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 (2)
칼 답도 아니고 바로 전화라니.
“크흠.”
괜히 목울대를 한번 울리고 전화를 받았다.
“네, 최서준입니다.”
-한 달 만에 답장을 보내면서 그렇게 무심하게 보내면 어떡해요?
약간은 앙칼진 목소리.
일로 인한 공적인 관계 외에는 사적으로 여자와 연락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적응이 안 된다.
“진짜 바빠서 그랬어요. 미안합니다.”
-흥, 뉴스에 엄청 나오는 거 보니까 진짜 바쁜 것 같긴 하더만…….
그녀는 말끝을 흐리고는 다시 말했다.
-이젠 덜 바빠요?
“아…….”
-빨리 말해요. 저 지금 슛 들어가기 직전에 잠깐 전화한 거니까.
“네, 네. 맡고 있던 사건이 종결되어서…… 정확히 종결된 건 아니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것이긴 한데, 어쨌든 바쁜 건 끝났어요.”
-그러면 다음 주에 커피나 한잔해요.
“다음 주에요?”
-네. 다음 주 수요일에 저 스케줄 비는 날이니까 그때 검사님도 시간 비워 놔요.
“……예?”
그때, 수화기 너머로 그의 매니저로 추정되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유 누나, 지금 바로 슛 들어가야 돼요. 얼른 오세요.
-알았어, 갈게.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다음 주 수요일이에요. 연차를 쓰든 도망을 나오든, 꼭 시간 비워 놔요. 안 오면 검찰청 쳐들어갈 테니까.
“아니, 그게 무슨…….”
뚝.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뭔가 한지유에게 상당히 말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나저나 예전보다 성격이 꽤나 활발하게 변한 것 같은데.
촬영하다 보면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해서 성격이 바뀌기도 한다던데, 그런 건가?
아니면, 강현수 부장의 마수에서 벗어난 탓일 수도 있고.
그런데 이 모든 게 은근히 싫지는 않았다.
누가 보는 이도 없는데 괜히 얼굴이 붉어진달까.
이유 없이 오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오랜만에 싱숭생숭해지는 느낌.
에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고개를 휘휘 저어 그녀에 대한 생각을 털어 내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책상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달력으로 향했다.
다음 주 수요일.
급한 일은 없으니까 퇴근 후에 볼 수는 있을지도.
“검사님.”
한지유와의 약속을 생각하던 도중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윤설하는 짧게 웃음을 터뜨리며 서류를 한 아름 안고 내게 다가왔다.
“뭘 그렇게 놀라세요?”
“아닙니다. 무슨 자료예요?”
“이번 심판자 사건 공판부로 넘긴다는 내용입니다. 결재해 주셔야 해서요.”
“아, 그거군요. 알겠습니다. 거기 두세요.”
“예.”
그녀는 서류를 테이블 한쪽에 내려 두고는 허리를 숙여 작게 말했다.
“연애 관련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제가 그쪽으론 검사님보다 한 수 위일 테니까.”
깜짝 놀라 목을 뒤로 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인간, 대체 뭐야.
윤설하는 윙크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검사님 얼굴에 ‘나 설레요.’라고 적혀 있어요.”
젠장.
진짜 윤설하 이 여자, 귀신인가?
지이잉.
그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보낸 이 : 이두형 검사
-특수부 사항 관련해서 오늘 보고받으실 장소와 시간 알려 주시면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오후 8시까지 오피스텔로 오라는 답장을 보내고 휴대폰을 닫았다.
집중하자.
***
-심판자 사건 검찰로 송치 임박. 희대의 사이코패스의 결말
-심판자 사건이라고 불리는 아홉 건의 연쇄살인 및 연쇄살인미수 사건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내일 수사본부가 해체되면, 본 사건은 검찰로 송치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중략)…… 이러한 면에서 최서준 검사의 공이 굉장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팩트펀치 박해윤 기자
결국 팩트펀치도 여론에 굴복했다.
