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78화 (78/341)

후폭풍 (3)

인터넷에 한 익명의 이름으로 음란물이 유포되었다.

왼쪽 쇄골에 점이 있는 여성과 오른팔에 흉터가 있는 남자.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으로 한지유와 최서준이라고 추측할 만한 영상.

물론 동영상 우측 하단에 각인되어 있는 2018.09.19라는 날짜가 흠이긴 했으나, 시민들의 눈에 날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이 동영상을 보고는 한지유와 내가 성 상납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고, 오히려 한지유의 출국 기록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나온 상태.

이러한 상황에서 쐐기를 박으려는 듯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소속 부장검사 강현수입니다.

“허어, 강 부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하네요?”

TV를 확인한 윤설하는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렇게 직접 나설 줄은 몰랐는데.”

나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리 열이 받아도 자신의 밑에 오른팔로 있는 평검사를 통해 발표를 했으면 했지, SL그룹과의 커넥션으로 이미 눈총을 맞고 있는 가운데 직접 나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저렇게 나오는 건 말 그대로 끝장을 보겠다는 뜻이다.

자신의 검사 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지.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암만 그의 오른팔이라도, 지금 상황에서 나에게 칼자루를 빼 들려고 하는 녀석은 많지 않을 테니까.

기자들도 마찬가지.

한지유 소속사인 HS엔터에서 강경 대응을 한 탓에 TA일보에서도 깨갱하며 꼬리를 내렸다.

정정 보도만 내지 않았을 뿐 사실상 백기를 든 것과 다름없었기에, 특종에 눈이 멀어 선을 넘으려는 기자도 없을 터.

여차하다가는 검사인 나까지 상대해야 될 테니까.

강현수 부장 입장에서도 더는 TA일보를 믿고 싶지 않고, 같이 일을 진행하기도 싫었겠지.

무엇보다 이제부터는 돈이 아니라, 자존심이 걸려서 물러날 수도 없었을 테고.

궁지에 몰린 것도 모자라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등져 버렸으니 강현수 부장은 평상시와 같은 상태는 아닐 터.

정신력 하나만큼은 칭찬해 줄 법했다.

그는 심하게 충혈된 눈으로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를 드러냈다.

-특별수사부의 최서준 부부장검사는 총 다섯 차례에 걸쳐 한지유에게 성 상납을 받았습니다. 그중 첫 번째 장소가 무려 도비호텔의 프레지던셜 스위트룸이라는 곳입니다.

강현수 부장은 증거로 가져온 내 카드 명세서까지 펼쳤다.

-하룻밤에 1천7백만 원. 그것도 모자라 부가세 170만 원, 봉사료 170만 원을 포함해 1박에 2천40만 원짜리 방을 결제한 겁니다. 1박에 무려 2천만 원을요!

그는 단상을 쾅 치며 말을 이었다.

-저와 같은 평범한 검사가 어떻게 1박에 2천만 원이 넘어가는 방을 쓴답니까?

강현수 부장은 마치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릅떴다.

-100%입니다. 성 상납을 받는 것도 모자라 어딘가로부터 최서준 검사가 돈을 받아먹은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정도 액수를 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는 계속해서 내가 호텔비로 긁은 2천만 원짜리 카드 명세서를 들먹이며, 성 상납이 아니라 거액을 사용한 쪽에 중점을 두며 프레임을 몰고 갔다.

CCTV나 블랙박스 등으로 한지유와 내가 함께 있는 걸 찾지 못했기에 방향을 틀기로 마음먹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사실, 그가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건 내 예상 시나리오에 없던 계획이었다.

물귀신 짓을 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뒤도 없이 나오는 건 어떻게든 내게 출혈을 만들게 하려는 것이었으니까.

부족한 것 같아 보이더라도, 확실히 서울중앙지검의 특별수사부 부장검사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답게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와 빈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상당히 곤란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젠 대중의 시선이 2천만 원의 호텔 방으로 쏠릴 게 분명하기에, 이 2천만 원 사용의 합리적인 근거를 찾지 못하면 성 상납을 받은 건 자동으로 꼬리표처럼 붙는 옵션이 되어 버린다.

