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66화 (66/341)

심화 (1)

“한지유 씨, 혹시 주식할 줄 알아요?”

“주식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예전에 재테크로 잠깐 해 본 적이 있긴 한데, 다 날려 먹은 뒤로는 손도 안 대요.”

“아, 그러면 혹시 가족 중에 하는 사람은 있어요?”

“여동생이 조금 할 줄 아는데…… 왜요?”

“제가 재미있는 정보를 하나 알아 와서요.”

한지유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씨익 웃으며 물었다.

“동생분은 주식 자주 하시는 거죠?”

“네. 회사 다니는데 거의 매일 차트 들여다본다고 하더라고요.”

“다니는 회사는 일반 회사?”

“중견 기업 다니고 있어요.”

됐다.

오히려 이게 더 낫다.

한지유가 직접 참가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동생이라면 나와 접점이 전혀 없을뿐더러, 일반인으로 평범한 회사에 다닌다면 더욱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울그룹에서 세인트하퍼 종목을 100배까지 끌어 올리는 동안 시세 차익으로 돈을 번 수많은 개미들 중 하나로 보일 테니까.

만일의 경우에 추적이 들어온다고 한들, 한지유가 나와 연락을 주고받은 뒤 사석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과 다름없다.

암만 의심을 하고 싶어도, 겨우 한 번 만난 그녀에게 이 정보를 줄 이유가 없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나올 수밖에 없을 터.

무엇보다 평소에도 주식을 했다면, 한지유의 동생도 수사 선상에 오를 리가 없으니까.

“오늘 일은 절대 외부로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를 향해 상체를 기울이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동생분과 이야기하셔서 한지유 씨가 가지고 있는 여윳돈 중에 굴릴 수 있는 돈을 여동생분께 전달하시고, 세인트하퍼라는 종목을 사라고 알려 주십시오.”

“세인트하퍼 주식을 사라고요?”

한지유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네. 그 종목이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오를 겁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전채용 포크도 내려놓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는 시기는 상한가를 한번 친 다음 날입니다. 그때 얼마가 됐든 최대한으로 매수하세요. 그리고 정확히 다섯 배만 먹은 뒤에 전부 매각하시는 겁니다.”

“이거 설마…….”

그녀는 제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주가조작 정보예요?”

바로 알아채는 걸 보니, 눈치가 꽤나 빠르다.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 설명을 이었다.

“딱 그 정도로만 먹고 나오시면 절대 의심받지 않을 겁니다.”

한지유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손을 모았다.

“이 정보를 저한테 왜…….”

그저 일반적인 지인이라면 알려 주는 건 내 발목을 잡는 일이고 위험해질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한지유라면 달랐다.

외부에서 봤을 때는 나와 그녀의 접점 자체가 매우 적은 편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문자에서 본대로 그녀가 내 미래의 와이프가 된다면 한지유가 가진 재산이 ‘우리 가족’의 것이 될 테니까.

“글쎄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코를 찡긋했다.

“그냥 주고 싶네요.”

한지유는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눈치.

정상적인 태도다.

갑자기 눈앞에서 예고도 없이 돈을 다섯 배로 불려 준다는 특급 정보를 알려 주는데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니까.

사실, 그녀가 이 정보가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심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강현수에게서 자신을 구해 낸 만큼 나에 대한 믿음은 확실할 테니까.

제일 걱정인 건, 그녀가 내 제안을 거절하는 것.

나의 말에 대한 신뢰도를 떠나서, 주가조작을 알고 이용하는 것 자체를 올바르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나와 결혼할 사람이라면 노를 저어야 할 때와 선을 지켜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알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전채 요리가 수프로 바뀐 뒤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한지유는 결심한 듯이 날 바라봤다.

“그렇게 할게요.”

나이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검사님께서 제게 해가 되는 일을 제안하셨을 리는 없다고 믿으니까요.”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신 동생분께 꼭 전해 주십시오. 최대 다섯 배입니다. 그 이상은 위험해요.”

“알겠습니다.”

한지유는 다시금 숟가락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제 마음 편하게 식사해도 되죠?”

“네?”

“더 이야기하면 식사를 즐기러 나온 게 아니라, 비즈니스하러 나온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은데.”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한지유 씨랑 식사하러 나왔죠. 주식 이야기는 덤이고요.”

그제야 한지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한번 드셔 보세요. 여기 어니언 수프가 진짜 맛있어요.”

“네.”

마음 편하게 수프를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양파의 향긋함이 입안을 감싼 뒤,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갔다.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전채 요리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탓인지, 수프의 맛이 극대화된 느낌.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

그와 동시에 다시금 울려오는 휴대폰의 진동.

휴대폰을 확인하자, ‘어머니’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 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와도 될까요? 어머니셔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양해를 구했다.

“여기서 받으셔도 돼요.”

밖으로 나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사람들이 알아보면 골치 아파질 것 같아 룸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면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의자를 뒤로 빼서 전화를 받았다.

“예, 어머니.”

-어, 아들. 저녁은 먹었어?

“지금 먹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식사하셨어요?”

-응. 방금 윗집이랑 먹었어. 흥주네 알지?

“네. 알죠.”

전화하면서 슬쩍 한지유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오히려 흥미롭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일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니까 마음 편한 눈치랄까.

