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낼 때는 (2)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 버리셨으니 이제는 저도 어쩔 수 없네요.”
“기회는 개뿔.”
그가 비아냥거리는 말을 더 이으려는 찰나.
지잉지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필시 기사가 올라갔다는 박수형 기자의 문자일 터.
나는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아, 이걸 어쩌나.”
김재욱 검사장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눈을 부라렸다.
“사냥이 벌써 시작되어 버렸네.”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잘 도망가 보세요, 사슴씨.”
그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아직 제대로 시작된 걸 모르는 김재욱 검사장은 자만 가득한 웃음소리를 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계단을 내려와 휴대폰을 확인하자, 역시나 박수형 기자가 보낸, 기사가 올라갔다는 내용과 기사 링크가 걸린 문자였다.
그때, 다시금 울려오는 진동.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보낸 이 : 박수형 기자
-아, 혹시 몰라서 그 일진 녀석들 인터뷰본도 같이 보냅니다. 확인해 보세요.
-첨부 파일 1개
곧바로 첨부된 파일을 재생하자, 녹음이 아닌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처음부터 송재훈 PD에게 넘길 생각까지 하고 아예 카메라를 대동하고 간 모양.
동영상에선 두 명의 고등학생이 박수형 기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녹화 시작합니다.
박수형의 목소리로 시작되는 인터뷰.
-예.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편하게 하세요.
그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제가 장난으로 툭툭 치긴 했어요. 걔가 매점 갈 때 돈 주고 제 것도 좀 사 오라고 시키고요. 돈을 부족하게 준 적은 없어요. 천 원짜리 빵 사면 천 원을 다 주죠. 가끔 없을 때 빌리긴 했지만.
전형적인 일진의 인터뷰다.
자신은 장난이라고 하지만, 당한 사람은 괴롭힘이라고 느낄 테니까.
-뭐,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나. 야자 째고 PC방에 가고 있는데 갑자기 깡패들이 골목으로 저를 데려가더라고요.
-깡패들이요?
-네. 딱 봐도 정장에 머리 스포츠로 밀고 다니는 그 깍두기 형님들 있잖아요.
-알죠.
-그 사람들 따라갔더니, 찬우 괴롭히면 제대로 혼내 준다고 하더라고요.
찬우는 김재욱 검사장의 아들.
인터뷰 대상들은 제대로 찾았다.
-진짜 너무 무서워서, 그대로 PC방이 아니라 집으로 도망갔다니까요.
-혹시 맞았어요?
-네. 뺨 두어 대 맞고 머리끄덩이 잡고 흔들렸어요.
-뺨을 맞았다고요?
박수형의 설레는 목소리를 들으니, 한껏 입꼬리를 비튼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제 뺨을 툭툭 건드렸어요. 쫙쫙 소리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주먹질만 안 했다 뿐이지 진짜 맞은 거나 다름없다니까요.
-신고는 했어요?
-아니요. 어떻게 신고를 해요. 보복 무서워서 그다음 날부터는 찬우한테 말도 안 걸었어요.
-아아, 그렇군요.
그 뒤로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학교에 다니며 김찬우가 특혜를 받은 것 같다는 이야기들.
그러던 도중, 갑자기 귀가 확 뜨이는 말이 들려왔다.
-아, 맞다. 저 걔 때문에 여기 직업훈련학교에 강제로 왔잖아요.
-강제로 왔다고요?
박수형 기자가 특종을 캐치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저는 여기 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저희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무조건 보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도 찬우 편애해 주고 그런 건 알았는데, 제가 몇 번 괴롭힌 경력이 있어서 아예 내쫓은 것 같아요.
그때, 옆에 있던 그의 친구가 태클을 걸었다.
-야, 근데 그건 걔가 보낸 건 확실하지 않잖아?
-합리적인 의심이지. 찬우가 선생님들한테 예쁨받는 건 확실했잖아. 그 전에도 날 제일 싫어했고. 그러니까 선생님이 보낸 거 아니겠냐?
-그런가?
-어쨌든 그래서…….
