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60화 (60/341)

심판(審判) (3)

“……해서 심판자를 현장에서 검거하여 취조 중인 상태입니다. 현재는 정식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해 두었으며, 현재 심판자인 송하나는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본부에서 강남경찰서의 유치장으로 이송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상으로 심판자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마치고, 추가적으로 질문받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를 보고 있던 기자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정말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기자들이 손을 든 것 같은 느낌.

나는 제일 먼저 가까이 있던 기자 하나를 가리켰다.

“정치 1번지 장홍순 기자입니다. 심판자 사건의 검거 경위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제일 반가운 질문이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내 공이 가장 크다는 게 바로 이 검거 경위에서 드러나니까.

“이건 사실, 이야기하자면 긴데…… 다들 궁금해하시는 만큼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울대를 한번 울리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 이 사건을 맡았을 때, 한창 조사를 하다 보니 에 나온 인물들이 심판자의 범행 대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라면 PBC 방송 프로그램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 프로그램요.”

이라는 건 다들 예상치 못했는지 기자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물론,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직접 유동현을 심판자의 표적으로 올렸다는 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수 있기에, 조금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말하기로 미리 결정해 두었다.

나를 공격하려는 세력들은 분명 꼬투리를 잡을 수 있으니까.

“그 직후, 해당 프로그램 PD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이번 피해자에 대한 사건을 다룬 방송이 방영 예정이더군요. 그래서 그 PD님과 사전에 협의해서 방송 일자를 조율하고 수사본부 인력을 통해 해당 피해자에게 형사를 붙여 뒀습니다. 심판자에게 당하지 않도록요.”

직접 피해자를 표적으로 만드는 것과 달리, 방송 일정을 당기는 정도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형사를 붙여 심판자에게서 안전하게 만드는 뉘앙스로 말했기에 전혀 논란의 여지가 발생치 않을 터.

“그 이후 심판자의 범행 패턴과 피해자의 동선을 고려해 미리 잠복했고, 역시나 예상대로 심판자는 아홉 번째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피해자가 목숨을 잃지 않는 선에서 심판자를 현행범으로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형 기자의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와의 은밀한 커넥션까지 만천하에 드러낼 필요는 없었으니까.

물론, 박수형 기자가 서운하지 않도록 이 사항은 그에게도 미리 일러두었다.

기자와 검사의 관계는 음지로 갈수록 더욱 튼튼해지는 법이니까.

“그 외에도 심판자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모든 상황과 요소를 기획하며…….”

추가적인 몇 가지 사안을 부연 설명하자, 기자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심판자의 사건 자체를 기획해서 표적을 미리 알아채고 범행으로부터 보호했다는 것이, 기자들과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전해질 게 분명하니까.

영화에서나 보던 그 기획 수사가 현실에서 실현된 것과 다름없겠지.

실제로 그 표적 자체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고 하면 그 파급력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게 약간이나마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창 질문을 받던 도중 저 멀리 박수형 기자가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에 바로 그를 가리켰다.

“WK일보 박수형 기자입니다. 그러면 이번 사건에서 모든 사건은 최서준 검사님께서 직접 계획하고 지시하신 겁니까?”

이게 바로 어시스트.

“굳이 따지자면 그렇습니다만, 이번 사건의 검거는 경찰과 검찰이 힘을 합쳐서 이뤄 낸 결과지, 누군가 한 명의 공으로 돌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겸손하신 말씀이군요. 설명 감사합니다.”

박수형 기자는 씨익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말은 이렇게 했어도, 내일 헤드라인은 뻔했다.

‘역시 최서준, 검경 합동 수사본부의 수장으로서 심판자 사건 해결!’이라고.

한국에서 겸손의 미덕까지 갖춘 이상, 언론과 여론은 전부 내 편이 될 테니까.

그때, 저 멀리서 번쩍 손을 들고 있는 한 여성 기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를 가리키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팩트펀치 박해윤 기자입니다.”

팩트펀치라면, 일전에 한번 나를 물어뜯었던 경력이 있는 신문사.

내 기억이 맞는다면, 박해윤 기자 저 인간이 검경 합동 수사본부에 대해 까 내리면서 나라는 인물의 무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했다.

아마 평범한 시선을 가진 기자는 아닐 터.

“지금까지 경찰은 심판자에 대한 증거를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범인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들었습니다. 만약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해, 이전 심판자 사건들의 범인도 아니면서 본인이 심판자라고 거짓 자백을 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김형석 경감이 했던 말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심증이 아니라, 나의 반대 측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다.

김형석 경감이 직접 심었거나, 그와 관련되어 나를 방해하려는 인물 중 하나가 심어 놓은 인물이겠지.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괘씸해서 안 되겠다.

경찰이 욕먹는 걸 검찰이 손을 보태서 합동 수사본부까지 꾸려 심판자를 잡았는데 감사 인사는커녕, 태클질이라니.

나는 깊이 숨을 한 모금 들이마신 뒤, 입을 열었다.

“당연히 본인의 자백만으로는 송하나가 심판자라는 확정을 지을 수 없습니다.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로 말씀드리면, 두 번째 피해자의 머리에 남아 있던 흉기의 흔적과 이번에 송하나가 현장에서 검거되며 들고 있던 흉기가 일치한 것으로 밝혀졌고, 추가적인 증거는 확보 중에 있습니다.”

