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낼 때는 (3)
-아는 삼촌에게 좀 말려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 사람이 조직폭력배였답니다. 그 학생의 심정으로는 과연 이게 단순히 중재시키려는 걸까요, 아니면 협박으로 느껴질까요?
송재훈 PD는 조리 있게 말을 이어 나갔다.
-찬우를 괴롭힌 행위는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해결하는 방법도 잘못된 거죠. 그 아이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TV 속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새로운 프레임으로 몰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검사장의, 그것도 서울중앙지검장의 아는 사람이 조직폭력배라. 그것도 한둘이 아니고 떼로 몰려왔다고 했죠. 과연 이게 평범한 일일까요?
송재훈 PD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에 아직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걸, 다름 아닌 검사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었을지 참으로 궁금해지는군요. 오늘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그는 의문을 일으키며 방송을 마무리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청자 게시판은 방송이 끝나기 전부터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온갖 커뮤니티도 마찬가지.
김재욱 검사장에 대한 의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가는 가운데, 송재훈 PD로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네, 최서준입니다.”
-방송 보셨습니까?
“예. 아주 깔끔하고 완벽하게 잘 만들어 두셨던데요?”
-하핫, 감사합니다. 다 서준 씨가 주신 소스 덕분이죠.
“말씀드렸던 부분 편집이 너무 완벽해서 혀를 내둘렀다니까요.”
오늘 방송에서의 핵심은 예상했던 대로 김재욱 검사장의 아들을 괴롭혔던 일진과의 인터뷰.
누가 보면 조직폭력배를 이용해 애들을 초주검 상태로 만든 것처럼 악랄하게 꾸며 두었다.
뺨을 맞았다는 것도, 툭툭 맞은 부분은 빼고 그저 맞았다는 사실만 묘사했을 정도니까.
-만족스럽게 보셨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검사님께서 마무리해 주십시오.
“예. 며칠이면 이제 정말 모든 게 정리될 겁니다.”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1주일.
단 7일이면 완벽히 교통정리가 끝날 테지.
***
이번엔 기자회견이 아니라 바로 행동에 옮겼다.
특별수사부 부장 자리가 공석인지라 그 권한이 내게 일임된 상태였기에, 윗선에서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었으니까.
제일 먼저 문제로 삼은 건 10년 전, 김재욱 검사장이 서울동부지검에 있을 때 왕십리 불개미파 녀석들을 맡았던 사건.
당시에는 언론에 기사 한 줄조차 나지 않고 조용히 묻힌 건이었다.
그러나 이두형 검사가 이번 김재욱 검사장의 아들 건을 조사하다가 발굴해 냈다.
“이거 구형이 낮은 게 문제가 된 거였지?”
“예, 맞습니다.”
이두형 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구형 자체를 아예 최소 형량으로 때렸습니다. 덕분에 그 많은 놈들이 다 집행유예 떴고요.”
“이거 관련해서 재조사한다고 언론에 흘릴 테니까 자네가 맡아서 영장 발부시켜.”
“제가요?”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이 검사도 이름 한번 알려야지.”
처음엔 직접 나서서 칼자루를 휘두르려고 생각했지만, 임유나 기자의 서포트로 인해 내가 부장검사 자리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게 알려진 상태인 지금에서는 내가 나서면 오히려 그림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
승진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 또한 보복을 하려고 한다는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으니까.
맛있는 사건이지만, 내가 먹는 것보단 오히려 내게 몰린 관심을 흩뜨리면서 이두형 검사의 인지도를 올리는 게 더 적절한 판단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어차피 이번 건 제대로 수사 들어가면 검사장이 알아서 옷 벗을 거야.”
“검사장…….”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평검사 한둘 잘려 나가는 것도 놀라운데 무려 검사장의 목을 치는 일이었으니까.
검사장이라는 위치까지 올라가려고 얼마나 많은 동료, 선배, 후배를 짓밟았겠는가?