동영상이 끝나기도 전에 씨익 미소가 번졌다.
인터뷰 내용이 장난이 아니다.
통화할 때 박수형 기자가 왜 그렇게 들떴는지 알 수 있을 정도.
중간에 친구가 말을 한 게 있어서 실제로 김찬우 때문에 오게 된 건 반신반의지만, 편집의 힘으로 잘 살려서 김재욱 검사장의 탓으로 방송이 나갈 것이다.
여기서는 의심이지만, 편집을 거치면 팩트가 될 테니까.
조직에게 맞았다는 부분도 마찬가지일 테고.
이거 인터뷰 덕분에 일이 꽤나 수월해지겠는걸.
현재 박수형 기자가 올린 기사에는 이러한 인터뷰 내용이 싹 빠져 있었다.
‘충격!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이 지인을 이용해 아들의 친구에게 협박한 사실 밝혀져!’라는 헤드라인으로 눈길을 끌기만 했지, 실제적인 내용엔 조직폭력배나 그와 관련된 사실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일부러 증거가 부족한 척하여 김재욱 검사장이 먼저 대응하길 기다리는 상태.
그가 무언가 해명했을 때, 그 빈틈으로 송재훈 PD가 준비하고 있는 이 옆구리를 치고 들어갈 것이다.
김재욱 검사장은 그것만으로도 벅찰 테지.
***
-민 사장님, 이번에 기사가 하나 올라왔던데요?
김재욱 검사장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WK일보에 해 드린 게 얼마인데…….
“허허허, 미안하네.”
전화를 받던 WK일보의 민병준 사장은 멋쩍게 웃었다.
“이번 기사는 내가 결재한 게 아니라, 밑에서 저들끼리 알아서 처리한 모양이야.”
-안 그래도 지금 탄핵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이는데, 우리끼리 이러면 되겠습니까?
“미안하네. 내가 밑에 확실히 말해서, 추가 보도는 하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둠세.”
-예. 그러면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내가 조만간 거하게 술 한잔 살 테니 마음 풀어 주게.”
-일단 알겠습니다.
그는 경고하듯 한마디를 보탰다.
-민 사장님, 제 손에 아직 예전의 그 건이 있다는 건 잊지 마십시오.
“에헤이, 그 이야기는 안 꺼내기로 했지 않나.”
김재욱 검사장은 날카롭게 대답했다.
-이번 건도 터져서는 안 됐습니다.
“알겠네, 알았어. 그러면 이번 사태 마무리되면 한번 보도록 하지.”
-예.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전화가 끊기자, 민병준 사장은 미간을 구기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7년이나 지난 일을 가지고 아직도 물고 늘어지고 있어?’
자신이 사장에 오르기 전에 잡혔던 약점을 아직까지 언급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끝나기엔 아직도 3년이나 더 남은 일.
김재욱 검사장에게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정치사회부 박수형 기자 들어오라고 해.”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박수형 기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박 기자.”
“예, 사장님.”
“이번에 김재욱 검사장 건드렸다면서?”
“아, 그게…….”
“그 보도로 끝나는 거지?”
“아닙니다. 추가적으로…….”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민병준 사장이 손을 저었다.
“더 하지 마.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것 없어. 이번에 기사가 부실해서 바로 끝날 거라더만.”
박수형 기자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여기서 보도가 금지되면, 김재욱 검사장을 침몰시킬 수 있는 정말 중요하고 맛있는 기사를 내지 못하게 된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런데 이게 여기서 끝날 게 아니라, 특수부에서도 곧 나설 거라서요.”
“특수부?”
순간, 민병준 사장의 눈이 번뜩였다.
“잠깐만, 그거 최서준이가 들어가는 거야?”
“예, 맞습니다.”
“그래?”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 반짝이는 돌파구가 하나 떠올랐다.
‘그러면 아예 여기서 결판을 내 버릴 수도 있겠는데?’
지긋지긋한 횡령죄에 대한 협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내 민병준 사장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그러면 후속 보도 준비해. 대신, 내가 사인 내리기 전까지는 절대 발표하지 말고.”