한 해 연봉이 1억도 되지 않는 내가 쓰기에는 굉장히 무리인 금액.

강현수 부장, 이 자식. 꽤나 좋은 수를 꺼내 들었다.

“후우.”

오랜만에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생각보다 일이 꼬여 버린 상태.

윤설하도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입을 꾹 닫았다.

경제적으로 내게 몇 번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만큼, 내가 더러운 돈을 받은 적이 있다는 건 그녀도 알 테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자.

정확히 따지면 이 2천만 원은 깨끗하다.

내가 모은 돈에서 빠져나갔고, 추가적인 소비는 기업으로부터 받은 현금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이사한 것이나 다른 소비들도…… 젠장.

암만 생각해도 이 2천만 원의 소비는 적절하지 않다.

일반인들이 만취해서 술김에 결제했으면 모를까, 지금의 나처럼 스마트한 이미지를 갖춘 인물이 저런 충동적인 행동을 했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 넘어가는 것도 내 이미지에 중대한 타격이 온다.

김석원 고검장에게 당당히 감찰부의 수사까지 투명하게 진행하라고 이야기를 해 뒀는데, 잘못하다가 재산 쪽까지 감찰을 받게 생겼다.

분명 세탁을 잘해 두긴 했지만…… 이런 망할.

이렇게 걱정하는 것부터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뜻하는 건데.

생각하자.

어떻게 해야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분명 빠져나갈 틈은 있다.

다만, 한지유가 엮여 있어 적당한 수를 꺼내 들 수는 없는 노릇.

그녀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던 그 순간.

지이잉.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한지유.

통화를 미룰까 하다가, 그녀 또한 이 뉴스를 보면서 연락한 것일 테니 일단 전화를 받았다.

“어, 지유야.”

-오빠, 그때 잡은 방이 2천만 원짜리였어?

약간은 놀라면서도 감동한 목소리.

핀트가 이상한 데 꽂혀 있다.

평소 같았으면 길게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대화나 나눌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응. 그렇긴 한데…….”

내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건은 내가 처리할게.

“어?”

-지금 궁지에 몰렸잖아. 오빠 목소리 들으니까 꽤 심각한 것 같은데, 적절한 대책은 없지 않아?

한지유 또한 기본적인 계획과 시나리오를 알고 있었던 탓에 내가 지금 난항을 겪는 걸 알고 있었다.

-나한테 맡겨 줘.

“너 설마, 그거 말하려고?”

-내가 기자회견 하면 분위기 반전이야. 그게 최선일 테고.

한지유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통화를 하기 전부터 머릿속에 몇 번이나 떠올랐던 방법이니까.

그러나 영화 개봉을 며칠도 채 남기지 않은 그녀에게 피해가 갈까 봐 넘겨 두었던 선택지.

-저번엔 오빠가 날 구원해 줬잖아.

한지유는 결심한 듯이 확고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엔 내가 오빠를 도와줄 차례야.

“괜찮겠어?”

-응. 2시간 뒤에 기자회견 바로 열 테니까 오빠도 TV로 봐. 바로 해결할 수 있어. 나 한 번만 믿고 맡겨 줘.

한지유는 나의 미래 배우자가 될 인물.

그녀의 선택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그래, 알았어.”

***

한지유를 믿지만, 또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계속해서 추가 시나리오를 그리며 짱구를 굴렸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고민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에는 불안함보다는 안정감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상황.

잠깐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윤설하가 리모컨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검사님, 지금 한지유 기자회견 생방송 시작했는데, TV 켤까요?”

시간을 확인하자, 한지유가 말했던 2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벌써 시작했군요. 켜세요.”

“예.”

TV를 켜자, ‘한지유, 성 상납 사건과 관련해 심경 고백.’이라는 큼지막한 자막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굉장히 초췌한 모습으로 마이크 앞에 선 한지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한지유입니다.

반쪽이 된 얼굴을 보자, 안쓰러운 느낌부터 들기 시작했다.

