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1)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이후로 3개월이 지나고 세인트하퍼 주가조작 사건은 슬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건 조사는 일찍이 끝났으나, 최종적으로 한울 투자증권을 집행유예 정도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관심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일부러 시간을 오래 끌고 있는 상태.
관심이 사라지는 건 말 그대로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기에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한울 투자증권을 대신해 모든 국민들의 분노를 받아 낼 다른 몇몇 정치인들을 때려잡고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뻔하게 처남이나 고모 등 친척들을 이용해 투자한 초보 정치인들이 그 대상.
물론, 한지유와 그녀의 동생 한지수는 애초에 수사 선상 자체에도 오르지 않았기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사이엔 세인트하퍼 주가조작 사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김재욱 검사장.
6월 초, 이두형 검사는 각고 끝에 김재욱 검사장을 칠 수 있는 건수를 가져왔고, 한 달간 내가 추가적으로 조사를 마치고 자료를 보강해 그의 목을 칠 수 있는 자료를 완성했다.
물론 지금 당장 칠 생각은 없었다.
세인트하퍼 주가조작 사건이 마무리되는 그 순간에 강현수 부장 건수와 함께 터뜨릴 생각이었다.
아직까진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모든 게 물 흘러가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상황.
3개월은 아주 무난했다.
아, 하나 특별하게 변한 게 있다면, 한지유에 대한 호칭이 변했다는 것 정도일까.
-어, 오빠 어디야?
“지금 도비호텔 근처. 선배님들 좀 만나고 가려고.”
-그래.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알았어. 먼저 자.”
-응.
전화를 끊고 곧장 도비호텔의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시끌벅적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를 생각했지만, 오늘은 평상시와는 기류가 달랐다.
분명 음악이 틀어져 있고 술과 음식들이 가득했으나, 여성들이 없었다.
전부 라인 사람들로 가득 찬 상태.
한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서 무언가를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자연스레 그쪽 무리로 파고들었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동부지검 검사 하나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부터 내쉬었다.
“권재철 이 새끼가 일을 벌이려는 모양입니다.”
“권재철 대통령 말씀이십니까?”
“예. 그 미친놈이 이번에 FTA로 똥을 크게 싸지 않았습니까?”
싸도 아주 크게 쌌다.
코끼리 똥처럼 어마어마하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FTA 협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경제가 아주 박살 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민초는 크게 휘청거리고, 농수산물의 물가 또한 요동치고 있는 상태.
아니나 다를까, 권재철의 지지율은 20% 선도 무너져 10%대 초반까지 내려갔다.
탄핵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진 특별한 낌새가 보이지 않아 조용히 참고 기다리는 게 전부.
“그렇죠. 지지율이 이번에 12%까지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예. 그런데 그 미친놈이 이번엔 검찰 개혁을 실시한답니다.”
“검찰 개혁요?”
제대로 듣고도 내 귀를 의심했다.
검찰 개혁이라니.
이건 대놓고 검찰을 부패한 이미지로 만들어 국민의 시선을 돌리고 자신의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겠다는 소리다.
늘 그래 왔다.
판검사나 변호사 출신이 아닌 대통령들이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늘 시행하던 건수였으니까.
그러나 이번엔 아니었다.
현재 국민에게 검찰의 이미지는 역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검찰은 경찰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인 심판자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해, 세인트하퍼 주가조작 사건에서도 경찰이 찾지 못한 대기업과 정치인들을 때려잡아 넣고 있는 상태.
개혁을 하려면 오히려 경찰을 개혁해야지, 검찰을 뒤엎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무엇보다 검찰 개혁이 진행되면, 신뢰의 검찰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던 나 또한 묻히게 될 게 뻔했고.
다시 말해 검찰 개혁은 내 공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일.
나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이렇게 가만히 당하고 있겠다는 건 아니겠죠?”
“그게 지금…….”
그가 무언가 말을 하기 전에,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던 최규현 국무총리의 입이 열렸다.
“내가 암만 권재철이 뒤를 봐줬다지만,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맞습니다.”
민국당 원내대표인 황철용 의원 또한 동의를 표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됩니다. 제가 야당이라서가 아니라, 이건 지금 권재철이 선을 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최규현 국무총리의 입에서 기다렸던 단어가 나왔다.
“탄핵해야 합니다.”
탄핵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펜트하우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흐르던 음악 또한 타이밍 맞게 끝이 났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와 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게 전부.
잠깐의 침묵 후, 최규현 국무총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2번 라인 쪽 사람들과 이틀 뒤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쪽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라면…….”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권재철을 탄핵시킬 겁니다.”
권재철의 소속은 제2라인.
그러나 현재의 대통령 지지율을 보면, 암만 자기네 쪽에서 배출시킨 대통령이라도 커버 쳐 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 쪽 라인에 비해 검사의 비율이 훨씬 더 높은 2번 라인은, 검찰 개혁의 칼을 뽑아 든 순간 세력 자체가 반 토막 나는 것과 다름없는 수준일 테니까.
그쪽에서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을 것이다.
