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65화 (65/341)

내 사람 (4)

공석민이 떠나간 뒤, 목소리를 낮춰 성태현에게 물었다.

“저 녀석 위험 요소는 없으려나요?”

“예. 황철용 의원이 직접 자신의 예비 사위라고 소개했으니, 의심의 여지는 없을 겁니다.”

“황 의원님 막내따님이라면 나이 차이가 너무 많지 않나요?”

“아니요. 첫째 딸이 다시 결혼하는 겁니다. 재혼이에요.”

“아, 그렇군요.”

민국당 원내대표인 황철용 의원이 보증을 선다면, 의심의 여지는 없다.

“들어 보니까 공석민 저 인간이 하버드에서 경제학 전공하고 CEO에 오르기 전까지는 투자의 귀재 소리를 들으면서 주식시장을 휩쓸었다는 것 같아요.”

“보통 인물은 아니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황 의원이 데려간 거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이해는 간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고, 시작하기도 전에 물밑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공석민에게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는 거니까.

“그나저나 정말 100배가 가능할까요?”

성태현은 볼을 긁적였다.

“제가 애초에 정치 쪽으로 입문을 해서 주식 쪽은 영 젬병이라…….”

소파에 몸을 묻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가능할 건 없죠. 주가 초반에는 엄청 요동칠 테고, 그로 인해 몇 번 거래 정지를 때리는 일이 반복될 테지만, 결국 100배는 찍을 수 있을 겁니다. 한울그룹이 뒤에서 도와준다면 불가능할 이유가 없죠.”

까놓고 말해서 매일 상한가를 친다는 가정하에, 주식시장이 열리는 기준으로 18일이면 112배까지 올라갈 수 있으니까.

“아, 진짜로 되는군요.”

“네. 그렇죠.”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뭐, 중간에 경찰이 태클을 걸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미 이렇게 검찰로 송치된 이후까지 걱정하고 준비하는 인물이 경찰 쪽은 미리 조치를 해 두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죠.”

성태현은 턱을 매만지며 헛웃음을 지었다.

“100배…… 진짜 되겠네요.”

“혹시라도 관련해서 먹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이 정도로 엄청난 건이라면 엄청난 이슈를 몰아올 겁니다. 조금이라도 수익을 보았다면 성태현 씨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요.”

“어유, 생각도 안 합니다. 이런 거는 먹으면 체해요.”

그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 그런데 그래서 어떤 종목이랍니까? 그걸 안 물어봤네요.”

“아마 ‘세인트하퍼’라는 종목일 겁니다. 들어 보니까 이번 거사를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직접 세운 것 같더라고요.”

페이퍼 컴퍼니라면, 어떻게든 법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할 터.

무엇보다 중간에 엎어지는 일도 없을 테고.

꽤나 오랫동안 준비해 온 모양.

“검사님은 어떻게, 참전하실 생각입니까?”

“저는 손대면 큰일 납니다. 잘못하면 제 사돈에 팔촌까지 의심받을 수 있어요.”

성태현은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겉보기에 연이 없으면 된다는 뜻이네요.”

“하하핫, 맞는 말씀이십니다.”

100배가 오를 주가조작 정보라.

확실히 꿀처럼 달콤하다 못해 사카린의 맛이 느껴질 정도로 당도가 높은 정보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을 텐데.

조만간 한번 방법을 강구해 봐야 할 것 같다.

성태현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손가락을 튀기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아, 그리고 검사님.”

“예?”

“다음 주에 제 사촌 동생과 셋이서 한번 술 한잔하시지 않겠습니까? 저번에 한번 뵌 뒤로 진현이와 함께 또 뵙고 싶었는데, 워낙 바쁘셔서 말을 못 꺼냈습니다.”

“저야 좋죠. 언제쯤 뵐까요?”

“다음 주 수요일이나 금요일 어떠세요?”

“아, 수요일은 제가 선약이 있어서…… 금요일에 뵙죠.”

“예. 주말 전이니까 편하게 뵐 수 있겠네요.”

다음 주에 한울그룹의 3세부터 한지유와 성태현까지.

심판자 사건이 끝나니 오히려 더 바빠진 것 같은 기분이다.

성태현은 주변을 스윽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나저나 이번에 권재철 대통령이 조금 특이한 수를 던질 것 같습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들어 보니까 한미 FTA 재협상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 FTA 재협상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에 들어 보니까 대한당에서도 전혀 이야기하지 않은 사실이라고 해서…….”

“언제쯤이라고 합니까?”

“미국 상황을 보면 아마 여름에 시작해서 가을에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을이라…….”

“변혁이 일어나기 좋은 시기죠.”

“그렇죠.”

왠지 모르게 가을에 큰 폭풍이 불어닥치지 않을까 싶다.

***

“흐으음.”

아쉬움의 한숨만이 계속 내쉬어졌다.

100배나 오를 주식 종목을 알고 있는데 활용할 방법이 없다니.

우리 라인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모양새일 것이다.

100배라면 보통 종목이 아닐 테니, 분명 피해를 입는 개미들의 수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분명 눈에 불을 켜고 정치인들을 지켜볼 터.

만약 정치인들 중 누군가가 처남이나 사위 등을 이용해서 투자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덤터기로 그들의 목숨까지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분노가 몰릴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손을 떼고 있을 만한 위인은 없을 터.

다들 자신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공석민도 이걸 노리고 펜트하우스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다닌 것일 테고.

분명 그중에서 몇몇이 걸려서 화제를 분산시켜 줄 테니까.

나한텐 어디 절대 들키지 않고 활용할 방법이 없으려나.