국민이 심판자 사건 해결의 최대 기여자로 날 꼽는데 언론이 그 여론을 반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쌤통이네.”
“그러게요. 그렇게 물어뜯더니 결국은 제 칭찬을 하네요. 하하핫.”
“검사님 덕분에 수형 씨도 그렇고 저도, 제대로 눈도장 찍었습니다.”
송재훈 PD의 말에 박수형 기자도 너스레를 떨었다.
“새삼스럽지만 감사합니다.”
“하하하, 저도 두 분 덕분에 심판자를 잡은 겁니다. 감사하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검사님 말고, 서준 씨라고 하십시오. 괜히 검사님이라고 하면 무게 잡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핫.”
“그럴까요? 그러면 다 같이 이름으로 부르죠.”
“좋죠.”
“그러면 바로…….”
한참을 웃으며 맥주 몇 잔을 마시다 보니 시간은 이미 오후 7시를 훌쩍 넘겨 있었다.
“저는 이제 슬슬 가 봐야겠습니다.”
정장 마이의 단추를 채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십니까?”
“예. 약속이 있어서요.”
“아이고, 아쉽네요.”
“다음에 한잔 더 하시죠.”
“그러죠.”
계산서를 들어 올리자, 송재훈 PD가 뜯어말렸다.
“아닙니다, 검사님…… 아니, 서준 씨. 오늘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김영란법요.”
눈을 찡긋거리며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내가 돈을 내도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다.
일 때문에 만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편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 가는 느낌이랄까.
미래의 내가 평생 함께할 친구들이라고 했던 말이 점점 옳다는 걸 깨닫고 있다.
이 두 명이야말로 진정한 내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
“……해서 강현수 부장 쪽은 견제를 하긴 했지만 언론을 통해서지, 그 외에 따로 태클을 건 사항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검사장 쪽도 마찬가지였고?”
“예. 김재욱 검사장은 강현수 부장을 통해서 움직였을 뿐, 따로 움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양호하네.”
눈앞에 앉아 있는 인물은 특수부의 이두형 검사.
내가 검경 합동 수사본부에 들어가며 특수부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특수부에서의 일들과 가장 견제해야 할 강현수 부장에 대한 감시를 맡겨 놓았다.
까놓고 말해서 이번 일은 일종의 시험대였다.
그가 믿을 만한 녀석인지, 아니면 기회주의자처럼 이번 일을 계기로 강현수 부장에게 붙을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
이두형 검사는 그 시험을 아주 훌륭하게 통과해 냈다.
어느 정도는 내 편에 서고 있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터.
물론, 아직 100% 믿기엔 성급한 일일 테지.
특수부의 많은 검사들 중 이두형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
그 많은 검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SKY 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지방대 출신. 게다가 집안도 별 볼 일 없고 라인도 제대로 타지 못해 더 이상 올라갈 가능이 전혀 없었으니까.
이걸 역으로 생각하면, 연줄이 없는데도 특수부에 들어왔다는 건 그의 능력 하나는 출중하다는 뜻이다.
전형적으로 능력은 있는데 백이 없어서 출세를 하지 못하는 케이스.
이두형을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나 같다.’였다.
광주에 박혀 있던 나와 똑같은 처지의 인물.
물론, 그러한 동정심으로 이두형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그런 감정은 사치니까.
이렇게 연줄이 없는 녀석일수록, 내가 손을 뻗으면 잡을 수밖에 없게 된다.
승진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내린 유일한 서광일 테니까.
믿을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으니 전적으로 내게 충성할 테고, 자연스레 ‘내 사람’이 될 터.
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충직한 사람이 되겠지.
위로 올라갈수록 충성심 있는 부하를 만들어 둬야 뒤가 든든하다.