탄핵.
그 폭풍이 시작되고 있었다.
***
“의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건 권재철이 너무 갔어요.”
성태현 의원도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암만 검찰 개혁의 칼을 꺼내 드는 게 지지율 회복의 정석 코스라고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악수죠. 무엇보다 그가 속해 있던 2번 라인은 지금 검사 수가 역대 최고에 달해 있는 상태예요. 자기 살려고 제 가족 파는 꼴밖에 되지 않잖아요.”
그는 슬쩍 주변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제 사촌 동생 진현이한테 방금 문자로 연락 왔는데, 그쪽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우리 쪽은 최규현 국무총리님이 총괄이사라 조금 덜할 테지만, 그쪽은 넘버원인 민국당 당대표가 검사 출신이잖아요.”
“분위기 장난 아니겠네요.”
“살벌하답니다, 아주.”
그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십여 명의 여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각한 분위기가 정리되었으니 다시금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여자를 보내 준 모양.
자연스럽게 이쪽으로도 두 명의 여성이 다가왔다.
“어머, 우리 최 검사님 표정이 많이 안 좋네. 무슨 일 있었어?”
그녀의 물음엔, 이미 다른 여성의 허리를 감은 성태현 의원이 대답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여기 전체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아.”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으려 했다.
“워워, 스톱.”
나는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고, 자연스레 성태현이 고개를 저으며 내 대신 입을 열어 주었다.
“최 검사님 요즘 임자 있으시니까 옆에 가면 안 돼.”
“어머, 정말요?”
두 여자는 눈을 빛내며 내게 시선을 모았다.
“대박이네. 최 검사님도 연애를 하시는구나. 아, 연애가 아니라 맞선으로 결혼하시는 건가?”
나는 피식 웃으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의원님, 오늘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왜요, 분위기 안 좋아서?”
“그것도 그렇고 조금 생각할 게 있네요.”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안전 운전하시고.”
성태현은 고개를 꾸벅이며 내 옆에 왔던 여자까지 끌어당겨 자신의 옆으로 앉혔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에게 간단히 묵례를 하고는 먼저 도비호텔을 빠져나왔다.
***
상당히 골치가 아파졌다.
권재철이 탄핵되면 단순히 정권이 교체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대통령과 연관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옷을 벗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
처음에 권재철과 엮이는 걸 걱정했던 게 바로 이런 이유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잘못하다가는 나까지 엮여 들어가 박살이 날 수도 있을 터.
그에게 도움을 준 적은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적이 없는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랄까.
무엇보다 이번 탄핵은 지금까지 있었던 탄핵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국민의 지지율이 바닥이긴 하지만, 아래에서부터 변혁의 불씨가 일어난 게 아니라 위로부터 탄핵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이 폭풍우가 몰아칠 때만큼은 국민의 시선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청렴한 검사가 정치인으로 보이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 온 게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건 순식간일 테니까.
우리 라인과 2번 라인이 힘을 합친다면 탄핵은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다.
탄핵이 성공하는 건 기정사실화를 해 두어야 한다.
다시금 머릿속을 되짚었다.
중간에 실수한 건 없는지, 권재철 대통령과의 커넥션 중 꼬리를 밟힐 만한 것은 없는지 계속해서 찾고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지워 냈다.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에 하나가 걸렸다.
임선미 비서.
권재철과 나를 잇는 유일한 연결 고리가 바로 그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박성현 차관의 비서였던 임선미는 현재 청와대로 옮겨 간 상황.
권재철의 힘으로 옮겨 간 것이다.
다시 말해 권재철이 탄핵된다면 임선미 비서는 무조건적으로 청와대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것.
만약 누군가가 나와 임선미 비서 그리고 권재철 대통령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기라도 한다면, 내 위치는 풍전등화, 사상누각이 된다.
사실 권재철 대통령이 부탁하고 어쩔 수 없이 몰아붙여 해결했다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내가 실적에 눈이 멀어 일을 벌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보통 인물들은 절대 파악할 수 없을 거라는 것.
권재철은 당연히 말할 리 없고, 탄핵 때문에 그럴 만한 정신도 없을 것이다.
임선미 비서 또한 사실을 밝히는 순간 자신이 무고로 박성현 차관을 몰아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에 입을 꾹 다물 테고.
문제는 다름 아닌, 박성현 차관.
혹시라도 그가 보복하기 위해 죽자고 달려들면, 나에게는 스크래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만약 스크래치가 생채기로 번지기라도 한다면, 언론이라는 바이러스가 침투해 상처를 찢어발길지도 모르는 노릇.
그렇게 된다면 이후의 여파는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앉아서 노심초사하는 것보다는 혹시나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어떻게든 박성현 차관의 약점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뒷조사를 시작한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없는 증거라도 만들어 낼 기세로 그에 대한 자료들을 뒤지고 있던 어느 날.
보름달이 남쪽에 휘영청 떠오른 늦은 밤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최서준입니다.”
-어, 최 검사. 오랜만이야. 나 최규현 국무총리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