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 (3)
이두형 검사가 돌아간 직후, 나 또한 오피스텔에서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라인 사람들을 만나야 했으니까.
시간이 흐른 뒤 이두형이 내 사람이 되어도, 이 라인에 데려갈 생각은 없다.
자신을 향한 구원의 손길이 많아지는 순간, 암만 충직한 녀석도 견물생심이라고 눈이 돌아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런 요소는 원천 봉쇄하는 게 답이다.
그는 나만을 위한 칼이 되어야 한다.
내 사람을 넘어서 ‘나만의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내 수족이 될 테니까.
차에 타서 얼마나 달렸을까,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예, 최서준입니다.”
-오늘 오시는 거 맞죠?
늘 들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목소리.
국회의원 성태현이었다.
22대 대통령이 될 인물.
“네. 지금 가고 있습니다. 한 10분이면 도착해요.”
-거의 다 오셨네요.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안에서 뵙겠습니다.”
-예.
오랜만에 향하는 도비호텔.
우리 라인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그곳에는 근 세 달 만에 가는 것이었다.
심판자 사건 전까지만 해도 2주에서 3주에 한 번씩은 꾸준히 가서 얼굴을 비쳤지만, 요새는 워낙 바빠서 아예 가지 못하고 있었다.
전해 들은 소식으로는 최규현 국무총리가 오늘 불참할 예정이라고 하니, 조금 더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성태현 의원과는 그의 사촌 동생을 서울서부지검에 꽂아 준 이후로 부쩍 친해졌다.
이름이 성진현이었나.
간혹 중앙지검에까지 이름이 들려오는 걸 보면, 나름대로 서부지검에서도 적지 않게 활약을 하고 있는 모양.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같달까.
조만간 한번 얼굴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도비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37층 펜트하우스에 올라가자 자연스레 웃음이 났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권력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니까.
사람들과 간단히 눈인사로 얼굴만 비치려고 했으나, 심판자 건으로 높아진 기세 덕분인지 금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야, 최 검사 요즘 TV에 엄청 보이던데?”
“카메라 찜질이 좋긴 한가 봐. 최 프로 신수가 훤해졌어.”
“하하하, 감사합니다. 요즘 정신없이 일하느라 살이 좀 빠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더 날카로워졌어. 조만간 턱선으로 고기도 자르겠는걸? 으하핫.”
그때, 대한당 의원 하나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역시 최 프로야. 지금 기세면 다음 총선에서 옷 벗고 나와도 당선될 것 같던데, 뭐. 나중에 정치 생각 있으면 꼭 우리 대한당 들어와.”
“어허, 무슨 소리.”
민국당 의원이 눈을 부릅뜨며 내 어깨에 얹힌 대한당 의원의 손을 밀어냈다.
“최 검사는 민국당이지. 거 여당이 욕심이 많아.”
“됐어. 우리 대한당도 긴급사태야. 지금 권재철이 이거 간당간당하잖아. 지지율이 이번에 20%대로 떨어졌더구먼.”
대한당 의원은 다시금 스윽 내 어깨를 감쌌다.
“그러니까 최 프로는 우리 대한당으로 와.”
나는 크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어유, 저 아직은 정치 생각 없습니다. 검찰에서 왕은 찍고 가야죠.”
“크으, 역시 최 프로가 야망이 커서 좋다니까.”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대다 보니, 자연스레 성태현도 날 발견하고 다가왔다.
“최 검사님 오셨습니까?”
“이야, 또 젊은 피끼리 뭉치나?”
성태현은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의원님. 젊은 피가 아니라, 솔로들입니다. 집에 가면 밥 챙겨 줄 아내도 없습니다.”
“그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니까.”
그는 낄낄 웃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야기들 하게. 늙은이들은 여색이나 탐할 테니까.”
대한당과 민국당 의원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옆에 있던 여자들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고 은밀한 방으로 떠나갔다.
성태현은 양손에 들고 온 와인 잔 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차는 막히지 않으셨어요?”
“평일이라 올 만했습니다.”
가볍게 와인 잔을 부딪쳐 한 모금 마셨다.
고급 와인답게 포도 향과 알코올 향이 적절하게 섞여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의원님께서는 언제 오셨습니까?”
“저는 1시간 반 정도 됐습니다. 그나저나 저쪽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관심 있으십니까?”
“의원님의 말을 들을 귀는 늘 열려 있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 뒤, 성태현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검사님.”
말쑥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기에 천천히 그를 지켜보고 있는데, 성태현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제가 설명할 필요 없겠군요.”
그가 하려던 이야기가 이 남자와 관련된 이야기라는 건가?
남자는 공손히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울 투자증권의 사장을 맡고 있는 공석민이라고 합니다.”
한울 투자증권.
국내 5대 투자증권 중 하나이자, 해외에 진출해 있는 투자회사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회사로 알고 있다.
한울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지만, 전문 CEO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이 남자는 한울그룹의 사람은 아닐 터.
기껏해야 4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한울 투자증권의 CEO를 맡았다면 꽤나 능력이 있다는 소리다.