일부러 저런 화장을 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측은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성 상납과 관련해서 모든 사실을 밝히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바라봤다.

-저는 작년 여름부터 성 상납을 강요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돌아가는 셔터음.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다만, 이 성 상납은 최서준 검사가 아니라, 강현수 부장검사에게 강요받았습니다. 성 상납을 하라고 종용받은 수준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에 호소하듯 말을 이었다.

-저희 부모님을 볼모로 잡고, 성 상납을 하지 않으면 다 감옥에 넣어 버리겠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결국 전 그 협박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윤설하와 조아라도 말을 잃은 채 집중했다.

-그래서 강현수 부장이 첫 성 상납 상대로 선택한 게 바로 최서준 검사님이셨습니다. 저는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는데…… 최서준 검사님께서 절 보시고 옆방으로 옮기자고 하시더군요. 저는 군말 없이 따랐습니다.

시나리오는 좋다.

여기까지만 보면, 최서준은 더할 나위 없는 쓰레기 녀석일 테지. 강현수 부장에게 성 상납을 받아먹은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

그러나 이제부터 반전의 시간이다.

-옮기고 나서야 말씀해 주시더군요. 최서준 검사님께서는 성 상납은 받을 생각도 없고, 오히려 저를 도와주신다고 하시더군요. 강현수 부장검사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고요.

기자회견장의 플래시도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이야기에 흡입되고 있는 것일 테지.

-처음 있던 방에는 몰래카메라와 도청기가 있어서 이쪽으로 옮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비어 있는 방이, 강현수 부장이 말한 2천만 원짜리 방 하나였습니다. 최서준 검사님께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액수였지만, 저를 구해 주시기 위해서 그 큰돈을 소비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검사님을 파렴치한 뇌물 수수범으로 몰아가는 걸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어서 사실을 밝히려 나왔습니다.

그녀는 두어 번 호흡을 한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최서준 검사님은 저를 괴롭게 하신 게 아니라, 저를 구해 주신 겁니다. 덕분에 저는 성 상납이라는 지옥의 문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요. 최서준 검사님은 절대 지금 같은 의심을 살 분도 아니며, 저를 구원해 주신 인물입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 기자 하나가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외치는 질문이 들려왔다.

-인터넷에 공개된 동영상은 어떻게 된 겁니까?

한지유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그건 조작된 영상입니다. 강현수 부장이 저에게 최서준 검사님께 성 상납하는 영상을 찍어 오라기에 그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제로 활동하시는 배우분들을 섭외해 쇄골에 점과 오른팔에 흉터를 그려서 영상을 촬영해 강현수 부장에게 넘긴 겁니다. 동영상에 나온 두 분은 이런 상황까지 되리라는 걸 알고 동의해 주셨고, 절대 강압적인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해당 영상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영상이 더 퍼지지도 않길 바라고요.

초전박살.

기자회견 한 번으로 강현수 부장을 완전히 뭉개 버리고 말았다.

내가 해명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게임 끝.

한지유답게 아주 현명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판단을 보여 준 기자회견이었다.

90%의 진실에 10%의 거짓을 섞은 전형적인 ‘물타기 거짓말’ 또한 아주 완벽하게 작용할 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러울 정도로 신중하면서도 완벽한 기자회견이었으니까.

나를 위기에서 모면시켜 주는 것도 모자라 강현수 부장검사와 TA일보에서 제기했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서, 그들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버린 상황이 되었다.

이 사실을 접한 시민들은 우리에게 위로의 손길을, 강현수 부장과 TA일보에는 돌팔매질을 하게 될 테지.

“끝났네요.”

윤설하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게요.”

“기자회견 내용은 검사님이 지시해 주신 건가요?”

“아니요. 지유가 혼자서 판단 내린 겁니다.”

“와아.”

윤설하는 혀를 내두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단하시네. 담력이 저보다 크신 것 같아.”

그때, 끝난 줄 알았던 한지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또한…….

그녀의 입에서 예상외의 이야기가 하나 더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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