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낼 때는 (1)
“오랜만이에요, 수형 씨. 재훈 씨. 잘 지냈어요?”
“그럼요.”
박수형 기자는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
“서준 씨 덕분에 WK일보에서 올해의 기자상은 제가 차지하게 생겼다니까요.”
“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머리를 슥 매만지며 송재훈 PD에게 시선을 돌렸다.
“재훈 씨는 어때요, 심판자 사건 터지고 반응 장난 아니었지 않아요?”
“당연하죠. 방송국 사장님한테 불려 가서 칭찬받았다니까요.”
“아, 지금 PBC 사장님도 출신이라고 했죠?”
“네, 맞아요.”
송재훈 PD는 껄껄 웃다가 스윽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보다 요즘 한지유 씨 폼이 장난이 아니던데, 제일 좋은 건 서준 씨 아니에요?”
“하하하, 아닙니다.”
오랜만에 모인 우리는 한껏 서로에 대한 덕담으로 서두를 뗐다.
12월 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걸맞은 대화.
한참 대화를 이어 가다가 박수형 기자가 자연스럽게 내게 물었다.
“서준 씨는 내년 초에 그러면 부장검사로 발령 나시는 거 맞죠?”
언제 이야기를 꺼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 테이블 중앙으로 몸을 기울였다.
“재훈 씨랑 수형 씨, 혹시 저 한 번만 더 도와주실 수 있어요?”
“서준 씨 부탁이라면 뭐든 도와드릴 수 있죠.”
“올해의 대미를 장식할 만한 건수가 하나 있는데.”
건수라는 말에 두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술 마시며 노는 것보다 이쪽이 더 구미가 당기는 게 바로 우리 셋의 특징이었으니까.
“이번에 부장검사 승진에 조금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라니요?”
“올해는 내부 사람이 아닌 저희가 봐도 무조건 서준 씨가 올라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여기는 실적만으로 올리는 곳이 아니라서요.”
아쉬운 듯이 코를 찡긋했다.
“저도 제가 올라갈 줄 알았는데, 서울중앙지검장이 제가 올라가는 걸 견제하려는 것 같습니다.”
박수형 기자는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권력 남용 아닙니까?”
“진정하시고.”
나는 주변을 스윽 살피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서 알아보니 그 지검장, 그러니까 김재욱 검사장이라는 녀석에게 문제가 있는 걸 발견했지 뭡니까?”
문제라는 말에 둘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설마…….”
“예. 두 분께서 터뜨려 주십시오.”
송재훈 PD는 턱을 매만지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어, 이렇게 매번 저희를 도와주시기만 하면…….”
“아니요. 늘 상부상조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 건은 제가 터뜨릴 수가 없어요.”
김재욱 검사장의 커다란 흠집이긴 하나, 이번 건은 특수부의 검사보다는 언론을 통해서 물어뜯어야 제대로 된 효과가 발휘될 터.
무엇보다 비리 같은 문제라기보다는 도덕적인 문제에 가까웠기에, 내가 나섰다간 오히려 선을 넘는다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두 분이서 일단 인터뷰를…….”
***
둘과의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최서준입니다.”
-안녕하세요, 검사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발신인은 정치 1번지의 임유나 기자.
저번 월향이 사건을 통한 강현수 부장의 몰락 이후로 정치 1번지와 좋은 관계를 성립시켜 꾸준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이편이 내게도 훨씬 좋았다.
나와 관련된 특종들이 전부 박수형 기자를 통해서 나갔다가는 일반인들도 모종의 관계에 대해 의심할 수 있을 터.
적당한 선에서 몇몇 사건들은 임유나 기자 쪽으로도 넘겨서 보도할 예정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하나 여쭤볼 게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조금 민감하실 수 있는 질문인데 괜찮을까요?
“문제 있다고 생각하면 제가 커트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이번에 들어 보니까 특수부 부장검사가 서부지검에서 올라온다고 하던데, 정말인지 여쭤보려고요.
진심으로 놀랐다.
민감한 질문을 해서가 아니라,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박수형 기자도 모르고 있는 소식을 먼저 접했을 줄이야.
정보력이 상당한데?
강현수 부장 건을 함께 진행하면서 임유나 기자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미 정확하게 서부지검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해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예.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서부지검의 공기부 부장검사인 한태민이 올라올 것 같습니다.”
-아, 정말 유감이네요.
그녀는 씁쓸한 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아니요. 아직까지 확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때, 그녀의 목소리 분위기가 달라졌다.
-혹시 준비하고 계신 게 있는 건가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워낙 민감한 시기라서요.”
-아아.
그녀는 잠깐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러면 제가 제 나름의 방법으로 서포트해 드려도 될까요?
“서포트요?”
-예. 대세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조금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알겠습니다. 올해 가기 전에 한번 뵙죠.
“그렇게 해요.”
-좋은 꿈 꾸세요.
“네.”
전화를 끊자,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되었다.
서포트라.
왠지 모르게 큰 힘이 될 것 같은데?
***
-겉으로 보기에 역대 투명한 검찰이라고 손꼽히는 서울중앙지검. 그러나 속은 썩어 들어가는 중……
-2019년 12월 현재, 전국에서는 물론이고 역대 가장 투명한 검찰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관한 첩보를 본지가 입수했다.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특별수사부에 대한 이야기. 모든 이들이 특별수사부의 부부장검사인 최서준이 차기 부장검사로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서울중앙지검장의 판단은 달랐던 모양이다. 특별수사부의 차기 부장검사 자리에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의 한태민 부장검사를 올리려고 하는 것. 내부인의 말을 따르면 실적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최서준이 올라가야 한다지만, 소위 말하는 라인을 타지 못한 탓에 승진에서 밀린 게 아닐까 추측한다고 한다. 실력이 묻히고 정치가 그 위에 올라선 실태. 이게 과연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올바른 일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든다. 말 그대로 업무를 잘하는 것보다 줄을 잘 서는 게 승진과 출세의 지름길인데 그 어떤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도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는 최서준 검사를 비롯한 깨끗한 사람들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前 보건복지부 장관 유성현
정치 1번지의 사설란에 뜬 글.
