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61화 (61/341)

심판(審判) (4)

-단독! 최서준 검사의 심판자 검거를 경찰이 방해하려던 사실 밝혀져!

-본지는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최서준 검사(現 심판자 사건 검경 합동 수사본부장)가 기자회견에 들어오기 직전, 김형석 경감(일명 김 반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입수했다. 녹취록을 들어 본 결과, 대화 내용은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었다. 수사본부에서 경찰의 대표라고 볼 수 있는 김형석 경감이 최서준 검사를 방해하려고 했던 것. 복원한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형석 경감 : 지금 체포한 송하나가 심판자라는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

-최서준 검사 : 본인이 자백했어요. 실제 벌어졌던 두 번째 심판 사건에서 피해자의 몸에 남았던 흔적과 송하나의 이번 흉기가 일치한 것도 확인되었고요.

-김형석 경감 : 그런 흉기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거잖습니까?

-최서준 검사 : 해머와 비슷한 수준의 망치예요. 이건 송하나가 직접 개조한 것이고요. 다른 사람들이 흔히 쓸 수 없는 흉기라고요.

-김형석 경감 : 하지만 그게 기성품들을 가지고 조립한 것이기에 얼마든지 다른 범인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최서준 검사 :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김형석 경감 : 아무튼 안 됩니다. 이번에 바로 심판자인 걸 밝히면 제가 태클 걸 겁니다. 진짜 심판자는 제가 잡을 테니까요.

-최서준 검사 : 김 반장님, 혹시 심판자 검거에 기여하지 못하셨다고 이렇게 시비 거시는 겁니까?

-김형석 경감 : (잠시 침묵) 실제 수사도 해 본 적 없는 신내기 검사가 경찰 말을 이해할 리가 없지. 검사가 뭘 알겠어? 경찰이 알지.

이 뒤의 대화 녹취록은 차마 본지를 통해 공개할 수가 없어 보류한다. 이러한 대화가 오가는 검경 합동 수사본부에서 최서준 검사가 심판자를 검거한 게 훨씬 더 대단해 보일 수준. 과연 경찰은 자신의 실적을 위해 사건을 조사하는 건지 민중을 위해 사건을 조사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과연 대한민국의 경찰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WK일보 박수형 기자

***

“죄송합니다, 청장님.”

“김 반장!”

서울지방경찰청의 경찰청장 사무실.

경찰청장은 들고 있던 신문을 김형석 경감의 머리로 던졌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이딴 기사가 나와!”

“아니, 그게…….”

김형석 경감은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오가긴 했지만, 저런 대화는 아니었다.

초반에 자신이 시비를 걸었던 건 맞지만, 그 뒤에는 분명 최서준이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했으니까.

“실은 저런 대화 내용이 아니었는데…….”

그가 변명을 끝내기도 전에 경찰청장은 윽박을 질렀다.

“그래서 기자회견 전에 찾아갔어, 안 갔어?”

“가, 갔습니다.”

“그러면 자네가 잘못한 거라고!”

경찰청장은 열불이 치밀어 오르는 듯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지금 경찰 이미지 완전 똥이야, 똥! 박살 났다고! 이거 자네가 책임질 거야?”

김형석 경감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해서 뭐 어쩔 건데.”

“…….”

이미지도 박살, 실적도 박살, 모든 게 박살 난 김형석 경감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후우.”

경찰청장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남은 게 뭐야?”

“최서준이 단독으로 확보했다는 그 증거가 증거의 효력만 없게 만들면 어떻게든 판이 엎어질 수 있습니다.”

“그 증거 지금 NDFC에 있다고 했나?”

“맞습니다.”

“그걸 국과수로 넘어오게 해야지, 왜 NDFC로 보내?”

의자를 꽉 부여잡는 경찰청장은 살벌하게 김형석 경감을 쳐다보았다.

“최서준이 아예 이번 사건의 공을 완전히 검찰에서 독차지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지금 기사에서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의 곰팡이라잖아!”

“죄송합니다.”

경찰청장은 머릿속으로 열심히 짱구를 굴려 보았지만, 도저히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최서준을 건드는 건 불가능하다.

이번 건으로 그는 일개 검사를 넘어 검찰의 상징이 되어 버린 상태.

암만 자신이 경찰청장이라고 한들, 특수부의 부장검사 후보로 유력해진 최서준을 건드는 건 말벌 집을 쑤시는 것과 다름없다.

“조용히 넘어가.”

“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이 상황에서 들쑤셔 봤자, 우리만 죽어 나가. 최서준 그 녀석은 이제 경찰의 상대가 아니야.”

김형석 경감은 이를 꽉 물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그가 할 수 있는 건 말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뿐.

김형석 경감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김형석 경감이 조용하네요.”

사무실로 들어오던 윤설하가 흘긋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요.”

“위에서 된통 깨졌나 보죠.”

피식 웃으며 의자를 빙글 돌렸다.

“이번 사건이랑 파생 기사로 인해서 다른 경찰들까지 다 박살 나서 미안하긴 한데, 경찰들도 한번 정신 차릴 때 되긴 했어요.”

“그럼요. 저는 언제 그렇게 혼쭐을 내 주나 했다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내게 한 발자국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 수사관들한테 들어 보니까, 다른 검사님들도 아주 입이 귀에 걸리셨다고 하더라고요. 검사님께서 경찰 코를 완전히 납작하게 눌러 줬다고요. 그래서 저희 수사관들도 요즘 만나면 다 검사님 칭찬뿐이라니까요?”

“아유, 뭘 부담스럽게.”

“진짜예요.”

