 꺼내 높이 들어 올렸다.
“먹고 죽자!”
“호우!”
“부장님! 부장님!”
검사들은 ‘부장님’을 연호하며 한참 동안 나를 향한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
축제 같은 분위기가 지나서 겨우 진정이 된 뒤에, 천천히 부부장실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윤설하가 문득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런데 이제 진짜 이별이네요.”
“네?”
그녀의 목소리에선 서운함이 뚝뚝 묻어났다.
“부장검사로 올라가시면 수사관이 안 붙잖아요. 실무관인 아라 씨만 부장님 담당으로 올라갈 테니까요.”
윤설하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부장검사로 올라간다고 저랑 작별하시게요?”
내 말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러면 저 때문에 부장검사 자리를 내팽개치시기라도 하시려고요?”
“전 올라가도 설하 씨가 필요할 것 같은데.”
윤설하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저도 당연히 검사님…… 아니, 부장님 곁에서 남고 싶죠. 하지만 체계상 그게 어려우니까…….”
“설하 씨만 오케이하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나는 실실 웃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저는 당연히 오케이지만…….”
똑똑.
그때, 다시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때마침 왔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이두형 검사가 들어왔다.
“아유, 부장님.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대검 들어갔다가 이제 나왔습니다.”
“하하하, 아니야.”
“부장 승진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는 쌍으로 엄지를 치켜들며 눈을 번뜩였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 검사.”
“예?”
“자네 부부장검사로 올라오면 수사관 한 명 더 충원할 수 있는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이두형 검사와는 진즉에 이야기해 둔 내용이었기에 그는 너스레를 떨며 윤설하를 바라보았다.
“기왕이면 윤설하 씨가 오면 좋겠네요.”
가만히 듣고 있던 윤설하는 눈을 끔뻑거리며 나와 이두형 검사를 번갈아보았다.
이두형 검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아, 그런데 저는 박철웅 수사관님으로도 충분해서…….”
그제야 윤설하도 어떤 상황인지 알아채고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면 제가 이 검사님 소속으로 들어가서 부장님 케어하면 되겠네요.”
“그거 딱 좋네.”
이게 계획이었다.
공식적으로 윤설하의 소속은 이두형 검사의 밑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내 일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
이두형 검사를 믿고 있긴 하지만, 혹시나 그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게 윤설하를 통해 감시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랄까.
99.9%만큼 신뢰하지만, 0.1%의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되는 게 이 바닥이니까.
물론 이두형 검사는 이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터.
“설하 씨, 앞으로도 잘 부탁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장님.”
윤설하는 여느 때보다 훨씬 더 해맑은 미소로 나와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