보나 마나 임유나가 힘을 쓴 것일 터.
그녀가 부탁해서 유성현이 기고하고 신문 사설란에 오른 게 아닐까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방송으로 얼굴을 보이고 있는 장관 출신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유성현의 사설.
안 그래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효과는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뿐만이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연예부 쪽에서도 추가적으로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한지유의 팬들로 하여금 최서준의 행방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내용의 기사.
그것도 연예부에서 힘깨나 쓰는 왕스패치의 기사라서 확실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유성현의 사설이 인터넷에도 올라오고, 트래픽이 상승하면서 포털 사이트에 노출이 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상황.
생각보다 인맥도 뛰어난 데다가 일을 해치우는 재간도 비상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유능하달까.
이 정도의 기자를 찾기가 힘든데, 괜히 정치 1번지에서 에이스라고 내게 소개해 준 게 아니었다.
임유나 기자와 더욱 가까워질 필요성이 생겼다.
박수형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스타일로 활동하는 기자였기에, 나와 손을 잡으면 분명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터.
만약 언론전이 벌어지더라도 아주 든든할 것 같았다.
그때, 박수형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최서준입니다.”
-서준 씨, 인터뷰 땄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인터뷰 어떻게 따셨어요? 고등학생들이라 학교에서 쉽게 허락해 주지 않을 텐데.”
-아, 이 친구들 직업훈련학교에 가 있더라고요. 일진이라길래 슬쩍 담배 한 보루씩 찔러주니까 아주 적극적으로 인터뷰하던데요.
“이야, 고등학교 2학년한테 담배라니요.”
-어차피 담배 피우는 거 다 아는데요, 뭐. 하하핫.
그는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서준 씨가 말한 그대로였어요. 김재욱 검사장, 이 녀석 깡패들 부른 것 같더라고요.
“예. 왕십리 불개미파 녀석들일 거예요.”
-해당 사실 관련해서 완전 자극적으로 인터뷰 따는 데 성공했어요. 고등학생들이라 확실히 말하는 데 필터가 없더라고요.
“그러면 그 인터뷰를 바로 쓰기엔 애매하겠는데요?”
-그래서 이걸 재훈 씨의 로 넘겨서 확실하게 방송으로 때리고, 저는 말씀하셨던 대로 간만 보듯이 찌를게요.
“감사합니다.”
-네. 고생하시고, 기사는 1시간 뒤에 올라갈 겁니다.
“수고해 주세요.”
-예.
전화를 끊자, 자동으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인터뷰까지 땄으면 확실하다.
이두형이 캐 온 김재욱 검사장의 약점.
바로 그의 아들과 관련된 건이었다.
김재욱 검사장이, 자신의 아들을 괴롭힌 친구들에게 조직폭력배를 데리고 가서 협박을 한 역사.
먼 과거도 아니고, 올해 봄에 일어났던 따끈따끈한 일이다.
아들을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은 알겠지만, 애들 싸움에 조직폭력배를 끌어들이면 쓰나.
빠르게 시간이 흘러 박수형 기자가 말한 기사가 올라오기 10분 전.
나는 검사장실로 향했다.
나를 안으로 들인 김재욱 검사장은 능글맞게 웃으며 나를 소파로 안내했다.
“앉지.”
“예.”
그는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내게 물었다.
“우리 최 프로가 무슨 용건으로 나를 만나러 왔을까?”
“서부지검 한태민을 올린다고 들었습니다.”
“어, 그렇게 됐어. 한 부장이랑은 이야기 나눴나? 최 프로 얼굴 보러 간다고 하던데.”
“검사장님.”
차갑게 목소리를 식혔다.
“저와 붙어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나오십니까?”
그는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티라도 내듯 귓구멍을 후볐다.
“실수하지 마시고 좋게 가시죠. 지금 놓치면 저와 적이 되시는 겁니다.”
“실수라니.”
김재욱 검사장은 헛웃음을 쳤다.
“자네와 나, 위아래가 바뀐 것 같은데. 검사장 앞에서 부부장검사는 쥐새끼처럼 숨어 있어도 모자랄 판 아닌가?”
그는 깜빡했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맞다. 최 프로는 쥐새끼가 아니라, 호랑이 새끼였지.”
아무래도 강현수 부장에게 내가 했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모양.
그는 조소를 지으며 눈을 부라렸다.
“그런데 말이야, 호랑이 새끼랑 다 큰 야생 표범이 붙으면 누가 이기는지 알아?”
김재욱 검사장은 비열하게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표범이야. 표범은 나이를 먹으면서, 호랑이는 새끼 때 조져야 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거든.”
“검사장님.”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새끼라도 호랑이는 호랑이죠.”
그를 향해 턱을 치켜올렸다.
“그 표범은 자만하다가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낸 것도 모르고 물려서 한입에 나가떨어질걸요.”
“과연 그럴까?”
김재욱 검사장은 코웃음을 쳤다.
나는 양손의 손가락 끝을 맞대며 입을 열었다.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낼 때가 언젠지 아십니까?”
눈을 매섭게 치켜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사냥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입니다.”
나는 한껏 입꼬리를 비틀었다.
“저는 확신이 드네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덧붙였다.
“사냥을 시작해도 된다는 확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