윤설하는 생긋 웃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아, 그나저나 진짜 궁금한 건 박수형 기자가 쓴 기사예요. 그때 검사님과 저 그리고 김형석 경감까지 셋만 있는 줄 알았는데, 도대체 누가 제보한 걸까요?”

당신의 눈앞에 있는 그 검사가 제보했다고는 절대 말 못 하지.

“글쎄요. 지나가다가 누가 듣고 제보한 거 아닐까요?”

“하긴, 우리 위치가 조금 개방되어 있긴 했죠.”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정말 쌤통이에요.”

“에이, 겨우 이걸로 후련해하면 안 되죠.”

윤설하는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아직 뭔가 남아 있어요?”

“일개 경찰이 검사를 건드렸으면 끝을 봐야죠. 어디서 감히 경찰 나부랭이가 검사를 넘어서려고 합니까?”

그 말에 그녀는 흥미로운 듯이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검사님이랑 일하면 정말 매일매일이 기대의 연속인데요?”

“제가 지금까지 기대를 실망시킨 적은 없는 걸로 아는데.”

“그럼요. 단 한 번도 없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입꼬리를 비틀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녀석을 조지기 위해 어제부터 사전 작업에 들어가 있는 상태니까.

지이잉.

때마침 윤설하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녀는 곧 전화를 꺼내 들었다.

“NDFC인데…….”

“여기서 받아요.”

“예.”

그녀는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검경 합동 수사본부장 수사관 윤설하입니다.”

몇 번 고개를 주억거리며 ‘네.’라고 대답하던 그녀의 목소리 톤이 이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좋은 소식인 것 같은데?

잠시 후 윤설하는 전화를 끊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DNA 검사 결과 일치한답니다!”

“예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윤설하에게 다가가 시원하게 하이 파이브를 했다.

확정이다.

기자회견에서 던진 승부수가 100% 나의 승리로 점쳐지는 순간.

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무실 문을 열고 밖에 있는 수사본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송하나 심판자 확정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수사본부에 있던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기쁨에 연신 주먹을 쥐고 흔들며 윤설하에게 다가갔다.

“설하 씨, 기자회견 준비합시다.”

“알겠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검사 최서준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이전에 체포했던 송하나가 심판자로 확정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카메라의 플래시가 마구 터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심판자로 추정이었지만, 이번 NDFC 검사 결과 송하나가 심판자라는 게 확정되었습니다. 그 경위에 관해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기자들과 카메라를 향해 지퍼 백에 들어 있는 1회용 인공 눈물을 보여 주었다.

“여섯 번째 사건 당시, 경찰은 범인이 현장에 떨어뜨려 놓은 이 1회용 인공 눈물을 증거품으로 습득하지 못했습니다. 현장 조사가 끝난 뒤 제보자분께서 직접 현장에 갔다가 이 인공 눈물을 발견한 거고요.”

박수형 기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현장 조사를 한 후에 가서 취득한 걸로 설명했다.

사실대로 말했다간 증거물 불법 취득으로 박수형 기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물론, 이전까지는 이게 증거로 쓰이기보다는 범인의 폭을 좁힐 수 있는 정도로밖에 쓰일 수 없었죠.”

그건 사실이었다.

나도 기껏해야 라식이나 라섹 수술자, 혹은 안구건조증과 같은 안구 질환이 있는 사람 정도로밖에 추정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송하나를 문초하던 도중, 피의자가 인공 눈물을 눈주름에 완전히 얹어서 넣는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공 눈물에 DNA가 묻어날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는 거죠. 그래서 바로 NDFC에 증거품의 DNA 분석을 의뢰한 결과…….”

NDFC에서 보내온 검사 결과지를 펼쳐 보였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인공 눈물에 남아 있는 DNA와 실제 송하나의 DNA 분석 결과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내용입니다.”

모든 카메라가 검사 결과지를 찍어 대기 시작했다.

“또한, 송하나를 심문한 결과, 그녀가 여섯 번째 현장에서 본인의 1회용 인공 눈물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결과 이 인공 눈물이 증거품으로 효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을 이었다.

이제 마지막 결론이다.

“그 결과, 연쇄살인 및 살인미수로 벌어진 아홉 건의 심판자 사건의 범인이 최종적으로 검거되었음을 밝힙니다.”

이후 몇 가지 질문을 받고 난 뒤에 기자회견은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남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검경 합동 수사본부에 돌아오자, 김형석 경감이 독기가 잔뜩 오른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따로 불러내 머리를 숙였다.

“그간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심판자 사건도 마무리되었으니 혹시나 서운한 게 있으셨다면 오늘로서 마무리 짓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좋게 끝내자고요?”

나는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끝내면 아쉽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이번에 알아보니까 백 믿고 꽤나 더럽게 노셨던데…….”

나는 한 발자국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사 한번 받고 지방으로 가시든지, 지구대로 내려가시든지 하시죠.”

적당히 끝내려고 왔던 김형석 경감은 부들부들 떨며 눈을 치켜떴다.

“적당히 해. 나도 억지로 사과하러 온 거니까. 너,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

“대검 기획조정부 차경석 부장요?”

정확히 이름을 대자, 김형석 경감이 움찔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내 표정 관리를 했지만, 그의 당황한 속내는 이미 다 알아챘다.

피식 웃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제가 그것도 생각 못 하고 움직였을까 봐요?”

“…….”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벌?”

“이번엔 제가 내리는 심판(審判)입니다. 이젠 물러나세요.”

나는 거만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 가기 전에 그 반장 직함은 내려놓을 준비 하시고.”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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