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74화 (74/341)

폭풍 (4)

-권재철은 무엇 때문에 탄핵이 되었나?

-현재 탄핵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권재철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탄핵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과정을 가지려고 한다. 권재철 대통령은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 강요, 뇌물 수수, 제3자 뇌물 수수 혐의, 강요 미수, 공무상 비밀 누설까지 총 여섯 개 혐의에 대하여 탄핵 소추안이 발의된 상태다. 탄핵의 시발점이 된 건 무려 검찰총장 문경수의 양심 고백. 다른 사람도 아닌, 권재철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 문경수라는 점이 많은 이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권재철 대통령으로부터 압박을 받아 벌였던 일들에 대해 검사로서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밝혔다고 말했다. ……(중략)…… 대한민국 역사상 세 번째 탄핵이 어떤 결말로 막을 내릴지에 대해 세계 언론의 이목이 쏠려 있다.

-QS일보 이준희 기자

“혹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윤설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암만 양심 고백이라고 한들, 검찰총장 직위까지 내려놓을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서…….”

그녀도 참다 참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어보는 것일 터.

라인에 있는 나와 달리 그녀는 수사관이었기에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 수 있는 길이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윤설하는 앞으로 계속해서 함께 가야 할 내 사람.

그녀가 이 모든 사항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나에게도 도움이 될 테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해 나갔다.

“다른 수사관에게도 말씀은 삼가 주십시오.”

“당연하죠.”

그녀의 가벼운 미소에서는 진한 신뢰감이 느껴졌다.

“검찰총장이 아니었어도 탄핵은 진행되었을 겁니다.”

“역시나 정치적인 탄핵이었군요.”

“맞습니다. 대한당과 민국당이 같이 합심을 했습니다.”

대한당과 민국당을 합치면 의원석의 90%에 육박한다.

그들이 뭉쳤다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어떤 논제든 법안이든 원하는 방향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

대통령 탄핵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야기를 들은 윤설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한당까지 합세를 했다고요?”

“네. 권재철이 대한당 출신이긴 하지만, FTA로 떨어진 지지율을 그대로 뒀다가는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대한당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린 거죠.”

대통령의 지지율은 곧 그 정당의 지지율은 뜻한다.

얼마 전까지 권재철 대통령의 지지율은 10%대 초반.

내년에 있을 2020년 21대 총선을 생각하면 대한당도 변혁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권재철이 무리수를 던졌고, 민국당은 여당으로 올라서기 위한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두 당의 목적은 다르나, 그 수단이 대통령의 탄핵으로 일치했기에 합심할 수 있었던 일.

결국 대한당과 민국당이 손을 잡고 대통령을 몰아내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했는데 검찰총장이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검찰총장이라는 위치는 대통령이 임명한 자리.

다시 말해 권재철이 탄핵되는 순간 검찰총장 또한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인 만큼, 검찰총장은 불의의 정치에 저항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섞여 드는 선택을 했다.

나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정의가 먹여 살려 주는 건 아니니까.

대한당과 민국당 또한, 다른 인물도 아니고 검찰총장이 나서서 칼을 빼 들고 그의 주인인 대통령을 친다면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탄핵에 가세를 더할 수 있고 국민의 여론 또한 사로잡을 수 있기에, 검찰총장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

양측에서 어떤 대권 주자가 대통령에 오르든 간에, 현 검찰총장인 문경수를 민정수석으로 올리는 것으로.

대한당과 민국당 그리고 검찰총장 문경수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 탄핵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안 그래도 하락세였던 권재철의 지지율은 10% 선까지 붕괴되어 현재는 바닥을 찍었고 탄핵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권재철이 빼 든 검찰 개혁이라는 칼이 양날의 검으로 자신에게 돌아와 본인의 목을 치고 만 것이다.

자세한 내막을 들은 윤설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완전한 정치군요.”

“그렇죠. 이 바닥은 ‘이해관계’라는 단어 하나로 굴러가는 곳이니까요.”

그녀는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민정수석 자리를 약속받았다고 해도, 본인을 꽂아 준 대통령을 치는 게 사실 많이 놀랍긴 하네요.”

“안 그래도 문경수 검찰총장 또한 검찰 개혁이라는 카드로 자극을 받은 상태이니 대한당과 민국당이 꼬드기기가 더 쉬웠을 겁니다.”

“그렇군요.”

윤설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두 손을 모으고 조심스레 내 얼굴을 바라봤다.

“걱정이네요.”

“뭐가요?”

“나중에 검사님도 그런 정치에 휘말리시지 않을까 해서.”

“저는 진즉에 말려들었죠.”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정치 태풍의 눈에 서 있는 게 바로 저인걸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검사님은 그 태풍을 만들고 다니시니까요.”

“설하 씨도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평생 저랑 같이 가실 거잖아요?”

“그럼요. 천국이든 지옥이든 함께 갈 겁니다.”

윤설하는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물론, 천국이면 더 좋겠지만요.”

“힘내 봅시다. 그 전에 우선 강현수 부장 목부터 날려야 해요.”

파이팅을 외치며 본격적인 업무로 들어갔다.

“자료는 다 확인하셨죠?”

“네. 이번 영상 자료는 너무 확실해서 강현수 부장이 빼도 박도 못할 겁니다. 금융범죄전담부나 경제범죄조사부 부장들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감찰부 측 수사관이랑 연락하셔서 영장 청구 준비해 주면 되고, 정확히 다음 주 화요일에 영장 청구하며 언론에 공개될 겁니다.”

“기자회견은 언제쯤으로 준비해 두면 될까요?”

“아, 이번엔 기자회견 없이 진행합니다.”

“기자회견 없이요?”

