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72화 (72/341)

폭풍 (2)

-어, 최 검사. 오랜만이야. 나 최규현 국무총리일세.

최규현 국무총리?

그에게서 사적으로 연락이 온 건 처음이다.

게다가 이런 늦은 시간에 전화라니.

영 느낌이 좋지 않다.

“안녕하십니까, 총리님.”

-늦은 시간인데 자고 있었나?

“아닙니다. 생각할 게 있어서 깨어 있었습니다.”

-그렇구먼.

최규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최 검사, 내가 자네와 같은 경주 최씨로서 많이 아끼는 거 알지?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는 거지?

괜히 불안해지려고 한다.

“예. 늘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 좋아. 다음 주에 탄핵 소추안 발의되는 건 들었나?

“어제 들었습니다.”

-권재철이는 밀려날 거야. 그런데…….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 보니까 자네가 권재철이랑 손을 잡은 적이 있다면서?

꿀꺽.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침이 넘어갔다.

-아, 오해할 필요는 없어.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어쩌다 들려와서 말이야.

“죄송합니다. 권재철 대통령에게서 직속으로 연락이 오는 바람에…….”

-뭐, 그럴 수 있지. 당시에는 탄핵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그는 툭 던지듯 말했다.

-이번에 박성현 차관한테서 연락이 왔거든. 들어 보니까 최 검사가 실수한 것 같더라고.

젠장!

우려했던 소식에 결국 이를 악물었다.

제일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을 줄이야.

이대로 물귀신에게 당해 버리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최 검사, 듣고 있나?

“아, 네. 듣고 있습니다.”

뻗쳐 오는 열을 최대한 꾹 누르며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최 검사도 많이 아끼긴 하지만, 박성현 차관도 예전에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친구라서 어떻게 못 본 척을 할 수는 없더라고. 그래서…….

그래, 경주 최씨끼리 한번 구해 줘도 되잖아.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박 차관한테는 일단 좋게 이야기를 해 놨거든.

예스!

불끈 주먹을 쥐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네가 박 차관이랑 직접 통화를 한번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친구도 좋게 풀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고.

“그렇습니까?”

-어. 여러 가지 불만이 있긴 해도, 중간에서 잘 이야기해 놨으니까 내 얼굴에 먹칠하진 않겠지.

그는 픽, 장난스럽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연락처 보내 놓을 테니까 바로 전화해 봐. 잘 처리되면 연락할 필요 없고, 문제 생기면 곧장 전화하고.

“알겠습니다.”

-그래. 늦었는데 푹 쉬어.

“정말, 감사합니다. 총리님!”

-감사는 무슨.

최규현은 가볍게 웃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나중에 한번 보은이나 해.

“꼭 하겠습니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들어가.

“감사합니다! 좋은 밤 보내십시오!”

전화를 끊자마자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살았다.

최규현 국무총리와 박성현 차관에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폭풍우에서는 확실하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규현 국무총리도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일단 내게 빚을 하나 지우려는 목적이었을 터.

이렇게 된 만큼, 나 또한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생각이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그는 내 목숨을 구해 준 것이니까.

문제는 박성현 차관이다.

분명 쉽지 않은 걸 요구할 테지만, 마냥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최규현 국무총리가 중간에 낀 만큼, 그도 내가 들어줄 수 없는 무리한 수를 꺼내진 않을 테니까.

일단 들어 봐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터.

최규현 국무총리가 보내 준 박성현 차관의 번호로 곧장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세 번 정도 울렸을 때, 그가 전화를 받았다.

-이야, 이게 누구야?

그는 껄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최 검사님 아니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차관님.”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차관님은 잘 지내고 계십니까?”

-그럼. 잘 지내지. 우리 최 검사님 덕분에 지방으로 와서 좋은 공기 마시고 요양한 덕분에 건강도 좋아진 것 같아.

나를 비꼬는 그의 목소리엔 여유가 넘쳐흘렀다.

“부탁하실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 특별한 건 아니고…… 최 검사가 나한테 마음의 짐이 있을 거 아니야? 나도 어느 정도 꽁한 게 있고.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이번 건으로 서로 훌훌 털어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안 그래?

“맞습니다.”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어떤 건이신지 말씀해 주시면…….”

-이번에 우리 둘째 아들이 로스쿨 졸업했거든. 최 검사 후배야. 한국대 로스쿨.

“아, 그렇습니까?”

-어. 그런데 보니까 무슨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는 춘천지검으로 발령이 났더라고.

“그러면 아드님께서 지금 춘천지검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겁니까?”

-맞아, 맞아. 그런데 강원도가 워낙 날씨가 춥잖아. 여름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겨울에까지 거기에 두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더라고.

내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휘어졌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다.

-내 인생은 이제 회복하기 힘들지만, 아들놈은 이제 시작이잖아? 원래 부모 마음이라는 게 그래요. 나는 가시밭길 걸어도 자식은 꽃길 걷길 원하고.

“내년 초 발령에서 서울로 바로 끌어올리겠습니다.”

-오, 우리 최 검사. 말이 통해서 좋다니까.

그러나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내가 마음의 상처가 조금 커서 그냥 서울은 안 되겠고…… 서울중앙지검으로 데려갈 수 있나? 한국대 직속 후배인데, 기왕이면 같은 지검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내가 검찰 쪽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서울중앙지검에도 3대 요직 부서가 있다며?

발칙한 녀석.

