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 (2)
조용히 듣고 있던 실무관 조아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검찰 측에서 살인죄로 기소한다면, 살인죄에 사체유기죄와 사체 손괴죄가 포함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상해치사로 중간에 바뀌어 버리면서 자연스럽게 사체유기죄와 사체 손괴죄가 빠져 버린 거죠.”
“아, 그러면 추가적으로 기소를 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죠.”
윤설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공판 검사가 빠뜨린 걸까요?”
“실수로 빠진 건지 뇌물을 받아 처먹어서 일부러 뺀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다시 기소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체유기죄와 사체 손괴죄의 법정 최고형은 각각 7년씩.
“그러면 바로 기소 준비할까요?”
윤설하는 서류를 챙기며 물었다.
“한번 재판을 했고 형량까지 치른 건이라 자료가 만만치 않을 거라서 미리 준비해야 하니까요.”
“아니요. 이건 처리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처리할 수는 있지만, 들어가는 힘이 심각하게 크다.
국민의 지지를 얻는 건 확실한 건이지만, 이걸 정석으로 처리하려면 그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적지 않다.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다른 큰 건을 맡는 게 더 도움이 될 터.
안 그래도 심판자 건으로 인해 언론에 얼굴을 자주 비쳤는데 이번 건으로까지 또 얼굴을 비친다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도 있으니까.
다만, 이렇게 남들에게 뺏기기엔 아까운 사건이다.
계륵과도 같달까.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렇게 처리하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때, 윤설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면 이번 건은 포기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넘겨야죠, 다른 분한테.”
“다른 분요?”
“네.”
나는 입꼬리를 휘며 답했다.
“설하 씨랑 아라 씨는 모르는 척 지켜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
“김재욱 검사장 건에 대해서는 잘 진행하고 있나?”
“예.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두형 검사의 얼굴엔 자신감이 차 있었다.
확신이 가득한 걸 보면 아무래도 무언가 꼬리를 잡긴 잡은 모양.
나는 그에게 두꺼운 서류철을 하나 내밀었다.
“처리하면서 이 사건도 한번 맡아서 진행해 봐.”
“이건…….”
서류를 확인한 그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심판자 피해자, 유동현 건 아닙니까?”
“맞아.”
나는 다리를 꼬며 턱을 치켜들었다.
“이번에 국민 청원 올라온 거 알고 있지?”
“예. 그런데 일사부재리 때문에 어차피 손 못 대는 거 아닙니까?”
그의 질문에는 대답 대신 메모 하나를 건넸다.
낮에 윤설하와 조아라에게 설명했던, 사건 처리 방식에 대해 자세하게 적어 둔 내용.
“이대로 처리해. 국민들 시선을 사로잡기엔 이보다 더 좋은 건이 없을 거야.”
이두형 검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감동한 듯이 날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의 눈엔 이 메모가 내가 자신을 끌어 주겠다는 심화(心畫)처럼 보일 테니까.
“선배님…….”
그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
내 사람이니까.
이두형이 내 사람이 되어 진정한 힘을 발휘하려면 그 또한 검사로서 실적을 쌓고 이름을 날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 사건만큼 제격인 건이 없을 테지.
나에겐 계륵이지만, 그에겐 달콤한 꿀일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가 얼른 성장해야지.”
“예. 커서 선배님 보필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대외적으로는 네가 직접 사건을 알아채고 착수한 걸로 해. 괜히 강현수 부장이나 다른 사람들이 너와 내 관계를 알아채서 좋을 게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네가 내 사람이 된 걸 타인이 알게 되는 건, 네가 부부장검사에 오를 때야. 알았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물론 이 건을 맡더라도 1순위는 김재욱 검사장 건이야. 알고 있지?”
“예. 그 건은 4개월…… 아니, 3개월 안에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해.”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밖으로 나왔다.
***
“예, 최서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공석민입니다. 잠깐 통화 가능하십니까?
“말씀하세요.”
-다른 게 아니고 저희 팀장님…… 아, 그러니까 저번에 말씀드렸던 한울그룹 회장님 셋째 아들의 장남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네.”
-이번 주 일요일에 혹시 시간 괜찮으신지요?
“일요일이라면, 저녁때가 좋을 것 같습니다.”
-예. 그러면 일요일 오후 8시까지 상주린호텔에서 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저녁 보내십시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차에서 내렸다.
상주린호텔이라.
한울그룹 소유의 호텔.
아무래도 자신의 본진에서 만나서 기죽지 않겠다는 뜻 같은데.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암만 그래도 이미 패를 깐 이상, 머리 위에 서 있는 건 나니까.
주말에 그와의 만남을 기약하고는 오늘의 만남을 위해 곧장 마이의 첫 번째 단추를 채우며 내부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직원이 알아서 약속 상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데려갔다.
적어도 이쪽에서는 이제 얼굴이 명함이 되는 정도라는 거겠지.
“먼저 오셨군요.”
안에는 이미 성태현과 그의 사촌 동생인 성진현이 도착해 있었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했다.
“아직 약속 시간도 안 되었는걸요.”
“선배님 오셨습니까?”
성진현은 깍듯하게 인사했다.
“진현 씨, 편하게 불러도 된다니까.”
“아닙니다. 제가 후배인걸요.”
그는 안암대학교 08학번으로 나와 동갑이지만, 사법연수원이 2년 늦은 45기생이기에 저번부터 나를 완전히 선배로 모시고 있었다.
성태현도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원래 윗사람한테 싹싹하니 잘하니까 선배로 남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면 이제 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하하핫.”
