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5)
“이런 미친!”
강현수 부장은 나를 노려보며 눈을 부라렸다.
“최서준 이 자식이 진짜…….”
“워워,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는 마치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살벌하게 노려봤다.
그러나 나는 이 인간 앞에서 기가 죽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10cm가 넘는 키 차이.
우월한 키로 그를 내려다봤다.
“대권 주자는 무슨, 그 전에 쫓겨나실 것 같은데, 관심 끄고 지방에 집이나 한 채 알아보시죠.”
“이 개X끼가!”
강현수 부장은 내 멱살을 잡아 쥐었다.
이 자식, 얼마 전에 이두형 검사 멱살도 쥐었다더만, 이거 완전 버릇이구먼.
나쁜 버릇은 똑똑히 고쳐 줘야 한다.
나는 그대로 녀석의 손목을 잡아 꽉 눌렀다.
그와 동시에 풀어지는 멱살.
그러나 나는 여기서 힘을 풀기는커녕 더 힘을 주어 그의 팔을 옆으로 꺾어 버렸다.
“적당히 해, 이 자식아.”
“뭐?”
강현수 부장의 얼굴에 터질 듯한 핏대가 섰다.
그러나 팔이 꺾이자, 그의 몸도 자연스럽게 옆으로 꺾여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취해졌다.
“검사까지 돼서 쪽팔리게 힘으로 하려고 하고 있어. 머리를 쓰라고, 머리를.”
“이거 안 놔!”
“힘이 있으면 모를까. 거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으셨는지, 버릇이 없어요, 버릇이.”
나는 그대로 녀석의 팔을 확 옆으로 내던졌다.
크게 휘청거린 강현수 부장은 넘어질 뻔하다가 겨우 중심을 잡으며 똑바로 섰다.
그의 손목은 여전히 빨갛게 부어오른 사태.
“나이도 어린 새끼가 감히 어디서!”
“그놈의 나이.”
나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내가 장유유서는 잘 지키는 편인데, 이렇게 선을 넘으면 못 해. 왜 그런 줄 알아?”
그는 부들부들 떨며 눈을 치켜떴다.
“나는 나잇값을 못 하는 놈들한테는 나이대접을 안 해 주거든.”
히죽 미소를 지으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나저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 얼른 가서 싸놓은 똥 치워야 하지 않겠어?”
“X발.”
그는 거칠게 욕을 내뱉고는.
“넌 내가 이번 건만 처리하면 정말…….”
“예. 이번 건 처리하고 부장 자리 맛있게 물려받겠습니다. 그동안 따뜻하게 데워 두십시오.”
나는 손수 다가가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안내해 주었다.
“제가 바빠서 이만 가 주셨으면 하는데.”
그는 바닥을 쾅쾅 밟으며 문밖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무실을 뒤집어엎고 싶겠지만, 인터넷 기사를 본 이상 그도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다시는 오지 마십시오.”
“진짜 너 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대로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와아…….”
윤설하의 나지막한 탄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녀는 눈을 연신 끔뻑이며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뭐 묻었어요?”
“검사님 이렇게 박력 넘치시는 거 처음 보는데.”
얼어붙은 사무실 분위기를 환기시킬 요량으로 농담을 던졌다.
“왜요, 그래서 반했어요?”
“반했으면 어떡하려고요?”
“그러면 유감이죠, 뭐.”
코를 찡긋하자, 그녀는 그제야 큭큭 웃어 대며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 맞다.”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어차피 못 사귀잖아요, 임자 있으셔서.”
“……네?”
윤설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검사님 연애하시지 않아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요즘 가끔씩 외박하시잖아요. 오늘도 어제 옷 그대로 입고 오셨는데.”
조용히 듣고 있던 조아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 눈썰미는 감당이 안 된다니까.
나는 못 들은 척하며 책상으로 돌아왔다.
“일합시다, 일. 지금 강현수 부장 영장 발부 직전이에요. 엄청나게 바쁜데 잡담할 시간 있어요?”
“잡담할 시간 정도는 있는 것 같은데…….”
윤설하는 장난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사건 정리되면 여자 친구분 어떻게 만났는지라도 알려 주세요.”
“빨리 서류나 처리해요. 곧 감찰부 올 테니까.”
그녀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정치 1번지의 단독 기사가 터지기 무섭게 박수형 기자가 두 번째로 추가 기사를 올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준 자료를 기반으로 한 정치 1번지의 기사에 대한 후속 보도.