욕심이 과하다.

3대 요직 부서.

국내 지검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에서도 톱이라고 불리는 3대 부서인 특별수사부, 공안부, 과학기술범죄수사부를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요구하는 순간 바로 거절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걸 요구조차 하지 못할 테고.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로 딜을 할 수 있다면 내게도 손해가 아니었다.

“3대 부서 중 어디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그럼. 어디든 좋지. 셋 중에서도 제일이라고 꼽히는 특수부에 가면 우리 최 검사님이 잘 챙겨 주실 수 있으려나? 하하하하핫.

특수부로 온다라…….

그러면 오히려 더 좋지.

내 밑에서 그를 쥐락펴락할 수 있을 테니까.

박성현 차관이 내 약점을 쥐고 있다고 한들, 권재철 대통령이 탄핵으로 논란이 되는 시기에 한정된 약점이다.

내년 초쯤에 탄핵이 마무리만 된다면 그가 쥐고 있는 내 약점은 종잇조각으로 변할 테고, 그사이 그의 둘째 아들은 특수부에 들어와 내 밑에 있을 테니 오히려 상황이 역전된다.

이렇게 거만하게 나오는 이 녀석이 다시 쩔쩔매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다른 부서가 아니라, 일부러라도 특수부로 데려와야 될 것 같은데?

아니, 그렇게 할 것이다.

어디 부장검사 밑에 아들을 두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보자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최선을 다해 특수부로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

-최 검사가 역시 호탕해. 이러니까 다들 최서준, 최서준 하나 봐.

그는 먼 미래까지 바라보지 않는지, 그저 자신의 아들을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에 넣을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아 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지 목소리에서 흐뭇함이 가시질 않았다.

하긴, 그러니까 임선미 비서한테 손이나 뻗어서 성추행으로 엮여 들어간 거지.

미래를 생각했다면 비서에게 손을 뻗을 게 아니라, 업소에 갔을 테니까.

“아무리 늦어도 내년 초 발령 시즌에 맞춰서 진행할 테니 미리 전해 두시고, 조만간 아드님 프로필만 저한테 따로 보내 주십시오.”

-그래, 최 검사. 늦은 시간에 아주 유익한 이야기였어.

“저도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차관님. 좋은 꿈 꾸십시오.”

-들어가.

전화를 끊고 나서야 편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간 고심했던 게 허무할 정도로 쉽게 풀렸다.

물론, 그의 아들이란 놈을 다른 부서도 아니고 특수부로 데려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 또한 아니었다.

단순한 녀석.

내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건을 가지고, 이렇게 쉽게 놔줄 줄이야.

이래서 자식 생각하는 부모가 한없이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는 것이려나.

그놈의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 덕분에 난 아주 가뿐하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규현 국무총리는 좋게 마무리되면 따로 연락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감사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상당히 꼬였을 수도 있으니까.

늦은 시간이었기에 전화 대신 문자로 인사를 대신했다.

-받는 이 : 최규현 국무총리

-정말 감사합니다, 총리님. 덕분에 박성현 차관과 잘 이야기해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총리님께서 부르신다면 언제든 달려갈 테니,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해 주십시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좋은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보낸 이 : 최규현 국무총리

-탄핵은 태풍과도 같아. 폭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버텨 내려면 최 검사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돼. 무언가 자네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걸 터뜨려서 존재감을 과시해. 그래야 폭풍우가 끝난 뒤에도 고개를 들고 멀쩡히 버틸 수 있을 테니까.

폭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버텨 내려면 큰 건을 터뜨려야 한다.

다시 말해 탄핵이라는 태풍이 몰아치면 흔들릴 사람들이 넘쳐 난다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그들을 밟고 올라서기에 아주 최적화된 시기라는 뜻이다.

큰 건이라.

머릿속에선 역시나 그 건이 떠올랐다.

묵혀 두었던 강현수 부장을 포함한 부장검사 3인방과 SL그룹의 은밀한 거래.

그리고 이두형 검사에게 받은, 김재욱 검사장의 목을 칠 수 있는 자료.

슬슬 터뜨릴 때가 된 것이다.

일단 탄핵 사태가 터진 뒤, 강현수 부장 건으로 예열을 하고 나서 어느 정도 관심을 모았을 때 김재욱 검사장의 목을 날려야 한다.

동시에 두 개를 터뜨리는 건 오히려 시선이 분산될 수도 있을 테니까.

***

-권재철 대통령 탄핵 소추안 발의! 대한민국 역사상 세 번째 탄핵 소추안.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탄핵 소추안이 발의됨과 동시에 국내에 있는 모든 언론에서 주야장천 탄핵과 관련된 기사를 때려 대기 시작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뤄 둔 사건을 처리했다.

“설하 씨, 세인트하퍼 주가조작 사건 빠르게 공판부로 넘길 준비 하세요.”

“벌써요?”

“네. 지금 탄핵으로 온 국민의 관심이 돌아갔어요. 지금 마무리하면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때를 기다렸다.

세인트하퍼 주가조작에 대한 관심이 옅어진 지금 처리하면 한울그룹이 실형을 받든 받지 못하든, 국민은 관심을 주지 않을 것이다.

공판부 쪽에는 이미 한승호 팀장이 손을 더 써 둔 상황.

적당히 집행유예 정도로 판결이 날 터.

모든 것이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이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진정한 왕이 되기 위해.

강현수 부장을 짓밟는 일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