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3)
“잘 지내셨습니까, 검사장님.”
“이게 누구야?”
김석원 검사장은 날 보고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우리 스타 검사 최 검사 아니신가?”
근 반년 만에 만난 서울고등검찰청의 검사장, 김석원은 상당히 인상이 유하게 변해 있었다.
예전에는 한 마리의 맹수 같았다면, 지금은 이빨이 한 서너 개 빠진 호랑이랄까.
물론, 그렇더라도 호랑이는 호랑이.
그의 눈빛만은 예전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앉게. 차 필요한가?”
“괜찮습니다.”
상석에 앉는 그를 따라 소파에 착석했다.
“요즘 시국이 너무 혼란해. 최 검사도 혹시나 불똥 튀지 않게 조심하라고.”
“아, 그것 관련해서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순간, 김석원 검사장의 표정이 예기를 드러냈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휘었다.
“그 불똥 속에서 아주 화려하게 탭댄스를 추려고 합니다.”
“불똥을 뒤집어쓰겠다고?”
“아닙니다. 저는 피하고 다른 녀석들에게 불똥을 선물해 주는 거죠.”
비유적으로 말했지만, 김석원 검사장은 역시나 단번에 이해했다.
“드디어 준비가 됐나 보군.”
“예. 검사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완벽하게 끝냈습니다.”
“목록은?”
“첫 번째로 뇌물 제공자는 SL그룹의 부회장.”
“호오.”
프롤로그부터 김석원의 구미를 당기는 데 성공했는지, 그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본편은 더 재미있을 텐데.
듣다가 뒤로 넘어가는 거 아닌가 몰라.
“뇌물 수수자는 금융범죄전담부의 남우현 부장검사, 경제범죄조사부의 김주철 부장검사 그리고 특별수사부의 강현수 부장검사입니다.”
“허.”
역시나 김석원은 헛웃음을 치며 혀를 내둘렀다.
“기어이 특수부에 들어가서 그 대가리를 쳐 버리는구먼.”
“이걸로 되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상체를 들썩였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
“그럼요.”
아직 에필로그가 남아 있다.
“화룡점정으로 김재욱 검사장까지 날려 버릴 겁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핫!”
김석원 검사장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최 검사를 이래서 좋아한다니까.”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한참 동안 웃은 뒤에야 그는 겨우 진정하고 말했다.
“한번 맡기니까 아주 화끈하게 처리해 버리잖아.”
“감사합니다.”
“내가 살다 살다 검사장 모가지 날리는 당돌한 검사 놈을 다 보네. 이건 윗사람이라도 날리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허허.”
김석원 검사장은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헛웃음을 흘렸다.
“세 명의 부장검사와 SL 부회장의 커넥션을 첫 번째로 터뜨릴 것이고,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뒤에 상황을 보고 두 번째로 여파를 몰아 터뜨리겠습니다.”
“잠깐만.”
그는 당황한 눈으로 물었다.
“부장검사 커넥션 건이랑 검사장 날리는 게 따로야?”
“예.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나에서 파생된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건을 준비해 왔다는 게 놀라워서 그러지.”
김석원 검사장은 연신 감탄을 하며 날 바라봤다.
“내가 정년 되기 전에 멋진 작품 하나 터뜨리자고 했더니, 아예 느와르 영화를 준비해 왔네. 아니, 조만간 칸에서 수상까지 하겠는데?”
“아직 부족합니다. 칭찬은 완전히 해결한 뒤에 해 주십시오.”
“최 검사가 겸손하기까지 해. 내가 딸만 있었어도 바로 사위 삼고 싶었을 텐데 말이야.”
그의 마음에 아주 완벽하게 든 모양이다.
그토록 맹수 같던 그한테 이렇게나 극찬을 받을 날이 올 줄이야.
처음 그에게 임성진 사건을 브리핑하던 날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김석원 검사장은 한참 동안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물었다.
“그러면 그 두 건을 터뜨리고 20대 대통령 대선이 끝난 뒤에나 다시 감찰부로 넘어오겠다는 뜻인가?”
올 것이 왔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리고 나는 미리 내린 결론대로 답했다.
“검사장님, 검사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진실한 눈빛을 담아 그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특수부에 남고 싶습니다.”
“특수부에?”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고검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소리인가?”
“예. 특별수사부에서 끝까지 올라가 보고 싶습니다.”
사실 이곳에 들어오면서도 말을 바꿀까 고민했다.
김석원 검사장의 퇴임은 이제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조금 전에 그에게 말한 스케줄대로 진행을 한다면, 사건이 마무리될 때쯤에는 김석원 검사장이 이미 정년 퇴임을 한 직후일 터.
그러면 김석원 검사장이 허락을 하든 하지 않든, 특수부에 남아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건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는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라고 판단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천하의 파렴치한 놈이 되고 만다.
게다가 암만 퇴직을 하더라도 고검장까지 올랐던 김석원이라면 그의 입김이 불 수도 있을 터. 그 여지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른 그 모든 것보다도 나를 서울로 올라오게 만들어 준 장본인이 바로 눈앞에 있는 이 김석원 검사장이었으니까.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광주지검에서 썩고 있었을 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석원에게만큼은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것만큼 치졸한 일은 없을 테니까.
김석원은 이전의 달가웠던 분위기와 달리, 진지하게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는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해.”