박수형 기자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김재욱 검사장은 진심이 담긴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번 건은 공식적인 검찰의 발표가 아니었기에, 기자회견이 아니라 그의 개인 SNS를 통해서 사과문이 올라왔다.
김재욱 검사장이 진지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과 함께 글이 시작되었다.
-죄송합니다, 국민 여러분. 많은 심려를 끼쳐 드려 사과의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이번 건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올해 봄, 가족끼리 모여 앉아 아침상을 들고 있는데, 아들 녀석의 얼굴에 흉터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자세한 경위를 물어보았다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걸 들었습니다. 부모 된 마음으로, 아들 녀석이 일진들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는 동생에게 부탁해 아들 친구들에게 잘 말해서 괴롭히지 않도록 달래 달라고 했는데, 그게 와전이 되어 위협으로 퍼져 버린 모양입니다. 고등학생들의 입장에서 어른이 간다면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고려했어야 하는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 일의 잘잘못을 물으신다면, 백번 제가 잘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들이 맞고 오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가 희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국민 여러분께서는 부디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셔서…….
사과문을 전부 읽고 나니 헛웃음이 나왔다.
사과문이라고 쓰여 있지만, 호소문에 더 가까운 내용.
잘못을 하긴 했지만, 부모 된 심정으로 어쩔 수 없었으니 부디 이해해 달라는 자신의 사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게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아니나 다를까, 댓글에서는 김재욱 검사장을 이해한다는 반응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cherry132 : 아, 진짜 일진들이 괴롭히면 저라도 그럴 듯…….
-A펌킨TT : 차라리 저게 현명한 걸지도 모른다. 진짜 가만 보고 있으면 속 찢어질 듯.
-dhkdtlqflwhswkf : 자식 자살하는 것보다 저게 낫긴 한데……. 그래도 검사장이라는 사람이 그러면 쓰나?
-블랙다이아 : 솔직히 일진한테는 그래도 됨. 저도 어릴 적에 괴롭힘당해 봐서 그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앎.
-명란젓코난 : 일진이라면 인정한다. 충분히 그럴 만해.
글만 보면 충분히 이런 반응이 이해가 간다.
이 사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김재욱 검사장이 동원한 아는 동생들이 바로 조직폭력배였다는 사실이 빠져 있었으니까.
박수형 기자가 일부러 그 내용을 빠뜨리고 기사를 때렸으니 이렇게 간단하게 대처한 거겠지.
아니나 다를까, 바로 김재욱 검사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최서준입니다.”
-최 프로, 벌써 끝난 건 아니지?
그는 놀리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이 정도로 사냥이니 호랑이니 했으면 실망이야.
“당연하죠, 검사장님.”
전화를 건 이유로는 나를 조롱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아마도 다음에 꺼낼 내 카드가 무엇인지 떠보려는 목적이 더 클 터.
뭐, 그 정도야 충분히 보여 줄 수 있지.
이번 건은 말 그대로 언론전.
이미 준비를 끝마친 내가 질 리는 없으니까.
“검사장님, 제가 얼마 전에 대검에 계신 임주영 차장검사님을 뵀거든요.”
말하면서도 히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떤 놈을 조지려면 그의 바로 윗놈을 통해서 조져야 한다고 하시더라요. 그런데 검사장님은 조직폭력배를 쓰셨으니 너무 간 거죠.”
그는 아차 싶었는지, 침묵했다.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사실은 내가 모른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고작 이렇게 호소문 하나로 해결될 건 가지고 제가 호기롭게 나섰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척했다.
-그게 끝이야?
“검사장님.”
나는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이번엔 정말로 저를 부장검사로 올리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겁니다.”
-기대해 보지.
전화를 끊으며 바로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받는 이 : 송재훈 PD
-준비된 방송 바로 방영해 주세요.
내가 나서기까지 딱 한 걸음 남았다.
김재욱 검사장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나서는 순간.
이 몸이 직접 나서서 완전히 기름을 퍼부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