그렇게 힘들게 올라간 검사장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이두형 검사는 아마도 내가 뻗은 손을 잡지 않았다면, 지금 잘려 나가는 건 검사장이 아니라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면 바로 영장 발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영장 나오면 바로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이고 나가려다가 문득 멈춰 섰다.
“그런데요, 선배님.”
“왜?”
“김재욱 검사장이 나가면 그 자리엔 누가 올라가는 겁니까?”
내 생각엔 2번 라인 쪽에서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강현수와 함께 목이 잘려 나간 부장검사들로 인해 공석이 된 빈자리에 올라온 인물들은 전부 1번 라인.
암만 김재욱 검사장이라도, 특수부 부장 자리에 자신의 라인 인물을 끌어오려고 하는 판이었으니 그 외에는 1번 라인에 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물론, 지금은 전부 판이 엎어져서 모든 자리를 1번 라인이 독차지하게 생겼다.
그렇기에 위쪽에서 밸런스를 맞추려는 신경을 쓴다면 2번 라인, 그게 아니면 제3의 인물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애초에 현 대통령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최규현은 자신의 영역을 넓히느라 정신이 없을 터라 검사장까지 고려할 여력이 되지 않을 테니까.
“그것까진 나도 모르겠다.”
“아, 그렇군요.”
“근데 누가 올라오든 상관없지.”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자리에 누가 앉든 간에 우리는 위로 올라갈 거니까, 안 그래?”
이두형 검사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는 벌써부터 기대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선배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얼마든지.”
***
-HY.Software16 : 아니 ㅋㅋㅋ 아들을 위한다고 해 놓고 알고 보니 옛날에 챙겨 준 깡패들 데려다가 쓴 거네?
-AquaMan : 조직폭력패를 아는 삼촌이라고 소개했을 정도면 10년 전부터 쭉 이어졌다는 거 아니냐? 완전 소름 돋네.
-투명드라군 : 리얼루다가 헛소리였자너 ㅋㅋㅋ 10년 전부터 이렇게 이어졌으면 받아먹은 돈만으로도 집 몇 채는 샀을 듯.
-주름킬러벤자민 : 찬우야! 네가 입고 있는 돈, 지금껏 누렸던 모든 게 다 너희 아버지가 뒷구멍으로 받아 처먹은 돈이었다!
-래퍼가될고야 : 야, 솔직히 말해서 일진들이 더 삥 뜯어도 무죄였다. 인정? 어, 인정!
인터넷 반응은 심각했다.
일진에게 협박해서라도 쫓아낸 건 잘했다고 김재욱 검사장을 실드 치던 인물들의 대부분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솔직히 말해서 내 아들이 괴롭힘당하고 왔으면 김재욱 검사장 같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그런 생각만으로 돌아가는 세상이었다면, 법이 필요가 있겠는가?
이건 명백히 제3자를 통한 협박이었다.
심판자 피해자였던 유동현 건을 처리하며 언론에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냈던 이두형 검사는 이번 건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암만 언론에 두드려 맞은 김재욱이라고 해도, 검사장은 검사장이었으니까.
물론, 이두형 검사에 대한 관심은 내가 쌓은 아성에 비할 바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상황 하나하나가 감격스러운지 나에게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이로서 그를 부부장검사에 올릴 만한 합리적인 근거와 함께 나중에 그를 일선에 내세울 때도 몇 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상황.
김재욱 검사장에게서 그 뒤로 추가적인 연락은 없었다.
사무실에도 출근하지 않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이미 왕십리 불개미파와의 커넥션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이상, 검사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더 손을 쓸 수는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그리고 내가 예언했듯, 방영일로부터 정확히 1주일이 되던 날.
김재욱 검사장은 사표를 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윤설하와 조아라는 물론이고 이두형 검사 사무실 사람들까지 한데 모여 회식을 즐겼다.
그쪽 사람들이나 우리 쪽 사람들 모두, 한배를 탔다는 사실은 훨씬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이야, 드디어 올라가시네요.”