“괜찮겠습니까?”
“그럼. 내가 생각해도 최 검사가 진정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감찰부보다 중앙지검 특수부에 있는 게 훨씬 더 유리할 거야.”
사실대로 이야기하길 잘했다.
그의 지지를 받으니 더욱 힘이 나는 느낌.
“감사합니다.”
“대신, 이번에 무조건 부장검사로 올라가. 그래야 감찰부에서 나갔다는 체면은 살리니까.”
“꼭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김석원 검사장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최 검사, 그래서 이 건은 어떻게 진행하려고?”
“감찰부와 함께 진행하려고 합니다. 의뢰를 받거나 잠입하는 게 아니라 손을 잡고 협업한 걸로 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감찰부 그림자가 남아 있으면 오히려 안 좋아. 훌훌 털어 버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날 배려해 준다는 게 체감될 정도.
사람에게 감동을 느껴 본 게 얼마 만인가 싶다.
“그러면 이럴 게 아니라, 아예 박승수 부장을 불러서 이야기하지.”
“예.”
“자네 친구 송현성 검사도 부르는 게 낫겠지?”
내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높이 올라가려면 믿을 만한 친구, 그리고 믿을 만한 주변 사람을 많이 키워 놓는 게 좋아. 송현성이가 이제 막 부부장에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감찰부에서 나름대로 에이스로 부상하고 있으니까 분명 힘이 될 거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는 박승수를 호출하고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믿을 만한 사람은 주변에 잘 만들고 있지?”
“예. 검사 쪽을 포함해서 다양한 분야로 만들고 있습니다.”
김석원 검사장은 흡족하게 웃음을 지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왕의 자리로 척척 올라가고 있었구먼.”
***
“미X놈.”
“또라이 X끼.”
박승수 부장과 송현성 검사는 동시에 말을 내뱉었다.
“아이, 만나자마자 첫마디로 욕이 뭡니까, 욕이.”
박승수 부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만 흘렸고, 송현성은 팔을 허공에 뻗어 어이가 없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너 같으면 욕이 안 나오겠어? 특수부에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아주 중앙지검을 박살 낼 자료를 가지고 왔어.”
“감찰부 출신이잖습니까. 출신 성분은 못 숨긴다니까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송현성에게 말했다.
“현성아, 이게 다 널 위한 일이야. 이 건으로 우리 박승수 부장님 차장검사로 올려 드리고 네가 부장검사로 올라가야지.”
“안 그래도 내년에 부부장검사 확정 났다, 인마.”
박승수 부장은 진지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서준아.”
“예?”
“그냥 네가 감찰부 부장 할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하핫.”
“아무래도 감찰 쪽엔 나보다 네가 재능이 있는 것 같아.”
그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암만 내가 욕심이 크다고는 한들, 중앙지검 검사장 비리를 알아내도 칠 엄두조차 못 낼 것 같거든. 근데 특수부에서 그걸 파서 가져오다니. 암만 생각해도 넌 간덩이가 남들의 세 배는 될 거야.”
“아이, 왜 그러십니까. 고검장님도 허락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탄핵 때문에 시국이 민감한데, 이런 걸로 활기를 찾아야죠.”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으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래서 정확히 언제 칠 건데?”
“부장검사 셋을 조지는 건 다음 주 화요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재철이 주말 사이에 연예인의 열애설을 내든 결혼설을 내든, 뭔 짓을 해서라도 화제를 돌릴 겁니다. 탄핵에서 눈이 돌아갈 때쯤 터뜨리면 제일 효과가 제격일 테니까요.”
“그렇긴 하지. 기자들은 섭외해 놨고?”
“예. WK일보와 에서 같이 터뜨려 줄 겁니다.”
박승수 부장검사는 내게 상체를 기울였다.
“최서준.”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진짜 이거 우리랑 같이 터뜨려도 괜찮겠어?”
“예?”
“보아하니, 네가 다 찾아내고 준비한 거잖아. 까놓고 말해서 이건 다 차려진 밥상에 송 검사랑 내가 숟가락만 들고 달려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송현성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의 최서준이 이걸 모를 리는 없고, 우리에게 함정을 깔 일도 없지. 그렇다면 정말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건데,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에게 공을 나눠 주겠다는 거잖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의문을 갖는 것이었다.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자신들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있냐는 뜻.
물론, 내가 김석원 검사장과 거래를 했다는 걸 모르기에 피어오를 수밖에 없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걸 자세하게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아니, 설명해 주는 대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이 더 낫겠지.
“오늘 김석원 검사장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나는 코를 찡긋하며 말했다.
“정말로 잘되려면 혼자 올라가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함께 올라가야 한다고요.”
박승수 부장검사와 송현성에게 번갈아 시선을 주었다.
“함께 올라가셔야 제 손을 잡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둘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둘은 헛웃음을 치면서도 군말 없이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문득 송현성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셋이서 임성진 부장검사를 조졌었네요.”
“그리고 몇 년 만에 다시 모여서 또 부장검사를 조지려고 하고.”
“대신 이번엔 스케일이 많이 커졌죠.”
나는 힘껏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한번 제대로 조져 봅시다.”
드디어 출격이다.
특별수사부 부장에 오르기까지 단 한 걸음.
마지막 한 걸음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