“끝인가요?”

“아닙니다. 송하나가 흉기를 버렸다는 해당 장소 일대를 대대적으로 수색하고 있으며, 피의자의 집에도 수색영장을 통해 추가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해윤 기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사건이 벌어졌을 때 경찰이 확보하지 못했던 증거들을 따로 수집해서 NDFC를 통해 검증 중에 있습니다.”

경찰이 확보하지 못했던 증거라는 말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경찰의 무능을 뜻하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으니까.

한마디로 내가 경찰을 대표하는 김 반장에게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물론, NDFC에서 지금까지 나온 소식을 들어 보면 내가 이길 확률이 80% 이상인 승부수.

이 정도는 나가 줘야 최서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확실한 임팩트를 줄 수 있다.

그래야 김재욱 검사장이 암만 나를 견제하더라도 부장검사 자리를 주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

부장검사까지 올라가야 제대로 된 힘이 시작되는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이런 쇼(Show)는 얼마든 할 수 있다.

“해당 증거에 대한 분석 결과가 나오면 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기자라는 하이에나들에게 무능한 경찰이라는 먹잇감 하나를 던져 주고, 나는 깔끔하게 퇴장했다.

***

이날 저녁, 나는 오피스텔에 박수형 기자를 따로 불러냈다.

“검사님, 축하드립니다.”

“아이, 뭘요. 다 기자님 덕분이죠.”

“하하하, 저는 검사님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아주 이달의 기자상까지 받게 생겼습니다. 하하하핫!”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다가 슬쩍 물었다.

“그런데 제가 도착한 뒤에 전화를 받는다고 복도에 있었는데, 이 집에서 누가 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혹시 누가 알아챈 건 아닐지…….”

10분 전에 나간 이두형 검사를 말하는 모양.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후임입니다.”

“후임요?”

“예. 특수부에 있는 평검사입니다.”

“후임을 이곳에 들이실 정도면…….”

“시험 중이죠. 제대로 제 밑에 설 녀석인지, 아닌지.”

자세한 내용까지 말해 주기엔 아직 이르기에 적당히 말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후속 기사도 하나 내셔야죠.”

후속 기사라는 말에 그의 눈이 번쩍였다.

“혹시 그 NDFC 검사 결과가…….”

“아니요. 죄송하지만, 그건 기자회견을 통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박수형 기자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분수를 넘어서는 것까지 욕심내지는 않는 것이다.

“기사를 하나 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검사님이 원하시는 기사라면, WK일보 사장을 까는 기사도 쓸 수 있습니다.”

그는 반농담식으로 말했지만,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긴, 이 인간 성격을 보면, 하라면 정말 할지도.

“특별한 건 아니고 경찰의 실태를 고발하는 일이죠. 오늘부로 한창 경찰들 까는 기사가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흥미로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활활 타는 불에는 땔감을 넣어 줘야죠.”

실제로 오늘의 기자회견 직후, 온갖 기사들에서 경찰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었다.

-역시 최서준! 경찰이 놓친 증거도 수집해 보강. 무능한 경찰은 대체 뭘 했나?

-검찰이 역시 한 수 위! 경찰과의 급 차이를 증명해 내다

-최서준의 한계는 대체 어디인가? 최연소 부장검사 가능성 多

-아홉 차례에 걸쳐 심판자 사건이 발생하는 동안 경찰이 한 거라고는 고작 ‘심판자=여성’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게 전부라고 밝혀져……

-말로만 듣던 기획 수사의 현실 구현! 옆집 주민들에게 들은 생생한 검거 현장! “마치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은 모습이었죠.”

-대체 어디서부터 기획한 것인가? 최서준 검사의 큰 그림의 처음과 끝을 파헤치다

-민중의 지팡이 경찰? 아니, 민중의 곰팡이 경찰!

나에 대한 칭찬이 아니면 경찰을 까는 헤드라인.

그러한 제목들로 온갖 포털 사이트가 도배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박수형 기자님이 또 한 번 단독 보도를 때려 주시면, 이달의 기자상이 아니라 남은 기간 내내 놀아도 이번 분기 실적은 다 채우시지 않겠습니까?”

“단독요?”

박수형 기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 물론 익명 제보입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검경 합동 수사본부장인 최서준 검사와 수사본부 경찰의 실질적인 수장인 김형석 경감의 대화를 밝히고 싶다는 일종의 고발이랄까요?”

“그렇다면 제보자는 무조건 익명이어야겠네요.”

그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며 녹음기를 꺼냈다.

“아주 맛깔나게 써 보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잠깐, 그렇다면 픽션을 조금 얹어도 되겠네요?”

“물론이죠.”

나는 다리를 크게 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이게 제가 웬만해서는 이야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영 기분이 나빠서요.”

박수형 기자는 다시금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검경 합동 수사라면 검찰과 경찰이 힘을 합쳐야 되는데 이상하게 김형석 경감, 즉 김 반장은 뭔가 수사를 방해하려는 것 같더라고요.”

“수사를 방해해요?”

“예. 오늘 기자회견 직전에 최서준 검사가 기자회견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예고도 없이 김형석 경감이 찾아옵니다. 뜬금없이 자백보강법칙을 가지고 말이죠.”

이 기사를 보는 이들이 흥미를 가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를 시작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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