무엇보다 나는 다른 이들을 끌어 줄 수 있는, 미래가 창창하게 펼쳐진 전도유망한 검사고, 내가 승승장구할수록 내 사람들을 끌어 줄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을 터.
내 사람이 되어 줄 사람들을 간택하는 첫 시작으로 이두형 검사를 택한 것이다.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제 생각이긴 합니다만, 애초에 김재욱 검사장이 선배님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검경 합동 수사본부에 넣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센스도 있고, 볼수록 상당히 괜찮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아, 역시…….”
녀석의 눈빛은 충분히 믿을 만했다.
거짓은 없었고 배신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가 내 수족이 되기 위해서는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다.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한 방.
손을 깍지 낀 채로 무릎에 올려 두었다. 자연스럽게 상체가 기울어지며 그에게 더 가까워졌다.
“이 검사.”
“네, 선배님.”
“아니, 두형아.”
이름을 부르자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김석원 검사장에게 부름을 받을 때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는 건 기분 탓이 아니겠지.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우리 제대로 같이 일해 볼까?”
이두형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말씀은…….”
“같이 올라가야지.”
나는 입꼬리를 옅게 비틀었다.
“위로.”
침을 꿀꺽 삼켰는지, 그의 목젖이 크게 울렁였다.
“내가 부장검사 달고, 두형이 네가 부부장 달고. 어때?”
“선배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주먹까지 꽉 쥔 채 간절하게 날 바라보았다.
“나와 손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지금까지 내가 터뜨린 건들이 어땠는지는 너도 잘 알잖아. 선배들 목 치고, 그걸로 기자회견 하고…… 보통 일이 아니야.”
“할 수 있습니다. 대악(大惡)을 물리치기 위해서 악인이 되는 것쯤은 일도 아닙니다. 더러운 녀석들을 쳐내기 위해서 똥물을 뒤집어쓸 각오는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기회만 주십시오.”
떨림.
그의 목소리에선 떨림이 느껴졌다.
그만큼 그에겐 내가 내린 동아줄이 간절하고 절실하다는 것일 테지.
“정말 할 수 있겠어?”
“예.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일부러 나는 잠깐의 침묵을 가졌다.
그의 절실함이 극치에 이를 때쯤,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검사장.”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검사장을 칠 수 있는 걸 가져와.”
“검사장이라면…….”
“그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김재욱. 그 인간을 끌어내릴 수 있는 자료 말이야.”
마지막 관문.
물론, 수락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직접 그걸 가져와서 그의 능력을 증명해 내야 진정한 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제 와서 무리일 것 같다고 돌아서도 이상하지 않다.
무려 김재욱 검사장이니까.
혹여나 이두형 검사가 내 뒤통수를 치고 김재욱 검사장에게 붙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와는 워낙에 적대적인 관계라 이런 사실이 새어 나간다고 해도 내게 별문제는 없을 거라는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제안.
이두형은 눈을 감았다.
그의 두뇌는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터.
재촉하지 않았다.
재촉하는 것이야말로 을의 행동.
진정한 갑은 여유롭게 기다리는 것, 그게 전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조급해질 것이다.
자신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게 확신이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고 걱정할 테니까.
그걸 알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 커피 한 잔 타 올 테니까.”
“아닙니다.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눈을 번쩍 뜨며 나를 따라 일어섰다.
“하겠습니다.”
이두형 검사는 내가 여태껏 그를 보아 왔던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김재욱 검사장, 칠 수 있는 자료를 어떻게든 구해 오겠습니다.”
“할 수 있겠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오겠습니다. 저는 선배님께 올인하겠습니다.”
됐다.
눈빛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두형은 99% 내 사람이다.
마지막 1%는 김재욱 검사장을 칠 수 있는 그 증거들이 채워 줄 터.
나는 입꼬리를 한껏 비틀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잘해 보자고.”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선배님!”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내 손을 잡았다.
창문 밖으로 휘영청 밝게 뜬 보름달이 남중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