-다른 게 아니고, 이번에 거기 아들 흥대가 결혼한다더라고. 청첩장 받았는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우리 아들은 언제쯤 며느리 보여 주려나?

“아, 어머니, 그게…….”

-아들도 이제 서른하나야. 슬슬 결혼해서 손주 보여 줘야지.

“제가 아직은 결혼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어유, 죽기 전에 손주는 봐야 되는데 이거 조만간에 다시 선 자리를 한번…….

짧게 이야기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가서 받을 걸 그랬다.

그러나 이제 와서 나갈 수도 없는 노릇.

그렇게 한참 동안 진땀을 흘리며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듣다가.

“아, 어머니. 지금 업무 관련해서 전화가 들어와서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하아.”

짙은 한숨을 내쉬자, 곧바로 맞은편에 있던 한지유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죄송해요. 어머니 전화라서 짧게 끊기도 그렇고 해서.”

“아니에요. 재미있던데요, 뭐.”

“재미요?”

한지유는 테이블 쪽으로 턱에 손을 괴며 날 바라봤다.

“최 검사님도 부모님 앞에서는 똑같은 사람이구나, 이런 느낌이랄까요?”

“듣고 보니 더 민망한걸요.”

“그나저나 교제하고 있는 여자분은 없으신 거예요?”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아, 네.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시는데요?”

테이블을 두고 한지유와 더욱 가까워졌다.

그와 동시에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그녀의 얼굴.

“이상형이라든지, 있잖아요. 외모라든가 스타일이거나 아니면 연예인 중에서 고르신다거나.”

“저는…….”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말했다.

“한지유 씨 같은 스타일요.”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턱을 받치고 있던 그녀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똑바로 자리에 앉았다.

“저도…….”

그녀의 입이 열리기 무섭게.

드르륵.

룸의 문이 열리며 직원 둘이 들어왔다.

“파스타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한 직원이 수프 접시를 치우고 다른 직원은 테이블에 따끈한 파스타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자연 송이가 들어간 매콤한 향의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로…….”

직원이 무언가 한창 설명을 해 주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지유도 마찬가지인 듯, 그저 나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잠시 후 직원이 나간 뒤, 나는 포크도 들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봤다.

한지유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먹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테이블로 손을 올리며 물었다.

“아까 하시던 말씀 못 들었는데.”

다시금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치사하게 저만 말하고 끝내는 건 아니겠죠?”

그녀는 파스타로 시선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이상형이…….”

한지유는 포크를 만지작거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님 같은 분이에요.”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

순간, 한지유와 나의 눈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다.

***

“검사님, 심판자 사건과 관련해서 특이한 요청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특이한 요청요?”

윤설하는 테이블 위로 프린트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인데요. 심판자의 아홉 번째 표적 있지 않습니까?”

아홉 번째 대상이라면, 심판자를 검거할 당시에 내가 직접 심판자의 표적으로 만든 인물.

“유동현 말씀하시는 거죠?”

“예. 그 녀석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을 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녀가 건넨 프린트를 확인하자, 이미 10만 명이 넘게 동의한 국민 청원의 한 화면이 캡처가 되어 있었다.

내용은 살인범 유동현에 대한 재심 요구 및 솜방망이 처벌을 취소해 달라는 요청.

“이거 재심이 안 되는 건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요?”

“맞습니다. 이미 상해치사로 판결이 내려져 버린 건이라서 불가능합니다. 검찰 측에서 상고했을 때도 2심 확정해서 파기 환송한 건이라서 되돌릴 수도 없고요.”

“이건 제 선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에요.”

“맞습니다만, 검사님께서도 국민 여론이 이렇다는 걸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보고드렸습니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참으로 답답한 일이긴 하지만, 이미 형량을 치르고 나왔기에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서 그를 다시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일단 사건은 한번 확인해 볼게요. 관련 서류 좀 가져다주실래요? 검토라도 해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윤설하는 빙그레 웃으며 곧장 자신의 테이블에 있던 서류 뭉치를 하나 가져왔다.

“그러실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역시 설하 씨라니까.”

나는 곧장 그 자리에서 서류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적당히 이슈가 되다가 묻혔으면 모를까, 청와대 국민 청원에서 10만 명이 넘게 동의한 사건이다.

동의 수가 20만을 넘어가면 청와대에서 의무적으로 답변을 해야 하는 만큼, 분명 국민 사이에서는 이 건이 더욱 화제가 될 터.

그런 상황에서 이 건에 대해 처리를 해 줄 수 있다고 나서는 것만큼 국민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일은 더 없을 터.

뭔가 꼬투리 잡을 게 있으면 좋겠는데.

한참 동안 세세하게 읽어 내려가던 도중,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설하 씨, 이거 확인해 봤어요?”

“예?”

“이거 처음에 검찰에서 기소할 때 상해치사로 기소한 게 아니라 살인죄로 기소했네요.”

“아, 네. 그런데 재판을 진행하던 도중 상해치사로 기소 내용이 변경된 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내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면 기소할 때는 상상적 경합범으로 처리했지만, 죄목이 상해치사라면 실체적 경합범으로 처리할 일입니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그녀를 위해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동현, 이 새끼 조질 수 있다고요.”

내 입꼬리가 한껏 비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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