한지유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내내 그 생각만이 떠올라 머리를 가득 채웠지만, 결국 딱히 생각해 내지 못하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예약자명이 한지유입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정해진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기에 기다리겠거니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한지유는 먼저 도착해 있었다.

웨이터의 안내를 따라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자, 룸에서도 제일 고급스럽고 프라이빗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한지유는 먼저 자리에 앉아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톱스타 티가 난다.

가만히 있어도 화보 같은 느낌이랄까.

“아.”

그때,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오셨네요.”

내가 테이블로 다가가는 사이, 그녀는 미소를 흠뻑 머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분홍색 원피스.

네크라인에서 가슴 라인을 연결하는 부분에 큼지막한 리본 장식이 붙어 있는 H라인 원피스는 허벅지를 반쯤 드러내 그녀의 관능미를 강조하고 있었다.

“오랜만인데 악수나 할까요?”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지잉지잉.

순간 짧게 울리는 진동.

문자다.

“잠깐 확인 좀 할게요.”

자리에 앉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보낸 이 : 53

-2041년 8월 14일. 비. 오늘은…….

미래 문자다!

그것도 미래 일기!

한지유와 손이 맞닿은 순간 도착한 만큼, 이건 지금 바로 확인해야 했다.

“잠깐만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장 문자를 읽어 나갔다.

-보낸 이 : 53

-2041년 8월 14일. 비.

-결혼한 지 벌써 20년이나 지났다니, 세월이 믿기지 않는다. 첫 만남을 떠올리면, 우리가 부부로 발전했다는 게 경이로울 정도.

그도 그럴 것이, 애기 엄마는 그때 특수부 부장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구해 준 게 이런 인연으로 발전할 줄은 몰랐다.

8월 14일, 애기 엄마가 그놈의 칠석날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도 떼를 써서 당시 칠석에 맞게 결혼을 했고, 내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겨우 나흘밖에 차이가 안 난다. 그 덕분에 8월엔 늘 축제하는 기분이랄까.

요새 들어 와이프를 잘 만났다는 걸 더욱 체감하고 있다.

주변 동료들은 와이프에게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다닌다는데, 그래도 집사람은 아침에 따뜻한 밥에 국까지 차려 주고 있으니까.

물론, 그 외에도 늘 결혼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보다 더 나은 신붓감이 있을까 싶을 정도. 처음에 마담뚜들의 선 자리를 걷어차고 버틴 게 새삼 기특해지는 날이다.

집사람은 어떻게 나랑 같이 나이를 먹는데도 이렇게 예쁘고 고운지 모르겠다. 누가 보면 3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니까. 덕분에 우리 딸이 그렇게 예쁜 게 아닐까 싶다.

집사람과 결혼한 덕분에 얻은 게 참 많다.

행복하다.

허…….

특수부 부장에게 협박을 당했을 때 처음 만났다는 건, 내 와이프가 한지유라는 뜻일 터.

결국 한지유와 결혼한다는 건가?

문자가 온 타이밍 또한 그녀와 악수한 순간이니 아마도 확실할 것이다.

그때, 한지유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혹시 지금 갑자기 일 생겨서 가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한지유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여기 예약하기 진짜 힘든 곳이에요.”

“아니에요.”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이네요. 살이 더 빠지신 것 같은데.”

“티 나요?”

그녀는 볼을 어루만졌다.

“요즘 촬영이 워낙 빡세서요.”

그녀의 새침한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매력적으로 들려왔다.

물론, 미래 문자 때문에 내가 사랑에 빠진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문자 때문에 감정선이 흔들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니까.

다만, 이 문자가 그간 잊고 있던 그녀에 대한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서울에 올라오기 전부터 한지유는 나의 이상형이었던 인물이니까.

광주지검에 있을 때 휴대폰 바탕 화면이 한지유였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문득 광주에서 문자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문자 화면을 수사관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가 ‘한지유 아니에요?’라고 물었던 게 떠올랐다.

그 수사관은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네.

한지유가 내 이상형에 가장 부합하긴 하지만, 진짜로 만나는 건 두고 볼 일이다.

사람은 쉽게 결정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결혼이라는 건 더욱더 그렇고.

진정한 사랑을 만나려고 수십 차례 들어온 선 자리를 모두 거절했던 만큼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내가 이곳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나도 마음이 있다는 건가?

벌써부터 생각이 많아지려 한다.

고개를 휘휘 저어 사념들을 털어 냈다.

일단은 눈앞에 있는 한지유에게 집중하자.

“식사는 제가 미리 주문해 뒀어요. 여기 유명한 음식이 있거든요. 저번에 만났을 때 스테이크랑 랍스터 좋아하신다고 해서 메인으로 준비해 뒀어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자문 역할이라면서 왜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거예요?”

“그게 실은…….”

진태용 사장과 이야기해서 홍보 차원으로 합류했다는 걸 사실대로 설명해 주자, 그녀는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오, 정말요?”

“네.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입니다.”

“어쩐지, 안 오는데 아무도 안 찾더라.”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이번에 검사님이 심판자 사건 해결하면서 영화사 주가가 엄청 올랐거든요. 그런 것도 비슷한 파생 효과이려나?”

그녀의 말을 들은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기가 막힌 생각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그래, 성태현 의원의 말대로 겉보기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아주 아름다운 그림이 한 폭 그려졌다.

“네, 파생 효과 비슷한 걸 겁니다.”

그녀의 말에 적당히 대답하고 바로 화제를 돌렸다.

“한지유 씨, 혹시 주식할 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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