윤설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 어떻게 진행하시려고요?”

“이번 사건은 터뜨려 줄 곳이 따로 있거든요.”

그녀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이야, 얼마 만입니까, 검사님.”

정치 1번지의 강원태 부장은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이며 양손으로 악수를 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시국이 이러니 검사가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에이, 우리 최 검사님이 약한 말씀 하시기는.”

그는 껄껄 웃으며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췄다.

“검사님께서 이곳으로 직접 행차하셨다는 뜻은, 묵혀 둔 건을 드디어 터뜨릴 때라는 거겠죠?”

“그렇죠.”

나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묵혀 두다가 썩어 버리기 전에 세상의 빛을 봐야죠.”

“아주 좋은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탄핵 자체가 검찰 개혁 카드에서 시작된 터라, 검찰 쪽으로도 적지 않은 관심이 쏠려 있는 상태니까요.”

“네. 탄핵에 대한 충격도 슬슬 가시고 있는데 언론에서는 계속 탄핵 이야기만 울부짖고 있어서, 지금 터뜨리면 신선한 자극이 될 테니까요.”

“예, 그러면 일단 담당 기자부터 부르겠습니다.”

강원태 부장은 테이블에 비치된 전화기를 들고 짤막하게 ‘들어와.’라고 말했다.

이번 건을 WK일보의 박수형 기자가 아닌, 정치 1번지와 진행한 이유는 하나.

강현수 부장을 포함한 부장검사 세 명과 SL그룹 부회장 사이의 뇌물 수수 장면을 촬영한 월향이에게 대가를 지불한 게 바로 이곳, 정치 1번지였으니까.

같이 일을 진행했던 배진수 기자는 안타깝게도 고인이 되었지만, 정치 1번지와 유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건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정치 1번지와 손을 잡고 함께 진행했던 만큼, 이곳과 함께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특정 기자가 아니더라도, 정치 1번지라는 매체 자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나중에도 분명 덕을 볼 일이 생길 테니까.

물론, 강원태 부장은 이미 내 편으로 돌아선 것 같지만.

이내 노크 소리가 들리고 여자 하나가 정중하게 인사하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임유나입니다.”

“최서준입니다.”

여자라는 사실에 조금 걱정하긴 했으나, 이내 바로 안심할 수 있었다.

눈빛.

그녀의 눈에서는 살쾡이처럼 날카로운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윤설하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것과 비슷한 눈빛.

딱 봐도 악바리 근성이 느껴지는 게, 기자로서는 아주 제격이다.

왠지 모르게 나와 잘 맞을 것 같달까.

중간에 있던 강원태는 씰룩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가 간덩이 하나는 남자 기자들 저리 가라거든요. 아마 검사님과 함께 일 진행하기엔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아, 그런가요?”

나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한번 잘해 보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임유나 기자는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로 내 손을 맞잡았다.

아무래도 나와 아주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피어올랐다.

***

한창 일을 진행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어이, 우리 최 부부장 바쁜가?”

웬일인지 강현수 부장검사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그를 맞이했고, 그의 비리 서류철을 들여다보고 있던 윤설하는 능청스럽게 서류를 덮고는 내 테이블에 있던 서류도 슬쩍 옆으로 치워 주었다.

혹시라도 강현수 눈에 띄었다가는 분명 난동을 피울 게 뻔하니까.

“들어 보니까 이번에 또 감찰부랑 뭐 하나 진행한다고 하길래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말이야.”

고검에 있는 검사들이 내가 감찰부에 드나드는 걸 몇 번 보았던 모양.

“무슨 문제 있어서 오가는 건 아니지?”

표정을 보아하니, 내게 문제가 생겨서 감찰부에 드나드는 것이었길 바라는 모양이다.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래? 그러면 말고.”

그는 뒷짐 지고 사무실 안을 스윽 훑어보았다.

“여기는 진짜 깔끔하네. 매일같이 청소하나 봐.”

그는 내 앞에 슥 멈춰 서며 물었다.

“다른 게 아니고, 이번에 혹시 대권 주자로 최 부부장은 누구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슬쩍 떠보려고 온 것 같다.

내가 어디에 붙을지가 어지간히 궁금한 모양.

지잉, 지잉.

그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잠시만요.”

동시에 도착한 두 개의 문자.

-보낸 이 : 송현성

-강현수 부장 비롯해서 관련자들 전부 영장 청구했다. 1시간 안에 영장 발부해 주기로 했으니까 조금 이따가 중앙지검에서 보자.

-보낸 이 : 임유나 기자

-지금 기사 올라갔습니다. 링크 첨부해 드리겠습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다.

슬쩍 인터넷을 확인해 보자, 아니나 다를까 정치 1번지에서는 탄핵 기사도 밀어내고 메인 포탈 1면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스윽 휴대폰 화면을 끄며 입을 열었다.

“대권 주자로 누구 생각하냐고 물어보셨죠?”

“어. 우리도 이제 슬슬 줄 서야 할 것 아니야?”

“내가 누구에게 줄 설지에 대해 당신은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당신?”

그는 귀를 의심하듯 되물었다.

“지금 당신이라고 했어?”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누가 당선이 되든지 그쪽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이 X끼가 돌았나, 왜 갑자기 하늘 같은 선배한테…….”

그는 정색하며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콧방귀를 뀌며 턱짓을 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하면 지금 인터넷 기사에 뭐가 떴는지 보기나 하든가.”

아니나 다를까, 그의 손 너머로 휴대폰의 화면에 떠오른 큼지막한 글씨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중앙지검 소속 부장검사 3人. SL그룹과 모종의 관계?

순간, 강현수 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지금 부장님 X 되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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