단독 타이틀을 달지 못했기에 당연히 정치 1번지의 트래픽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톡톡히 효과를 본 모양이었다.
박수형 기자에게서, 내 덕분에 재미 좀 봤다고 일이 끝나면 식사 한 끼 산다고 연락이 왔으니까.
이미 정치 1번지가 단독으로 보도를 했기에 후속 보도로는 어떤 내용이 나오든 크게 개의치 않는 상황이라 박수형 기자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은 기존과 조금 다른 식으로 진행했다.
표면적으로는 감찰부가 뒤엎는 모습이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자연스레 내 이름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으로.
사실, 애초에 이렇게 되도록 장치를 해 두었다.
처음부터 내 이름이 나오기보다는, 이쪽으로 시선이 쏠린 뒤 국민들의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레 내가 떠오른다면 최서준 이름 석 자가 훨씬 더 머릿속에 각인이 잘될 테니까.
그 덕분에 국민 여론에는 ‘불신적인 정치인보다 믿을 건 최서준뿐’, ‘최서준을 국회로!’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몇 년간 굵직한 사건을 터뜨린 데다가 이번 건으로 뉴스에서 아주 크게 보도를 하고 있는 덕분에, 9시 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최서준을 모르는 게 더 어려울 수준.
이번 사건이 진행되며 SL그룹의 박현조 부회장이 구속 수감되었고, 세 명의 부장검사들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월향의 에메랄드 목걸이를 이용해 찍은 동영상을 언론에 터뜨리기 하루 전날, 취조실에서 박현조 부회장을 만나 그에게 먼저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내가 아주 확실한 카드까지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박현조 부회장은 진한 탄식을 흘렸다.
“이 정도면 뭐…… 저도 빼도 박도 못하겠네요.”
“에이, 우리 부회장님 왜 이렇게 약한 척을 하실까?”
잠시 생각하던 그는 무언가 결심을 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검사님, 우리 너무 어렵게 가는 것 아닙니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그는 말없이 눈짓으로 이중 거울을 가리켰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녹화를 중단하고 녹음 또한 종료했다.
“지금부터 나눌 대화는 외부로 퍼지지 않을 겁니다.”
테이블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우리 부회장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렇게 은밀한 환경을 만드셨을까?”
그는 수갑으로 묶인 두 손을 테이블에 올리며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검사님, 그동안 보는 눈이 많아서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제가 참 챙겨 드리고 싶은 게 많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
재벌이라면 이런 제안을 할 게 뻔했으니까.
물론,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었다.
상대는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가 사람.
그리고 그의 죄명은 ‘뇌물 공여죄’.
뇌물죄에 걸리면 재벌들은 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실형을 받지 않고 빠져나간다고 해서 생긴 ‘재벌 불패 3-5공식’이라는 게 있다.
내가 암만 용을 쓰더라도 박현조 부회장 또한 초특급 변호인단을 선임하고 판사 매수를 통해 재벌 불패 3-5공식으로 빠져나갈 게 뻔하다.
그럴 바에야 힘쓰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윈윈(Win-win) 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테지.
내가 받지 않아도 어차피 공판 검사에게 뇌물이 들어갈 게 뻔한 상황인데, 기왕이면 내가 챙기는 게 낫다.
어차피 내 목적은 SL그룹이 아니라, 부장검사 세 놈을 박살 내는 것이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리를 꼬았다.
“한번 들어나 보죠.”
“검사님도 사람이시고 저도 같은 사람인데, 기왕이면 사회의 높은 곳에서 서로 만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같은 사람요?”
“아…….”
그는 실수했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물론 검사님이 높으신데…….”
당황한 그를 보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농담입니다. 계속 말씀하시죠.”
“아, 네. 저희 SL그룹이 최서준 검사님을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챙겨 드리고 싶은 것도 많고, 마음 가시는 부분이 있으면 해결해 드리고 싶고……. 국민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뛰시는데 전폭 지원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그럴 만한 명분이 없어서 늘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에이, 검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요.”
나는 씨익 웃으며 박현조를 향해 상체를 돌렸다.
“그래서 얼마나 정성을 쏟으시려나?”
“큰 거 열 장 정도…….”
“에헤이, 부회장님.”
그를 부르자, 박현조는 능청스레 태도를 전환했다.
