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 (1)
김형석 경감에게 마지막 작별 선고를 하기 사흘 전, 임주영 前 서울중앙지검장을 만났다.
지금은 대검찰청으로 올라가 차장검사를 맡고 있는 상태.
검찰총장 바로 밑에 있는 직급.
한마디로 대한민국 검찰의 넘버 2라고 볼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검사장님…… 아니, 차장님. 죄송합니다, 검사장님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어서.”
“허허, 괜찮네.”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저었다.
“사실, 검사장이라는 호칭이 더 마음에 들어. 직급상으로는 올라온 거지만, 검사장 소리 듣다가 차장 소리를 들으니까 뭔가 다운그레이드 된 느낌이거든. 하하핫.”
시작은 좋았다.
일부러 차장 대신 검사장님이라고 부른 게 효과가 있었다.
임주영 검사장은 방석에 엉덩이를 붙이며 스윽 내부를 둘러보았다.
“파주에 이런 좋은 곳이 다 있었네.”
“진즉에 모셨어야 했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게라도 챙긴 게 고맙지.”
임주영 차장검사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고 있었다.
“차장님 얼굴이 활짝 피셨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별건 아니고…….”
그는 옅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우리 막둥이 녀석이 이번에 반 배치 고사에서 수석을 해서 들어갔거든.”
막둥이라면, 임주영이 40대에 들어선 뒤에야 낳은 늦둥이 아들을 말하는 것일 터.
“엊그저께 입학식을 했는데 거기서 선서하는 모습을 보니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라고. 조금 전에 녀석한테 전화받고 왔더니 또 그 생각이 나 가지고 말이야.”
“이야, 축하드립니다!”
임주영 차장검사는 본인이 말해 놓고도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거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역시 차장님의 영식입니다. 이거 제가 직접 가서 칭찬의 의미로 용돈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네요.”
“으하하핫, 말이라도 고맙네.”
자식 칭찬을 해 주는데 싫어할 부모가 없다는 말처럼 임주영 차장검사의 텐션은 계속해서 높아졌다.
“영식께서 이번에…….”
그는 손을 내저었다.
“거 영식이라고 부르지 마. 부담스러워. 편하게 성준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성준이는 학교를 강남 쪽으로 간 겁니까?”
“어. 대치동으로 갔어. 8학군 쪽은 무슨 중학교도 그렇게 들어가기가 빡센지, 원.”
“거기서 톱을 먹은 성준이는 정말…… 크으.”
엄지까지 치켜올리며 임주영 차장검사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대화를 하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넌지시 물었다.
“슬슬 여자들도 안으로 들일까요?”
눈을 번뜩이며 설명했다.
“제가 파주까지 모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여기 애들은 강남 텐프로 같은 곳과도 비교가 안 됩니다. 검사장님도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엉큼하게 눈썹을 들썩이자, 그는 콧바람을 내뿜고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제대로 놀기 전에 본론부터 끝내고 하지. 내가 답답한 걸 못 참는 성격인 거 알잖아.”
그는 팔을 테이블에 걸치며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우리 최 검사가 무슨 일 때문에 이런 좋은 곳으로 날 데려오셨을까?”
“아, 별건 아니고…….”
나는 미리 테이블 밑에 넣어 둔 기천만 원에 달하는 명품이 담긴 쇼핑백 두 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고.”
“어허, 최 검사!”
그는 호통을 치며 눈을 부릅떴다.
“우리가 이런 걸 줘야 부탁할 수 있는 사이였나?”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작은 성의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면 나 섭섭해. 우리 사이가 어디 보통 사이인가?”
“당연합니다. 이건 그저 성의 표시입니다, 성의 표시.”
스윽 테이블에 놓인 쇼핑백을 밀자, 그는 흠흠 헛기침을 했다.
“성의를 무시하는 건 조선의 법도에 어긋나지?”
“그럼요!”
“그러면 일단 받지.”