일단 그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아, 네. 최서준입니다.”
“잠깐 앉아도 될까요?”
“예.”
그는 나와 성태현까지 셋이서 삼각형을 이루도록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검사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오셨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찾아왔습니다.”
성태현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가 태클을 걸지 않는 걸 보면 문제가 있을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일 터.
“무슨 일이신데요?”
공석민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크게 한탕 하려고 합니다.”
“한탕요?”
“예.”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주가조작입니다.”
주가조작.
작전 세력들이 개미의 돈을 빼먹는, 일종의 사기 행위다.
조금 전에 성태현이 흥미롭다고 말한 게 바로 이 주가조작인 모양.
이 남자가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니다.
이 라인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신용할 수 있다는 증거니까.
그를 이곳에 데려온 인물이 일단 보증을 서는 것이며, 이곳에서 입을 함부로 놀렸다간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건 그도 알고 있을 터.
무엇보다 이 펜트하우스나 되니까 마음 편하게 주가조작을 한다는 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 것이지.
“주가조작인데 굳이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있을까요?”
“검사님이 특수부시잖습니까. 저희 쪽에서 주가조작을 할 예정인데, 아무래도 이게 보통 건이 아니다 보니 특수부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주가조작이 특수부로 넘어온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보통의 주가조작 건들은 경제범죄조사부에서 처리할 테니까.
그런데 특수부로 넘어온다는 건, 일반적인 규모가 아니라는 뜻이다.
개미들의 돈을 엄청나게 뺏어 갈 거라는 거지.
“그래서요?”
“특수부에서 조사하실 때, 저희 한울만 살짝 비껴가도록 해 주셨으면 해서요.”
범죄를 저지르기 전부터 미리 형량 거래를 하려고 하다니.
수완 한번 기가 막히다.
“그 전에 하나만 물읍시다.”
들고 있던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혼자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한울그룹이 움직이는 겁니까?”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에이, 이런 큰일에 어떻게 저 혼자 움직이겠습니까? 다 윗분들 뜻이죠.”
“정확히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공석민은 슬쩍 성태현의 눈치를 보았다.
“성 의원님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입이 꽤나 무겁거든요.”
성태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하고 나서야 공석민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회장님 셋째 아들의 장남입니다.”
재벌 3세라.
한울그룹의 재벌 3세면 나와 비슷한 또래일 텐데.
“그렇군요.”
“검사님께는 아쉽지 않도록 챙겨 드린다고 미리 말씀드려 뒀습니다. 상상하시는 것 이상일 테니…….”
“어유, 어쩌죠?”
나는 아쉬운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상상력이 보통 풍부한 게 아니거든요.”
“역시 보통이 아니시군요.”
그는 혀를 내둘렀다.
“얼마나 원하십니까?”
“에이, 뭐 그런 걸 제 입으로 직접 말하겠습니까?”
피식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직접 한번 만나 뵙고 이야기해야죠. 이미 내막까지 알았는데 서운하게 나오시면 공 사장님께서 책임지실 수 없을 테니까요.”
힘.
권력에서 나오는 힘.
그게 압도적이라는 건, 권력을 들고 있는 나보다 돈놀이를 하는 공석민이 더 잘 알고 있을 터.
그는 토를 달지 않고 바로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빠른 시일 내에 자리 한번 주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 주세요.”
양손의 손가락 끝을 맞부딪친 채 테이블에 얹었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해 먹으려고 벌써부터 물밑 작업을 하시는 겁니까?”
그는 말없이 열 손가락을 쫙 펼쳤다.
한 손가락도 빠지지 않고 열 개 모두.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열 배요?”
그러나 공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100배입니다.”
미친.
헛웃음이 나오는 걸 넘어 이젠 기가 찰 지경이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돈놀이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못하면 나가 죽어야죠.”
피식 웃으며 내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연락 주십시오.”
“예. 이번 주 내로 날짜 결정지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 주 중에 괜찮으시겠습니까?”
“일정만 겹치지 않는다면요.”
“알겠습니다.”
그가 내 명함을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성태현이 문득 입을 열었다.
“저도 개인적으로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공석민은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말씀하십시오.”
“아, 이게 검사님께 혹시나 실례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성태현은 조심스럽게 날 바라봤다.
그가 고민하고 있더라도 입 밖으로 냈다는 건, 실례가 되지 않을 범주의 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성태현이라면 진짜 문제가 될 법한 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테니까.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그러면…….”
성태현은 공석민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특수부로 넘어갈 걸 아는데 강현수 부장이 아니라 부부장인 최서준 검사님께 접촉하신 이유가 궁금해서요. 만약 원했다면 옆 라인으로 넘어간 강현수 부장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으셨을 텐데요.”
공석민은 고민의 여지도 없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최서준 검사님께서 특수부의 진정한 실세이신데 굳이 강현수 부장을 만날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지 못했다.
성태현은 빠르게 수긍했다.
“아, 그렇군요.”
“예. 그러면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대화 즐거웠습니다.”
공석민은 우리와 악수를 하고는 다른 무리를 향해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