“큰 거 열 장은 달러로 드리고요.”
그렇지.
이렇게 나와야지.
“현금으로는 한…….”
그는 손가락 네 개를 더 폈다.
“요 정도로 드리고 싶은데 어떠신지요?”
현금으로 마흔 장을 더 주겠다는 소리.
나는 스읍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부회장님, 제가 이거 조사하면서 진짜 힘들었거든요. 저거 몰래카메라 만드느라고 돈도 많이 들었고요.”
목걸이 사는 돈이랑 몰래카메라 기술비로 한 2천만 원은 썼으니까 많이 쓴 거지.
박현조 부회장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그러면 청담동 쪽에 아파트 한 채…….”
“에헤이, 그거는 먹고 체하죠.”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그의 반대 손을 쭉 펴 줬다.
“이야, 열 손가락 다 펴져 있으니까 부회장님 손가락이 더 예쁘시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눈을 감고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100억.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자신의 비자금에 여유가 있는지 고민하는 것일 터.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가 놓아주지 않으면 재벌 불패 공식이고 뭐고, 여론에서 SL그룹 이미지 자체가 박살이 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랬다가는 재벌 내의 후계 구도에서도 굉장한 페널티를 안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검사님 뜻, 아주 잘 알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SL 측 제 사람이 오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부회장님이 말이 통해서 좋다니까.”
“감사합니다. 저도 검사님이 어찌나 좋은지 모르겠네요. 하하핫.”
이 정도면 챙길 건 충분히 챙겼다.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형량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저도 우리 부회장님 편하게 풀어 드리고 싶은데 국민들 눈치도 있고…… 적당히 집행유예 정도면 괜찮으시지 않겠습니까?”
역시나 재벌인 박현조 부회장이 재벌 불패 3-5공식을 모를 리 없었고, 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챈 그는 만족스럽게 히쭉 웃었다.
“더할 나위 없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굳게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아주 흡족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검사님과는 사회에서도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네요.”
“에이, 검사 자주 봐서 좋을 일이 뭐가 있으시다고.”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휴가라고 생각하고 며칠간 구치소에서 푹 쉬다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박현조 부회장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어 완전히 털린 강현수 부장의 사무실.
이미 언론에서 사건이 터진 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회복될 기미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궁지로 몰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받아 든 전화.
“직무 정지?”
-예, 유감스럽지만 위에서 내려온 결정이라 부장님께서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
“이런 망할!”
강현수 부장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수화기를 쾅 내려쳤다.
이렇게 목을 조여 올 줄이야.
작년에 영상을 찍어 두고 이렇게 묵혀 두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망할 최서준 자식.’
그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연신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그저 의혹이라면 어떻게든 발뺌을 해 보겠지만, 정치 1번지와 감찰부 그리고 최서준이 합작으로 입수한 영상에는 자신이 성 접대를 받는 모습은 물론이고 뇌물까지 받는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말 그대로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상황.
오늘 동영상이 공개된 탓에 며칠 동안 그가 의혹을 해명했던 것 자체가 모두 거짓으로 판명이 나 버렸다.
무엇보다 열이 받는 건, 공개된 동영상의 각도는 자신이 늘 지명하던 ‘월향’이가 찍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
강현수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씩씩거리며 파주 요정에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
“김 마담!”
-아이, 귀청이야. 무슨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지르세요?
“월향이 이년 어디 있어?”
-월향이 일 그만둔 지 꽤 됐어요. 갑자기 잠수 타 버리던데.
“이런 제기랄!”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집어 던져 버렸다.
재기(再起)할 수가 없었다.
100%.
암만 잘해 봤자 지방으로 근신을 가는 게 전부지만, 최서준이 그렇게 둘 리가 없을 터.
그렇기에 더욱 그에 대한 분개심이 차올랐다.
강현수 부장에게 남은 건 이제 악(惡)뿐.
‘내가 이렇게 혼자 죽을 줄 알아?’
그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절대 혼자 못 가지. 물귀신으로 같이 죽어 준다.’
강현수 부장은 마치 실성한 듯이 웃어 댔다.
“흐흐흐흐흐.”
그는 이내 테이블의 전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박 기자. 내가 특종 하나 줄게. 특별수사부 스타 검사 최서준, 그 새끼 성 접대 받는 영상 있거든. 이거 줄 테니까 터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