“하나는 차장님께서 착용하시고, 하나는 사모님 생각해서…….”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명품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자신의 테이블 밑으로 내려 두었다.
“역시 최 검사가 센스가 있어. 나이가 들수록 마누라 눈치가 더 보인다니까.”
이 정도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터.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하는 임주영 차장검사에 맞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경찰 한 녀석을 치려고 합니다.”
“경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사가…… 그것도 자네 클래스에 경찰을 치는데 굳이 나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있나?”
“그 경찰 녀석의 뒤에 차경석 부장이 있습니다.”
“기획조정부의 차 부장을 말하는 건가?”
“예, 맞습니다.”
임주영 차장검사는 그제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 녀석이 매번 검사들에게 영감님, 영감님 하며 도를 넘는데 차 부장 때문에 맨날 당하고만 있었답니다. 저도 그럴 뻔했고요. 경찰 위에 검사지, 검사 위에 경찰은 아니잖습니까?”
“그럼, 그건 당연하지.”
“그래서 제가 혼쭐을 내 주려고 하니까 바로 차경석 부장에게서 전화가 오더군요.”
“차 부장 그 녀석, 낄 데 안 낄 데 구분 없이 다 끼고 있구먼.”
그도 이런 상황은 달갑지 않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짧은 정적 후, 결론을 뱉었다.
“차장님, 제가 그 녀석 혼내 주는 동안, 차 부장이 개입만 못 하게 해 주십시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이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우리 아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더구먼.”
아들 생각이 떠오르는 듯 다시금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PC방에서 시끄러운 초등학생들 조용히 만들 때는 아저씨가 아니라 중학생들을 이용하는 게 더 빠르다고.”
그는 눈을 찡긋거렸다.
“한마디로 바로 위에 놈 통해서 조지는 게 최고라는 거지.”
대검에서 차경석 부장은 서열 3위, 임주영 차장은 서열 2위.
결국 자신이 차경석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데는 최적화되었다는 소리다.
“하하핫, 그렇습니까?”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내 술잔을 채워 주었다.
“걱정 말고 죽여. 검사가 경찰에 놀아나면 쓰나. 쪽팔려서 검사질 해 먹겠어?”
“감사합니다.”
나는 그의 술잔을 채워 주며 넉살을 떨었다.
“조만간 검사장님 댁에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가서 성준이한테 용돈이라도 쥐여 주고 싶네요. 그런 이야기도 하고, 참 똘똘할 것 같습니다.”
“으하핫, 말만이라도 고맙네.”
임주영 차장검사는 나와 잔을 가볍게 부딪치고는 시원하게 말했다.
“끝났으면 우리도 제대로 즐겨 봐야지. 안으로 들여. 오늘은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고.”
“알겠습니다!”
***
“김 반장 그 녀석, 먼지 묻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똥물을 뒤집어썼던데요?”
“그 정도입니까?”
“예. 주변 나이트 상권에서 받아 챙긴 것만 해도 외제 차 몇 대는 뽑았을 것 같더라니까요.”
이야기를 하던 검사는 조소를 흘렸다.
“그 녀석 털 때마다 아주 쾌감이 들어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박 검사님이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아유, 고생은요. 최 검사님 덕분에 그 녀석도 털고, 아주 속이 시원합니다. 몇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에요.”
박 검사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는 듯 자신의 배를 마구 어루만졌다.
김형석 경감의 내사는 이 검사와 박 검사라는 두 인물에게 맡겼다.
내 앞에 있는 박 검사는 작년에 검경 합동 수사본부에서 김 반장에게 농락을 당했던 인물이고, 그와 함께 내사를 진행하는 이 검사는 이번 수사본부에서 나와 같이 일을 하면서 김 반장에게 내사를 때리자고 가장 강력히 주장했던 인물.
그만큼 둘 다 김 반장이라면 치가 떨릴 이들로만 모아 놨으니,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그를 탈탈 터는 건 일도 아닐 터.
이 정도 중간보고만 들어도 복수는 시원했다.