자리에 앉으며 성진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자들은 들어오라고 할까요, 아니면…….”
“아니, 일단 우리끼리 이야기 좀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성진현은 곧장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선배님,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아, 좋지.”
그에게 양주 한 잔을 받으며 말했다.
“성 검사가 요즘 서부지검에서 얼마나 활약을 하는지, 중앙지검에도 이야기가 들리던데?”
“그렇습니까? 하하.”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요즘 실적으론 최고라면서?”
“저희 부서에서만 그렇습니다. 운 좋게 굵직한 건들이 쉽게 해결이 되어서요.”
“큰 걸 간단하게 해결하는 게 바로 능력이지.”
코를 찡긋하자, 그는 부끄러운 듯이 머리를 긁었다.
“저보다 선배님이야말로 이번에 심판자 사건 해결하면서 능력 증명을 제대로 하셨지 않습니까?”
요즘은 어딜 가나 심판자 이야기다.
“민망하게 무슨. 그나저나 성 검사 곧 결혼한다며?”
“네, 맞습니다.”
그는 바로 속주머니에서 청첩장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날짜 나왔습니다.”
“이야, 축하해.”
“감사합니다, 하하핫.”
그는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긁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성 검사 결혼식은 꼭 가야지.”
“말씀만으로도 벌써 감사합니다.”
성진현은 부끄러운 듯 성태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저희 형님도 얼른 결혼을 하셔야 하는데……. 보십시오, 여기 이렇게 넥타이도 삐뚤어지게 매고 다니시지 않습니까?”
성태현은 넥타이를 확인하고는 아예 풀어 버렸다.
“자식이 봤으면 고쳐 주지.”
“사실 저도 방금 봤습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형님이 눈이 너무 높으시다니까. 예전부터 늘 한결같으시잖아요. 이상형은 예쁘신 분.”
“여자는 예뻐야 돼. 예쁜 건 3년이라지만, 못생긴 건 평생 간다잖아.”
성태현은 확고한 어투로 말했다.
“딸 낳았는데 예쁜 엄마 닮아 봐. 이런 곳에서 여자 끼고 놀고 싶겠어? 바로 퇴근하고 싶지.”
“하하하, 그래서 요즘 만나는 여자는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최 검사님은 왠지 있으신 것 같은데?”
“저는…… 노코멘트로 하겠습니다.”
성태현이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크으, 우리 최 검사님도 이제 봄날이신가 보네.”
“아직까진 확실치 않습니다. 잘되면 제가 새끼 치겠습니다.”
“그래요. 꼭 예쁜 여자로 해 줘요.”
“물론이죠.”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그녀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좋죠.”
그는 잔을 받으며 성진현에게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나 혼자 외로워서 안 되겠네. 여자들 들어오라고 그래.”
“알겠습니다.”
한참 대화를 하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술기운이 서서히 오르고 있을 때, 성진현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데 선배님.”
“어, 왜.”
“요즘 저희 쪽 부장검사의 낌새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가 있는 부서는 공정거래 및 기업범죄전담부.
일명 공기부로 불리는 곳으로, 서울서부지검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서.
그곳의 부장검사라면 나름대로 파워가 있는 위치다.
“무슨 일인데?”
“한태민 부장검사, 이 인간이 아무래도 특수부 부장검사 자리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얼굴에 오르던 술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불쾌함이 차올랐다.
“뭐?”
성진현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정확하진 않은데 조금 추적해 본 결과, 한태민 부장검사와 김재욱 검사장 사이에서 계속 접촉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굉장히 탐탁지 않은 이야기인데.
특수부의 부장검사는 내가 올라가야 할 자리다.
그걸 지금 중간에서 가로채려고 하는 꼴인가 본데.
평검사는 특정 지역에서 유지와 손을 잡는 등의 부패 행위 방지를 위해, 직급이 오르거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한 지청에서 2년 넘게 머무를 수 없다.
부부장검사도 마찬가지.
특별한 사유로 인한 부장검사의 허락이 없으면 다른 지검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내가 내년에 직급이 올라 특수부의 부장검사가 되지 못한다면, 중앙지검에서 쫓겨나는 게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뜻.
그런데 올해 말에 특수부 부장검사가 새로 부임한다?
그건 내가 내년에 무조건 중앙지검에서 쫓겨나야 한다는 뜻과 다름없다.
김재욱 검사장은 그걸 노리고 있는 게 뻔했다.
“후우.”
내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도 뒤에서 공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열이 뻗쳐올라 스트레이트 양주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고 성태현 의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 생각인데, 진현이를 그쪽 라인으로 보내는 건 어떨까 합니다.”
“성 검사를요?”
“예. 저와 최 검사님이 계시면 우리 라인으로는 언제든 데려올 수 있으니, 그쪽으로 보내서 염탐을 시키려는 겁니다.”
성진현 검사를 보며 물었다.
“너 괜찮겠어?”
“물론입니다. 어차피 서부지검은 그쪽 라인에 잡혀 있어서, 그게 지금으로서는 저한테 더 이득일 수도 있거든요.”
성태현 의원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쪽 라인에 넣을 방법은 있습니까?”
“예. 제가 백성제 의원과 조금 연이 있는데, 그분을 통해서 넣을 수 있을 겁니다.”
백성제 의원이라면 대한당의 원내대표로 정계에서 이름깨나 날린 인물.
라인에 넣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다시금 양주를 한 잔 들이켰다.
갑자기 술맛이 쓰게 느껴진다.
김재욱 검사장.
아무래도 녀석의 목은 내가 직접 날려 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