“그러게. 서울 올라온 지 만 3년 만에 부장검사로 올라가네.”
“엄청나게 빠른 겁니다, 선배님!”
이두형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짜 선배님이 제 롤 모델이십니다.”
“하하하, 쑥스럽게 무슨.”
민망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자네도 부부장검사 되는 거 축하해.”
“감사합니다. 다 선배님 덕분이죠.”
“이 검사가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지.”
부장검사로의 걸림돌이 모두 사라진 참이라, 기분도 낼 겸 강남에서 제일 비싼 한우집으로 왔다.
오늘 같은 날은 아낌없이 써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내 주머니에는 아쉬움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
주옥그룹에서 받은 120억부터 시작해서 한울 투자증권의 주가조작 사건에서 100억, 이번 SL그룹으로부터 챙긴 100억까지.
주머니가 빵빵하다 못해 터질 정도였으니까.
사건을 진행하면서 돈지랄을 하는 건 기본이고, 윤설하부터 시작해서 조아라와 이두형 검사 및 경찰들에게 그렇게 돈을 뿌렸지만, 아직도 돈은 줄어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금전 감각 자체가 사라졌달까.
“먹고 싶은 거 다 시켜요. 오늘 같은 날은 카드 한도 무제한이니까.”
“부부장님 멋있다!”
“역시 검사님!”
한창 한우와 소주의 조합을 즐기고 있던 도중, 휴대폰을 확인한 이두형 검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잠깐 전화 한 통만 받고 오겠습니다.”
“그래.”
이두형 검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윤설하가 슬쩍 물었다.
“이두형 검사님이 검사님보다 한 기수 후배였죠?”
“예, 맞습니다.”
“이 검사님도 진짜 초고속 승진이잖아요. 4년 만에 부부장검사면.”
“그렇죠.”
“그런데 어떤 분은 검사 부임한 지 5년째에 부장검사가 되어 버리네요.”
그녀는 나를 말똥말똥 쳐다봤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아쳤다.
“그러게요. 누군지는 몰라도 일은 기가 막히게 잘하나 보네.”
“하하하. 맞아요, 맞아.”
윤설하는 큭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이두형 검사가 갑자기 케이크를 사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이거 웬 케이크예요?”
윤설하의 물음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생각해 보니까 우리 선배님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연소 부장검사가 되시는 거잖습니까? 그 축하 의미로다가 소소하게나마 한번 준비해 봤습니다.”
“에이, 이런 것까지 안 해도 되는데.”
쑥스러웠지만, 입꼬리가 삐죽삐죽 올라가는 건 숨길 수 없었다.
“고마워, 이 검사.”
“아닙니다. 앞으로 더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또 사양 않고 기대하지.”
폭죽은 거두고 초에 불만 붙여 끈 뒤에 천천히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이두형 검사 측의 수사관이 윤설하에게 물었다.
“내일은 뭐 하십니까?”
윤설하가 윙크를 하며 말했다.
“부장검사실로 이사 갈 준비해야죠.”
“아, 그러면 저희는 부부장검사실로 옮길 짐을 싸야겠네요.”
“그렇죠, 하하핫.”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그렇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은 차장검사인 권형기.
멀리 나가지 않고 자리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
“네, 최서준입니다.”
-어, 최 프로. 지금 뭐 하고 있어?
“사무실 사람들이랑 회식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자네 소식 못 들었어?
그의 목소리에서 걱정스러움이 전해져 왔다.
이거 느낌이 상당히 좋지 않은데
“어떤 소식 말씀이십니까?”
-김재욱 검사장, 그 새끼가 마지막에 고춧가루 뿌리고 갔어.
“예?”
-특수부 부장검사 발령이 났어. 자네 말고 다른 사람으로.
갑자기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그 자식이 옷 벗기 직전에, 특수부 부장검사 자리에 서부지검 공기부 한태민 부장검사를 발령 내고 사표를 던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