그러게 왜 경찰이 검사에게 덤벼, 덤비기는.
“그러면 박 검사님 믿고 저는 이제 신경 끄도록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나중에 다 처리하고 나서 깔끔하게 보고드리겠습니다.”
“예, 고마워요. 고생하세요.”
“네!”
고개를 꾸벅이는 그를 뒤로하고 사무실로 올라가려는데.
지이잉.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은 스타 프로덕션의 진태용 사장.
요 며칠 동안 전화를 계속 안 받았기에 오늘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새로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네, 최서준입니다.”
-아, 검사님. 오랜만입니다. 잠깐 통화 괜찮으십니까?
진태용 사장은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목소리 톤이 올라가 있었다.
“예, 말씀하세요.”
-요 며칠 굉장히 바쁘셨나 봅니다. 통화하기가 힘들더라고요, 허허헛.
“죄송합니다. 심판자 사건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서 정신이 없었거든요.”
-오, 드디어 끝납니까?
“제 선에서는 마무리되고요, 공판은 이제 시작이죠.”
심판자 사건은 말 그대로 거의 끝나 가는 상황.
피의자 송하나가 취조 과정에서 계속 나에게만 이야기한다고 해서 고생깨나 하긴 했지만, 그것도 저번 주로 마무리되었다.
검경 합동 수사본부는 내일 자로 해체할 예정이며 뒷일은 공판부에 맡길 테니 이제는 진짜 심판자 사건에서 손을 뗄 수 있을 터.
-축하드립니다. 다름이 아니고 이번 사건 덕분에 저희 영화도 엄청나게 홍보가 됐거든요.
아, 잊고 있었다.
내가 영화 자문으로 들어갔었지.
말 그대로 간판만 걸고 실질적으로 일은 하지 않으니, 안중에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두 달 전에 크랭크인 들어갔다는 소식만 들었지, 그 뒤로는 워낙 바빠서 연락이 와도 제대로 답장도 못 했으니까.
“효과를 보셨다니 다행이네요. 촬영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요?”
-이제 2/3 정도 왔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그러면 올여름에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건가요?”
-아니요, 편집 과정이랑 배급사 조율 및 극장 개봉 시기도 정해야 돼서 빨라도 겨울, 늦으면 내년 벚꽃 시즌이나 될 것 같아요.
“그렇군요. 저도 시사회 초대장 기대해도 되는 걸까요?”
-물론이죠. 필요하신 만큼 말씀해 주세요. 사실, 저희 마음 같아서는 검사님께서 시사회에 직접 올라오셨으면 하는데…… 그건 무리겠죠?
시사회에 올라간다니.
그건 굉장히 부담스럽긴 하지만…….
잠깐, 어찌 보면 기자회견에서 늘 보여 주던 딱딱한 모습과 달리, 조금 더 친근하게 국민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다.
시사회 영상을 통해 대중에게 이 모습이 퍼지면 분명 나에 대한 인식은 더욱 좋아질 터.
멀리 봤을 때는 분명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가능한 한,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진태용 사장의 목소리 톤이 확 높아졌다.
-그래 주시면 저희야 정말 감사하죠.
“확정은 아니고,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국가에 소속된 몸이라……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이죠. 아직 먼 일이니까 천천히 조율하고 말씀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나중에 또 진행되는 거 있으면 알려 주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검사님!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한지유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번에 만난 이후로 그녀가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있었다.
생각난 김에 그녀와의 대화 창을 열었다.
-한지유 : 검사님!
-한지유 : 시간 나시면 영화 들어가기 전에 한번 봬요!
-…….
-한지유 : 바쁘세요?
쌓여 있는 메시지만 이십여 개.
마지막 메시지가 한 달 전.
늦었지만, 답장을 했다.
-최서준 : 미안해요, 조금 바빴습니다.
간단히 메시지를 보내고 담배꽁초를 버린 뒤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지이잉.
답장을 보낸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